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38
“이것은 도술 아래 물질 상태로 변한 본원이다. 게다가 체내의 신통술과 융합되기까지 했지. 융합하고 싶은 두 가지 신통술을 발휘해 봐라!”
남몽도존이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검은 바람이 휘휘 불어왔다.
그 안에서 일곱 마리의 흑룡이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퍼져 나가는 검은 바람 속에서는 생명의 불까지 꺼버릴 듯한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허! 선제 백범의 선술, 호풍이로군! 도술은 아니지만 높은 수준에 이르면 상당히 강력하지!”
남몽도존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한제는 이어서 결인을 그린 오른손으로 일곱 마리의 흑룡을 가리켰다. 그러자 반짝이는 빛이 나타나더니 수많은 빗방울이 생겨났다.
“백범의 선술, 환우!”
남몽도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제가 이런 신통술을 발휘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허나 뇌의 선계의 지존이라 할 수 있는 백범의 신통력을 융합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약은 녀석이로군. 내가 도와줄 걸 알고 가장 강력한 두 가지 신통력을 꺼내 보인 게야.’
남몽도존은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한제를 슥 훑어보더니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호풍에서 나타난 일곱 마리의 용들이 몸을 바르르 떨더니 서로를 맴돌며 하나의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했다.
사방의 빗방울들이 순식간에 회오리로 흡수됐다.
‘백범의 호풍과 환우는 하늘과 땅을 가리고 그 자체적인 세상을 이루려는 목적이 있지. 두 가지 신통술을 합친다면 광영순보다 강력한 방어 효과를 낼 수 있을 터!’
남몽도존이 오른손을 휘두르자 하늘에 나타난 거대한 회오리는 더욱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하늘은 검은 바람에 뒤덮이고 땅은 빗물에 잠겨 세상 어디에서도 빛을 볼 수 없었다.
세상을 채운 원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우주에서 완전히 분리된 세상 같았다.
크기조차 짐작이 불가능한 세상이었다. 클 때는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컸고 작을 때는 숨은 듯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렇기에 극강의 방어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남몽도존이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세상은 진동하면서 원래 상태로 돌아왔지만 검은 회오리만큼은 작은 공으로 변해 빙검 옆에 남았다.
“세 가지 신통술에 대한 깨달음은 이제 네게 달렸다.”
그 말을 남긴 남몽도존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남색 빛이 되어 이내 사라졌다.
‘만약 그 아이가 기억을 되찾아 남사족은 물론 태고 성신까지 배반한다 해도 내가 뭘 어쩌겠는가!’
남몽도존이 떠나고 세상은 고요와 평화를 되찾았다.
허나 한제는 남몽도존이 떠났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금 그의 눈빛은 허공에 떠 있는 빙검과 회오리로 이루어진 작은 공에 고정되어 있었다.
방금 본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던 그의 머릿속에서는 남몽도존이 가르쳐준 세 가지 신통술이 빠르게 번득였다.
시간은 유유히 흘렀다. 사흘, 일주일, 보름, 그리고… 한 달!
그동안 한제는 가부좌를 튼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머릿속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요란하게 몰아쳤다. 지난 한 달 동안 세 가지 신통술을 깨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번천인⋯⋯ 하늘과 땅을 뒤집는⋯⋯.”
한제는 중얼거리며 잠들 듯 두 눈을 감았다. 그의 심신 안에서는 번천인의 갖가지 변화가 되새겨지고 있었다.
★ ★ ★
또다시 세 달이 지났다. 한제가 이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지 벌써 네 달째였다.
그 사이에 이 수련성에는 우기가 찾아왔다. 남색이었던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면서 모든 빛을 차단했고 곧 비가 쏟아져 내렸다. 대지를 때린 비는 물안개를 형성해 온 세상을 부옇게 뒤덮었다.
한제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몸을 때리는 빗물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지만 감긴 두 눈 사이로는 피로로 인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허나 이 역시 빗물에 씻겨버렸다.
비는 쏟아붓듯 내렸고 하늘에서는 이따금 번개가 내리쳐 대지를 밝혔다. 그 와중에 한제는 떨기 시작했다.
그 떨림은 갈수록 격렬해졌고 급기야 산봉우리까지 떨렸다.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순간, 밤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치며 대지를 밝혔다.
한제의 두 눈은 피처럼 붉었다. 하지만 그 깊은 곳의 눈동자에는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와 대지를 적시는 빗물을 비롯한 세상이 전부 비추었다. 또한 그의 눈동자 안에서 이 세상은 느릿하게나마 회전하고 있었다.
동공 안의 세상이 점차 기울어지면서 곧 뒤집힐 것만 같았다.
그때, 비가 쏟아져 내리던 세상에 왜곡이 나타났다. 한제의 눈동자 속 세상처럼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천둥과 빗물이 더욱 거세졌지만 한제의 두 눈동자 안에서 회전하는 세상 속의 빗물은 잠시 멈췄다. 그리고 그 순간, 현실 세상의 비도 멈췄다.
한제는 이때를 틈타 두 눈으로 밝은 빛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들어 올리더니 하늘을 꾹 누르며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번천!”
그때였다.
콰릉!
맹렬한 소리와 함께 눈동자 속의 세상이 그대로 뒤집히면서 하늘은 땅이, 땅은 하늘이 되었다. 쏟아지던 비도 휘말려 나가며 무너져 내렸다.
이런 변화는 현실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번개로 뒤덮인 하늘은 대지가 대지는 하늘이 되었다.
모든 것이 뒤집히면서 비는 무너져 내렸고 구름은 와해되었으며, 천둥이 폭발하면서 번개가 흘러나갔다.
