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3
한제의 표정에 처음으로 긴장한 빛이 어렸다. 그는 자신의 추측이 옳다고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마지막 석실에 있던 그 시체는 분명 모종의 특수한 법술을 익히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리라.
그는 사방에 가득 찬 몇 백 개의 석실을 둘러보았다. 이 석실들 안에 들어 있는 시체는 그 시체의 수련을 위해 준비된 것이 분명했다.
한제는 한참이나 침묵했다. 의심스러웠다. 그 시체는 전신전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다. 어쩌면 전신전에서는 그 시체의 존재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지 않고서야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붉은 얼굴의 노인이 이토록 견제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무엇보다도 만약 그가 이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절대 한제 자신을 이곳에 혼자 두지 않았을 터였다.
이곳은 전신전의 선조들이 묻힌 곳이었다. 한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시체는 이곳에 매력을 느끼고는 몰래 자리를 잡고 수련을 시작했으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한제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그 안에서 한 쌍의 눈동자가 며칠 동안 묵묵히 자신을 지켜봐오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팔급마군
한제는 곧장 수상한 석실 밖으로 가 영기를 토해냈다. 그 영기 속에서 수정 비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돌벽의 오른쪽 모서리를 찌르자 눈 깜짝할 사이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렸다. 한제는 신식을 이용해 그 시체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리고 터질 듯한 심장을 진정시키며 인력술을 이용해 그 시체 아래에 놓여 있는 저물대를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자세히 살필 틈도 없이 곧장 품에 챙겨 넣고는 뒤로 물러나며 두 손을 연거푸 움직였다. 옆에 있던 빛 구슬은 곧장 돌벽으로 돌아갔고 눈 깜짝할 사이에 돌벽은 다시 원래 상태로 복구되어 수경문이 나타났다. 다만 오른편 아래쪽의 모서리에 눈에 잘 띄지 않는 공백이 생겨나 있었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곧장 출구를 통해 동굴 밖으로 나갔다. 약간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붉은 얼굴의 노인은 두 눈을 번쩍 뜨고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안에서 꼬박 7일 동안 있었구나. 깨달았느냐?”
한제는 고개를 저으며 쓰게 웃었다.
“신도술은 정말 너무나 기이한 술법입니다. 한 번 다 보고나면 곧바로 잊어버리게 되더군요. 결국 깨닫지 못했습니다. 선배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석실 안에 있는 그 수경문들 안에는 대체 무엇이 봉인되어 있는 겁니까? 혹시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붉은 얼굴의 노인은 한제를 한 번 훑어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역대 전신전의 선조님들이시다. 삶을 마감하신 뒤 곧장 이 석실 안으로 보내지게 되어 있지.”
한제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심장은 크게 떨리고 있었다. 막연했던 추측은 이제 확신으로 변했다.
그는 몸을 훌쩍 날려 포권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더는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붉은 얼굴의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켜 동굴 쪽으로 향했다. 그의 몸이 수경문 안쪽으로 사라지던 순간, 한제는 곧장 검광으로 변해 산봉우리 쪽으로 내달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화분맹의 산봉우리에 이른 그는 저 멀리 팔급마군이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제가 다가오자 노인은 코웃음을 쳤다.
“오늘도 안 나오면 쳐들어가서라도 네 놈을 찾아올 생각이었다.”
한제는 두 말 않고 빠르게 날아갔다. 팔급마군이 몸을 한 번 움직이자 그가 앉아 있던 구름이 단번에 흩어지며 그 안에 감춰져 있던 거대한 호리병이 나타났다. 노인은 그 호리병에 탄 채 한제를 뒤쫓았다.
한제는 힐끗 쳐다보더니 그 호리병 위에 올라탔다.
호리병의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심지어 한제가 토둔술로 움직일 때보다 더 빠른 것 같았다. 벌써 저 멀리 화분국과 선무국의 국경이 보일 정도였다.
이동하는 내내 둘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제는 품속에 가지고 있는 저물대의 존재를 잊지 않고 있었지만 곧장 그것을 살피지 않았으며 심지어 신식으로 훑어보지도 않았다. 팔급마군 앞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가는 들키기 십상이었다.
호리병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선무국 국경을 떠나 화분국에 진입했고 다음 날에는 수마해에 이르렀다. 저 멀리 수마해 안에서는 한 조각 안개가 피어올라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안개 속에서 살아가는 영수들의 모습도 보였다가 곧장 종적을 감추었다.
