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83
그 목소리의 메아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한제는 전보다 더욱 빠르게 허공을 갈라 사묵자를 추격함과 동시에 두 손을 매섭게 휘둘렀다. 그러자 손톱만 한 금색 단약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달려들어 눈 깜짝할 사이 사묵자를 중심으로 반경 1백 척 안으로 들어갔다.
“폭발!”
한제의 짧은 외침이 터져 나온 순간, 펑 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마치 거대한 수련성이 자폭이라도 한 듯한 그 소리는 무궁무진한 음파가 됐는데 그 안에서는 파멸의 힘까지 뿜어져 나왔다.
“크흑!”
그 음파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한 사묵자는 다시 한번 피를 토해내고는 기겁한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저자에게 이토록 강력한 법보가 있었다니!’
폭발의 충격에 휩쓸린 그의 몸은 갈가리 찢기고 부서졌다. 만약 그의 본체가 세 번째 단계에 이른 강자가 아니었다면 이 분신을 응집시키기 위해 그간 모아둔 재료를 대량으로 쏟아붓고 심혈을 기울여 거의 불멸에 가까워지도록 방어막을 제련해주지 않았더라면 진즉 소멸됐을 터였다.
사실 이 분신은 사묵자가 공열기 초기에서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제련해낸 것이었다. 그는 이 분신이 세 번째 단계에 이르러 자신의 수련에 도움을 주기를 원했다.
한편, 한제는 곧장 사묵자에게 달려들며 이번에는 수차례 압축을 반복한 염화이정을 날려 보냈다.
“폭발!”
포효에 가까운 외침에 마침 사묵자 근처에 이른 염화이정이 폭발했다.
이 모든 것은 말로 설명하기에는 장황했지만 실제로는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안 돼!”
전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던 용갑족 족장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단약이 붕괴한 여파에 휩쓸린 사묵자는 끊임없이 피를 토하며 밀려났다. 죽음의 위기는 형태 없는 압박이 되어 온몸을 으스러뜨리려 하고 있었다.
염화이정의 붕괴는 용붕단의 붕괴보다도 훨씬 강력했다. 그 안에 담긴 화염은 한제의 통제에 따라 몇 배로 압축되면서 다섯 번째 천쇠에 이른 수련자를 죽이기에 충분한 위력을 발휘했다.
염화이정이 폭발하며 발산한 눈부신 빛이 수련성 전체를 뒤덮었다.
“크아악!”
그 빛에 뒤덮인 사묵자의 육신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남색의 화염은 그의 옷은 내버려 둔 채 오직 육신과 원신만을 태웠다.
허나 사묵자는 중상은 입은 상태에서도 아직 살아 있었다. 두려움에 잠긴 그에게 남은 유일한 생각은 도망쳐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한데 그 순간, 화염이 붉은 빛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붉은 검이 소환되더니 곧장 사묵자에게 돌진했다. 심지어 신식으로도 확인하기 어려운 속도였다.
“헛!”
중상을 입은 사묵자로서는 도망칠 수도 없었다.
쾅!
굉음과 함께 붉은 검이 가슴을 꿰뚫었고 사묵자의 가슴과 등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체내에서는 펑, 펑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허나 다섯 번째 천쇠에 이른 사묵자의 분신은 용붕단과 염화이정, 사천만 개의 검기, 심지어 붉은 검까지 쏟아부었는데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러나 무려 사묵자의 분신에게 이 정도의 부상을 입혔다는 것만으로도 한제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그는 아직 하나의 본원만 완성한 상태였다. 나머지 본원까지 완성한다면 공의 문을 열지 못하더라도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에게 충분히 맞설 수 있을 터였다.
소제(少帝)
목숨을 부지한 채 도망치는 사묵자를 본 한제는 어두운 얼굴로 몸을 날리며 신통술을 발휘하려 했다.
한데 그때, 허공에서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타락의 땅이 어디 네 마음대로 들고 날 수 있는 곳이더냐.”
그 무렵, 사묵자는 이미 하늘 끄트머리에 이르러 주위에 파문을 일으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한데 갑자기 하늘에 왜곡이 일기 시작하더니 형태 없는 기운이 휘몰아쳐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했다. 이어서 거대한 회오리 안에서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 하강했다.
하늘과 땅을 이을 듯 거대한 손가락은 보이지 않는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거의 투명했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고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아래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마치 수련성의 대지에 구멍을 뚫으려는 듯이 내려온 손가락은 순식간에 사묵자를 강타했다.
“끄아악!”
알 수 없는 힘에 눌려 도망치기는커녕 움직일 수도 심지어 숨을 쉴 수도 없었던 사묵자는 절규했고 바르르 떨다가 왈칵 피를 토해냈다. 온몸에는 균열이 잔뜩 생겨났고 이내 무너져 내려 산산조각이 났다. 원신도 마찬가지였다.
바람이 불어왔지만 짙은 피비린내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허공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고 거대한 손가락도 회오리 속으로 돌아가 자취를 감추었다. 이윽고 모든 것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상태를 찾았다.
깊은 적막이 흘렀다.
용갑족 소족장이 긴장한 얼굴로 얼른 자신의 아버지 곁에 섰다.