그때, 한제의 오른손이 아로 향하면서 대지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고개를 들어 위쪽을 올려다본다면 대지에 거꾸로 담겨 있는 바닷물과 대륙 위 일반인들의 도시, 그리고 쏟아지는 빗속을 헤치고 돌아다니는 일반인들을 볼 수 있을 터였다.
심지어 숲속의 작은 짐승들과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뱀도 있었다. 녀석들은 세상에 일어난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한제의 두 눈이 밝게 번득였다. 그는 번천인이라는 신통술이 제대로 발휘되어 도장을 찍듯 내리 떨어진다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다른 모든 신통력보다 훨씬 강력할 것만은 분명했다.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대지는 하강을 멈추더니 빠르게 원상태로 돌아갔다. 하늘은 다시 하늘의 자리로 땅은 다시 땅의 자리로…
‘번천인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피와 살이 하늘, 오장육부는 땅이 된다. 그것을 뒤집는다면 살상력은 비할 데 없이 강력할 터!’
한제는 이런 엄청난 신통술을 얻었다는 기쁨을 애써 억누른 채 다음 신통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편, 한제가 번천인을 발휘했던 그 순간, 저 먼 곳의 남산 위에서 칠현금을 쓰다듬던 남몽도존의 손이 우뚝 멈추었다.
“벌써 번천인을 익히다니, 다섯 갈래 본원을 가진 자답게 자질이 놀랍군. 적어도 몇 년은 걸릴 줄 알았건만⋯⋯.”
세 번째 단계의 장벽
남사족 성역 대부분의 수련성에는 우기가 있다. 비는 졸졸 흐르는 실개천처럼 내리는가 하면 또 쏟아붓듯이 내려 대지를 흠뻑 적시기도 했다.
우기의 길이는 수련성마다 다른데 한제가 있는 수련성에는 근 7개월 동안 이어졌고 이후로는 겨울이 찾아왔다.
우기에 이어지는 겨울은 혹독했다. 비로 젖었던 대지는 꽁꽁 얼어붙어 끔찍할 만큼 서늘했다. 일반인에게는 두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남사족 수련성의 일반인들은 이런 기후에 익숙했다. 게다가 남사족 수련자들이 갖가지 도움을 준 덕에 해마다 별 탈 없이 이 끔찍한 계절을 지나 보낼 수 있었다. 심지어 겨울에 더 많이 수확할 수 있는 식량도 있었다.
눈발이 유유히 날리며 하늘을 채웠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산봉우리 역시 눈으로 뒤덮였다. 그 아래로 드문드문 드러난 검은 바위들만이 이 산의 원래 색을 알려주었다.
한제는 여전히 가부좌를 튼 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번천인을 깨달은 뒤로 네 달이 지난 지금, 한제는 두 번째 신통술인 광영순을 연구하고 있었다.
남몽도존이 시범을 보여줬을 당시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재생했으나, 광영순을 발휘하기 위해 빛을 응집시키는 힘은 모호하고 흐릿해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한제는 피로에 젖은 두 눈으로 하얗게 변한 세상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잔야에도 빛과 기원의 규칙이 있지. 허나 그 빛은 태양에서 발산되는 것. 또한 남몽도존의 신통술은 기원의 규칙과 하등의 관련이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의 빛을 응집시켜야 하는데⋯⋯ 그 빛은 대체 뭘까?”
그는 조용히 신식을 펼쳐 하얗게 변한 하나하나의 산봉우리를 대지에 쌓인 눈을 얼어붙은 강을 그리고 얼음이 떠 있는 바다를 보았다.
일반인들의 도시와 집집마다 살아가는 그들을 등불과 화롯가에 모인 채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부자들의 솜옷과 귀한 음식들을 황족의 화려한 삶을 이 수련성의 남사족 수련자들을 아름다운 음률을 연주하는 그들을 보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얼어붙은 강 아래에서 노니는 물고기를 차가운 대지를 뚫고 기어코 자라나는 식물들을 보았다.
흐릿한 세상과 무궁무진한 우주, 서늘한 바람과 반짝이는 보석 같은 눈을 보았다.
그는 또한 이 겨울 안에서 덜덜 떨고 있는 작은 짐승들과 얼어 죽은 녀석들의 뼈를 보았다.
그렇게 본 모든 것이 뻗어 나간 신식을 심신으로 모아들였다.
한제는 묵묵히 지켜보고 관찰했으며, 세상의 일부분이 되어갔다. 긴 겨울이 지나면서 대지의 눈이 녹기 시작할 때까지.
그러던 언제부턴가 한제의 눈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 가족이 모여 사는 어느 일반인의 집을 보았을 때 그는 매우 따뜻한 빛을 보았다.
이 빛은 매우 약해 바람만 살랑 불어도 꺼져버릴 것 같았지만 분명 존재했다.
뒤이어 점점 더 많은 빛이 보였다. 그는 사랑하는 두 연인 사이에서도 부귀한 사람에게서도 가난한 사람에게서도 빛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이미 죽은 존재의 뼈에서도 보였다. 이 빛에는 슬픔과 미련, 불만이 담겨 있었다. 그는 또한 작은 짐승들에게서도 빛을 보았다.
산, 강, 바다, 대지, 하늘, 심지어 우주의 별들까지… 세상 만물과 모든 생령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빛은 점점 맹렬해지면서 한제의 심신을 가득 채웠다.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순간, 심신을 통해 보았던 모든 빛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한제의 주위를 맴돌았다.
대지와 하늘, 풀, 나무, 산, 강 등에서 발산된 빛에는 끊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