수마해에 들어가기 전, 팔급마군이 살짝 두드리자 호리병은 곧장 줄어들어 그의 손에 떨어졌다. 한제는 몸을 휙 날려 땅에 착지했다. 노인은 호리병을 챙겨 넣은 뒤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서 며칠 기다리면 누가 올 것이다. 그가 오면 함께 가도록 하자.”
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감았다.
한제는 수마해를 바라보며 가장자리에 앉았다. 층층이 쌓인 안개가 마치 썰물처럼 흐르며 한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한제도 곧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별안간 번쩍 눈을 뜬 한제는 수마해 상공에서 갑자기 나타난 기이한 광경을 보게 됐다. 여덟 갈래의 보라색 빛줄기가 허공에서 나타나더니 점점 여덟 개의 보라색 거목(巨木)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그 거목들은 서로 교차되며 원형의 진을 이루더니 거대한 영력을 일으켰다. 심지어 그 아래에 있던 수마해의 안개도 그 영력에 의해 사방으로 흩어지며 소용돌이쳤다.
여덟 개의 거목에는 각각 하나씩의 질박한 부호와 도안이 그려져 있어 굉장히 엄숙해보였다. 그 여덟 개의 거목 사이에 자리한 여러 줄기의 빛이 거목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 빛줄기들이 하나로 이어져 또 하나의 빛의 고리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세히 세어본다면 그렇게 이루어진 빛의 고리는 총 49개였다.
“이건 시음종 특유의 전송진이다. 귀신도 사람도 아닌 자들이 무슨 바람이 불어 감히 이곳에!”
팔급마군이 두 눈을 번쩍 뜨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시음종, 한제에게는 익숙한 단어였다. 이 진 역시도 그에게는 익숙했다. 옛날 조나라 시음종에서 봤던 진과 똑같았다. 다만 그때보다 몇 배 정도 더 컸을 뿐이다.
진 안의 빛 고리들이 하나둘 빠르게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전체가 밝아지자 곧 30개가 넘는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사람들은 모두 두 눈에서 어스름한 빛을 내며 탁한 기운을 풍겼다.
하지만 그들 중 가장 수준이 낮은 자도 결단기 수준으로 원영기 수준의 수련자도 다섯이나 됐다. 그 다섯 명의 원영기 수련자 외의 사람들 뒤에는 모두 검은색 나무 관이 하나씩 딸려 있었다.
다섯 원영기 수련자 중 한 명은 조전랑이었다. 그는 진 안에 나타난 뒤 사방을 둘러보다가 푸른 옷을 입은 노인에게 잠시 시선을 멈추었고 마지막으로는 한제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말없이 검은색 안개로 변했다. 그리고 순간 허공으로 날아올라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는 피하지 않고 가부좌를 튼 채 앉아서 못 본 체했다. 그 검은색 안개가 한제에게 달려들어 음한기를 물씬 풍기던 그때, 팔급마군이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검은 연기는 곧장 흩어져 버렸다. 그 여파는 한제에게까지 미쳤고 이에 그의 저물대에서 튀어나온 일반 품질의 방어 옥패가 순간 재로 변해 사라졌다.
“정말 귀찮군!”
팔급마군은 툭 내뱉더니 고개를 들어 차가운 눈으로 조전랑에게 외쳤다.
“공연히 살인을 저지르고 싶지 않으니 썩 꺼져라!”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괜히 시음종과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시음종의 비밀스러움은 어떤 의미에서는 4, 5성 수련국보다도 두려웠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필요 없는 원한을 사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자신과 별 상관이 없는, 그저 이용해먹으려는 녀석을 위해서라면 더욱 말이다.
조전랑은 당황했다. 손짓 한 번에 자신의 공격을 와해시켜 버린 상대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화분맹에서 전해져온 소식을 이미 듣고 그를 상대하기 위해 시음종 내의 원영기 수련자들과 함께 왔지만 지금 보니 상대의 수준은 그가 예상했던 것 이상인 듯했다.
조전랑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선배님, 저 자는 우리 시음종과 중요한 일로 관련이 있는 자입니다. 허니 오늘 저 자를 반드시 데려가야겠습니다.”
팔급마군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은 대체 왜 가는 곳마다 말썽을 몰고 다니는 거냐.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시음종의 사람까지 건드리다니.’
그는 할 수만 있다면 모른 척 하고 자리를 떠나고 싶었으나, 그에게 그런 선택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시음종에게 미움을 사더라도 녀석을 데리고 있어야만 했다. 사실 수확을 얻기만 한다면 시음종에게 미움을 사든 어쩌든 상관없었다. 게다가 마량이라고 불린 저 녀석의 행동으로 보면 분명 자신이 나서서 손을 써주기를 바라는 모양새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노인은 짜증이 났지만 내심 마량, 그러니까 한제가 마음에 들기도 했다. 수마해의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은 일반인들과 전혀 달랐다. 한제의 이런 약삭빠른 행동은 팔급마군의 마음에 쏙 들었다. 만약 팔급마군 자신이었어도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었다.
