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4
“이 녀석은 내게 아주 큰 가치가 있는 놈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 녀석이 어떻게 되든 내가 왜 신경을 쓰겠느냐. 가라. 지금 얌전히 물러간다면 너희들에게 손대지 않겠다.”
팔급마군이 미간을 찌푸린 채 천천히 말했다.
한제는 줄곧 냉정한 눈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팔급마군이 시음종의 전송진을 부수었을 때도 그는 평소와 같은 표정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속으로는 정말 놀랐다.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저런 힘을 낼 수 있는 걸까?’
막연히 추측하던 한제는 일찍부터 예상했던 자신의 추측에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게 됐다. 상대가 수마해에서 추격해오던 순간부터 그가 겪었던 모든 일들이 상대의 엄청난 수준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었다.
팔급마군의 수준은 화신기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간단하게 그 모든 일들을 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조전랑으로부터 수마해 칠해의 땅에 대한 이야기까지 듣게 된 한제는 자신의 추측을 거의 확신하며 노인이 입은 푸른 옷 밑단에 수놓아진 일곱 개의 매화를 바라보았다.
조전랑은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냉랭한 시선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량, 시음종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시음종을 건드린 것은 네 평생의 가장 큰 실수였다.”
말을 마친 그는 번쩍 하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의 곁에 있던 네 명의 원영기 수련자들도 차가운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본 뒤 사라져버렸다. 팔급마군의 힘에 일단은 물러서기로 한 모양이나,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당시 시음종 제자들이 먼저 자신을 죽이려 들지 않았다면 자신도 손을 쓰지는 않았을 터였다. 게다가 마혼을 놓아주었다면 골치 아픈 문제가 일어났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신선계는 약육강식의 세상이었고 시음종은 그 속에서 거대한 맹수였다. 그들이 틀리다고 말하면 틀린 것이었다. 설령 맞다고 해도 틀린 것이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조심하겠다고 행동하고 다녔는데도 남들에게 미움을 사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이 모든 일은 다 약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팔급마군처럼 강했다면 누구를 죽였다고 해도 이렇게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을 터였다.
이 순간, 원영기에 오르고 싶다는 한제의 마음이 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자신을 위해서든, 조나라로 돌아가 등화원을 처리하기 위해서든 반드시 원영기에 이르러야만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 바람은 그림의 떡, 한바탕 꿈에 불과했다.
팔급마군은 몸을 돌려 한제를 바라보며 그늘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놈아, 네 놈을 도와주는 것만 벌써 두 번째다. 여태까지는 일전에 했던 오해에 대한 보상이라고 쳐도 앞으로 우리가 갈 곳에서는 다시는 이런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팔급마군은 지난 며칠 동안 함께 있으면서, 그리고 그 이전에 그를 추격하면서 마량에 대해 거의 파악한 상태였다. 그가 보기에 마량은 수마해의 훌륭한 인재였다.
시음종과의 일에 대해서도 조전랑에게 들은 것만으로 그 상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감히 시음종의 제자를 건드렸다는 것은 마량의 독한 마음과 악랄한 행동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또한 수마해 안에서 만마백일주살 영패에 지정된 그가 따라붙은 수련자들을 모조리 살해한 것은 그의 냉혹함과 과감함을 드러냈다.
게다가 팔급마군 자신이 수마해 안에서 막 그를 쫓기 시작했을 때 마량은 비검을 몰래 매복시켜 자신의 피까지 보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그의 담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조전랑이 공격을 했을 때에도 한낱 결단기 수련자에 불과한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으며 그의 질문에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냉정한 대답을 이어갔다. 당황한 기색이나 겁먹은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강인한 의지가 없다면 보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팔급마군은 자신이 이 자를 잡는 데 무려 3년이 걸렸음을 떠올렸다. 여우처럼 교활한 녀석이라는 말보다 잘 어울리는 표현은 없었다.
독한 마음, 악랄한 행동, 대담함, 과감함, 냉혹함 그리고 주의 깊음과 세심함, 강한 의지, 여우와 같은 교활함까지. 한제를 천천히 분석하던 팔급마군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한제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이 번득였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 생각은 떠오르자마자 곧장 사라져버렸다. 노인은 안타깝다는 듯 속으로 탄식했다. 만약 그곳에 들어가는 것만 아니었다면 모르겠으나 지금은 이 녀석이 끝까지 버틸 수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자로 받아들이는 것은…
팔급마군은 묘한 얼굴로 고개를 들고 먼 곳을 내다보았다. 한제도 이상한 영력의 파동이 하늘 끄트머리에서 천천히 전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그 파동은 굉장히 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만한 기운을 풍겼다.
