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70
수도 동쪽 구역의 황성 안, 어느 높은 누각. 도포 차림의 노인들이 있었다. 모두 정열기에 이르러 있었고 그중 백발이 성성한 어느 노인은 이미 쇄열기에 이르러 있었다.
누각에 서서 시커먼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을 바라보던 이들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비로군. 천둥번개도 이상하리만치 격렬해. 허나 우리가 힘을 합쳐 신식을 펼쳐도 이상한 징조나 실마리는 발견하지 못했으니…”
“그저 기우인지도 모르지.”
곁에 있던 노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휴, 섬뇌족 같은 세력이 멸망하고 대장로가 당한 직후인 만큼 불안할 수밖에… 그래, 어쩌면 그저 내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건지도 모르지.”
쇄열기 수준의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자가 누구든지 간에 태고성신령 아래 모두가 뒤쫓고 있으니 무사하지는 못할 게야.”
★ ★ ★
이 수련성 동쪽의 길게 이어진 산맥. 이곳에 뿌리내린 진언족은 섬뇌족과 달리 작은 부족에 불과했고 계내의 종파들처럼 하나의 수련성만을 차지하고 있었다.
진언족의 근거지 안, 어느 산봉우리 꼭대기에는 한 사람이 말없이 서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이 노인은 먼 곳을 한참이나 내다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왜 이리도 불길한 예감이 든단 말인가.”
★ ★ ★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한제는 태고의 뇌룡을 모두 흡수하자마자 체내에 봉인해두었던 불멸의 번개를 방출했다. 불멸의 번개는 풀려나자마자 완전히 벗어나려는 듯 마구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그 순간, 이미 번개가 된 한제의 원신이 곧장 달려들어 불멸의 번개를 삼켜대기 시작했다. 이에 불멸의 번개는 더욱 격렬하게 발버둥을 쳐댔다.
“나와 융합되고 내 원신에 흡수돼 내 천둥번개의 본원을 완성시켜라! 내 수준을 더 증폭시켜라!”
한제는 폭풍과 같은 신식을 휘둘러가며 불멸의 번개의 저항을 막아섰다.
“융합!”
그가 두 눈을 번쩍 뜨자 오른쪽 눈동자에서 두 개의 번개 문양이 급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요란하게 불고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비는 평생 내릴 양을 한꺼번에 쏟아붓듯 맹렬하게 내려 급기야는 지면에 물안개를 형성할 정도였다. 도저히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나 다행히 도시에 수로가 잘 갖춰진 덕에 빗물은 바다로 흘러들었다.
깊은 밤, 어둠에 잠겨 구름은 보이지 않았지만 콰쾅 하는 소리와 이따금씩 번득이는 번개는 멈추지 않았다.
비로 인해 한층 더 서늘해진 바람에 빗방울은 사선(斜線)으로 떨어졌다. 집집마다 처마에 매달아 놓은 나뭇잎들은 흠뻑 젖어 축 처진 채 마구 흔들렸고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천둥이 요란하게 울리면서 번개가 내리쳐 도시를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다. 이 짧은 순간, 서쪽 구역 길가에 선 도포 차림의 노인이 비추었다. 노인은 뒷짐을 진 채 형형한 눈으로 무심히 주위를 살폈다.
노인의 발에 나뭇잎 하나가 깔려 있었다. 발 밖으로 반 정도만 겨우 모습을 드러낸 나뭇잎은 진창 속에서 발버둥을 치듯 바람에 팔락였다.
이 노인의 미간에는 기이한 도안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뒤를 따르던 일곱 명의 중년 수련자는 노인의 손짓에 앞으로 나아가 그를 둘러쌌다.
잠시 후, 이들은 각자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소환한 어스름한 빛을 노인에게 쏘아주었다. 빛은 그들과 노인을 연결한 것 같았다.
빛은 노인의 미간에 새겨진 도안과 똑같은 그림을 이루었다.
노인이 감았던 눈을 번쩍 뜬 순간, 미간의 부족 낙인에서 터져 나온 빛이 바깥을 향해 부채꼴로 발산됐다. 동시에 주위에 서 있던 일곱 수련자가 소환한 어스름한 빛도 강력해졌다.
빛은 노인의 체내로 몰려들어 그의 미간에 새겨진 낙인의 빛을 한층 더 밝혀주었다.
그 상태로 일반인들의 집을 차례대로 살피던 그때, 노인의 눈에 비친 눈앞의 광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낡고 오래된 집들은 세월을 거스른 듯 깨끗한 새것으로 변해가다가 곧 쾅 하고 폐허가 됐다.
집뿐만 아니라 그 안의 일반인들 또한 노인의 눈빛 아래 세월을 거스른 듯 젊어지다가 곧 하나둘 흩어져 사라졌다. 마치 애초에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일전에 이곳에서 살다가 이미 죽은 이들도 노인 앞에서 되살아나기도 했다.
★ ★ ★
한제는 내내 집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불멸의 번개를 흡수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한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자체적인 의지를 품은 불멸의 번개가 발버둥치는 사이 외부의 하늘에서는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하지만 한제의 몸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여덟 마리의 뇌룡과 융합해 번개로 변한 한제의 원신은 마치 상대를 삼켜야만 세상 모든 천둥번개를 통제하는 진정한 제왕이 될 수 있다는 듯 맹렬하게 불멸의 번개를 공격했다.
