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39
우주에서 강림한 별빛은 심지어 한제가 가부좌를 튼 산봉우리를 맴돌기도 했다. 그 빛은 갈수록 많아져 마치 한제가 하나의 태양이 된 듯했다.
한제의 두 눈에 깨달음의 빛이 어렸다. 하지만 아직 완벽하지는 않았다.
“생기인가⋯⋯?”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빛이 흩어져 사라지면서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는 아직 이런 빛들이 대체 무엇인지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다. 어떤 장벽 하나가 계속해서 그의 깨달음을 저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만약 이 장벽을 타파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그 답을 알 수는 없을 터였다.
한제는 몰랐지만 그 장벽은 세 번째 단계로 이르는 데에 놓인 관문이었다.
물론 이런 장벽을 느낄 수 있는 사람 자체가 매우 드물었다. 남몽도존이 세 가지 신통술을 가르쳐준 데는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다.
빛이 흩어져 사라지면서 한제의 시선은 다시 허공에 떠 있는 빙검과 회오리 공에 닿았다. 이것들은 남몽도존이 남기고 떠난 그대로였다.
한제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세 가지 신통술 중 하나만 남았다.
그가 오른손을 움켜쥐자 회오리로 이루어진 작은 공이 휙 날아왔다. 한제는 그것을 두 손가락 사이에 끼운 뒤 형형한 눈으로 응시했다.
남몽도존의 도술로 호풍과 환우를 융합시켜 형성된 이 작은 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상을 이루었다. 동시에 이는 남몽도존이 한제에게 전수해주려 한 도술이기도 했다.
공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한제의 눈에서 다섯 갈래의 본원이 점차 드러났다. 본원들이 서로를 맴돌면서 눈동자 안에서 회전하는 동안 작은 공에서 발산된 보이지 않는 기운들이 한제의 두 눈으로 향했다. 이에 작은 공은 점차 작아졌고 며칠 후에는 아예 사라졌다.
한제는 눈을 감고 묵묵히 자신의 상태를 느꼈다.
도술은 신통술과 달랐다. 신통술이나 법술은 명확히 설명할 수 있고 형태가 있어 공격이든 방어든 분명한 역할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 번천인이나 광영순이 모두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를 가진 것처럼.
하지만 도술은 형태가 없고 명확한 설명이 어렵다. 한제가 접했던 첫 번째 도술은 칠채계의 노인이 보인 것으로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극의 경계와 천역주가 아니었다면 벗어날 수 없었을 터였다.
두 번째로 접했던 도술은 봉계의 주인의 도움을 받아 도경에서 머물렀을 때 느꼈던 자신의 도술이었다. 이 역시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웠고 또 완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도념을 기이한 파문으로 만들어 적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해를 가할 수 있었다. 균열의 전장 밖에서 요종의 장로에게 중상을 입힌 것이 그 도술의 위력이었다.
그리고 지금, 한제는 세 번째 도술을 접했다.
허나 앞의 두 신통술에 비하면 이 도술을 깨우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을 듯했다. 도술은 보통 이런 식이었다. 금방 깨닫거나, 평생 깨달을 수 없거나.
한제가 두 눈을 감은 채 허공을 움켜쥐자 빙검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검을 든 한제는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이 검이 아니라 한 줄기 구름 같다고 느꼈다. 그런 느낌에 뒤따라 검에서는 쩌적 소리가 들리더니 대량의 균열이 일었고 잠시 후 터져나가면서 얼음 결정으로 부서져 흩어졌다.
얼음 결정은 한제의 오른손을 맴돌면서 회전했고 기이하게 녹아내려 빗방울이 되었으며, 다시 회오리가 되었다가 흩어져 안개가 되었다.
안개는 작은 폭풍처럼 한제의 오른손을 휩쓸다가 점차 사라졌고 대신 하얀 구름이 나타났다. 하얀 구름으로 휩싸인 손을 앞쪽으로 뻗자 구름은 저 멀리 흘러갔다.
한제는 그제야 두 눈을 번쩍 떠 저 먼 하늘 끄트머리로 떠나간 하얀 구름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 도술로 가장 먼저 융합하고 싶은 건 축지성촌이다. 축지성촌으로는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거리를 뛰어넘을 수 있지만 원력이 뒤흔들리면 발휘할 수 없다. 그 정체불명의 여인은 남사족 성역 너머에 있다. 그녀를 완전히 따돌리고 충분한 향불을 흡수해야 한다. 또한 다섯 갈래 본원을 성장시켜야 해. 화작족(火雀族)의 불과 섬뢰족(閃雷族)의 번개를 양분으로 삼으면 되겠지. 그나저나 장존은 태고 성신의 어느 부족에 속한 걸까?”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저물공간에 들어 있는 월노족 백발노인의 원신에서 원하는 답을 알아낼 수 있으리라.
