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80
용갑족 소족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선배님께서는 용붕단을 몇 개나 사시겠습니까?”
“1만 개.”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용갑족 소족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1만 개의 용붕단을 동시에 터뜨릴 경우 첫 번째 천쇠에 이른 자라도 충분히 위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다시 오른손을 휘둘러 빛을 번득였고 이내 용붕단이 작은 언덕을 이루듯 쌓여갔다.
한제는 소매를 휘둘러 용붕단을 모두 거두고는 백 개의 혼단을 꺼내놓은 뒤 곧장 털고 일어나 밖으로 향했고 암갈족 족장이 뒤따랐다.
누각을 나온 한제는 차게 웃으며 명했다.
“먼저 암갈족으로 돌아가라. 난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다.”
암갈족 족장은 이유조차 묻지 않고 곧장 사라졌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용갑족 수련성의 도시를 거닐었다. 미끼를 던졌으니 이제 기다릴 차례였다.
‘섬뇌족에는 직접 쳐들어갔지만 화작족에는 그들이 나를 불러들이게 해야 한다!’
잠시 후, 한제는 우뚝 멈춰 서더니 고개를 돌렸다.
“내내 쫓아오던데 죽고 싶은 거냐?”
한제의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1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 파문이 일더니 화작족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매우 공손한 표정으로 몸을 숙이며 포권을 했다.
“진정하십시오, 선배님. 제가 선배님을 따라온 것은 거래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한제는 말없이 그저 차가운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에 노인은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제게는 대량의 염화이정이 있습니다. 선배님께서 원하신다면 전부 드리겠습니다. 저는 그저 그 혼단을 원할 뿐입니다!”
“염화이정을 몇 개나 가지고 있지?”
한제가 여유롭게 물었다.
“선배님께서 방금 전 저 누각에서 보셨던 것과 같은 크기로 총 1백 개입니다!”
“꺼내 보도록.”
한제의 말에 노인은 곧장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옅은 남색 화염이 한 덩어리 나타났다. 노인은 손을 앞쪽으로 휘둘러 한제에게 화염을 쏘아 보냈다. 저물대 역할을 하는 화염 덩어리였다.
화염 덩어리를 받아 든 한제는 그 안을 살폈다. 그곳에는 비슷한 크기의 염화이정이 다수 들어 있었다.
물건을 확인한 한제는 화작족의 노인에게 백 개의 혼단을 꺼내준 뒤 다시 몸을 돌려 도시 안으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이 수련성 중앙의 어느 산봉우리 꼭대기였다. 그는 그곳에서 오른손을 휘둘러 1만 개의 용붕단을 꺼내 사방에 둘러놓았다. 뒤이어 서늘한 눈빛으로 냉소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혼단이 비록 귀하긴 하나 어쩔 수 없지. 용갑족, 너희에게는 감정이 없으나 굳이 내 일에 끼어든다면 자비를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어서 한제는 왼쪽 눈으로 이글거리는 화염을 쏘아 보냈다. 이 화염은 불바다가 되어 한제 주위의 1만 개의 용붕단을 감쌌다.
“제련!”
짧은 외침에 화염은 남색으로 이글거렸고 1만 개의 용붕단은 펑 소리와 함께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도술, 융합! 신통술, 법술, 힘, 규칙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여, 융합하라!”
남몽도존의 신통술은 매우 강력했고 쓸모도 많았다. 융합이라는 도술만 해도 한제에게는 엄청난 도움이 됐다.
화염에 힘입은 융합 도술은 1만 개의 용붕단을 합치기 시작했다.
뒤이어 손톱만 한 금색 단약 한 알이 불바다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화염이 급속도로 수축해 그 단약 안으로 몰려들었다.
이것은 세상을 파멸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품은 단약으로 용붕단과 달리 그 안에는 무려 다섯 종류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더해진 한 종류의 힘은 바로 화염이었다.