한데 그때 한제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뒤이어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그를 감싸고 있던 집이 왜곡되기 시작하더니 거울처럼 변했다. 이어서 끊임없이 꿀렁거리다가 결국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다시 두 눈을 감은 한제는 이제 다른 일에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불멸의 번개를 마저 삼키는 데 집중했다.
★ ★ ★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길에 서 있던 도포 차림의 노인은 계속해서 번득이는 눈으로 집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한제의 집 역시 살폈지만 그의 시선은 그저 휙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노인의 시야에는 한 서생이 나타났으나 금방 흩어져 사라지고 그전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이 비쳤다.
한참 뒤, 서쪽 구역을 전부 다 살핀 노인은 두 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순간, 부족 낙인의 빛이 증폭됐다. 그 빛 아래 노인의 시야 속 도시의 서쪽 구역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시간이 계속해서 거꾸로 흐르는 사이 노인의 눈앞에는 어느새 오래된 전장이 하나 나타났는데 수많은 일반인 병사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면서 땅을 붉게 물들였다.
노인이 두 눈을 감자 낙인의 빛이 흩어져 사라지면서 원래대로 돌아왔고 주위의 일곱 수련자도 낙인을 거두었다. 그들의 얼굴은 약간 창백해진 상태였다.
“이곳에 숨은 수련자는 없다. 다른 곳으로 가봐야겠군!”
노인은 소매를 크게 휘두르며 몸을 훌쩍 날려 먼 곳으로 나아갔다. 일곱 수련자가 뒤를 따랐다.
이와 같은 광경은 이 수련성만이 아니라 태고 성신 내 여러 수련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태고성신령에 따라 모든 부족의 부족원들은 찾을 수 있는 모든 곳을 뒤지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한제는 덤덤했다. 근처까지 왔던 수련자들이 떠난 것조차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 무렵, 불멸의 번개가 내지르는 포효와 발버둥은 한층 약해져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구름으로 덮여 있었고 비는 줄어들 기색조차 없었다. 비 오는 밤, 야경꾼조차 없어 비 내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어느 순간, 불멸의 번개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한제의 원신에 완전히 흡수되고 융합됐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의지 역시 제련되면서 한제의 원신 일부가 됐다.
그 순간, 한제는 자신의 원신 속 천둥번개의 본원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증폭하는 것을 똑똑히 느꼈다.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성장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이제는 천둥번개의 본원만으로 그의 수준을 쇄열기 중기에서 후기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본원의 힘은 모든 규칙과 경지의 근본이었다. 그러니 본원을 깨닫는 것은 천둥번개의 경지와 규칙을 완전히 깨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경지의 제한이 없어진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수준의 증폭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또한 불멸의 번개의 의지를 삼킨 뒤 한제의 심신에서는 어떤 화면들이 떠올랐다. 불멸의 번개의 기억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오랜 세월을 지낸 탓인지 온전하게 남은 기억은 세 개 뿐이었다.
첫 번째 기억은 무너진 우주였다. 계내와 계외를 합친 면적의 몇 배는 됨직한 우주가 무너져 있었고 수많은 생령이 숨을 거두었다.
한제는 기이한 복장의 수련자들과 기이한 형태의 흉수들을 보았고 수련성보다도 큰 몸통에서 검은 빛을 번득이는 흡혈 마수와 수많은 머리를 가진 길궁도 보았다.
그때, 무너지던 우주 속에서 한 줄기 번개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튀어나오며 밝은 빛을 번득였다. 바로 불멸의 번개였으나, 그 크기와 위압감 등은 한제가 삼킨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이것이 첫 번째 기억이었다. 매우 짧았지만 실로 충격적이었다.
두 번째 기억에서는 한 사람의 수중에서 노니는 한 줄기 번개가 보였다. 중년 사내는 싸늘한 인상이었고 미간에는 꽃무늬 도안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그 꽃에 달린 일곱 개의 꽃잎은 각각 색이 달랐다.
“안타깝게도 이 태고신허(太古神虛)의 번개는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가 없나 보군. 좋다. 그냥 보내주마. 네 운이 어디까지 닿는지 보자.”
중년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오른손을 휘둘렀고 번개는 콰쾅 소리와 함께 쏘아져 나가다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마지막 기억에 나타난 것은 섬뇌족 성지의 사당이었다. 이 사당에는 세상이 열린 순간부터 존재했던 것 같은 한 줄기 번개가 있었고 그 주위로는 여덟 명의 수련자가 있었다. 그중 한 노인의 미간에는 번개 낙인이 새겨진 상태였다.
나머지 일곱 명은 기이한 옷을 입고 있었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그 옷에서는 빛이 흘렀다. 마치 강물을 걸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중 선두에는 우두머리인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서 있었다. 섬뇌족 노인도 그 사람을 바라보는 눈에 두려움과 공경심이 담겨 있었다.
그의 몸은 한 줄기 금색 선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한제는 그 금색 선을 본 순간 익숙함을 느꼈다.
“이 번개가 여기에 나타날 줄이야. 안타깝군, 안타까워.”
우두머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몸을 돌렸고 그 순간 한제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쾅 하고 울렸다. 동시에 그의 눈이 바짝 졸아들었다.
“저 사람은⋯⋯.”
기억이 흩어져 사라졌다.
하지만 한제는 마지막 그 사람의 모습이 또렷하게, 그리고 깊숙이 남아 있었다.
낯선 얼굴이었다. 아마도 그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의 왼쪽 눈에는 오색의 빛이 있었다.
한제는 그 빛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한눈에 그것이 극의 경계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오색 극의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