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85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역한 체취라는 그늘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야 이미 익숙해진 탓에 느낄 수가 없었지만 주위 사람들의 표정을 볼 때마다 그는 미칠 것 같았다.
이 악취를 없애기 위해 갖은 방법을 고안해 보았지만 원신으로부터 기인하는 냄새는 너무나 깊은 곳에 뿌리박혀 있었다. 그로 인한 고통은 지금껏 그를 괴롭히고 있어 한제와 천운자 그리고 망월에 대한 원한이 하늘을 찔렀다.
‘천운자! 만약 너희들이 당시 나를 나천으로 쫓아내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런 끔찍한 일을 겪지는 않았을 터! 망월, 네놈도 용서할 수 없다. 반드시 네놈의 시체라도 갈가리 찢어버리겠다! 허나 가장 큰 원수는 바로 이한제! 넌 나의 모든 법보를 앗아갔다. 내 솥과 태고의 뇌룡, 산수도(山水圖), 선산⋯⋯ 그리고 내가 수만 년간 모아온 모든 법보들을!’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탐랑은 분노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허나 한제를 떠올릴 때면 원한뿐만 아니라 짙은 두려움도 느껴졌다. 그의 수준은 그때보다 한참 높아져 있었지만 이 두려움은 오히려 점점 커졌다.
‘천역주도 결국 그놈이 가져갔지. 요령의 땅에 있을 때는 분명 내 수준이 더 높았는데도 결국 그놈이 내 태고의 뇌룡을 삼켜버렸다! 내 태고의 뇌룡! 어릴 때부터 나와 함께 커온 녀석이었는데… 그 뇌룡이 있었더라면 난 융합을 통해 완전한 천둥번개의 수련자로 거듭날 수 있었을 터!’
탐랑은 아직도 원통한 듯 이를 갈았다.
‘천운자 등의 압박 때문에 나천 성역으로 그자를 찾으러 갔다가 빌어먹을 망월에게 삼켜졌다가 배출되면서 끔찍한 고통을 받았고 그 와중에 또다시 이한제를 마주쳐서 솥과 산수도를 비롯한 모든 것을 빼앗겼다. 게다가 망월의 입을 통해 빠져나오기 직전, 그놈의 방해로 나는 거의 죽을 뻔했지. 허나 하늘이 굽어살핀 덕에 이 탐랑은 결국 그 끔찍한 상황에서 빠져나와 어느 수련성에 숨어들었다!’
탐랑은 가끔 자신의 과거를 특히나 자신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겼던 한제를 회상했다.
평생 보물을 수집해오는 것을 업으로 삼았지만 유독 한제를 마주칠 때마다 갖고 있던 것을 빼앗겼다. 뿐만 아니라 죽음의 위기에 봉착하기까지 했으니 말하자면 그에게 한제는 떨쳐낼 수 없는 악몽과 같았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더 강력한 법보를 가지고 있고 수준도 그때보다 훨씬 높다. 다시 네놈을 마주친다면 그때는 내 보물을 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만약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하늘이 이한제를 나의 천적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밖에…’
여기까지 생각하던 탐랑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운둔족(雲遁族)의 보물은 내 악취를 없앨 수 있다. 하지만 운둔족에게서 보물을 빼앗을 수는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곳에 남아 법보를 연구하는 것뿐. 이미 연구를 8할 정도 마쳤으니 이제 암갈족으로부터 만년 전갈의 시체만 가져오면 이 지긋지긋한 냄새를 없앨 수 있다!’
긴 생각을 이어나가던 탐랑의 얼굴에는 그러나 의외로 슬픔이 어렸다.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노라니 슬픔이 밀려든 것이다.
‘계외로 나오기를 잘했지. 이한제를 마주칠 리는 없으니까. 혹시라도 그를 다시 만나게 되면… 또다시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될지도 몰라.’
수준이 한참 높아졌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한제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도심에 생긴 상흔 때문이다.
탐랑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한제를 죽이지 않는 이상 평생 이런 두려움에 시달릴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한제는 우주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간 용갑족이 모아온 모든 것을 취한 상태라 지금 그의 저물공간에는 대량의 용붕단과 염화이정이 들어 있었고 꼭두각시 역시 적지 않았다. 그중 수준이 가장 높은 꼭두각시는 첫 번째 천쇠에 이르러 있었다.
이동하던 중 한제는 생각을 정리했다.