“1만 개의 단약을 하나로 융합하면서 첫 번째 천쇠에 이른 자를 위협하고도 남을 힘을 갖게 되었고 융합 도술로 그 힘이 끊임없이 압축되어 두 번째 천쇠에 가까운 수준에 이르게 됐다. 여기에 화염의 힘까지 더해져 이 단약의 위력은 세 번째 천쇠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지.”
한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오른쪽 눈을 번득여 천둥번개를 쏘아 보내 금색 단약 안에 녹여 넣었다. 단약은 펑, 펑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압축되기 시작했다.
“여섯 개의 기운! 섬뇌족의 신통력까지 더해졌으니 이제 네 번째 천쇠에 이른 자마저 상하게 할 수 있다!”
한제는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며 혀끝을 깨물어 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원신의 정기가 담겨 있는 고신의 피였다.
이 피에 뒤덮인 순간, 단약의 금빛이 점점 약해지더니 붉은빛이 돌기 시작했다.
“고신의 피와 정기까지 더해졌으니 다섯 번째 천쇠에 이른 자 역시 위협할 수 있게 됐다!”
한제는 오른손을 다시 한번 휘둘렀다. 순간 그가 손에 넣은 모든 염화이정이 떠오르더니 한제의 왼쪽 눈에서 튀어나온 화염 아래 융합되기 시작했다.
“이 염화이정으로는 주작을 각성시킬 수는 없다. 삼켜도 소용없지. 허나 화염으로 통제한다면 법보에 비할 만한 무기로 만들 수 있어. 그 위력 또한 내가 새로 만든 용붕단에 뒤지지 않을 터!”
한제는 곧장 융합 도술을 발휘했다. 그의 왼쪽 눈에서는 어렴풋이 주작의 모습이 나타나 화염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다섯 번째 천쇠에 이른 자가 대수인가! 분신에 불과하다면 소멸시켜 버릴 것이고 본체로 온다 해도 결코 이곳에서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만약 세 번째 단계의 힘을 발휘한다면 타락의 땅은 그대로 무너지고 말 터! 그럼 이곳의 누구도 너를 저지하지 않겠지만 나는 도망칠 것이다! 화작족에 미끼를 던져두었으니 그들은 반드시 날 찾아올 수밖에 없다!”
한제는 차가운 눈으로 화염을 거두었다.
화염에 제련된 염화이정은 한 알의 짙은 남색 결정체로 변해 있었다. 그 안에는 화염 본원의 힘이 깃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주작의 그림자도 담겨 있었다.
한제의 눈에 담긴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검지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손가락 끝에서 두 마리 사슴의 허상이 나타났다.
“사슴의 뼈에 꽂힌 채 부러진 검에는 마지막 하나의 봉인이 남아 있다! 완성된 천둥번개의 본원으로 그 봉인을 열 수 있을지 시험해보겠다!”
한제의 온몸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흐르던 전광이 수많은 번개가 되어 그의 검지로 돌진하더니 하늘을 뒤덮을 듯 거대한 그물을 형성했다. 이 그물은 그의 검지를 중심으로 사방을 향해 미친 듯 퍼져 나갔다.
한 개, 두 개, 백 개, 만 개, 10만 개, 1백만 개의 검기가 그물에서 폭발하다가 결국 1천만 개라는 한계를 넘어 하늘을 향해 튀어나갔다.
그 순간, 하늘은 검기로 완전히 뒤덮였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불어나던 검기의 수는 3999만 개에서 멈추었다.
“봉인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봉인의 일부를 풀어낸 덕분에 검기의 위력이 증폭되었다. 자 이제 싸울 시간이야!”
자리에서 일어난 한제는 하늘을 향해 우렁차게 웃었다.
“여기에서 널 기다리겠다. 나와 싸우겠는가!”
도발하는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이 수련성에 있는 모든 수련자는 그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수련성 동쪽 도시. 화작족 노인 앞에는 일곱 명의 화작족 부족원이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들 앞에는 1백 개의 혼단이 화염이 뒤덮인 채 타오르며 제련되고 있었다.
