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65
대장로는 멀리 도망치지도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부상이 심해 신통술을 발휘할 여유도 없었고 수명도 거의 바닥나 있었다.
“크아아악! 떨어져라! 저리 가란 말이다!”
대장로가 비명을 내지르는 동안 수많은 원혼이 그를 뒤덮고 물어뜯었다.
갓 회복됐던 그의 하반신은 순식간에 뼈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더구나 이번에는 상반신마저 원혼으로 뒤덮여 있었다.
뭉그러진 살이 조각조각 흩어져 사라지는 동안 그는 끔찍한 고통에 날카롭게 비명을 내질렀지만 원혼들은 멈추지 않았다.
섬뇌족 대장로의 육신은 순식간에 뼈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남은 것이라고는 천둥번개로 뒤덮인 원신뿐이었지만 이 역시 풍전등화와 같았다.
“크으으…”
섬뇌족 대장로는 고통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죽어라! 전부 죽어라!”
그는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났고 원신에서 미간의 부족 낙인이 완전히 폭발했다. 이 폭발은 강력한 기세로 사방을 휩쓸면서 원혼들을 없앴다.
부족 낙인의 붕괴는 계내 수련자의 자폭과 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다만 태고 성신 사람들은 부족 낙인을 폭발시켜도 바로 죽지는 않는다는 점이 달랐다.
대장로의 원신 주위에 천둥번개로 이루어진 육신이 다시 응집됐다. 그는 그 상태에서 광기 가득한 눈으로 한제에 돌진했다.
“나의 수준과 수명, 생기를 모두 바쳐 삼식술(三息術)을 발휘해주마! 모두 죽어라!”
삼식술은 일종의 도술로 섬뇌족의 신통술이 아니라 당시 신비의 수련자 무리가 와서 가르쳐준 것이었다.
단 3초 안에 적의 수명을 바닥나게 하는 이 도술은 매우 강력한 대신 대가가 만만치 않았다.
자신의 모든 수명과 생기를 바쳐야 하는, 자신의 목숨으로 적의 목숨을 앗는 방법이었다.
대신 삼식술 앞에서는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라 해도 무사할 수 없다. 이는 섬뇌족이 수만 년간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를 배출하지 못하고도 세력을 유지해온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섬뇌족 대장로는 오른손을 들어 한제를 가리키며 외쳤다.
“삼식술!”
순간, 싸늘한 기운 한 줄기가 칠백만 천지에서 나타나 한제를 향해 응집했다.
한제의 표정이 급변했다. 대항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기운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수명과 생기를 당장이라도 모두 뽑아낼 것만 같았다.
1초가 지났을 때, 한제의 심신에 풍의 선계에서 보았던 돌문이 떠올랐다. 동시에 유월 신통술이 활성화됐다.
“유월! 1천 년의 세월을 되돌려라!”
한제는 유월을 활성화해 시간을 되돌림과 동시에 참천검을 휘둘러 일곱 번째 검광을 쏘아 보냈다. 그 순간, 참천검은 한제의 손에서 빠져나가 한 줄기 빛이 되어 허공을 가르며 나아갔다.
마지막 일곱 번째 검광은 너무도 강력해 우주를 그대로 무너뜨렸다. 또한 칠백만 천지를 가득 채운 칠백만 개의 대륙도 붕괴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칠백만 천지에 여태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는, 세 번째 단계에 매우 근접한 검광이 나타난 것이다.
이 검광 앞에서는 수도자라 해도 도망치기 급급했을 것이 분명했다.
무지개처럼 뻗어 나가는 검광 앞에서 섬뇌족 대장로는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검광이 내리친 순간, 대장로는 입을 벌려 원신의 기운을 뿜어내면서 다시 응집했던 천둥번개의 육신을 폭발시켰다.
원신 또한 검광에 그대로 관통된 채 빠른 속도로 흩어져 사라지면서 뒤로 밀려났다.
철저한 죽음을 코앞에 둔 그는 다급한 얼굴로 마지막 포효했다.
