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84
“소제?”
사자로 온 중년 사내는 시종일관 공손한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얼른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대제 폐하께서 임명하셨습니다. 이제 타락의 땅 모든 부족은 소제 폐하가 대제 폐하에 의해 임명된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요. 소제 폐하는 낙생회의 모든 장로보다 높은 분입니다!”
한제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용갑족 족장은 씁쓸한 얼굴로 단약을 쥔 채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그의 표정과 목소리는 오히려 차분해진 상태였다.
“사자님, 죄를 지은 것은 저입니다. 제 아들 녀석의 목숨만은 살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순간 사자는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싸늘하게 답했다.
“난 대제 폐하의 말씀과 그 단약을 전하러 왔을 뿐. 다른 이의 생사에는 관여할 자격도 그럴 생각도 없다.”
용갑족 족장은 멍한 표정의 아들을 힐끔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한제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소제 폐하. 소인이 주제를 모르고 죄를 저질렀습니다. 허나 모든 것은 제 잘못으로 인해 일어난 일입니다. 부디 은혜를 베풀어 제 아들 녀석만이라도 살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기까지 말을 잇던 그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오른손을 뒤로 뻗어 자신의 아들을 잡아당겼다.
넋을 놓고 있던 용갑족 소족장은 순간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아버지가 그의 체내에서 모든 원력을 다 뽑아냈기 때문이다.
펑! 펑!
“끄아악!”
짧은 폭발음과 함께 체내의 모든 경맥이 망가지고 원신도 파괴된 용갑족 소족장은 이제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피를 왈칵 토해내며 더 이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소제 폐하, 제 아들 녀석은 이제 다시는 수련도 하지 못할 테니 소제 폐하를 위협하지도 못할 겁니다. 그러니 부디⋯⋯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용갑족 족장은 다시 한번 허리를 굽혔다.
잠시 후, 한제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용갑족 족장은 희미하게 미소를 짓더니 자신의 아들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놓았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대제로부터 받은 단약을 삼켰다.
단약은 입에 들어가자마자 검은색 화염으로 변했다. 요사스러운 기운을 풍기는 화염이 체내를 사정없이 태워버리며 눈 깜짝할 사이 원신을 불살랐다.
뒤이어 피와 살, 뼈까지 타버리면서 시뻘겋게 달아올랐던 용갑족 족장은 모공으로 뿜어져 나온 검은 화염에 뒤덮여 검은 화염의 공으로 변했다. 그리고 화염이 흩어져 사라지자 흔적조차 남지 않고 소멸되어 버렸다.
‘이건 무슨 화염이란 말인가!’
한제의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이 무렵, 수련성은 완벽한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용갑족 족장이 소멸되는 것을 본 수련자들은 심신이 바르르 떨려왔다. 타락의 땅에서는 신과 같은 대제의 권능 앞에 감히 맞설 이는 없었다.
특히 용갑족 부족원들은 두려움에 질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네 번째 천쇠에 이른 사람은 어디서든 높은 지위를 차지할 정도의 강자다. 허나 이곳 타락의 땅에서는 그런 자라도 대제의 한 마디에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독이 든 단약을 삼켜야만 한다. 대제의 위엄이 얼마나 대단한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내 앞에서 용갑족 족장에게 단약을 먹인 것은 내게 간접적으로 보내는 경고이기도 하다.’
용갑족 족장의 소멸로 이번 일은 일단락됐다. 대제의 사자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으며 한제에게 포권을 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용갑족에 족장이 없어서는 안 되겠지요. 새로운 족장은 소제께서 선택하시지요.”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용갑족을 훑었고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던 규열기 수준의 청년을 가리켰다.
“저자로 하지.”
족장의 사망과 대제의 위엄에 덜덜 떨고 있던 청년은 한제가 난데없이 자신을 차기 족장으로 지목하자 넋을 놓았다. 너무 갑작스럽고 큰 변화에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는 용갑족에서 수준이 특출하지도 않았던 터라, 사실 부족 내 장로나 되면 다행인 존재였다.
잠시 후, 현실을 깨달은 그는 심신이 마구 흔들렸다. 덜덜 떨면서도 그는 기쁜 눈으로 얼른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한제에게 포권을 했다.
