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51
주천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상대는 무척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었다. 허나 주천자가 아는 바, 혼란한 기운이 가득한 이 통로를 저토록 여유로이 걸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그 혼란한 기운이 상대의 근처에서 무너져 내렸고 뒤로는 파손된 균열의 조각들이 널려 있기까지 했으니 주천자의 눈빛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너는 수준을 숨기고 있었던 게로구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주천자는 두 눈 가득 살기를 피워 올렸다. 그 역시 긴 세월 수련을 해오면서 숱한 생사의 위기를 넘긴 수련자이기에 금세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몸을 훌쩍 날리며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미간의 낙인이 튀어나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많은 천둥번개를 쏘아 보냈다.
협소한 통로는 온통 천둥번개의 힘으로 가득 채워졌다. 마치 한 마리의 뇌룡이 포효하며 입을 쩍 벌린 채 달려드는 것 같았다.
불손한 의도
“본래 칠백만 천지에서 죽일 생각이었으나 네놈이 명을 재촉하는구나! 좋다, 원하는 대로 해주마!”
주천자의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고함을 치는 것만 같은 거대한 음파가 천둥번개와 합쳐지면서 규열기 수련자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힘을 이루었다. 단번에 모든 힘을 쏟아붓는 것만 보더라도 한제에 대한 경계심을 알 수 있었다.
“허! 우습구나! 세상 모든 천둥번개여, 내 명에 따르라. 붕괴!”
한제는 슬쩍 비웃음이 어린 얼굴로 오른손을 들어 올려 살짝 휘둘렀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통로 안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포효하며 달려오던 뇌룡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고 머리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완전히 사라졌다.
“크헉!”
뇌룡이 사라진 순간, 주천자는 피를 토해내며 뒤로 밀려났다.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진 두 눈에는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것은 쇄열기의 힘!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그는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혼비백산하더니 곧장 뒤로 물러났다. 지금 그의 머리속은 오로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밖에 남지 않았다.
“날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크하하하!”
한제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통로 안에 울려 퍼졌다.
통로로부터 칠백만 천지의 입구까지는 10리도 되지 않았다. 규열기 수련자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날 수 있는 거리였다. 허나 주천자에게는 눈 깜짝할 틈도 주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앞에 나타난 한제의 서늘한 눈빛이 천둥번개처럼 거칠게 주천자의 두 눈에 떨어져 내렸다.
콰쾅!
1천만 개의 천둥번개가 쏟아져 주천자의 체내와 원신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동시에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폭풍이 내부에서부터 주천자의 육신을 찢어냈다.
“크아악!”
주천자는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해냈다. 핏속에는 내장 조각이 섞여 있었다. 두 눈은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틀렸다! 이 안에서는 도움을 청할 이도 없어!’
주천자는 그 순간 상대의 심기를 거스른 것을 후회했으나,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주천자의 몸에 떨어진 한제의 신통력은 상대가 지난 수천 년간의 수련으로 체내에 담은 모든 천둥번개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모든 천둥번개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주천자 체내의 천둥번개의 힘이 통제를 무시한 채 폭발했다. 주천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피와 살 조각으로 터져 버렸다.
그때, 부상을 입어 거의 투명해진 주천자의 원신이 튀어나와 부족의 낙인으로 몸을 감싼 채 도망치려 했다.
허나 한제가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가볍게 허공을 움켜쥐었다.
“끄아악!”
주천자의 원신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엄청난 흡입력에 이끌려 한제의 손에 떨어졌다.
위기를 느낀 주천자는 울며 애원했다.
“장로님, 장로님! 저를 살려주십시오. 장로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디⋯⋯.”
그는 그러나 말을 채 맺지 못했다. 통로 안의 빛에 의해 투명해진 한제를 가까이서 보게 된 순간, 그 체내에 봉인된 혼백을 발견한 것이다.
“너, 너는 섬뇌족이 아니⋯⋯.”
한제는 주천자를 바라보며 씩 웃더니 그 원신을 가볍게 뭉개버렸다. 무너진 원신에서는 한 줄기 천둥번개의 힘이 흘러나와 한제에게 흡수되었다. 부족의 낙인도 마찬가지였다.
둘의 싸움은 말 그대로 한순간에 끝났다. 마치 개미를 눌러 죽이듯 가볍게 주천자를 죽인 것이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전방의 벽들을 부수며 나아가 순식간에 칠백만 천지에 진입했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섬뇌족 선조를 도와 이 세상을 세운 몇몇 신비의 수련자를 제외한다면 이곳에 발을 들인 외부인은 한제가 처음이었다.
매우 넓은 우주와 같은 공간에 칠백만 개의 수련성이 서로 먼 간격을 유지한 채 뿌려져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곳이었다. 허나 한제의 눈에 이 우주는 가짜였다.
‘심지어 각 수련성 사이의 간격마저 한 치의 오차 없이 똑같군.’
이 우주의 중심에 거대한 대륙이 하나 떠 있었고 그 위로 높이 솟은 누각들과 거대한 조각상이 보였다. 조각상은 어떤 남성의 모습이었는데 전신에는 천둥번개가 흐르고 있었다.
이곳은 칠백만 천지의 중앙 광장이자 임무를 맡은 섬뇌족 수련자들이 이 세상에 진입했을 때 가장 먼저 이르게 되는 곳이었다.
높이 솟은 누각들 밖에는 수만 명에 달하는 수련자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영변기였고 문정기에 이른 자도 있었으며, 더러 음의와 양의에 이른 이들도 있었다. 다만 쇄열기 이상의 수련자는 매우 적었다.