★ ★ ★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남사족 성역에 봄바람이 살랑 불어와 만물을 소생시켰고 꽃향기가 널리 퍼져 나갔으며, 하늘은 파랗게 물들었다.
그 동안 한제는 깨달음과 융합을 거친 끝에 드디어 깨어났다.
융합의 도술 아래 이제 축지성촌은 세상과 심지어 그 자신과 끊임없이 녹아들며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한제는 만족하지 않고 축지성촌을 계속해서 변화시키는 중이었다.
세상에 녹아들기 전의 축지성촌에는 불안정함이 있다. 원력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 까닭에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허나 이제 그런 단점이 융합 도술을 통해 점차 사라지는 중이었다.
한제는 자신을 세상으로 삼았다. 그의 몸은 변하지 않으므로 세상의 원력이 불안정하더라도 체내의 원력만 고정되어 있으면 축지성촌을 발휘하는 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게 됐다.
한제가 오른손을 들어 휘두르자 산봉우리 주위의 원력에 왜곡이 일어났고 근처에서는 햇빛조차 분분히 무너져 내렸다. 예전에는 이렇게 원력이 어지러워진 상황에서는 축지성촌을 발휘할 수 없었지만 이제 다르다.
한제의 모습이 사라졌다가 잠시 후에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흥분한 얼굴로 다시 가부좌를 틀었다. 이어 소매를 휘두르자 사방에 자리한 어지러워진 원력이 흩어져 사라지면서 원 상태로 돌아왔다.
“성과는 있지만 아직 흠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야. 내 원력 소모가 커졌으니 연속으로 수십 번 정도밖에는 쓸 수가 없게 됐어. 물론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실용적이지. 다른 사람의 방해로 축지성촌을 사용하지 못할 일은 없을 테니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한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남사족 성역 밖에 이른 눈빛을 번득이던 그는 한참 뒤에야 시선을 거두었다.
“영원히 여기 머물 수는 없지. 태고 성신을 한 번 돌아봐야겠군. 앞으로는 나의 모든 신통술을 한 번씩 융합해 봐야겠어. 특히 백범의 선술.”
한제는 자신이 여태 배운 신통술을 하나하나 헤아려보았다.
그와 거의 평생을 함께한 정신술, 목숨을 수차례 구해준 백범의 여섯 가지 선술, 그리고 자신이 직접 창조한 잔야와 유월, 여기에 남몽도존이 전수해준 번천인과 광영순.
“호풍과 환우는 남몽도존의 도움으로 이미 융합되어 공수를 겸하는 신통술이 되었다. 여기에 살두성병까지 녹여낸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한제가 손을 들어 올리자 호풍과 환우로 형성된 회오리 공이 나타났다.
회오리 공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세상 모든 것을 삼키기 시작했고 그렇게 활성화되면서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이 되었다.
“살두성병!”
한제는 입을 벌려 봉선인을 토해냈다. 그것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한제의 손짓에 따라 빛을 번득이며 셀 수 없이 많은 전혼들을 쏟아냈다.
“크아앗!”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는 전혼들은 하나같이 서늘하고도 맹렬한 기운을 발산했다. 그중에는 태고 성신 사람들의 혼도 적지 않았는데 봉계의 진 밖에서 죽임을 당한 수백 명의 수련자와 월노족이었다. 이들의 미간에서는 낙인이 번득였다.
봉선인에서 쏟아져 나오는, 지난 2천 년 동안 자신의 손에 목숨을 잃은 혼들을 바라보던 한제는 왼손을 들어 결인을 그렸다. 순간 대량의 문양이 봉선인에 떨어져 내렸다.
이내 봉선인은 빠른 속도로 번쩍거리면서 튀어 나가 회오리 공에 녹아들었다. 허나 처음에는 잘되는 듯하던 융합이 잠시 후에는 불안정해졌다. 마치 물과 불처럼 섞여들지 않았다.
한제는 미간을 팩 구기더니 입을 벌려 원신의 정기를 토해냈다. 원신의 정기는 하얀 안개가 되어 회오리 공과 봉선인을 감싸더니 신식을 발산해 억지로 그 둘을 하나로 융합하려 했다. 그러자 결국 서서히 섞여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봉선인은 회오리 공 안에 완전히 스며들었다.
한데 한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표정이 급변했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뒤로 몸을 물리면서 결인을 그려 수많은 보호막을 형성했다.
이때 봉선인을 녹여낸 회오리 공이 요란하게 번쩍이면서 파멸적인 힘을 뿜어댔다.
콰쾅!
그 무렵, 한제는 이미 멀리 물러난 채 회오리 공의 폭발로 형성된 힘에 저항했다. 동시에 회오리 공을 낚아챈 뒤 축지성촌을 이용해 남사족 성역 가장자리 근처로 피신했다.