“불멸의 번개여, 날 살려다오!”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지금껏 폭풍을 공격하고 있던 불멸의 번개가 우뚝 멈추더니 순식간에 폭이 약 10만 척까지 불어났다.
거대해진 번개는 그대로 폭풍을 향해 달려들었다. 부푼 크기만큼이나 강력해진 힘에 폭풍은 바르르 진동하더니 가장자리부터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균열은 순식간에 전체로 퍼져나갔고 폭풍은 이내 흩어져 사라졌다.
“쿨럭!”
세상과 융합해 있던 산령상인은 피를 왈칵 토해내며 떨어져 나갔다. 그때 불멸의 번개가 칠백만 천지 안으로 뚫고 들어가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더니 대장로를 소멸시키기 직전이었던 검광에 달려들었다.
꽝!
짧지막 먹먹한 굉음에 이어 검광이 바르르 떨렸다. 허나 검광에 휩싸여 있던 참천검이 그대로 돌진해 불멸의 번개와 충돌했다.
이때를 노려 산령상인이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낮게 포효했다.
“칠백만 천지는 무너졌고 우리는 마침내 이곳에서 풀려났다. 모든 생령이여, 함께 선계를 타파하자!”
붕괴한 칠백만 천지는 이미 수많은 조각의 대륙으로 변해 있었다. 그 위에 남아 있던 모든 생령은 자신의 생명과 모든 힘을 참천검에 녹여냈다.
참천검은 칠백만 천지를 대표하는 힘이었고 불멸의 번개는 섬뇌족의 성물이었다. 이 두 종류의 힘이 맞붙은 것만으로도 칠백만 천지 사람들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콰쾅!
다시 한번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칠백만 천지의 가장자리에 균열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이와 동시에 칠백만 천지의 모든 힘이 응집된 참천검 역시 무너져 내려 수많은 조각으로 흩어졌다.
허나 불멸의 번개 역시 큰 타격을 입은 듯 다급히 뒤로 물러나더니 허공을 가르며 섬뇌족 사당으로 돌아갔다.
같은 시각, 섬뇌족 성역 열여섯 개의 수련성에 배치된 진이 저절로 활성화되면서 어떤 수련자도 칠백만 천지로 진입할 수 없도록 저지했다.
“남은 자들이여, 선계가 열렸다! 이제 이 무너지고 파괴된 세상으로부터 나가자!”
산령상인이 잔뜩 흥분한 눈빛을 번득이며 소매를 크게 휘둘렀다. 그 손짓에 칠백만 천지에 남아 있던 모든 사람은 하나의 폭풍이 되더니 불멸의 번개가 섬뇌족 성역으로 돌아갈 때 생겨난 틈을 통해 칠백만 천지를 빠져나갔다.
한편, 한제는 이미 곤극 채찍을 꺼내 이미 저항 의지를 잃은 섬뇌족 대장로에게 휘둘렀다.
섬뇌족 대장로의 원신은 거의 죽은 상태였다. 검광으로 인한 타격에 이어 불멸의 번개와 참천검의 충돌로 생겨난 충격에 휩쓸리기까지 한 탓에 절반 이상 무너져 내렸고 이제 살아날 방도는 없었다. 심지어 기억도 절반은 사라진 상태였고 지능도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그런 원신이 흩어져 사라지려는 순간, 곤극 채찍이 금빛을 번득이며 날아들더니 원신을 휘감았다.
한제는 채찍을 끌어당겨 대장로의 원신을 사로잡았다.
다섯 번째 천쇠에 이른 수련자의 원신이 그냥 사라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살두성병에 이용해도 큰 전력이 될 것이고 원신에 남아 있는 힘이나 천둥번개에 대한 깨달음도 상당할 터였다.
누구에게 섬뇌족 대장로의 원신은 값지겠지만 특히 한제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내 한제는 칠백만 천지의 사람들을 이끌고 나간 산령상인의 뒤를 따랐다.
이때 칠백만 천지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무너져 내린 데다가 사방에서 몰려든 파멸적인 기운에 집어삼켜졌다.
