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81
이때 한제는 일대종사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덤덤한 얼굴 아래에는 반항심과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살기가 어려 있었다.
하늘과 운명에 저항하겠다는 의지!
이것이 바로 한제였다. 모완의 목숨을 두고 하늘과 싸웠고 위기 속에서도 기어코 한 줄기 생기를 붙든 그는 향불을 응집시킬 수 있는 세계를 가졌으면서도 외부의 힘에 기대 성장하지는 않으려 했다.
자신의 다섯 갈래 본원으로 공의 문을 연 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알지 못하는 길을 걸어가려 했다.
그는 칠백만 천지의 사람들을 이끌고 그곳을 나왔고 자신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섬뇌족 대장로를 죽였으며, 오직 이천매를 위해 자신만의 힘으로 태고 성신에 진입했다.
태고 성신을 뒤흔들고 태고성신령에 쫓기는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당시의 청림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이게 바로 이한제였다. 그는 불멸의 삶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후회 없는 삶을 바랄 뿐이었다.
그의 주위로는 3999만 개의 검기가 가득했다. 덕분에 이 세상에 그 검기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검기 속에 이 세상이 들어 있는 것인지도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한제가 손을 들자 4천만 개에 달하는 검기가 몰려들어 순식간에 그의 손가락 끝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 한제는 손짓 한 번으로 4천만 개에 달하는 검기가 동시에 공격하는 듯한 위력을 낼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때, 저 멀리 하늘에서 폭풍이 몰아쳤다. 용솟음치듯 피어오른 폭풍은 하늘과 땅을 가르며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왔다. 그리고 그 폭풍 안에는 사묵자가 있었다.
“감히 이 사묵자를 도발하다니, 담도 크구나!”
사묵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거대한 폭풍이 곧장 한제에게 돌진했다.
“말이 많군!”
한제는 차게 내뱉더니 사묵자가 달려든 순간 결인을 그린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산붕(山崩)!”
그의 외침에 사방에서 허상의 화산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 한제의 수준으로 발휘할 수 있는 산붕술은 당시 부상을 입었던 청수가 발휘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콰쾅!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낸 화산이 무너지는 소리가 강력한 음파가 되어 세상을 뒤흔들었다.
사묵자의 표정은 진지했다. 향불도 없이 본원의 힘만으로 공의 문을 불러낸 상대를 감히 얕잡아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묵자는 결인을 그린 두 손을 휘둘러 자신을 감싸고 있던 폭풍과 함께 곧장 쏘아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한제가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던 손을 힘차게 내리쳤다.
“첫 번째 붕괴!”
한제의 외침에 따라 허상의 화산들이 바르르 진동하면서 검은 연기를 뭉게뭉게 피워 올렸다.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연기는 사방으로 퍼져 나가다가 한제를 향해 돌진하던 사묵자의 폭풍과 충돌했다.
콰쾅! 콰르릉!
요란한 소리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하늘은 진동했고 대지는 무너져 내렸다. 순간 수련성 전체가 바르르 흔들렸다.
“두 번째, 세 번째 붕괴!”
화산은 연이어 폭발하며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이 열기는 붉은 용암이 되어서는 폭풍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늘이 찢어지면서 거대한 균열이 나타났다.
“네 번째, 다섯 번째 붕괴!”
한제의 덤덤한 외침에 대량의 화염이 중첩되면서 하나의 진짜 화산처럼 실체를 갖추어갔다. 허나 신통술로 형성된 존재라 혼은 없었다.
이 화산은 실체를 갖추자마자 폭발했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리며 대지를 향해 뻗은 손을 꽉 움켜쥐고는 낮게 외쳤다.
“산붕술에 혼이 없다면 주면 되겠지! 이 수련성의 모든 산맥에 존재하는 혼을 뽑아내겠다!”
한제의 외침에 따라 이 수련성 전체가 진동했다. 뒤이어 이 수련성의 모든 산봉우리가 바르르 떨리다가 무너져 내려 수없이 많은 돌조각으로 붕괴했다. 산의 척추라 할 수 있는 혼이 뽑혀나간 탓이었다.
산혼들이 하나하나 응집된 순간, 한제는 힘껏 손을 휘둘렀다.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아홉 번째 붕괴!”
사묵자의 폭풍이 가까워졌을 때, 산혼과 산붕술로 형성된 화산은 융합되기 시작했다.
순간 산붕술로 나타난 허상의 화산들은 혼을 갖게 됐다. 수많은 산에서 뽑아낸 풍족한 혼과 융합한 화산은 진정한 산봉우리가 되어갔다. 이제 한제의 산붕술은 완벽해진 셈이었다.
“아홉 번째 붕괴!”
마지막 붕괴! 화산은 바르르 진동하다가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소리를 냈다. 그 안에서 거대한 폭풍이 뿜어져 나오기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
꽈르릉!
이내 산봉우리는 갈라지면서 그 안으로부터 바위와 용암, 검은 연기, 그리고 산혼으로 이루어진 폭풍이 발산되더니 그대로 사묵자의 폭풍과 충돌했다.
꽝!
파멸적인 충격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한제의 옷과 머리카락은 태풍이라도 맞은 것처럼 세차게 휘날렸다. 그러나 그는 얼굴만 약간 창백해졌을 뿐,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사묵자를 향해 돌진했다.
이 무렵, 사묵자 역시 창백해져 있었다. 파멸적인 기운을 품은 충격에 휩쓸리기 직전, 그는 한 줄기 빛처럼 쏘아져 나갔다.
‘산붕술! 백범의 신통술이 아닌가!’