그가 다시 나타났을 때, 회오리 공의 붕괴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요란한 소리가 성역 전체를 뒤덮으며 퍼져 나갔다. 이 폭발음은 파멸적인 힘을 발휘했고 우주에는 성난 파도가 몰아치는 듯했다.
향불
한제가 두 손을 휘두르자 수많은 별빛이 몰려들어 그를 감싸 안았고 바로 그 순간 파멸적인 힘과 충돌했다.
콰쾅!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폭발의 모든 파괴력은 한제에게 달려들었지만 빛 덩어리와 충돌한 그대로 튕겨나가더니 뒤로 밀려나며 남사족 성역 밖으로 쓸려나갔다.
쾅! 쾅!
요란한 소리는 1각이 지난 뒤에야 흩어졌다. 이 무렵에는 빛 덩어리도 사라졌고 그 안에서 한제가 나타났다.
“융합의 도술, 상당히 위험하군.”
한제는 쓰게 웃었다. 억지로 융합했을 때의 결과를 예상치 못한 그의 실수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회오리 공을 말없이 바라보던 한제는 잠시 후 봉선인을 삼킨 뒤 오른손으로 허공의 회오리 공을 움켜쥐었다. 공은 흩어져 사라졌다.
한제의 주위에서는 어스름한 빛이 번득이며 나타나 온몸을 뒤덮었다. 이어서 한제가 마음속으로 명령을 내리자 이 빛은 곧장 증폭되면서 널리 퍼져 눈 깜짝할 사이 1만 척까지 뻗어 나갔다. 빛으로 뒤덮인 세상은 외부와는 완전히 격리됐다.
이곳은 호풍과 환우로 이루어진 세상으로 이곳에는 원력이 없었다. 있는 것은 오로지 한제의 의지뿐. 말하자면 그는 이 공간 안의 주인인 셈이었다.
“억지로 융합할 수 없다면 방법을 바꿔야지!”
한제는 입을 벌려 봉선인을 다시 꺼내 호풍과 환우의 세상에 넣었다.
그 순간, 강력한 거부반응이 일며 남산에서 느꼈던 저항력과 비슷한 강력한 힘이 퍼져 나왔다. 동시에 봉선인에는 펑, 펑 소리와 함께 균열이 일었다.
한제는 잠시 갈등에 빠졌다. 그 사이에 봉선인에는 점점 많은 균열이 생겨났고 그 안에서 수많은 전혼들의 구슬픈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뇌의 선계의 대륙으로 만들어져 천벌 아래에서도 끄떡없었던 봉선인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쩍쩍 갈라지는 모습에 한제는 충격을 받았다.
“호풍과 환우의 세상에도 봉선인에도 내 의지가 녹아 있어. 그런데 왜 둘은 융합되지 않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군.”
한제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결심한 듯 호풍과 환우의 세상을 수축시켰다.
요란한 소리가 울리고 있던 세상이 수축되는 동안 봉선인에는 점점 많은 균열이 생겨나더니 이내 산산조각이 났다.
동시에 그 안의 수많은 금제들이 무너져 내려 이 세상에 녹아들더니 그 일부가 되었다. 심지어 수많은 전혼들마저 반짝이는 빛이 되어 봉선인의 파편 하나하나에 녹아들었다.
반경 1만 척에 달하는 공간이 수축하면서 한제의 체내에 녹아들었으나 한제는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린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일전의 산봉우리 꼭대기로 돌아간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심신을 펼쳤다. 그의 원신에서 회오리 공이 떠올랐다.
그 안에는 호풍과 환우로 이루어진 세상이 들어 있었다. 이 세상은 한제의 몸 밖에서는 반경 1만 척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대륙이 떠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는 무너져 내린 봉선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대륙에는 전혼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 전혼들은 지금까지와 달리 울부짖는 게 아니라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유백색 기운이 가부좌를 튼 그들의 정수리에서 피어올라 세상에 흡수되었고 이는 다시 한제의 심신에 녹아들어 다섯 갈래 본원으로 달려들었다. 그 안에서 다섯 갈래 본원은 유백색 기운에 둘러싸인 채 생기로 빛났다.
“이, 이건⋯⋯?”
유백색 기운이 무엇인지 눈치 챈 한제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의 심신에서는 천둥이 내리치듯 콰르릉 하는 우렁찬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요령의 땅에서 그곳 사람들이 숭배하던, 조각상이 된 고요의 분신이 이런 기운을 발한 적이 있었어. 수도자가 마지막으로 발휘한 신통술에서도 이런 기운이 느껴졌지.”
봉계의 주인도 남몽도존도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되기 위해서는 향불이 관건이라고 한 바 있다. 그게 대체 무엇이며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 한제는 알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봉선인을 호풍과 환우의 세상에 융합시켜 만들어낸 이 광경에 그는 더욱 어리둥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