“가 감사합니다. 앞으로 용갑족은 소제 폐하의 모든 명령에 복종할 것입니다. 설사 용갑족의 멸망을 명하시더라도 말입니다! 저는⋯⋯.”
한제는 손을 휘둘러 그의 말을 끊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갑족이 가진 모든 용붕단과 염화이정, 그리고 꼭두각시 등을 가져와라.”
얼른 대답하며 물러난 청년은 한제가 요구했던 것들뿐만 아니라 그가 원하는 용갑족 부족의 원신까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주었다. 그는 선대 족장의 죽음은 완전히 잊은 채 잔뜩 격앙되고 흥분된 상태였다.
대제의 사자는 한제에게 포권을 하며 웃었다.
“소제 폐하, 저는 이만 대제 폐하께 이번 일을 보고하러 물러나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오른손을 휘둘러 푸른색 옥패를 소환해 한제에게 공손히 건넸다.
“소제 폐하, 이것은 대제 폐하께서 주신 겁니다. 소제 폐하의 신분을 증명할 물건이지요. 이 옥패가 있는 한 타락의 땅 어디를 가시더라도 소제 폐하께 함부로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또한 대제 폐하는 세 달 뒤 있을 낙생회 장로 선발 대회에 소제 폐하도 참석하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옥패를 건넨 뒤 포권을 해 보이며 인사를 한 사자는 긴 빛을 그리며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한제는 받아 든 옥패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평범한 재질의 옥패에는 붓으로 쓴 듯한 ‘제(帝)’라는 글자 하나만 적혀 있었다. 막힘없이 유려하게 써 내린 듯 시원시원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 옥패로부터 아주 기이한 힘 한 줄기가 훅 끼쳐오는 것이 느껴졌다.
탐랑
태고의 성신 어딘가. 분신이 죽음을 맞이한 순간, 망망한 우주 속 거대한 균열 안에서 사묵자의 본체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두 눈에서는 폭발적인 빛이 뿜어져 나왔고 체내에서는 거친 기운이 튀어나와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잠시 후, 사묵자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점점 흩어져 사라졌고 대신 짙은 살기가 드러났다.
분신의 죽음은 그의 수준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분신은 그저 그의 수준이 어딘가에 정체되어 있을 때 도움을 받기 위해 만들어낸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분신이 사라지는 바람에 그가 세워온 계획이 어그러지게 됐다. 더불어 오랜 시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진행해온 일도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타락의 땅 대제! 용서하지 않겠다.”
이를 악문 사묵자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리고 천둥번개의 수련자. 그자에게는 천둥번개의 본원뿐만 아니라 화염의 본원도 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내 과거 이름까지 알고 있었지! 설마… 계내에서 온 자란 말인가!”
사묵자는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매섭게 휘둘렀다. 그러자 균열에서는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또 하나의 틈이 벌어졌다.
사묵자는 곧장 그 균열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꽉 움켜쥐었다.
“나와라, 칠채신공정!”
그의 외침에 일곱 색채의 빛이 균열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길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빛이 나타나자 칠흑처럼 어두웠던 사방이 환하게 밝아졌다.
균열 안에서 빠져나온 칠채정들이 사묵자의 앞에 둥둥 떠올랐다. 총 스물아홉 개의 못은 고리 형태의 대열을 이룬 채 사묵자의 주위를 맴돌면서 더욱 짙은 빛을 발했다. 빛에 뒤덮여 사묵자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됐다.
★ ★ ★
타락의 땅. 한 무리의 수련자가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 거의 1천 명에 달하는 이들의 수준은 각기 달랐는데 두 번째 수준에 이른 10여 명이 한 사람을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었다.
호위를 받고 있는 노인은 옷차림이 화려했고 외모는 평범했지만 어딘가 음산해 보였다.
“탐랑, 암갈족의 수련성이 머지않았습니다. 탐랑께서 원하시는 만년 전갈의 시체는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인, 탐랑은 고고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좋다. 정말 이곳에 만년 전갈의 시체가 있다면 내 톡톡히 사례하겠다!”
그 말에 사방의 수련자들은 만족한 듯 웃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탐랑이 한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타락의 땅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수련자였다.