‘대제는 어째서 나를 소제로 임명한 걸까? 사성종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까? 도대체 누구지?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게다가 옥패만 보냈을 뿐, 나와 만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한제는 생각에 잠긴 상태에서도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가 나를 도울 것은 예상했다. 사묵자는 나를 죽이러 이곳에 들어왔으니 타락의 땅의 규칙에 따라 처벌받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한데 대제는 그를 쫓아낸 게 아니라 분신을 없애버렸다. 이는 장존회에 보내는 대제의 뜻이라고도 볼 수 있어.’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처음에는 그저 방관하려던 게 분명해. 그러다가 생각을 바꾼 거야. 대체 무엇이 그의 생각을 바꾸게 했을까?’
활시위 소리에 놀란 새
잠시 후, 어딘가에 생각이 미친 한제는 어두운 얼굴로 우뚝 멈춰 섰다.
‘난 다섯 개의 본원을 가지고 있다. 대제의 수준이라면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지도… 아니면 내가 염화이정을 사용하면서 화염의 본원을 언뜻 드러냈기 때문일 수도 있지. 만약 그가 정말로 사성종과 관련이 있다면 나의 주작도 알아차렸을 터. 모든 건 내 추측일 뿐이지만…’
한제는 잠시 더 생각을 해봤으나 답을 알 수 없었다.
‘그는 사자를 통해 용갑족 족장을 징계하면서 나에게 위엄을 보이기도 했지. 세 달 뒤에 있을 낙생회 장로 선발 대회에 초대받았으니 그때 대제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생각을 정리한 한제는 축지성촌을 발휘해 암갈족 수련성으로 향했다.
★ ★ ★
탐랑 일행은 엄청난 속도로 이동했고 어느덧 암갈족 수련성에 이르렀다. 1천 개의 빛이 된 이들은 파죽지세로 수련성을 둘러싼, 강한 바람이 부는 층을 뚫고 곧장 그 안으로 달려들었다.
탐랑은 수많은 이들의 호위를 받으며 고고하고 오만한 태도로 암갈족 수련성에 내려섰다.
이들의 등장에 암갈족 수련성의 땅과 하늘은 색이 변했고 구름과 바람이 마구 몰아쳤다. 하늘에는 찢어진 듯한 균열이 생겨났고 그 안에서 수많은 검광이 나타났다.
수련성의 모든 수련자들은 깜짝 놀라 두려움 어린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급기야 끊임없이 달려드는 수련자들의 위압감 아래 대지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암갈족의 새로운 집결지는 한제의 동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종대홍은 뒷짐을 진 채 아주 엄숙한 얼굴로 몇몇 암갈족 수련자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매우 공손한 표정의, 그러나 동시에 약간은 의기양양한 표정의 장 노인이 따르고 있었다.
자신보다 수준이 높은 암갈족 수련자들이 종대홍의 호통에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벌벌 떠는 것을 볼 때마다 그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말하지 않았느냐! 너희들이 봐라. 지난 며칠 동안, 응? 지난 며칠 동안 너희들에게 소식을 알아 오게 했는데 어찌 알아 온 것이 하나도 없단 말이냐! 주인님이 돌아오셔서 문책하시면 너희들이 책임질 수 있겠느냐?”
종대홍은 소매를 크게 휘두르며 차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몇몇 암갈족 수련자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그중 한 명이 잠시 망설이다가 포권을 했다.
“이 일은 사실⋯⋯.”
그러나 그는 말을 채 맺기도 전에 표정이 급변하더니 어딘가로 고개를 돌렸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암갈족 수련자가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한제의 동굴 밖 어느 산골짜기에서 가부좌를 튼 채 호흡하고 있던 암갈족 족장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몸을 훌쩍 날려 떠올랐다.
종대홍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늘을 올려다본 그는 창백한 얼굴로 찬 숨을 들이셨다.
온 하늘이 마치 수면처럼 수많은 파문으로 뒤덮여 있었고 저 멀리서 수많은 검광이 질주하듯 날아들었다. 이 엄청난 기세에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우리 운둔족이 이 수련성을 세 달간 빌리려 하니 암갈족은 속히 이곳을 떠나라!”
하늘에서부터 달려들던 천 개에 달하는 검광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렁찬 목소리는 다른 수련성에까지 들릴 듯했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 우리 암갈족은 비록 세력은 작으나 낙생회의 부족 중 하나다. 한데 감히!”
암갈족 족장이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한데 그때, 누군가의 싸늘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끄럽다!”
이 냉랭한 목소리는 터져 나오자마자 세상 모든 소리를 뒤덮으며 대지에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하늘을 뒤덮은 수많은 검광 속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지독한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 짙은 냄새에 암갈족 족장은 무의식중에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탐랑!”
지독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적지 않은 암갈족 수련자들이 구역질을 해댔다. 탐랑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종대홍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종대홍의 모습에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진 탐랑이 소매를 크게 휘두르자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하면서 허공에 거대한 부채가 나타났다. 화사하게 빛나는 이 부채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바람을 일으켰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면이 격렬하게 진동했고 곳곳의 산봉우리가 무너져 내렸다. 한제의 동굴 역시 순식간에 붕괴했다.
