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74
화면 속, 한제는 공의 문을 여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눈도 떼지 않은 채 화면을 바라보던 남몽도존의 표정은 점점 무거워지더니, 결국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는 남몽도존에게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네 아비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 이런 일은 처음인데⋯⋯.”
한참 뒤, 남몽도존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의 두 눈에는 아직까지도 믿지 못하겠다는 빛이 남아 있었다.
“계속해서 그러실 겁니다. 저자의 미래를 꿰뚫어볼 수 있는 이는 없으니까요. 아버지께서 태고 오존 중 한 명이라 해도 마찬가지예요.”
이천매는 화면 속 사내를 바라보며 기쁜 듯 미소를 짓더니 답했다.
“혹시… 나를 원망하느냐?”
남몽도존은 복잡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며 물었다. 허나 이천매는 고개를 저었다.
“제 기억은 아직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았어요. 그저 몇 가지만 떠올랐을 뿐이지요. 제가 정말 그에 대한 기억을 다 잊었다면 다시는 그와 만나지 않는 편이 낫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몇 가지 기억이라도 떠올렸으니 더 이상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게 됐어요. 기억이 완벽하게 회복되고 나면 저는 그자를 찾아 나설 겁니다.”
★ ★ ★
표묘족 성역 호수 중앙의 섬. 한제가 공의 문을 열려던 그때, 흑의의 여인이 가부좌를 튼 채 호흡을 하고 있었다. 바로 운락이었다.
한제가 공의 문을 향해 공격을 퍼부은 순간, 이 섬 위의 갖가지 풀과 꽃이 일제히 말라비틀어졌고 섬을 에워싼 호수는 격렬하게 철썩이면서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해 회전했다.
이에 운락은 두 눈을 번쩍 떴다.
“꽃들이 시들고 호수의 물이 회오리를 일으키면 하늘에서는 천둥번개가 내리치고 불바다가 일어나며, 섬은 분리되고 조상들의 뼈는 흩어질 것이며⋯⋯.”
그때, 하늘에서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줄기 천둥번개가 호수로 곧장 내리쳤다. 이에 운락의 표정은 크게 변했다.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아홉 개의 예언 중 세 개가 실현됐어!”
★ ★ ★
태고 성신 내의 어느 성역. 수천 개의 수련성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이곳은 태고 성신에서 매우 유명한 타락의 땅이었다. 총 372개의 작은 부족이 모여 있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세력이 큰 부족을 배반한 자나 도망자들이 모여들었다. 원래 태고 성신의 장존회는 이런 지역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았고 태고 성신의 수련자들도 대부분 이곳을 적대시했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서 머릿수가 늘자 결국 무시할 없을 만큼 강한 힘을 갖게 됐다. 2만 년 전에는 세력이 큰 부족 하나가 배신자를 쫓아 이곳까지 추격해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이 이 성역에 진입한 순간, 광풍이 불어닥치면서 근 1천 명에 달하는 추격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심지어 원신조차 살아남지 못했다.
이는 이곳의 여러 전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심지어 태고 오존 중 하나인 구천마존(九天魔尊)이 몰래 이곳에 잠입했다가 중상을 입었고 평생 이곳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또한 1만 년에는 장존회로부터 법보를 훔치는 바람에 수배령이 내려진 사람이 이곳으로 도망쳤는데 장존회는 1백 년간의 협정만 맺은 채 물러나기도 했다.
이런 여러 전설이 타락의 땅에 한 겹씩 더해지면서 이곳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점점 드물어졌다. 하지만 암암리에 이곳에 들어와 보호를 요청하는 수련자는 여전히 적지 않았다.
타락의 땅은 이런 식으로 활기를 얻었고 곧 태고 성신에서 가장 큰 거래의 장이 됐다. 각종 법보와 공법 등이 이곳에서 거래됐다.