탐랑은 보물이 없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 그런 탐랑과 함께한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타락의 땅에 사는 대부분의 수련자는 탐랑의 내력이 불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타락의 땅에 언제 처음 나타났는지도 알지 못했고 그 당시 그의 수준이 규열기에 불과했다는 것 역시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놀라운 모습들을 보여주었고 그의 손에서 나온 단약과 법보들은 타락의 땅에 여러 차례의 폭풍을 일으켰다.
수준은 그리 높지 않지만 매우 교활한 그는 기이한 신통술과 각종 법보로 스스로를 잘 보호했다. 때문에 그보다 수준이 높은 사람도 그를 쉽사리 사로잡지는 못했다.
특히나 탐랑은 도피용 신통술에 능했다. 가볍게 몸을 날림과 동시에 99배로 증폭된 속도를 발휘할 수 있어 그를 잡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매우 신중하고 눈치가 빨라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곧장 달아났다.
이렇게 해서 탐랑은 제법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탐랑의 수준은 안정적으로 상승해 어느새 정열기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자 점차 타락의 땅 각 부족의 강자들은 기회를 노려 탐랑을 죽이기 위해 추격했다.
허나 이때도 탐랑이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온갖 법보들을 이용해 살아남았고 심지어 자신을 쫓던 쇄열기 수련자 세 명을 이겨냈고 그중 한 명은 소멸시키기까지 했다.
이 사건은 타락의 땅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정열기에 불과한 수련자 혼자서 세 명의 쇄열기 수련자를 물리치고 그중 한 명을 죽이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는 사실 믿기 힘들 정도였다.
이로 인해 탐랑의 이름이 타락의 땅을 휩쓸었다. 물론 죽임을 당한 쇄열기 수련자의 부족은 크게 분노해 첫 번째 천쇠에 이른 강력한 수련자를 파견했다.
사실 첫 번째 천쇠에 이른 수련자가 정열기 수준의 수련자를 죽이는 것은 개미 한 마리를 죽이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탐랑은 또 한 번 기적을 일으켰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부서진 조각상 법보를 하나 꺼내 싸웠다. 조각상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타락의 땅 전역에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났고 그 구름 속에서 상대는 죽음을 맞았다. 허나 타락의 땅 수련자들이 진정 두려워한 이유는, 그 법보의 위력이 세 번째 천쇠에 이른 수련자를 소멸시키기에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네 번째 천쇠에 이른 자라 해도 큰 부상을 입을 터였다.
탐랑에게 그보다 더 강력한 법보가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허나 그가 사용한 것들은 하나같이 모두의 상상을 초월하는 법보였다.
그 전투 후, 탐랑은 자취를 감추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에게 흥미를 느낀 타락의 땅의 대제가 그를 숨겨주었는데 탐랑은 이 기회를 잘 이용했다고 한다. 법보 하나를 대제에게 바친 대가로 수준을 높일 단약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 년 뒤, 다시 모습을 드러낸 탐랑은 어느새 쇄열기 중기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네 번째 천쇠 수준의 수련자가 그에게서 법보를 빼앗으려다가 큰 부상만 입은 채 물러났고 이후 감히 탐랑을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사실 신통술과 법보 외에도 탐랑에게는 믿는 구석이 하나 더 있었다. 그가 나타나는 곳이라면 반드시 귀한 보물이 나타난다는 법칙이었다. 아무리 황량한 수련성이라도 그가 발을 들인 곳에서는 충격적인 보물이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이로 인해 탐랑은 보물 없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는 말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한편 탐랑에게도 역린이 있었다. 바로 역한 체취였다. 어째서 그가 이런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 냄새는 심지어 그가 멀리 떠나간 뒤에도 한참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허나 누구든 탐랑 앞에서 표정을 구기기라도 했다가는 그의 보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탐랑을 호위하는 10여 명의 수련자 역시 참기 힘들 정도의 악취에 시달렸지만 결코 불쾌해하는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최대한 공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암갈족의 수련성이 나타났다. 그 수련성을 보는 탐랑의 두 눈에 감격의 빛이 번득였다.
그는 구사일생으로 이곳 계외에 오게 된 후 혼자만의 힘으로 지금의 성취를 달성했다.
심지어 당시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고 지닌 법보 또한 그때보다 강력한 것들이 많았다.
그중 몇몇은 거의 목숨과 맞바꾼 것이라 할 만했다. 만약 지금 계내로 돌아간다면 지위나 신분이 당시와는 비교도 안 되게 높아질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