조전랑의 말에 팔급마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한제에게 덤덤하게 물었다.
“어찌 시음종을 건드렸느냐?”
한제는 허공에 떠 있는 기세등등한 시음종 사람들을 보며 역시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모릅니다.”
조전랑의 번개 같은 눈빛이 한제를 향했다.
“모른다고? 분금 산맥에서 살해된 우리 시음종의 제자들을 어찌 모른다고 하느냐?”
한제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모릅니다.”
말을 마친 그는 상대를 쳐다보지도 않고 자리에 앉아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만약 팔급마군이 저들을 막아주지 않는다면 곧장 토둔술을 펼쳐 수마해로 숨어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전랑은 냉소하며 팔급마군을 향해 말했다.
“선배님, 저 놈은 우리 시음종 제자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시음종에 육체를 교환하러 온 4성 수련국 천강국의 천강종 제자 허이국을 생포하기까지 했습니다. 엄청난 대가를 들여 직접 5성 수련국에 가서 천지노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니 분명 착오는 없을 겁니다.”
팔급마군은 그늘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천지노인이라.”
“천지노인의 수준은 통신기(通神期)에 달합니다. 허이국의 영혼의 등을 통해 그날 일을 살핀 결과 저 마량이라는 자가 우리 시음종 제자들을 죽이고 허이국의 혼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조전랑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오른손을 휘둘렀고 곧장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의 뒤에 있던 네 명의 원영기 수련자들도 함께 사라졌다가 팔급마군의 앞에 나타났다. 한제의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 조전랑은 한 덩이의 검은색 안개를 피어 올려 한제를 가리켰다.
“이얍!”
그와 동시에 진 안에 머물러 있던 시음종의 결단기 수련자들은 일제히 기합을 넣으며 괴이한 주문을 외웠다. 진은 빛을 발하며 빠른 속도로 사방으로 확산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반경 1만 리 범위가 진에서 피어올린 빛으로 뒤덮였다.
팔급마군은 서늘한 눈을 번득이더니 몸을 훌쩍 날려 둘로 나뉘었다. 그의 분신은 조전랑과 한제 사이에 나타나더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검은 안개는 전부 그의 입 속으로 흡수됐다.
“감히!”
분신이 소리치며 오른손에 비취 호리병을 소환시켰고 그것을 두드리자 호리병 입구에 꽂혀 있던 나무 마개가 뽑히면서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에 사방에 공기의 파문이 일었다.
이 파문은 갈수록 확산되면서 범위가 점점 넓어졌다. 그 파문에 가장 먼저 휩쓸린 조전랑은 살짝 굳은 얼굴로 몸을 훌쩍 날렸고 팔급마군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네 명의 원영기 수련자들과 후퇴하여 진 안으로 돌아갔다.
팔급마군은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작 원영기 초기 수련자 몇 명으로 감히 나 팔급마군을 가로막으려 하다니. 오늘 이 마량에게 상처 하나라도 냈다가는 너희 시음종에 쳐들어가 모두를 몰살시킬 것이다!”
와장창.
말을 마친 그가 왼손을 휘두르자 작은 언덕처럼 거대해진 손이 마치 아이들 장난감이라도 부수듯 시음종의 진을 박살냈다. 그 힘에 파동이 고리 형태를 이루며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진 안에 있던 다섯 명의 원영기 수련자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얼른 피했고 결단기 수련자들은 각자의 검은 나무 관과 함께 재로 변해 버렸다.
몸서리를 치며 팔급마군을 노려보던 조전랑이 씁쓸하게 말했다.
“선배님의 수준은 높고도 깊으나, 우리 시음종을 적으로 돌리시는 것은 결코 현명치 못한 처사입니다. 선배님 견문 정도면 시음종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겠지만 말씀드리건대, 선배님이 알고 계시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리니 부디 시음종을 적으로 돌리지 마십시오. 계속 그러시면 선배님께서 수마해 칠해의 땅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성주라고 해도 죽음을 면하기 어려울 겁니다.”
팔급마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시음종의 미움을 사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여태 다섯 명의 원영기 수련자를 죽이지는 않았다. 신식으로 훑어본 결과 결단기 수련자들 중 육체를 빼앗은 존재는 없었기에 기탄없이 버릴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가슴이 두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