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35
그래서일까? 남색 특유의 우울함과 슬픔이 그들의 영혼 깊은 곳에 새겨져 있었다.
법술과 신통술에 있어서 이들의 자질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기에 남몽도존 외에는 이름난 강자를 거의 배출하지 못했다.
실제로 남몽도존의 이름이 태고 성신에서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 남사족은 작은 부락에 불과했다.
허나 이들은 음악과 연단, 연기 등에서는 매우 뛰어났다. 또한 외모가 아름답기로 유명하기도 해서 수만 년간 강력한 부족 사람들의 애첩으로 뽑혀갔다.
이는 남사족 사람들에게 슬픔이자 상처였다. 이 슬픔과 상처는 마음 깊이 새겨졌고 그래서 오히려 처연한 아름다움이 더욱 커졌다.
또한 그들의 음악은 하나같이 태고 성신 내 강한 부족의 노예로 몰락해버린 데 대한 슬픔이 담겨 있었다.
이들에게는 자유가 없었다. 모든 남사족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전에 다른 부족 사람에 의해 끌려가 생사의 자유를 누리기는커녕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도 없었다.
허나 모든 상황은 남몽도존 이후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는 남사족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진정한 강자로 장존마저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당연히 그와 관련한 전설이 태고 성신 전역에 퍼졌으나, 강력함보다는 오히려 그의 치정이 더욱 유명했다.
그는 평생을 통틀어 오직 한 여인만을 사랑했는데 이 사랑은 깊은 상처이기도 했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커다란 상처.
남몽도존이 태고 오존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바로 그 치정 때문이라는 말도 돌았다.
남사족은 남몽도존 덕분에 태고 성신의 강력한 세력 중 하나가 되면서 넓은 성역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들의 천성까지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으나, 이때부터는 조금씩 밝은 곡조의 음악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남사족에게 남몽도존은 신과 다름없었고 모두가 아낌없는 존경을 표했다.
자연히 남몽도존이 기거하는 남산은 남사족의 성지가 됐다. 다만 남산에서는 여전히 슬픈 곡조의 음악만이 흘렀다.
그런 남산의 평범한 집. 남색 옷을 입은 중년 사내가 홀로 앉아 있었다. 그의 머리 또한 남색이었으나 약간 바랜 느낌이었다.
한참 동안 앞에 놓인 칠현금을 바라보던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외모는 세상 모든 남자들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였고 절색의 여인조차 그 앞에서는 아름다움을 자랑하지 못할 것 같았다.
허나 그의 얼굴에는 짙은 피로감이 어려 있었고 두 눈은 착 가라앉아 있어 슬픔과 우울함이 느껴졌다. 지난 오랜 삶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내는 슬픈 눈빛으로 묵묵히 칠현금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때, 조용히 문이 열리더니 분홍색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들어와 사내 곁에 앉았다.
“아직도⋯⋯ 그 여인을 못 잊으신 건가요?”
여인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내는 입을 열지도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그저 칠현금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두 눈은 한층 더 슬픔으로 물들었다.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어요. 이미 죽었을 거예요. 한데 어째서…?”
여인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죽지 않았다!”
사내는 번쩍 고개를 쳐들더니 맹렬한 눈으로 여인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죽은 것과 뭐가 달라요? 이미 죽은 거라고요!”
그렇게 말하는 여인의 얼굴도 고통으로 물들었다.
중년 사내는 한참이나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일어났다.
“네 언니는 죽지 않았어!”
여인의 눈에서 끝내 보석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사내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문을 열고 나가 석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부드러운 남색 빛이 되어 사라졌다.
★ ★ ★
남사족의 광활한 성역 끄트머리에서 백의의 여인 하나가 나타났다.
한제를 쫓아 막 남사족 성역에 진입하려던 그녀가 갑자기 우뚝 멈춰서더니 덤덤한 눈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에서 남색 빛이 모여들더니 한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꺼져라!”
중년 사내는 냉랭한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백의의 여인은 말없이 남자를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그는 이미 선택되었다. 넌 그를 보호할 수 없어.”
“꺼지라고 했다!”
중년 사내의 눈에 살기가 담겼다.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그 안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발산되었다.
뒤이어 그가 여인에게 달려들자 온 우주가 짙은 살기로 가득 찼다.
여인은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더니 손을 들어 전방을 후려치며 몸을 물렸다.
“어쨌든 그자는 나와야 한다.”
여인은 덤덤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남기더니 점점 멀어져 가다가 이내 사라졌다.
계속하다
축지성촌과 순간이동을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게 됐을 무렵, 한제는 이천매를 데리고 마침내 남사족의 성역에 이르렀다. 남몽도존이 있는 곳이자 이천매의 고향.
