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47
허이국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주위를 둘러볼 틈도 없이 아첨하듯 헤실헤실 웃었다. 두 손을 모아 쥔 채 한제를 바라보는 눈빛은 한없이 비굴했다.
한편, 허이국을 향한 종대홍의 눈동자에 적의가 담겼다. 그는 상대가 자신의 정적임과 동시에 자신보다 더 뛰어난 아첨술의 대가임을 알아본 것이다.
‘강적이다! 저자는 나 종대홍의 일생일대 강적이야!’
종대홍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상대를 살폈다.
“주인님, 이번에는 주인님에 대한 제 충성심을 충분히 보여드릴 테니 부디 저를 일찍 들여보내지 말아주세요. 그 오랜 세월 주인님 곁을 지키지 못하다니, 허이국은 너무도 슬픕니다.”
허이국이 깜빡이는 두 눈에는 애원의 빛이 어려 있었다.
‘심지어는 표정에도 아첨술이!’
허이국의 눈빛을 본 종대홍의 표정이 한층 더 신중해졌다.
한제는 미묘한 눈으로 허이국과 종대홍을 훑어보았다.
‘어쩌면 허이국을 이용해 섬뇌족의 뇌정을 싹쓸이하게 하는 편이 내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겠군.’
생각을 정리한 한제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네가 일을 잘해낸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마.”
동시에 그는 마음속으로 허이국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허이국은 잔뜩 흥분한 듯 몸을 바르르 떨더니 두 눈으로 어스름한 빛을 번득이며 길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핫! 그렇단 말이군요. 이런 일을 이 허이국보다 더 잘해 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인님, 걱정 마십시오. 뇌정 따위 수십억 개라도 모아오겠습니다!”
허이국의 말에 종대홍은 덜컥 불안함을 느끼고는 다급히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선배님, 제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제게는 1만 개의 뇌정으로 바꿀 수 있는 보물이 하나 있습니다! 선배님 같은 분이 아니고서야 그런 보물을 가질 수 없지요!”
말을 마친 그는 또다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한 줄기 검은 빛이 발산됐는데 그 안에서는 칼날 같은 예리함과 음산한 기운이 동시에 느껴졌다.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그 비검도 거두었다.
그때, 허이국이 몸을 돌려 종대홍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
‘저자에게서 후안무치의 냄새가 나는군. 허나 이 허이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 난 네놈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한제의 발바닥을 핥아왔단 말이다!’
속내와 달리 허이국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종대홍을 바라보았다.
“도우는 누구신가?”
종대홍 역시 허이국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는 종대홍이라 합니다.”
두 사람의 눈빛이 부딪힌 순간, 허이국은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입을 열려고 했다. 한데 종대홍이 한 발 빨랐다.
“선배님, 저희 천뇌종에는 적지 않은 제자가 있습니다. 제자들로부터 뇌정으로 바꿀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거둬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자신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제자들에게 호통을 치듯 명령을 내렸다.
종주의 명에 천뇌종 제자들은 뇌정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죄다 꺼내서 바쳤다.
한제는 그것들을 전부 거둔 뒤 오른손을 휘둘러 단약 한 알을 소환했다. 운해성역에서 4급 흉수의 혼을 제련해 만든 것으로 한제에게는 별다른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단약을 바라보는 종대홍의 얼굴은 더없이 격앙됐다.
“함혼단! 적어도 2만 개 이상의 뇌정으로 바꿀 수 있는, 매우 희귀한 물건 아닌가!”
한제는 단약을 종대홍에게 넘겼다.
“가져라. 오늘부터 나를 위해 뇌정으로 바꿀 수 있는 물건들을 수집하도록!”
한제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에게 단약을 뇌정으로 바꿀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섬뇌족이 단약을 이용해 힘을 증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종대홍의 충성심을 고양시키는 용도로만 쓸 계획이었다.
종대홍을 깊게 읍했다.
“선배님, 마음 놓으십시오!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허이국은 그런 종대홍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저런 단약이야 그리 탐나는 물건이 아니었지만 종대홍의 존재가 껄끄럽고 거북했다.
‘젠장, 감히 2천 년이나 이한제의 곁에 있었던 이 허이국에게서 총애를 앗아가려 해? 네놈을 똑똑히 기억해두마. 내 반드시 네놈을 죽여서 유금표처럼 고문해주마!’
눈빛을 번득이던 허이국이 음산하게 웃었다.
이것이 바로 삶
한제가 섬뇌족 수련성에 이른 지도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한제는 우비의 동굴로 돌아가지 않고 천뇌종에 머물며 좌선을 했다.
물론 허이국과 종대홍은 천뇌종을 중심으로 사방을 휩쓸며 대량의 물건들을 수집했다. 그 결과 거의 10만 개에 달하는 뇌정을 얻을 수 있었다.
허이국은 오랜만에 저물공간 밖으로 나오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혼자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는 열 명 남짓의 천뇌종 축기기 제자들을 이끌며 떼를 지어 돌아다녔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감언이설에 넘어가 그를 따르는 자가 1백 명에 달했다.
심지어 그는 대나무로 왕좌를 만들게 해 네 명의 섬뇌족 여인을 끼고 앉기까지 했다.
수십 명의 수련자가 그 거대한 왕좌를 떠받들고 다녔다. 그 앞뒤로는 수십 명의 수련자가 행렬을 이루었다. 선두에는 목청 좋은 두 명의 결단기 수련자가 끊임없이 이렇게 외쳤다.
“허 영감님이다! 강력하고 훌륭하고 준수하고 용맹한 허 영감님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면 허이국은 만족스러운 듯 크게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는 여자 수련자의 몸에 기댄 채 다른 여자 수련자가 먹여주는 섬뇌족 과일을 먹었고 맛있는 술을 마셨다.