이런 타락의 땅, 그중에서도 어떤 영기도 없는 수련성에 한제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는 산봉우리의 절반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동굴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한제밖에 없었다.
그는 일찍이 이곳 타락의 땅에 들어올 생각이었다. 태고 성신에서 수많은 수련자의 기억을 삼킨 덕에 자연스레 이곳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것이다. 특히 이곳은 장존회의 통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태고성신령의 영향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한제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었다.
물론 완전히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쉴 새 없이 추격당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또한 이곳 타락의 땅에서는 오직 법보와 단약 등의 물건만 거래했고 희귀한 물건일수록 값이 후했다.
한제는 이곳에 오자마자 몇몇 단약을 팔아 이 산봉우리의 동굴에서 1백 년간 머물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지난 며칠 동안 동굴 안에서 좌선을 하면서 단약으로 부상을 치료하는데 집중해 상태가 한결 좋아져 있었다.
육신의 상처는 고신의 회복력에 힘입어 거의 아문 상태였다.
한데 그때, 눈을 감고 있던 한제의 표정이 약간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두 눈을 번쩍 떴다.
동굴의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빠른 속도로 걸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동굴로 들어온 사람은 종대홍이었다.
“주인님, 제가 들어보니 이곳에서는 단약의 가격을 가장 높이 쳐준답니다. 법보보다도 더요. 또한 이곳에서는 꼭두각시도 파는데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나 인기가 많답니다. 신식만 새겨두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더군요!”
종대홍이 흥분한 듯 말했다.
한제는 종대홍을 내보내 정보를 모아오게 했다. 종대홍은 태고 성신 사람이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더라도 의심을 사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이곳에 태고성신령에 관한 소문은 퍼지지 않은 듯하니 주인님은 마음 놓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종대홍을 내보낸 뒤 한제는 곧장 신통술을 발휘해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어쨌든 한제는 섬뇌족을 소멸한 사람이니 섬뇌족인 종대홍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기이하게도 종대홍은 섬뇌족에 별다른 감정을 갖지 않고 있었다.
사실 종대홍은 섬뇌족으로부터 입은 도움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뇌정을 지속적으로 수탈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힘에만 의지해 수준을 높여온 데다가 부족 사람들이 서로에게 각박하게 대하는 것을 보며 살아온 종대홍은 부족에 대한 충성심이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한제를 따르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섬뇌족을 배신하기로 결심한 것도 그래서였다.
허나 섬뇌족은 이미 소멸되었지만 수만 년 전부터 부족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섬뇌족 출신 수련자 역시 적지 않았다.
특히나 이곳은 온갖 수련자들이 모여드는 타락의 땅이었으므로 섬뇌족 출신 수련자를 마주치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꼭두각시?”
한제의 물음에 종대홍이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이곳에서는 꼭두각시의 가격이 매우 높았습니다. 무엇으로 교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수련자와 비슷한 힘을 발휘할 수도 있고 심지어 신식도 펼칠 수 있더군요. 아주 신기했습니다.”
한제는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꼭두각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흥미를 느꼈다.
“화작족에 대해서는 들은 소식 없나?”
“이 수련성에 화작족은 많지 않나 봅니다. 화작족은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으니까요. 여기저기서 얻은 정보를 종합해보면 화작족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서 멀리 떨어진, 불 속성 특징을 짙게 띤 수련성에 머물고 있답니다. 구체적인 정보는 아직 이곳에 익숙해지지 않은 탓에 잘 모르겠지만 곧 더 확실하게 파악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종대홍은 가슴팍을 탕탕 내리치며 말했다.
한제의 눈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살짝 번득였다. 천둥번개의 본원을 완성한 상태이기는 했지만 아직 약간의 흠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곧 그 흠을 메울 자신이 있었다. 그런 그가 지금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태고의 성신에 남아 있는 것은 화염의 본원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주작을 다시 한 번 각성시키려면 강력한 화염을 흡수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택한 것이 화작족이었다.