각 대전 바깥에는 거대한 전송진이 하나씩 있었다. 한제도 그중 하나의 전송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주위를 둘러본 한제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그만 전송진에서 나오시지. 구경이야 나와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처음 온 모양인데 확인하게 옥패부터 줘봐!”
전송진 옆을 지키고 있던 양의의 수련자가 이곳에 처음 이른 섬뇌족 수련자의 전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한제에게 말했다.
한제는 우비의 옥패를 꺼내 던져 주었다. 상대는 옥패를 받아 살펴보더니 돌려주고는 오른손을 휘둘렀다. 한 줄기 어스름한 빛이 한제에게로 날아갔다.
“이것을 가지고 가 곁에 두면서 연구해보게.”
어스름한 빛 안에는 세 개의 물건이 들어 있었다. 옥패, 부적, 그리고 한 덩어리의 천둥번개였다.
한제는 묵묵히 전송진 밖으로 나왔다. 수많은 수련자로 북적였지만 누구도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제는 비교적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서 방금 받은 세 가지 물건 중 옥패를 살폈다. 그 안에는 칠백만 천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나머지 두 물건에 대한 소개가 적혀 있었다.
부적은 칠백만 천지로 진입하는 데 필요한 것이었다. 옥패에는 부적이 없으면 진입할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한제의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천둥번개 덩어리였다. 이 천둥번개는 실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만져지지 않았다. 그 안에서 흐르는 천둥번개는 어떤 진을 이룬 듯했는데 신식으로 훑어보면 작은 천둥번개들이 보였다. 이는 번개의 연못 10만 개를 응집시켰을 때 낼 수 있는 힘에 비견할 만한 힘을 품고 있었다.
허나 그보다 한제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안에 깃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한 줄기 의지였다. 분명한 생기를 품은 그것은 삶에 대한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고 덕분에 단순한 천둥번개 덩어리가 아니라 하나의 생령처럼 느껴졌다.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게 바로 영의 천둥번개인가?”
옥패의 설명에 따르면 섬뇌족에서는 칠백만 천지에 처음 들어온 사람에게는 영의 천둥번개 한 줄기를 내어준다고 했다. 이곳에 존재하는 영의 천둥번개를 응집할 수 있도록 돕는 용도였다.
그가 가진 영의 천둥번개는 한 줄기에 불과했고 완전하지도 않았다. 이런 것들이 1천 개는 더 있어야 완전한 영의 천둥번개 한 갈래를 형성할 수 있을 터였다.
모든 사람에게 한 줄기 영의 천둥번개가 주어지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만약 이것을 잃어버린다면 다시는 섬뇌족으로부터 그것을 얻을 수 없다. 그때는 남에게서 빼앗거나 몰래 구입해야 했다.
항상 이 중앙 광장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사람에게서 영의 천둥번개를 빼앗으려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지금 한제의 손에 들린 영의 천둥번개를 탐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세 명의 수련자도 그런 부류인 듯했다.
“도우, 난 장경운이라 하네. 보아하니 이곳에 처음 온 모양이군.”
한제가 영의 천둥번개를 관찰하고 있으려니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중년 수련자가 웃으며 다가왔다. 음의의 수련자였다.
한제는 영의 천둥번개를 거두고는 상대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 난 두 번째 오는 거라네. 내 일행이 있으니 함께 다니는 게 어떻겠나? 사람이 많아질수록 위험은 적어지는 법이니까.”
장경운의 표정은 매우 진실해 보였고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 하지만 한제의 눈에는 허점이 잔뜩 보였다. 2천 년을 넘게 수련해온 한제 앞에서 그는 서툰 애송이일 뿐이었다.
한제는 속내를 숨긴 채 밝게 웃으며 포권을 했다.
“그렇게 해준다면 나야 감사하지.”
장경운은 한제의 눈빛에 왠지 경계심이 생겼다. 자신의 속내를 상대가 눈치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리 없지 않은가?
“동족끼리 서로 돕는 것은 인지상정이지. 도우의 이름은 무엇인가?”
“우비라 하네.”
한제가 웃으며 답했다.
“우비? 익숙한 이름인데⋯⋯?”
장경운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손뼉을 쳤다.
“오늘 순위표에 이름을 올린 도우로군! 이거 실례했네!”
장경운은 재빨리 포권을 하더니 말했다.
“우 도우, 여기는 대화를 나누기에 그리 적합하지 않으니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네. 이제 곧 칠백만 천지의 진이 활성화될 테니 그쪽으로 가세.”
한제가 짧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자 장경운은 앞장서서 인파를 뚫고 나아갔다. 이를 본 몇몇 수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또 불쌍한 사람이 장경운에게 걸렸군. 영의 천둥번개를 잃게 될 뿐 아니라 생명조차 보존하지 못하겠어.”
한편, 장경운은 중앙 광장을 훤히 꿰고 있는 듯 잠시 후 어느 진 근처에 이르렀다.
그 근처에서는 수백 명에 달하는 수련자가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중 한 무리는 한제와 같은 신입 여덟아홉 명과 음의의 수련자 네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 내가 또 한 명을 데려왔네! 이쪽은 우비 도우일세. 다들 알고 있겠지?”
장경운이 웃으며 한제를 소개했다.
한제처럼 처음 이곳에 들어온 아홉 명의 수련자가 포권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한제의 눈에 이들은 늑대 앞에 놓인 한 무리의 순한 양 같았다.
한편, 장경운과 비슷한 수준의 네 수련자는 미묘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한제에게 인사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