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54
“도망쳐!”
전방에서는 천둥번개의 폭풍이 나타나 반경 10만 척까지 위압감을 뿜어냈다. 그 가장자리에서는 은빛 뱀 같은 전광이 번득였다.
표정이 급변한 수련자들은 머리가 저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곧장 몸을 물렸다. 양의의 수련자를 비롯한 몇 명은 순간이동을 하기도 했다.
허나 그조차도 너무 늦었다.
저 멀리 있던 거대한 폭풍이 어느새 달려들어 이들 모두를 휩쓸었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들은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렸다.
폭풍이 휩쓸고 간 우주에 거대한 얼굴 하나가 어렴풋이 나타났다. 물론 한제였다.
이후로도 한제가 지나친 곳의 모든 섬뇌족 수련자는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건 상관없었다. 음의, 양의, 규열기, 정열기를 막론한 모든 수련자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흡수되어 버렸다.
단 며칠 만에 한제의 손에 숨을 거둔 섬뇌족 수련자는 1천 명에 달했다. 당연히 그들의 낙인은 한제의 것이 되었다. 또한 그들로부터 한제는 완전한 영의 천둥번개를 네 갈래나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그의 오른쪽 눈에 담긴 문양은 점점 커져 갔다.
그렇게 나흘이 지났을 때, 한제는 부적의 감응을 느꼈다. 근처에서 누군가가 천벌을 맞이하려 한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부적의 떨림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어떤 섬뇌족 수련자가 한 발 앞서 그곳으로 간 것이다.
나흘 만에 천 명이 넘는 섬뇌족 수련자를 집어삼킨 폭풍이 졸아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강력한 회오리가 되었다. 그 중앙에 나타난 한제는 눈을 번득이더니 부적을 움켜쥔 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산령상인
굵은 눈발이 표표히 떨어져 내려 대지를 뒤덮었다. 온 세상이 하얀 이불을 덮은 것만 같았다. 풀과 나무 위에도 하얀 눈이 두껍게 쌓였고 여기저기 맺힌 고드름이 햇빛에 반짝였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은 눈의 무게가 버거운 듯 부러질 것처럼 처져 있었다.
이른 아침, 일반인 마을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눈발을 거스르며 솟아오르던 연기는 이내 서늘한 바람에 휩쓸려 흩어졌다.
저 멀리 떠오르는 아침 해가 온기를 뿜었지만 겨울의 추위를 뚫기에는 무리였다.
마른 풀 한 포기도 찾아볼 수 없는 어느 너른 평원. 그 깊은 곳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제법 준수한 중년 사내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풍겼다. 허나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표정은 착잡했다.
“수준을⋯⋯ 더 이상 눌러 놓을 수가 없구나.”
사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아쉬운 듯한 눈으로 펑펑 쏟아지는 하얀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천벌의 강림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잠시 후, 하늘이 요란하게 울렸다. 내리던 눈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뒤이어 광풍이 불어 닥쳤다. 평원에 두껍게 쌓여 있던 눈도 사방으로 흩날렸다.
이불처럼 뒤덮인 눈이 사라지자 헐벗은 대지가 드러났다.
하늘에서는 천벌의 구름이 뭉게뭉게 일었고 그 너머로 한 사람의 인영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그가 풍기는 선기에서는 무궁무진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하계의 수련자여, 천벌을 뛰어넘어 선인이 되어라!”
우렁찬 목소리가 천둥번개처럼 천벌의 구름 속에서 울려 퍼졌다. 하지만 평원에 가부좌를 튼 중년 사내의 표정은 복잡했다.
그는 옷깃을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하늘에 나타난 천벌의 구름과 그 너머의 선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피식 비웃었다.
“허! 선인이 되라고? 우습군.”
사내의 비웃음이 터진 순간, 하늘에 나타난 선인이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천벌의 구름이 중년 사내를 향해 천둥번개를 쏘아 보냈다. 온 세상을 둘로 갈라버릴 듯한 기세였다.
중년 사내는 꼼짝도 않고 서 있다가 천둥번개가 다가온 순간, 오른손을 힘차게 뻗었다.
꽈릉!
천둥번개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중년 사내는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구름 속의 선인이 다시 오른손을 손을 들었고 이내 두 번째 천둥번개가 요란한 포효와 함께 나타났다.
한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늘을 가득 뒤덮었던 천벌의 구름이 종잇장처럼 양쪽으로 찢겨 나간 것이다.
콰쾅!
강렬한 굉음과 함께 짙은 구름 사이로 거대한 균열이 나타나더니 그 너머로 백의의 청년이 걸어 나왔다.
“누구냐! 내가 먼저 왔건만 나를 방해할 셈인가?”
구름 속의 선인이 분노한 듯 으르렁거렸다.
“착각한 모양이군. 나는 너희 섬뇌족들의 천벌이다!”
싸늘하게 내뱉으며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천벌의 구름을 가리켰다.
쾅!
짧은 굉음과 함께 구름 속의 노인이 바르르 떨었다. 체내의 천둥번개는 어느덧 그의 통제를 벗어났고 이에 노인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만방자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노인은 천벌의 구름에서 빠져나오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전광으로 뒤덮인 구슬이 튀어나와 곧장 한제에게로 돌진했다. 동시에 노인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며 규열기 후기 절정의 힘을 발산했다.
“이 구슬은 선물인가? 좋아, 내가 갖도록 하지.”
한제는 피식 웃으며 한 발을 앞으로 나서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그러더니 어느새 노인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상대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뒤통수를 슬쩍 건드렸다.
“헉!”
