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87
노랗게 말라버린 나뭇잎은 일견 평범해 보였지만 파문에 이르자마자 노란 빛을 폭발적으로 발산하면서 강력한 봉인의 힘을 발휘해 우주를 뒤덮고 파문을 막았다. 파문은 발버둥 쳤지만 그 나뭇잎의 범위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뭇잎을 던진 탐랑은 어떻게 됐는지 보지도 않고 몸을 날렸고 그의 두 발은 보라색 빛을 발산하면서 두 덩어리의 보랏빛 안개로 변했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안개에서는 찢어질 듯한 포효가 들려왔고 이내 안개는 두 개의 거대한 보라색 마영을 형성했다. 영락없는 고마의 모습이었다.
두 마영을 양쪽 발로 밟게 된 탐랑은 전보다 더 빠른 속도를 발휘할 수 있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그의 모습이 사라진 그때, 나뭇잎에 봉인되어 있던 파문 안에서 한제가 걸어 나오더니 어두운 얼굴로 매섭게 한 손을 휘둘렀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그의 오른손은 파문을 봉인했던 나뭇잎을 후려쳤다. 하지만 나뭇잎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강한 반작용이 일어나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대체 무슨 나뭇잎이란 말인가!’
두 눈이 바짝 졸아든 한제는 몸을 뒤로 물리는 한편 세상에 녹아들더니 축지성촌을 발휘해 탐랑을 뒤쫓았다.
그가 떠난 뒤 파문은 점점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했고 나뭇잎의 노란빛 역시 깜박이다 사라졌다.
한편,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질주하던 탐랑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손에는 노란색 나뭇잎이 나타났다.
“일엽봉천에서 빠져나오려면 다섯 번째 천쇠에 이른 자라 해도 한참이 걸리지. 이한제의 수준이 아직 거기에는 이르지는 못한 모양이군!”
나뭇잎을 거둔 뒤 의기양양한 얼굴로 돌진하던 탐랑은 잠시 후 우뚝 멈추며 차게 웃었다. 동시에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손에 있던 나뭇잎은 좀 전처럼 전방으로 향했다. 거의 동시에 그곳에서는 파문이 일었다.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탐랑은 이를 미리 예측하고 막은 것이다.
“난 도주에 가장 능하다. 도주에 있어 나보다 더 뛰어난 자는 없어!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가진 수많은 법보는 벌써 누군가에게 빼앗기고도 남았을 것이다!”
탐랑은 차게 코웃음을 친 뒤 몸을 훌쩍 날려 다시 도망갔다.
한데 바로 그때, 저 멀리서 한 줄기 핏빛이 날아들었다.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나타난 것처럼 보이던 그 빛은 눈 깜짝할 사이 이 우주를 뒤덮으며 다가왔다.
“헛!”
크게 놀란 탐랑은 미처 피할 틈도 없이 그 붉은 빛에 뒤덮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펑,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붉은 빛이 지나간 뒤 탐랑은 창백한 얼굴로 피를 왈칵 토해냈다. 이때 그의 옷 안쪽에서는 검은 빛이 번득였는데 그가 걸친 갑옷에서 발산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갑옷에는 수많은 균열이 일어나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중이었고 그 균열을 일으킨 붉은 검은 뒤로 수백 척 정도 밀려가고 있었다.
탐랑은 뒤로 밀려나는 와중에도 오른손을 휘둘러 자신이 밟고 있던 두 개의 마영으로 두 갈래 검은 기운을 형성했다. 이 기운은 검은 폭풍을 일으키더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탐랑을 감싼 채 달아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단서
탐랑이 검은 폭풍에 휩싸여 도주를 시작한 순간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제는 곧장 손을 움켜쥐어 파문을 봉인했던 나뭇잎을 저물공간에 넣었다.
중상을 입고 도망치는 탐랑에게는 더 이상 그것을 통제할 힘이 없었다. 허나 탐랑은 이미 흔적을 감춘 상태였다.
한제의 냉랭한 눈이 번득였다.
‘탐랑이 지닌 법보는 아직도 많을 터! 허나 한계까지 몰아붙이지 않는다면 수련성에서 그러했듯 많은 법보를 덜컥 내놓을 리 없다. 하나씩 하나씩 차례대로 꺼내겠지! 그나저나 그자가 어디에서 그 많은 법보를 얻었는지는 둘째 치고 대체 어떻게 태고 성신에 들어왔는지도 알아내야겠다.’
한제는 다시 한 걸음 나서며 세상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두 사람은 추격은 수많은 부족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속도를 본 그들은 감히 그 이상의 관심을 둘 수는 없었다. 저런 속도를 낼 수 있는 자라면 엄청난 수준의 수련자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편, 탐랑은 속으로 거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한제는 추격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고 이 무렵 탐랑은 상대가 감히 자신으로서는 대적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음을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손 놓고 잡힐 마음은 없었다.
탐랑은 오른쪽 허공으로부터 미세한 변화를 느끼고는 이를 악물고 오른손을 들어 올려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보라색 옥병 하나가 그의 손에 쥐어졌다. 고마의 도안이 새겨진 차가운 옥병에서는 마기가 발산됐다.
피를 한 움큼 뱉어 옥병에 뿌린 탐랑이 다급히 외쳤다.