백 명이 넘는 암갈족 수련자가 광풍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피를 토했다. 장 노인 또한 피를 뿜어내고는 정신을 잃은 채 저 멀리까지 날아갔다.
암갈족 족장은 힘겹게 버텨냈지만 결국 밀려나고 말았다.
부채질 한 번의 위력에 암갈족을 비롯해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수련자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 와중에 종대홍은 강력한 힘에 붙들려 탐랑 앞으로 끌려갔다. 상대와 가까워질수록 악취가 더욱 심해져 종대홍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내게서 냄새가 나나?”
탐랑은 종대홍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뇨, 아닙니다.”
종대홍은 심신이 크게 요동쳤다. 상대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것 같아 그는 곧장 이를 악물고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애써 웃었다. 하지만 그렇게 숨을 들이마시는 동안에도 끔찍한 냄새에 하마터면 구역질이 날 뻔했다.
탐랑의 눈에 서늘한 살기가 번득이자 종대홍은 그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발버둥을 치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나를 죽인다면 너 또한 내 주인님의 손에 죽을 것이다! 암갈족 족장도 주인님의 신통술 한 방을 견뎌내지 못했고 암갈족은 주인님의 노예가 됐다! 네 수준이 아무리 높다 한들 주인님의 적수는 되지 못해!”
탐랑이 냉소했다.
“수준이 엄청나다?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터!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네 주인이라는 자가 대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구나. 노예의 잘못은 주인의 책임인 법. 네 주인도 죽여주마.”
탐랑은 오른손을 휘둘러 한 줄기 원력을 종대홍의 체내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종대홍은 피를 왈칵 토해내더니 육신이 거의 무너져 내렸다.
탐랑이 소매를 크게 휘두르자 하늘에서 다시 한 번 광풍이 일더니 암갈족 수련자들을 휘감아 수련성 밖으로 몰아냈다.
탐랑은 또 한 번 소매를 휘두르며 운둔족 사람들에게 외쳤다.
“너희는 이곳에서 나와 함께 주인이라는 그자를 기다려라. 이 탐랑이 가진 각종 법보의 위력을 똑똑히 보여줄 테니! 그럼 너희는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의 법보가 발휘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천쇠에 이른 수련자를 죽이는 모습을 똑똑히 보여주마!”
오만하게 외친 탐랑은 오른손을 휘둘러 아홉 개의 비석을 소환했다. 비석들이 나타나자 하늘의 색은 곧장 변했다. 탐랑은 한 번 더 손을 휘둘러 이번에는 아흔아홉 자루 허상의 검을 소환했다. 검의 허상에서는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검기가 느껴졌다. 이어 푸른빛이 그의 손에서 뻗어 나갔고 그러자 대지가 바르르 진동하더니 이내 거대한 나무들이 솟아났다. 빽빽하게 밀집된 나무는 눈 깜짝할 사이 숲을 형성했다.
이 광경에 운둔족 수련자들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 탐랑이 법보의 위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은 그들이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었다.
“탐랑이 수많은 법보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천쇠에 이른 수련자도 죽일 만큼 강력한 법보들이 있다더군. 대체 어떤 법보이기에 그런 위력을 발휘하는지 궁금했는데 드디어 보게 되는군!”
운둔족 수련자들은 잔뜩 흥분해 외쳐댔다.
한편, 종대홍 역시 지면에 처박힌 채 그 광경을 보고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는 탐랑의 정체를 알지 못했지만 운둔족 수련자들의 대화를 통해 대략적으로는 파악할 수 있었다.
탐랑이 다시 한 번 손을 휘두르자 숲에서 낮은 포효가 들려왔다. 뒤이어 울창한 숲은 마치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왜곡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를 지켜보던 수련자들은 찬 숨을 헉 들이마셨다. 거대한 숲이 우렁찬 소리와 함께 지면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즉, 숲이 아니라 수많은 거목으로 이루어진 생령이었다.
응집된 큰 나무들은 하나하나가 거대한 사람의 모습이 되어 일어났다. 이 수인(樹人)의 키는 10만 척에 달했고 매우 강력한 기운을 뿜어냈다.
탐랑은 가볍게 몸을 날려 그 수인의 정수리 위에 섰고 그러자 그의 앞에 거대한 균열이 하나 나타났다. 뒤이어 그 균열 안에서 도가니 하나가 나타나 탐랑의 옆에 섰다.
“천황로(天皇爐)! 탐랑의 유명한 보물 중 하나인 천황로 아닌가!”
“정열기 수준이었을 때 저 보물로 쇄열기 절정 수준의 수련자 셋을 상대했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