갈포로 만든 하얀 옷을 입고 머리에는 두건을 쓴 중년 문인이 멀리서부터 다가왔다. 백옥처럼 흰 얼굴에 두 눈에서는 서늘한 빛이 번득였다. 그는 바람 속의 버드나무처럼 살짝 흔들리며 하늘에서 내려와 소매를 한 번 휘두르더니 덤덤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단목극, 내 토행주(土行舟)는 잘 쓰고 있는가.”
한제의 경계심이 미친 듯이 발동했다. 저 자의 수준은 확인 불가였으나, 팔급마군을 동년배처럼 대하는 것을 보면 그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일 것이었다.
팔급마군 단목극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저물대에서 토행주를 꺼내 던졌다.
“잘 쓰기는! 이런 망할 것을 법보라고 가지고 다니는가? 괜히 빌렸네.”
그것을 받아 든 문인이 오른손을 휘두르자 손에 들려 있던 토행주는 곧장 사라져버렸다. 시선을 옮긴 그는 한제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어찌 결단기 수준의 녀석이 아직도 있는 거지?”
단목극은 눈을 샐쭉거리며 말했다.
“다 쓸 데가 있어서 그래. 가세, ‘그곳’도 곧 열릴 테니.”
말을 마친 그가 소매를 휘두르자 호리병이 나와 급속도로 커졌다. 노인은 몸을 훌쩍 날려 그 호리병 위에 앉았다.
한제는 하얀 옷을 입은 문인을 힐끗 쳐다보고는 호리병 위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경계심은 풀지 않았다. 하얀 옷의 문인은 나타난 뒤부터 신식으로 줄곧 한제를 훑고 있었다.
바로 이때, 그의 귓가에 갑자기 단목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사람은 왕청월이다. 4성 수련국 음양종(陰陽宗)이 보낸 사자지. 저 자의 수준도 굉장하니 괜히 심기를 거스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지만 경계심은 더욱 두터워졌다.
세 사람은 빠른 속도로 날아 수마해를 뚫고 진입했다. 한제는 차가운 눈으로 왕청월을 가만히 관찰했다. 그는 아무런 법보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속도가 호리병과 비슷했다. 또한 마치 보이지 않는 모종의 힘에 갈라지기라도 하듯 수마해의 안개가 30척 앞에서부터 갈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마해의 바닥으로 가라앉은 세 사람은 곧장 질주했다. 남투성이 눈에 들어왔지만 세 사람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 남투성 상공을 그대로 스쳐지나갔다.
이들을 본 사람들은 모두 굳은 얼굴로 얼른 도망치거나 단목극의 호리병을 알아본 듯 얼른 공손하게 한쪽으로 비켜서기도 했다. 그리고 호리병이 지나간 다음에야 다시 가던 길을 갔다.
왕청월은 덤덤한 표정으로 이동하던 와중에 천천히 말했다.
“팔급마군의 위엄이 작지 않군. 이 수마해 외곽 지역에서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 말이야.”
그는 극한의 속도를 내면서도 목소리는 안정적이었다.
팔급마군 단목극은 그를 살짝 훑어보며 말했다.
“중앙 지역에 들어가면 날 알아보는 사람은 더 많아질 걸세.”
왕청월은 살짝 웃으며 한제를 훑어보았다가 단목극에게 말했다.
“저 자를 ‘그곳’에 데리고 가면 바로 죽지 않겠는가?”
“얕잡아보지 말게. 이 녀석은 사주술을 다룰 줄 알아. 세 번째 관문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존재지.”
단목극이 침착하게 말했다.
왕청월은 흠칫 놀라는 듯하다가 곧 두 눈에 여태 본 적 없는 빛을 번득였다. 입가에는 기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러다가 곧 훨씬 옅어진 눈빛으로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안타깝군. 만약 네놈이 원영기였다면 이 왕청월이 가르침을 청했을 텐데.”
한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목극, 자네가 1천 년 전 ‘그곳’에 갔을 때 분명 무슨 법보를 얻어낸 모양이군. 그러지 않았다면 어찌 그곳에 가는 데에 이렇게 전념을 다하겠나? 자네가 말했던 그것이 정말 ‘그곳’에 있던가?”
왕청월이 불쑥 물었으나, 단목극은 한참이나 침묵한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호리병도 그곳에서 얻어온 걸세. 왕청월, 지금 내가 자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미안하네. 가보면 자연히 알게 될 걸세.”
왕청월은 호리병을 몇 번 힐끔거렸다. 그의 표정에서는 어떤 이상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으나, 말없이 단목극을 따랐다. 세 사람은 빠른 속도로 날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 지났으나, 그 동안 세 사람은 거의 멈추지 않았다. 이동하는 내내 한제는 네 개의 성이 발아래로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눈에 보이는 수련자도 점점 더 많아졌다. 성도 남투성에 비해 훨씬 화려했다.