“아버지, 아무래도 일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저자는 대제의 관심을 받고 있어요. 저희는⋯⋯.”
용갑족 족장은 어두운 얼굴로 하늘을 보다가 아들의 말을 끊었다.
“저자는 분명 강하다. 나 역시 적수가 되지 못해. 하지만 겁먹을 것 없다! 나는 낙생회의 아홉 번째 장로로 대제에게 충성을 바쳐왔다. 허나 그자는 한낱 외부인에 불과해. 또한 그자는 대제가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저자는 감히 내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해. 내가 그라면 곧장 어딘가 조용한 곳을 찾아 폐관수련으로 부상을 치료할 게다.”
그 무렵, 한제는 전장을 둘러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번 전투는 매우 짧았지만 매순간이 충격이었고 위기였다. 그 또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대제의 태도도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묵자의 분신이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고 해도 손가락 하나로 그를 죽이다니. 대제의 수준은 수도자를 능가할 것이 분명해. 남몽도존과 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런데 그런 대제가 날 도우려 하다니. 왜지?’
한제는 재빨리 생각을 정리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곧장 이곳을 떠나 부상 회복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선이 수련성의 대지에 닿은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용갑족 족장. 사묵자를 도왔다면 너 역시 나의 적이다! 낙생회의 아홉 번째 장로라⋯⋯. 대제가 언제까지 널 봐줄지 모르겠군.”
그는 차게 코웃음을 치며 용갑족이 있는 곳으로 유성처럼 몸을 날렸다.
그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자 용갑족 소족장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아버지! 그, 그자가⋯⋯.”
용갑족 족장 역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상대가 정말로 자신을 찾아오려 할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제가 이미 부상을 입은 상태임을 떠올린 그는 이내 거칠게 외쳤다.
“용갑족의 두 번째 단계에 이른 모든 수련자여, 어떤 외부인도 우리 부족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막아라!”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열 명에 달하는 수련자가 분분히 날아올라 한제를 저지하려 했다.
다음 순간, 유성이 된 천둥번개가 용갑족 구역의 하늘에 나타났다. 그 안에서 싸늘한 눈으로 자신의 앞을 막은 두 번째 단계의 수련자들을 노려보던 한제가 손을 뻗어 내리누르며 짧게 외쳤다.
“꺼져!”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손바닥 하나가 나타나 주위를 휩쓸었다.
“크악!”
“헉!”
열 명에 달하는 용갑족 수련자들은 피를 토하며 떠밀려났고 심지어 그중 세 명은 육신까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손바닥은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은 채 대지에 떨어졌고 이에 용갑족의 대지는 격렬하게 진동하다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나를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한제는 형형한 눈으로 용갑족 족장 부자를 훑었다.
한편, 사묵자와의 전투로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한제가 이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자 용갑족 족장은 경악했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켜 천둥번개를 응집시켰다.
용갑족 족장은 얼른 아들을 데리고 몸을 물리면서 날카롭게 외쳤다.
“감히 나를 죽일 생각이냐! 난 낙생회의 아홉 번째 장로다. 대제께서 직접 임명하신 존재란 말이다! 내게 손 하나라도 댔다가는 대제께서 용서치 않으실 것이야!”
그때, 저 멀리 하늘 끄트머리에서 한 줄기 검광이 쉭 하고 다가왔다.
그 빛을 본 순간 용갑족 족장의 두 눈에서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환희의 빛이 드러났다.
“대제의 사자다! 하하하! 대제께서 사자를 보내셨다! 감히 우리 낙생회를 건드렸겠다? 너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용갑족 족장뿐의 아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며 기뻐했다.
한편, 한제는 섣불리 그 검광을 공격하지 않고 차분히 살폈다.
검광 안에는 붉은 옷을 입은 중년 사내가 있었다. 그에게서는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아 한제로서도 그의 수준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수준을 숨길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공법을 익힌 듯했다.
“낙생회의 아홉 번째 장로 대제의 사자를 뵙습니다. 부디 저를 도와주십시오!”
용갑족 족장과 소족장은 매우 공손한 태도로 포권을 했다.
검광에서 나타난 중년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오른손을 휘둘러 붉은 옥패를 소환했다.
“대제 폐하의 말씀을 전하겠다!”
용갑족 족장은 얼른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용갑족 족장을 낙생회 아홉 번째 장로에서 파면한다. 또한, 이 단약을 하사하니, 즉시 복용하라!”
말을 마친 중년 사내는 소매를 휘둘러 검은 단약 하나를 용갑족 족장에게 주었다.
용갑족 족장은 몸을 바르르 떨더니 창백한 얼굴로 눈앞의 검은 단약을 바라보았다.
“이, 이것은⋯⋯ 독명단(毒命丹)⋯⋯.”
대제의 사자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세상에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는 법.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를 치러라!”
말을 마친 그는 한제에게로 시선을 돌린 뒤 방금 전까지와는 달리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공손히 포권을 했다.
“소제 폐하를 뵙습니다!”
“소제!”
그 짧은 단어에 용갑족 족장은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더없이 창백한 얼굴로 멍하니 한제를 바라보았다.
반면 한제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는 그저 서늘한 눈으로 대제의 사자를 마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