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53
서늘한 목소리로 외친 한제가 손을 꽉 움켜쥐었다.
펑!
다소 먹먹한 소리와 함께 장경운의 육신은 피와 살 조각으로 무너져 내려 노영비처럼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그 무렵, 한제를 제외한 모든 신입들은 이미 죽어서 장경운과 작당한 네 수련자에게 낙인마저 빼앗긴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장경운의 죽음으로 네 사람의 눈이 공포와 경악으로 물들었다. 장경운이 데려온 자가 희생양이 아니라 오히려 흉포한 늑대였다니!
그 순간, 음의의 수련자는 한제에게서 피어오르는 질식할 듯한 기운을 느끼고는 반항할 생각조차 못 하고 곧장 도망치려 했다. 허나 한제와 눈을 마주친 순간, 도망칠 틈도 없이 심신이 무너져 내렸다.
“크아악!”
“네 허락 없이는 어디도 갈 수 없다!”
한제의 싸늘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 순간, 노인은 원신이 무너져 내릴 듯한 충격과 함께 피를 토해냈다. 감히 도망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 무렵, 주 씨 수련자와 세 명의 문정기 수련자도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한제로부터 조금이라도 멀어지고 싶은 듯했다.
한제의 두 눈이 번득이더니 붉은 번개가 뿜어져 나왔다. 바로 극의 경계였다. 극의 경계 대부분은 본체에 있고 그가 강탈한 우비의 몸에는 그저 한 줄기만 남겨둔 상태였다. 지금 바로 그 극의 경계를 천벌로 발휘한 것이다.
“내가 곧 천벌이니 너희를 소멸시켜도 불만은 없겠지?”
붉은 번개가 휙 몰아치며 한 수련자를 추격했다. 상대는 바짝 졸아든 두 눈이 붉은 빛으로 뒤덮인 순간,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극의 경계는 번득이며 그의 체내로 뚫고 들어갔고 상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어서 붉은 번개는 곧장 다음 사냥감을 향해 달려들었다.
“헛!”
상대는 화들짝 놀라 헛숨을 들이키더니 미간의 낙인을 두드렸다. 저항을 하려는 듯 법보들을 꺼냈으나, 그것들은 미처 모습을 다 드러내기도 전에 부서져 버렸다. 심지어 수련자의 육신 역시 극의 경계에 직격당한 순간 용암에 띄운 얼음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녹아내렸다. 물론 혼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했다.
수준 높은 수련자의 길
한 호흡도 되지 않는 사이에 장경운부터 시작해 세 명의 수련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감히 천도를 자칭하다니, 섬뇌족은 그 오만함으로 멸족될 것이다!”
한제는 감히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던 음의의 수련자를 노려보며 내뱉었다. 주 씨 수련자는 어느새 붉은 번개에 관통당해 숨을 거둔 상태였다.
붉은 번개가 휙 날아들더니 순식간에 마지막 수련자를 꿰뚫었다. 수련자는 몸을 격렬하게 떨더니 순식간에 원신이 스러지고 육신은 산산조각이 나 떨어져 내렸다. 다만 미간에 있던 부족의 낙인만은 한제의 손에 들어간 상태였다.
한편, 노영비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겨 있던 그의 제자들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시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짙은 선기를 풍기고 있는 선인의 시체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천벌의 구름 속에 있던 선인이 시체가 되어 떨어졌고 그 순간 선기가 자취를 감추었다.
곧이어 이들은 그 시체가 자신들과 같은 평범한 수련자의 시체임을 깨달았다. 심지어 미간의 상처에서는 피가 흘렀고 두 눈에는 죽기 직전의 짙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 시체가 너희들이 보았던 선인의 실체다!”
한제는 하늘에 오연히 뜬 채로 이 말을 남기더니 곧장 몸을 돌려 사라졌다. 그의 모습을 수천 명의 수련자들의 마음에 낙인처럼 깊게 새겨졌다.
한편, 한제가 사라진 후로도 이곳의 수련자들은 좀처럼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천벌을 보았고 선조가 그 천벌에 목숨을 잃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선인의 시체가 추락하는 것을 보았다. 또한 선인들을 단숨에 죽여 버리는 강력한 존재를 보았고 그의 목소리까지 들었다.