계속해서 불타던 혼단의 혼까지 흩어져 사라졌을 때, 한 방울의 피가 붉은 빛을 발산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예상대로 이 단약은 본원의 기운을 품고 있었군! 한데 이건 대체 누구의 피란 말인가!”
바로 그때, 살기와 도발이 담긴 한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화작족 노인은 표정이 급변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같은 시각, 용갑족 성지의 누각. 용갑족의 족장과 사묵자 앞에 누군가가 공손하게 서 있었다. 용갑족 소족장이었다.
“아버지, 분부대로 1만 개의 용붕단을 내주었습니다.”
용갑족 족장이 무거운 얼굴로 사묵자에게 말했다.
“그자가 우리 용갑족으로부터 1만 개의 용붕단을 강탈해갔으니 선배님이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그자를 죽여주신다면 톡톡히 사례하겠습니다!”
사묵자가 미소를 지으며 막 대답을 하려던 그때, 하늘과 땅을 울리는 거칠고도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발이 담긴 목소리였다.
“여기에서 널 기다리겠다. 나와 싸우겠는가!”
낯빛이 변한 사묵자는 벌떡 일어나더니 번득이는 눈으로 어딘가를 내다보았다. 세상 모든 장벽을 다 꿰뚫을 듯한 그의 눈빛은 허공을 가르며 나아가 이 수련성 중앙의 산봉우리 꼭대기에 닿았다. 그곳에는 한제가 고고하게 서 있었다.
‘내가 저자를 얕잡아봤구나! 허나 절대적인 힘 앞에서 어떤 수작과 술수는 소용없는 법!’
사묵자는 차게 웃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대전에 남은 용갑족 족장 부자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아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 그의 수준은 매우 높았습니다. 절대 만만하게 볼 자가 아니지요. 그자가 이곳 타락의 땅에 숨어든 상황에서 우리가 이래서야⋯⋯.”
용갑족의 족장이자 낙생회의 아홉 번째 장로가 묵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자는 분명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내가 제대로 봤다면 그자는 섬뇌족을 멸망시키고 그 대장로를 죽인 후 수만 명의 수련자를 제압하고 도망친 사람이다. 장존회에서 태고성신령을 내려 추격하는 그 사람 말이다!”
“예?!”
용갑족 소족장은 흠칫 놀랐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사묵자가 이곳에 왔겠느냐! 흥, 만약 사묵자가 그토록 강력하지 않다면 내가 이렇게 도움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나 섬뇌족을 멸한 자는 아직 세 번째 단계에 이르지 못했어. 그러니 사묵자를 도울 수밖에…”
“하지만 아버지. 만에 하나 사묵자 선배님이 실패하신다면⋯⋯.”
용갑족 소족장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없다. 만에 하나 저자가 죽음을 면하더라도 중상을 피할 수는 없을 거다. 그럼 도망치기도 바쁠 테니 복수하러 올 틈은 없겠지. 게다가 그자가 정말 우리를 찾아온다 한들 내가 가만히 당하겠느냐! 이 아비는 낙생회의 아홉 번째 장로다. 그런 내게 저자가 감히 뭘 어쩌겠느냐!”
용갑족 족장은 오만한 얼굴로 소매를 휘두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대종사
폭풍 전야는 고요한 법이다.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얼굴로 한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하얀 옷자락과 머리카락 덕분에 그는 꼭 선인처럼 보였다.
이 순간, 그는 세상과 융합된 것만 같았다. 그가 곧 하늘이고 그가 곧 땅이었다.
2천 년의 수련을 거친 끝에 나약했던 소년은 수련계의 최고봉에 서서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와도 싸울 수 있는 강자가 되었다. 비록 이번 상대는 분신에 불과했지만 그 역시 다섯 번째 천쇠에 이르러 있었다.
계내와 계외를 통틀어 감히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를 도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