허나 섬뇌족 때와 같은 우연과 행운,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종대홍, 내 단약을 가지고 가서 꼭두각시 하나로 바꿔오도록.”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단약 세 알을 소환했다. 짙은 향기가 동굴을 가득 채우자 종대홍은 침을 꼴깍 삼키며 공손하게 약을 받아 들었다. 그러더니 곧장 가지 않고 샐샐 웃으며 말했다.
“주인님, 이곳에서는 여자들도 파는 것 같던데 원하신다면⋯⋯.”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한제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자 종대홍은 얼른 입을 다물고 황급히 밖으로 향했다.
동굴을 빠져나왔을 때 종대홍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한제의 표정이 차갑게 변할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만큼 상대가 두려웠다.
‘주인님의 저물공간에 있었을 때는 허이국에게 시달리고 치욕을 당했지. 언젠가 내 수준이 충분히 높아지는 날 반드시 그놈에게 본때를 보여주고야 말겠다! 주인님만 잘 보필한다면 그런 날은 반드시 올 터!’
종대홍은 한제에게서 받은 단약을 가지고 긴 빛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는 이곳에 머문 며칠 동안 특유의 아첨술과 기민한 성격으로 적지 않은 수련자들과 친분을 맺어두었는데 잠시 후 어느 산골짜기를 지나다가 우뚝 멈춰서더니 포권을 했다.
“장 형, 제가 왔습니다.”
고요한 산골짜기 안에는 각종 가시덤불이 가득 자라나 있어 척 보기에는 매우 황량해 보였다. 또한 그 안에서는 음산한 한기도 느껴졌다. 바닥에는 거의 짐승 뼈로 이루어진 진들이 적지 않게 배치되어 있었다.
이 산골짜기 안쪽에는 동굴이 하나 있는데 입구가 한 덩어리 검은 안개로 뒤덮여 있어 그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종대홍의 인사에 누군가의 걸걸한 웃음소리가 검은 안개로 뒤덮인 동굴 안에서 흘러나왔다. 이내 안개는 뭉게뭉게 밀려나더니 하늘을 뒤덮었고 그와 동시에 검은 도포 차림에 비쩍 마른 노인이 동굴에서 걸어 나왔다.
머리카락이 마구 헝클어진 노인의 피골은 상접했고 두 눈은 충혈되어 있어 척 보기에도 음침해 보였다.
“종대홍이었군. 주인님 명령에 따라 돌아가야 한다더니, 이렇게 빨리 다시 올 줄은 몰랐는데.”
비쩍 마른 노인은 종대홍에게 다가왔다.
종대홍은 말없이 단약을 하나 꺼내 노인에게 던져주었다.
이곳을 멸할 것이다
노인은 단약을 받아 들고 자세히 살피다가 흠칫 놀랐고 곧 두 눈은 광기 어린 기쁨으로 물들었다.
“고급 단약이로군! 마침 내 수준에 복용하기에 딱 알맞은 이것을 구하기란 매우 어렵지! 내가 받아도⋯⋯.”
종대홍은 크게 웃으며 포권을 했다.
“괜찮습니다. 제 주인님께는 이미 소용없는 단약이니까요. 장 형께서는 화신기 후기에 오랫동안 머물러 계셨으니 필요하실 겁니다. 받아두세요.”
비쩍 마른 노인은 사양하지 않고 얼른 그 단약을 소중히 받아 챙겼다. 그러더니 종대홍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종대홍, 자네 주인님의 수준은 혹시⋯⋯?”
노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혹시 음양이의에 이르렀는가?”
상대가 자신의 주인에 대해 언급하리라는 것을 예측하고 있던 종대홍은 얼른 공손한 표정으로 답했다.
“제 주인님의 수준은 아주 높습니다. 허나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저 역시 알지 못하지요. 다만 주인님께서 규열기 수련자를 일격에 처리하시는 것을 직접 본 적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