“이게 선인이었단 말인가?”
“한데 어째 우리와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데? 그저 우리보다 좀 강한 수련자 같은 모습이야.”
그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 시체를 가지고 가도 되겠느냐?”
사람들이 시선을 돌려 보니 한 청년이 있었다.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그의 눈빛은 한없이 자애로웠다.
“산령상인(散靈上人)!”
수천 명의 수련자 중 영변기 후기에 이른 한 노인이 외쳤다.
“네가 원한다면 난 이 칠백만 천지의 어떤 존재라도 될 수 있다. 그러니 네가 나를 산령상인으로 여기고 싶다면 난 산령상인인 것이다.”
대머리 청년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 말을 남기고는 시체를 가지고 걸어 나갔다. 그의 시선은 한제가 사라진 쪽을 향해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자는 스스로를 천도라 칭하던 이들과 다르다. 어쩌면 그는 뇌노(雷奴)가 아닐지도 모르겠군.’
청년은 생각에 잠긴 채 사라졌다.
한데 그의 수준은 이미 정열기에 이르러 있었다. 이는 칠백만 천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섬뇌족에게 알려진다면 엄청난 파란이 일 터였다. 아마도 오랜 세월 폐관수련에만 매달리고 있는, 다섯 번째 천쇠를 겪은 선조까지 나서서 조사를 하려 할지도 모른다.
★ ★ ★
칠백만 천지 밖, 섬뇌족 성역. 한제가 떠나온 수련성에서 허이국은 수천 명의 수련자를 데리고 계속해서 약탈을 이어가고 있었다. 1천 척짜리 보좌는 어느덧 5천 척짜리로 바뀌어 있었고 그 위는 아름다운 여자 수련자가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아름다운 한 여인이 악에 받친 눈으로 허이국을 노려보았다.
“감히 영기 주제에 감히 나를 사로잡다니,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너뿐만 아니라 너의 주인까지 소멸될 것이다! 네가 누구든, 네 주인이 어느 부족의 어떤 사람이든,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이든, 반드시 죽게 될 것이야!”
칠백만 천지는 끝이 없을 정도로 넓지만 천벌을 기다리는 수련자를 찾아 무작정 돌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입구에서 받은 부적이 천벌을 맞이할 수련자를 감지하고 그 순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섬뇌족 수련자를 순간이동으로 이동시켜주기 때문이다.
이 드넓은 세상을 질주하던 한제는 왠지 마음이 복잡했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열 개가 넘는 섬뇌족의 부족 낙인을 움켜쥐어 부쉈다. 그러자 뇌정으로 바꿀 수 있는 물건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한제는 그것들을 전부 거둔 뒤 부족 낙인 안에서 어스름한 전광을 번득이는 천둥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불완전한 영의 천둥번개였다. 장경운 등이 이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수련자들을 속여 빼앗은 것들로 1천 개에 달했다. 전부를 합치면 완전한 영의 천둥번개를 한 줄기 만들어낼 수 있을 듯했다.
한제는 조용히 손을 휘둘렀다. 어스름한 빛이 번득이는 가운데 융합이 시작됐고 머지않아 하나로 합쳐졌다. 멀리서 본다면 천둥이 아니라 공 형태의 연기처럼 보이리라.
내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언뜻언뜻 드러났으나 끊임없이 번득이면서 빠르게 변해갔다.
이 공 같은 연기에서 피어오르는 천둥의 힘은 한제가 지금껏 수련해온 천둥번개의 힘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그의 오른쪽 눈에서는 전광이 어렴풋이 번득였다. 그리고 연기 덩어리가 바르르 진동하더니 곧장 그의 오른쪽 눈을 통해 원신으로 스며들어 그 안의 천둥번개와 합쳐졌다.
콰르릉!
체내에서 요란한 천둥이 울려 퍼졌다.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나풀거렸고 온몸에서 발산된 무궁무진한 천둥번개가 주위를 휩쓸었다.
영의 천둥번개와 원신 속 천둥번개의 본원이 하나로 융합된 순간, 태고에서 기인한 듯한 기억들이 천둥번개의 본원에서 뿜어져 나왔다.
온 세상이 천둥번개에 의해 무너져 내리는 듯했고 그 너머로 한제는 한 폭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천둥번개의 본원에 담겨 있는 유산이자 세상이 처음 열리던 순간 탄생한 천둥번개의 기억이었다.