그러는 동안 나머지 두 여자 수련자는 그의 몸 곳곳을 어루만지고 안마를 해주었다.
이 거대한 왕좌 위에는 네 명의 여자 수련자뿐만 아니라 네 명의 잘생긴 남자 수련자도 있었다. 무릎을 반쯤 꿇은 이들 역시 허이국의 시중을 들었다.
이런 엄청난 호사에 허이국은 잔뜩 흥분했고 기고만장했다.
“이게 바로 삶이지! 이게 바로 이 허이국이 누려야 할 인생이야! 이한제 그 녀석은 지난 2천 년 동안 동쪽으로 서쪽으로 뼈빠지게 돌아다니기만 했지 이런 즐거움은 누려보지도 못했어! 푸하핫! 멍청한 놈. 삶의 즐거움이란 누리고 또 누려도 모자란 것을!”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향락을 즐겼다.
“얼마 만에 누려보는 즐거움인가? 빌어먹을 그때 이한제 녀석에게 붙잡히지만 않았어도 평생을 이토록 즐겁게 보냈을 텐데⋯⋯. 아, 정말 그랬다가는 이미 죽었으려나. 됐다, 지난 일을 생각해서 무엇 하랴! 지금 이렇게 보상받고 있지 않은가! 허나 좀 아쉽군. 잘생기고 예쁜 남녀 수련자가 1천 명씩은 되어야 하는데… 이 보좌를 짊어질 수련자도 1만 명은 되어야 해. 좋아, 그 목표를 위해 더 노력해야겠구나!”
허이국이 굳게 다짐하던 그때, 저 앞에서 한 줄기 빛이 날아들었다. 그 안에는 결단기 수준의 수련자가 있었다.
그는 1백 척에 달하는 거대한 보좌 근처에 이르자 포권을 하며 말했다.
“강력하고 훌륭하고 준수하고 용맹한 허 영감님!”
긴 수식어로 허이국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서야 숨을 돌린 그는 얼른 말을 이었다.
“전방 1백 리 정도 앞에 원영기 후기 수련자 진동풍의 동굴이 있습니다. 이미 뭔가를 눈치챘는지 동굴 밖에 온갖 금제를 걸어둔 상태입니다.”
허이국은 곁에 있는 여자 수련자의 달걀 같은 얼굴을 꼬집으며 손을 휘둘렀다.
“수고했다. 이 허이국이 원영기 수련자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여주마!”
1백 리를 지나자 과연 산봉우리가 나타났다. 그 중턱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입구는 금제가 물샐 틈 없이 잔뜩 걸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덟 개의 작은 깃발이 산봉우리 밖에서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검은 안개를 피워 올렸다.
산봉우리 근처에 이른 허이국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천뇌종 수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오른손을 들어 올려 크게 휘둘렀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수없이 많은 허상의 검이 나타났다. 동시에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바람과 구름이 일더니 순식간에 하늘이 어두워졌다.
허이국은 검령인 데다가 원고 검기까지 전수받은 상태였다. 타고나길 방탕하고 나태하긴 했으나 사성종에서 한제에게 봉인되면서 전력을 다해 수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규열기 수련자까지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강력한 검기의 폭풍에 천뇌종 수련자들은 바들바들 떨었다. 마치 얼음물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지독한 한기가 느껴졌다.
검기가 달려들자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던 검은 안개가 그대로 무너졌다. 여덟 개의 깃발은 자폭을 하려 했지만 허이국이 허공을 움켜쥐어 움직임을 저지했다.
“이한제 그 녀석이 그랬지. 어떤 법보도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고. 전부 뇌정으로 바꿀 수 있도록 온전하게 가져와야 한다고.”
콰르릉!
검은 안개를 헤치고 나간 검기가 그대로 산봉우리를 관통했다. 산봉우리는 무너져 내려 사라지고 동굴만 덩그러니 드러났다.
동굴 안에는 중년 사내가 넋이 나간 얼굴로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허 영감님이다! 강력하고 훌륭하고 준수하고 용맹한 허 영감님이다!”
수많은 수련자의 외침이 엄청난 기세를 이루어 울려 퍼지자 동굴 속의 중년 사내는 더욱 놀란 듯했다.
“가진 것을 모두 내놓는다면 험한 꼴은 면할 터!”
목청 좋은 두 명의 결단기 수련자가 뒤이어 외쳤다.
원영기 수준의 중년 사내는 엄청난 압박감에 침을 꿀꺽 삼키더니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모든 것을 바치겠나이다.”
허이국은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다. 오늘부터 너도 이 허이국을 따라나서도록 해라. 그건 그렇고 이 근처 어디를 가야 여자 수련자를 볼 수 있겠느냐?”
허이국의 시선에 중년 사내는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상대의 질문에 얼른 대답할 뿐이었다.
“이곳으로부터 수십만 리 떨어진 곳에 뇌선도(雷仙道)라는 종파가 있습니다. 그곳의 수련자는 모두 여인이며, 소문에 의하면 그 종주가 매우 아름답다고 합니다! 허나 그녀의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또한 저희 부족 사람과의 연도 있다고 하더군요.”
허이국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뇌선도라고? 좋다, 앞장서라!”
허이국 일행은 기세등등하게 나아갔다. 거대한 보좌와 허이국의 의기양양한 웃음소리, 백 명이 넘는 수련자들의 그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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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종대홍 역시 수집을 해나가고 있었다. 화신기에 불과한 그가 좀 더 수월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제는 비검을 한 자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