폭발의 충격을 뚫고 나간 사묵자는 결인을 그린 두 손을 휘두르며 서늘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늘은 그림으로!”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늘이 수많은 파문과 함께 왜곡되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다른 모든 색이 흩어져 사라지면서 오로지 흰색으로 변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으로 그 위에서는 수많은 허상이 산과 강을 이루고 있었다.
“땅은 묵으로!”
사묵자의 이어진 외침에 대지 역시 왜곡되면서 새카맣게 변했다. 줄기줄기 파문이 생겨난 대지는 꼭 먹물 같았다.
“나는 하늘을 가르는 붓이 되어 천도를 완성한다!”
사묵자는 마치 한 필의 붓이 된 듯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 손짓에 따라 그만의 세상이 구축되어 가는 것 같았다.
한편, 한제는 두 눈이 바짝 졸아들었다. 그는 이전에 사마묵의 옥패를 얻은 바 있었다.
또한 그는 칠채계 안에서 사마묵의 동굴에 들어가 파천종의 파천도(破天道)라는 엄청난 신통술을 파악하기도 했다.
이는 오직 역대 종주와 대제자들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것으로 그 위력은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사묵자 사묵자라⋯⋯. 설마 저자가⋯⋯?’
그림과 먹물 사이에서 사묵자가 손을 휘두르자 먹물이 된 대지에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물결이 일었다. 그의 손길에 따라 먹물을 듬뿍 머금은 붓은 그림이 된 하늘에 산과 강을 그려 넣었다.
단 몇 번의 붓질만으로 그림 속에는 사묵자와 한제가 맞붙은 이 수련성이 그려졌다. 그 안에는 한제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분신이지만 너 정도는 파천도로 죽일 수 있다!”
사묵자는 날카롭게 외치며 다시 한 번 손을 휘두르려 했다.
그 순간, 한제의 두 눈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파천종의 사마묵!”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하늘의 외침처럼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사묵자는 들어 올린 오른손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고 놀란 눈으로 한제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때, 한제가 돌진하면서 오른손 검지로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했고 한제는 갑자기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났을 때는 어느새 사묵자의 코앞이었고 그의 오른손 검지는 상대의 미간에 꽂혔다.
사묵자의 안색이 급변했다. 한제의 고함에 신통술을 발휘할 시기를 놓친 그는 곧장 오른손을 휘둘러 이 세상을 파괴하기 위한 획을 그었다.
그 획 하나에 그림으로 그려진 산과 강은 즉각 찢어졌고 그 안에 그려졌던 한제의 모습에도 왜곡이 나타났다.
“큭!”
한제는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왈칵 피가 솟아올랐으나 억지로 삼켜내며 한제는 살기 어린 눈으로 오른손 검지에 한층 더 힘을 주었다.
사묵자의 눈에는 감출 수 없는 충격이 떠올랐다. 그는 다급히 몸을 물리면서 오른손을 휘둘렀다. 먹물로 변한 대지가 솟구쳐 올라 보호막이 됐다.
‘이게 대체 무슨 신통술이란 말인가!’
시커먼 먹물이 한제의 앞을 가로막으며 그의 오른손 검지와 닿은 순간, 셀 수 없을 정도의 검기가 한제의 손가락 끝에서 줄기줄기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한제가 사묵자와의 싸움에 대비한 세 가지 공격 중 하나였다.
빛으로 쏘아져 나온 검기는 무려 3999만 9999개에 달했다. 여기에 한제의 손가락까지 더한다면 정확히 4천만 개의 검기라 할 수 있었다.
한제의 손가락에서는 온 세상을 뒤흔들 법한 위력을 품은 4천만 개의 검기와 함께 두 마리 사슴의 허상도 나타나 달려들었다.
사묵자의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저건⋯⋯?”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한제의 앞을 가로막았던 먹물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 보호막을 그대로 꿰뚫은 검기들은 한제를 중심으로 거친 폭풍을 이루어 곧장 사묵자에게 달려들었다. 폭풍 안에서는 수천만 개의 검기가 수천만 마리의 뱀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회전했다.
“웩!”
사묵자는 한 움큼 피를 토해내며 나가떨어지면서 육신이 찢겨나갔다. 허나 그의 육신은 곧장 다시 응집되더니 검기 폭풍을 피해 1만 척 밖으로 달아났다.
눈 깜짝할 사이 한참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동한 그의 눈앞에는 매우 기이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 아래에는 또 다른 하늘이 있었고 대지 위에는 또 다른 대지가 있었다. 파천도는 말하자면 하나의 세상을 그대로 복사해내 감옥으로 삼는 신통술이었다. 이 신통술을 사용하면 좀 전에 사묵자가 그림을 찢어 한제를 공격한 것처럼 복제된 세상을 찢음으로써 상대를 죽일 수 있다.
한제로서는 파천도로 구성된 세상에 갇혀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사묵자는 일그러진 얼굴로 결인을 그린 두 손을 바깥쪽으로 뻗었다가 모은 뒤 아래로 휘두르며 외쳤다.
“파천(破天)!”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짐에 따라 온 세상에서 콰쾅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림이 됐던 하늘이 이리저리 갈라지면서 그 위에 그려졌던 한제의 모습 또한 전보다 더 찢기고 왜곡됐다.
그 순간, 이 수련성의 모든 수련자는 심신이 진동했다.
특히 화작족 노인과 부족원들은 일찍이 신식을 펼쳐 두 강자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 광경을 보고는 충격에 휩싸였다.
화작족 노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파천도는 과연 대단하군! 저자는 죽을 수밖에 없겠어. 그나저나 사묵자가 직접 왔다는 건 내게 혼단을 판 저자가 섬뇌족을 멸하고 태고성신령에 쫓기는 그 사람이 틀림없다는 뜻! 혼단에 든 피의 내력을 파악하지 못한 게 아쉽군.’
화작족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한제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