노인은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몸을 바르르 떨었고 피를 한 움큼이나 토해냈다. 머리에서는 붉은 균열이 줄기줄기 나타나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이내 육신이 완전히 붕괴했다. 원신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부족의 낙인은 한제의 손으로 들어갔다.
한제는 왼손에 다섯 갈래의 염뇌가 담긴 구슬을 쥐고 있었다. 그가 가볍게 움켜쥐자 구슬이 폭발하더니 그 안에 담긴 다섯 갈래의 염뇌가 오른쪽 눈으로 흡수됐다.
한편, 중년 사내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입을 쩍 벌린 채 한제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모든 힘을 발휘해 천벌을 뛰어넘도록 해라!”
한제가 웅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중년 사내는 애써 불길함을 억누르며 자신의 모든 힘을 발휘했다.
그때, 아직 흩어지지 않고 남아 있던 천벌의 구름에서 다시금 전광이 번득이더니 그 너머로 한 사람의 어스름한 인영이 나타났다.
“크하하! 마침내 천벌을 마주한 자를 만나게 됐구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허나 그는 미처 모습을 다 드러내기도 전에 한제가 가볍게 휘두른 오른손에 터져 나갔다.
‘저… 저자가… 선인을 죽였다!’
평원 위의 중년 사내는 머리가 저릿해졌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미끼가 되었음을 눈치챘다. 저 백의의 수련자는 자신을 미끼로 삼아 선인들을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신중한 얼굴로 결인을 그리며 대량의 보호막을 소환했지만 역시나 한제의 손짓 한 번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열 명이 넘는 선인이 미끼에 낚여 목숨을 잃는 데는 1각도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그중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이조차 없었다.
중년 사내는 점점 침착함을 되찾았고 씁쓸하게 웃으며 두 눈을 감아버렸다.
이런 방식에 점차 익숙해진 것인지, 다시 2각이 흘렀을 때는 그의 손에 목숨을 잃은 섬뇌족 수련자의 수가 1백 명을 넘겼다. 그리고…
“마침내 쇄열기 수련자가 왔군.”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시야에는 전광을 번득이는 한 노인이 서 있었다.
검은 도포의 노인은 한제의 존재와 짙은 피비린내를 통해 무언가를 눈치챌 수 있었다. 자연히 노인은 신중해졌고 두 눈에는 살기가 담겼다.
“이런 잔인한 방식으로 동족을 죽이다니! 용서할 수 없다!”
노인은 몸을 훌쩍 날리며 고함을 내질렀고 곧장 한제를 향해 달려들면서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허공을 연타했다.
노인의 온몸에서 번득이는 전광이 나타나 천둥을 이루더니 돌진했다. 동시에 노인의 뒤로 자신과 똑같이 생긴 허상이 나타났다.
노인은 그 짧은 순간에 둘로 변해 하나는 한제에게 돌진하고 다른 하나는 뒤로 물러나 순간이동까지 발휘해 도망치려 한 것이다.
‘제법 결단력 있는 노인이로군.’
한제는 차게 웃었다.
지금 한제는 본체가 아니기에 쇄열기 수련자를 처리하려면 극의 경계가 필요했다. 그의 두 눈이 붉게 번득인 순간 극의 경계가 붉은 번개를 이루어 달려들더니 노인의 분신을 그대로 관통하며 무너뜨렸다. 그러고도 멈추지 않고 순간이동으로 도망치려 하는 노인의 체내까지 뚫고 들어갔다.
“크헉!”
노인은 피를 토하더니 두려움에 떨었다. 허나 다시 도망칠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생기를 잃었고 시체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때, 노인의 낙인을 거둬들인 한제가 몸을 휙 돌리더니 허공의 어느 지점을 바라보며 툭 내뱉었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셈이지?”
붉은 번개가 된 극의 경계가 한제의 시선이 향한 곳을 겨냥한 채 파지직 소리를 냈다. 언제라도 쏘아져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런, 들켜버렸나?”
씁쓸한 목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왜곡이 일더니 대머리 청년, 산령상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속해서 날 쫓아온 이유가 있을 터. 나를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머리 청년은 웃고 있었지만 두 눈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지금껏 한제를 뒤따라 다니면서 본 모습은 두려움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허나 더욱 두려운 것은 한제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진즉 눈치채고 있었음이 분명한데 이는 산령상인으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비록 자신의 수준이 절정에 이르렀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은신술만큼은 자신 있었다. 오랜 세월 칠백만 천지를 유람해왔으나 누구에게도 발각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네 번째 천쇠를 겪은 수련자를 몇 달이나 따라다니고도 들키지 않았다.
심령상인은 특히 붉은 빛을 발하는 저 번개에서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위기감을 느끼고는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그 번개를 본 순간, 그는 자신의 죽음이 정해진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한제는 말없이 상대를 바라보다가 돌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한데 네 진짜 수준은 어느 정도냐!”
한제의 표정과 목소리가 변하자 산령상인은 심신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고는 곧장 포권을 했다.
“고정하시게. 의도치 않게 심기를 불편하게 한 모양인데 사과…”
허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제가 오른손을 슬쩍 휘둘렀다. 그러자 붉은 번개가 번득이며 한 마리 뱀처럼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기겁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싶은 순간, 붉은 번개는 이미 그의 미간을 꿰뚫었다.
“크윽!”
청년은 바르르 떨며 피를 한 움큼이나 토해냈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 그의 미간에서는 무언가가 파도처럼 쏟아져 나오더니 온몸을 감쌌고 머지않아 청년은 강력한 기운을 발산했다. 마치 체내에 숨어 있던, 극의 경계에 공격을 당하고도 견뎌낼 정도로 강력한 영혼이 깨어난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