애초에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곳이었다.
먼지는 먼지로 흙은 흙으로 모든 것이 원래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곳곳에서 울리는 펑, 펑 소리가 마치 칠백만 천지의 소멸을 알리는 종소리 같았다.
한제는 태고 성신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수련자의 기억을 삼킨 덕에 섬뇌족 대장로가 이곳에서 황제와 다름없는 권위를 누렸음을 알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태고 성신 전역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들조차 함부로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또한 섬뇌족은 그 세력도 강력했고 일찍이 부족의 성물을 봉계의 진에 바친 바 있어 태고 성신 내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았다.
그러니 그의 죽음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탁삼은 태고 성신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그중 신분이나 지위가 섬뇌족 대장로와 같은 자는 없었다. 그런 자들은 위험하다 싶으면 다른 이들을 방패로 삼아 도망쳤기 때문이다.
태고 성신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들이 그의 죽음을 알고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분명 한제는 지금 엄청난 위기를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특히 칠백만 천지의 사람들이 섬뇌족을 마구잡이로 공격한다면 태고 성신 전체의 시선이 쏠릴 터였다.
허나 이 엄청난 위기 앞에서도 한제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힘겨운 싸움이었다. 당시 수도자와의 전투보다도 더…’
만약 산령상인과 연합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대장로를 죽이지 못했을 터였다.
한제가 생각을 정리하며 나아가던 중 전방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산령상인은 칠백만 천지 사람들과 함께 태고 성신 내 섬뇌족 성역에 발을 들였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곳이 선계구나. 이곳이 우리의 생사를 제멋대로 결정하던 선인들이 있던 곳. 앞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선인이라 칭할 것이다. 이곳에 섬뇌족이 있다면 우리 선족(仙族)도 있어야 할 터! 으하하하!”
산령상인은 크게 웃었다. 하지만 눈물 역시 끊이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칠백만 천지의 모든 사람이 울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끝없이 고생하며 다른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겪어온 이들이다. 게다가 칠백만 천지를 빠져나오는 동안 전체의 9할이 넘는 자가 희생당했다. 그러니 가슴에 사무친 슬픔에 눈물을 참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정신적 지주의 붕괴
“이제 우리는 자유다!”
“자유다!”
한제는 말없이 산령상인과 칠백만 천지 수련자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울며 웃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허나 그는 이내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태고 성신의 우주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 우주 너머에는 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정말 빠져나온 것일까⋯⋯?”
한참 뒤, 그는 고개를 숙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운해성역에서 노운종, 이천매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세상은 원이다. 원 밖으로 나간다 해도 그 너머에는 하나하나의 보이지 않는 원이 있지. 그러니 어찌 그 안에서 나갈 수 있단 말인가?’
산령상인은 그 무렵에야 안정을 찾고는 한제에게 포권을 했다.
“도우의 은혜는 내 평생 잊지 않겠네. 우리 선족 역시 대대로 이 은혜를 잊지 않을 터. 우리 선족은 도우의 요구라면 무엇이든 발 벗고 나서겠네!”
산령상인에 이어 칠백만 천지 사람들이 포권을 했다.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
뒤이어 산령상인이 손을 휘둘러 한 줄기 천둥번개를 소환했다. 그 위에 어린 1만 개가 넘는 영의 천둥번개가 한제에게 날아들었다.
“약속했던 대가일세!”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그것들을 전부 거두었다. 한 줄기의 영의 천둥번개는 천벌을 마주한 수련자의 생명을 뜻하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서는 응당 받아야 할 물건이었다.
“섬뇌족의 불멸의 번개는 중상을 입은 상태야. 난 지금 섬뇌족을 공격해 그 불멸의 번개를 삼킬 생각인데 도우의 생각은 어떠한가?”
한제의 질문에 산령상인의 두 눈이 살기로 번득였다.
“마침 잘됐군. 난 절대 섬뇌족을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네. 이 기회에 놈들을 완전히 짓밟아 칠백만 천지에서 목숨을 바친 이들의 원한을 풀고야 말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