그림 안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강력한 본원의 기운을 품은 천둥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그 주위로는 서로 다른 아홉 종류의 천둥번개가 맴돌며 기이한 도안을 이루었다.
본원의 천둥번개를 중심으로 한 열 개의 천둥번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상을 이룬 듯 완벽해 보였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천둥번개의 본원! 아홉 개의 천둥번개는 본원이 태어남에 따라 형성된 것. 아홉 다음은 열이고 열이야 말로 완성이니, 본원은 그렇게 완성된다.”
아득히 먼 옛날로부터 전해져오는 듯한 목소리가 마치 하늘의 목소리처럼 한제의 원신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의 원신에서는 무언가 폭발이 일어났고 동시에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한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 세상은 본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여전히 칠백만 천지의 하늘에 떠 있었고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한제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두 눈에는 은근한 두려움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중 오른쪽 눈에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두 번째 번개 문양이 나타났다. 본래의 문양보다는 작았으나, 분명한 번개 문양이었다.
이 작은 문양은 본래의 문양 주위를 맴돌았는데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천둥번개의 본원이 성장했다. 이에 따라 한제는 천둥번개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한참 뒤, 한제의 두 눈이 깨달음으로 밝게 번득였다.
“섬뇌족에서는 천둥이 여섯 개로 나뉜다고 했다. 허나 그들은 몰랐던 거야. 천둥은 아홉 가지다! 그리고 이 아홉 개 모두 천둥번개의 본원을 따르지. 그러니 완벽한 천둥번개는 총 열 종류.”
한제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내 천둥번개의 본원은 섬뇌족의 불멸의 천둥번개와 동등한 존재다. 그 또한 천둥번개의 본원이니 내가 그것을 흡수한다면 본원을 강화할 수 있다. 이미 영의 천둥번개를 흡수했으니 나머지 여덟 개의 천둥까지 찾아서 흡수하면 천둥번개의 본원을 완성할 수 있을 터. 이를 통해 두 번째 단계의 장벽을 돌파해 세 번째 단계에 이르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제는 지금처럼 앞으로 펼쳐질 수준에 대해 뚜렷하게 알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한 줄기 천둥번개의 본원에 담긴 기억이 굳건히 닫혀 있던 문 하나를 열어준 셈이다.
만약 섬뇌족에 섞여들지 않았더라면 이곳 칠백만 천지에 진입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죽을 때까지 천둥번개의 본원을 완벽하게 완성하는 법을 알지 못했을 터였다.
한제의 오른쪽 눈에서 전광이 은은하게 번득이더니 잠시 후 천둥번개가 휙 하고 튀어나와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그 본원은 생기로 가득했으며, 주위로는 한 줄기의 작은 천둥번개가 맴돌고 있었다. 좀 전에 보았던 그림과 유사한 모습이었다. 나머지 여덟 개의 천둥이 없다는 것이 다를 뿐.
잠시 후 불완전한 천둥번개 본원의 도안은 전광이 되어 한제의 오른쪽 눈으로 돌아왔다.
“천벌을 맞이하는 수련자들을 죽이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허나 그런 짓을 태연히 저지르는 섬뇌족이라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지.”
한제는 몸을 훌쩍 날리며 신식을 확산시켜 칠백만 천지에 널리 퍼뜨렸다.
★ ★ ★
몇 명의 수련자가 긴 빛을 그리며 우주를 질주하고 있었다. 수준이 가장 낮은 이는 문정기, 가장 높은 이는 양의에 이르러 있었다. 이들은 부적을 살피면서 반응이 오는 쪽으로 향했다.
“영의 천둥번개를 모으는 건 쉽지 않군. 네 명이나 죽였지만 영의 천둥번개를 가진 자는 한 명도 없었어!”
“조급할 것 없다. 모든 것은 연이 닿아야 하는 법. 만약 끝내 영의 천둥번개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다른 자의 것을 빼앗을 수도 있지.”
양의의 수련자가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데 그때, 문정기 수련자 하나가 의아한 눈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게 뭐지? 칠백만 천지에서는 본 적 없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콰르릉 하는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 와중에 양의의 수련자가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