아득한 우주가 점차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곳은 화려했고 심지어 수련성들도 하나같이 남색으로 번득였다.
“천매, 드디어 도착했다.”
한제는 잠든 것처럼 자신에게 안겨 있는 이천매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남사족 성역에서 무궁무진한 남색 빛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를 내게 넘겨라!”
남색 빛 안에서 나타난 중년 사내의 시선은 오로지 이천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표정에는 애정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졌다.
한편, 한제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심신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번쩍 쳐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는 콰쾅 하고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중년 사내의 외모는 이천매와 매우 닮아 있었다.
“남몽도존!”
한제가 외쳤다. 사실 칠채계에서 자신을 거의 죽음까지 내몰았던 그 목소리에서 상대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었다.
세상일은 예측할 수 없는 법이었다. 10년 전 칠채계에서 서로의 목숨을 노리던 두 사람이 태고 성신에서 이렇게 마주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천매를 향한 중년 사내의 눈빛에서 슬픈 기색은 더욱 짙어졌다.
그는 소매를 크게 휘둘러 강력한 폭풍을 한제에게로 날려 보냈다.
폭풍은 눈 깜짝할 사이 달려들더니 쾅 하고 폭발했고 한제의 품에 안긴 이천매를 감싸더니 부드럽게 중년 사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천매를 안아 든 사내의 눈빛은 한없이 자애로웠다.
이내 돌아선 그는 이천매를 안은 채 어딘가로 향했다.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남색 빛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한편, 한제는 폭풍에 휩쓸려 몇 걸음이나 뒤로 밀려난 뒤에야 멈추더니 복잡한 눈빛으로 남몽도존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천매가 남몽도존의 핏줄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또한 그가 이천매를 데려간 것은 그녀를 살릴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목적한 바를 이루었으나 한제는 바로 떠나지 않았다. 그녀가 정말로 살아나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한 줄기 빛이 되어 남사족 성역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신식을 펼칠 것도 없이 이 드넓은 성역에서 가장 짙은 남색 빛을 발하는 수련성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리로 향했다.
남몽도존이 머무는 곳임이 틀림없었다. 그곳에는 아무런 보호진도 없었기에 한제는 곧장 진입할 수 있었다.
어디선가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 위에는 배가 몇 척 떠 있었고 멀리서 어렴풋한 음악 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다. 경쾌한 가락이었다.
한제는 순간이동으로 한 남색 산봉우리 앞에 나타났다. 사방이 산과 숲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그 앞에 있으려니 자신이 매우 작은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산 자체는 남색이 아니었으나, 그 안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무궁무진한 푸른빛이 산을 둘러싸고 있었다. 틀림없는 남산이리라.
복잡한 표정으로 남산을 바라보던 한제는 한참 뒤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몸을 날렸다.
허나 곧장 남산으로 향하던 그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허공에 우뚝 멈춰 섰다. 남산과 1만 척 떨어진 곳이었는데 산에서 발산된 남색 빛이 그의 체내로 들어와 진입을 가로막은 것이다.
“매우 강한 금제로군!”
한제는 남산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금제에 일가견이 있는 그는 이것이 사람이 만든 금제가 아니라 남산에서 발산된 남색 빛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이내 온몸의 원력을 가동해 고신의 힘을 퍼뜨렸다. 이에 그의 몸은 한 줄기 유성이 되어 전방으로 쏘아져 나가 남색 빛 안으로 진입했다.
한데 산에 가까워질수록 저항력이 커지더니 나중에는 금속으로 만든 벽처럼 강력해졌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저항력과의 마찰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다리가 남산에 닿은 순간 저항력은 극에 달했고 한제의 체내에서는 펑, 펑 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나 그 무엇도 앞으로 나가려는 한제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견고하고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구름에 휩싸인 남산 산꼭대기를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구름을 뚫고 솟은 남산의 꼭대기는 한눈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제는 구불구불 놓인 계단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갔다.
산의 3할 정도 되는 높이에 이르렀을 때, 산봉우리에서 뿜어져 나온 저항력은 매우 강력해진 상태였다. 마치 수련성 하나가 짓눌러 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편, 남산 꼭대기의 평범한 집 안에서는 이천매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두 눈이 꼭 감긴 그녀의 온몸에서는 남색 빛이 번득였다. 그녀의 아버지인 남몽도존이 뒤에 앉아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허공을 두드려댔다.
그의 손가락이 허공에 닿을 때마다 이천매의 몸은 바르르 떨렸고 동시에 칠규에서는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흩어져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