세 사람의 눈앞에 저 멀리 거대한 산봉우리가 들어왔다. 우뚝 솟아 그 끝도 보이지 않았다.
단목극은 호리병을 두드려 그 산봉우리 쪽으로 향했다.
빠르게 산봉우리 쪽으로 우회해 들어가자 거대한 골짜기가 나타났다.
골짜기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으며 어떤 생명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단목극은 익숙한 듯 길을 따라 들어갔고 곧 골짜기의 중심에 이르렀다.
그곳에 도착해 호리병에서 내려온 그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해 앞쪽으로 밀었다. 순간 사방에서 괴이한 바람이 불어 층층이 쌓여 있던 안개를 흩었다. 그러자 숨겨져 있던 공터가 나타났다.
호리병 위에서 내려온 한제가 가장 먼저 본 것은 공터 위에 놓인 거대한 원형 진이었다. 진 안에는 작은 글자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진을 본 왕청월은 기이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듯 단목극을 힐끗 쳐다보았다. 허나 단목극은 개의치 않는 듯 저물대를 두드려 유백색의 마름모 모양 영석을 조심스레 꺼내들었다. 그리고 아깝다는 표정으로 그것을 진 중앙의 움푹한 곳에 던져 넣었다.
“이 망할 놈의 진은 그야말로 영석 먹는 괴물이라니까. 이 최상급 영석은 이번 전송을 마치고 나면 쓰레기가 되어버릴 거야.”
단목극이 중얼거렸다.
왕청월은 눈을 빛내며 그 마름모 모양의 유백색 영석을 바라보았다.
“단목극, 그 영석도 ‘그곳’에서 얻어낸 건가?”
“그렇다네. 당초 세 개를 손에 넣었지. 이게 아니라면 그곳에 들어갈 수도 없으니… 듣기로는 오직 이 진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는군.
당시 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오래된 고서에 남은 단서들을 근거로 거의 1천 년을 헤맨 끝에 이 위치를 찾아냈어. 그러는 동안 대량의 영석과 재료를 들여 주작국에서 몇 개의 최상급 영석으로 바꾸었고 결국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
단목극은 진에 파동을 일으키며 언짢다는 듯 말했다.
“최상급 영석, 온 주작성을 통틀어도 흔하지 않지. 수련성 사이에서 교류하는 주요 화폐라는 소문도 있고… 그곳에 만약 이런 등급의 영석이 있다면 가서 살펴볼 가치가 충분하겠군!”
왕청월은 진에 놓인 최상급 영석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이 전송진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곳’으로 통하는 진이 아니야. 수마해 중앙구역의 쇄성란(碎星亂)으로 향하는 진이지. 그러지 않으면 이곳에서 중앙 구역까지는 너무 멀어서 수백 년은 족히 걸리니까. 쇄성란에 도착한 뒤 몇몇 친구들과 함께 움직일 생각이네.
쇄성란 외곽의 위험지역은 차치하고라도 수마해 중앙 구역과 외곽 지역 사이의 붉은 안개라면 이 녀석은 분명 목숨을 잃을 테니까.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내가 왜 그 진귀한 최상급 영석을 썼겠나?”
단목극은 한제를 힐끗 보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오래된 전송진
단목극은 두 손으로 연거푸 몇 개의 결인을 그렸다. 점차 전송진의 중앙에 있는 최상급 영석이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진에 빽빽하게 적혀 있는 작은 글자들도 따라서 밝아지기 시작했다.
펑!
그리고 모든 글자들이 밝아졌을 때, 최상급 영석은 거대한 소리와 함께 부서져 버렸다.
전송진이 움직이며 거대한 영력을 발산했다. 그 영력은 거의 실체화되어 회오리바람을 일으켰고 사방의 안개가 곧장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굵기가 1백 척이 넘는 거대한 영기의 회오리가 된 그것은 전송진 안에서 상공으로 솟아올랐고 높이 오를수록 점점 더 커졌다.
이 압도적인 장면에 한제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 그의 눈은 저도 모르게 진 중앙의 움푹한 홈에 닿았다. 그 안에 들어 있던 최상급 영석은 회색빛 재로 변해 회오리바람에 흩날렸다.
하지만 최상급 영석 안에 함유된 영력에 한제는 심장이 뛰었다. 상급 영석에 비해 수만 배는 더 강한 영력이었다. 절대 단층적인 영력이 아니었다.
단목극은 번쩍 하고 순간 이동을 해 한제의 곁으로 다가왔다.
“들어가자!”
한제는 속으로 웃었다. 단목극은 한제가 마지막까지 들어가지 않고 버티다가 도망갈까 봐 경계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