“마혼 3백 개를 빌려다오! 저자를 죽이면 3만 생령의 혼으로 갚겠다!”
그의 피는 곧바로 옥병에 흡수됐고 동시에 옥병과 탐랑의 손이 맞닿은 곳에서 두 개의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나 탐랑의 손가락을 곧장 찔러 들었다. 손가락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 또한 전부 옥병에 흡수됐다.
잠시 후, 옥병은 만족스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뒤이어 그 안에서 대량의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검은 안개는 수많은 마혼으로 변했다. 머리에 뿔이 하나씩 돋은 마혼은 영락없는 고마와 같았다.
고마들의 두 눈에는 광기와 독기가 가득했다. 영겁의 세월 동안 억눌려 오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맛보았다가 이제야 방출되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이 어린 포효가 온 세상을 채웠고 눈 깜짝할 사이 탐랑의 몸은 3백 마리의 마혼으로 뒤덮였다.
각 마혼은 첫 번째 천쇠에 이른 수련자에 상당하는 위력을 발휘했고 이들은 탐랑의 주위를 맴돌며 엄청난 기세의 폭풍을 일으켰다.
짙은 마기는 회전하다가 어딘가로 달려들었다. 그 순간 파문이 나타났다. 허나 파문은 바르르 진동했고 그 안에서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낸 한제는 밖으로 빠져나가기도 전에 마기로 이루어진 폭풍을 마주하게 됐다.
한제의 두 눈이 기이하게 빛났다. 폭풍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수백 마리의 마혼임을 알아챈 것이다.
한데 마혼들의 모습은 당시의 타지아와 상당히 닮아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고마들의 왼쪽 눈동자에는 반점이 없다는 것뿐. 대신 녀석들의 왼쪽 눈 안에서는 혼탁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렇게 움직이는 기류를 본 순간 한제의 미간에서 고신의 반점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 회전하기 시작했다.
‘고신의 기운!’
한제의 표정이 급변했다. 폭풍을 형성한 고마들의 눈동자에서 맴도는 기류에 고신의 힘이 응집되어 있음을 똑똑히 느꼈기 때문이다.
‘녀석들은 강력한 고신에게 봉인되어 있군!’
한제는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고마가 형성한 폭풍이 달려든 순간, 한제는 하늘을 향해 거대한 고함을 내질렀다. 고신의 포효였다. 한제의 미간에서 고신의 반점이 급속도로 회전하면서 고신의 힘으로 그의 온몸을 감쌌다.
달려들던 폭풍은 우뚝 멈추었고 그 안의 고마들은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었다. 이제야 고신의 존재를 느낀 듯 비명을 내지르던 녀석들은 이전에 자신들을 압박했던 고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탐랑으로서는 반응조차 할 틈이 없었다.
“이제야 알겠구나. 탐랑 네가 어떻게 이런 법보들을 찾아냈는지 말이다! 네가 그곳에 갔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제가 싸늘하게 웃으며 탐랑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저자는 나의 천벌이야! 심지어 나의 법보들마저 이를 피할 수 없어!’
다급하게 몸을 물리던 탐랑은 한제가 다가오자 손에 쥔 보라색 옥병을 냅다 다른 쪽으로 던져버렸다. 그는 예전에도 한제를 상대로 이렇게 법보를 던짐으로써 상대를 유인한 적이 있다.
‘난 하늘의 총애를 받고 태어났다. 여덟 살에는 5백 년 된 황정(黃精)을 찾아내 삼켰고 열세 살에는 벼랑에서 미끄러지면서 5백 년 된 주과(朱果) 옆에 떨어졌지. 열여덟 살에는 축기기 수련자에 불과한 몸으로 태고의 뇌룡을 얻었고 결단기 수준에 이르렀을 때에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던 와중에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난 솥이 적의 머리 위에 떨어진 탓에 살아남았지. 그 후로도 행운이 이어져 산수도와 연신침(煉神針) 등의 보물을하나하나 손에 넣었지만 천역주와는 연이 닿지 않았다.’
짧은 순간, 과거의 삶이 탐랑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저 빌어먹을 이한제를 만나 모든 법보를 빼앗겼지만 난 그럼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또 한 번의 우연으로 더 많은 법보를 얻게 됐다. 게다가 수준도 높아졌지만 이한제 저 자식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구나!’
기억들을 되새기던 탐랑은 슬픈 얼굴로 다시금 다급하게 도망쳤다.
한제는 피식 웃더니 탐랑이 내던진 보라색 옥병을 뒤쫓았다.
탐랑은 한제가 방향을 튼 순간, 얼른 손을 휘둘러 거대한 금색 깃발 하나를 소환했다. 이 깃발에는 기이한 흉수 한 마리가 수놓아져 있었다.
매우 사나워 보이는 녀석의 몸은 용 같았지만 발이 없었고 여러 개의 날개가 돋아 있었다. 몸 절반이 구름으로 가려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하늘을 가르며 비행하는 모습을 새겨 넣은 듯했다.
탐랑이 깃발을 맹렬히 휘두르자 그 안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깃발에 수놓인 흉수가 살아난 듯 모습을 드러내더니 탐랑을 휘감은 채 한 덩어리 구름이 되어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한편, 보라색 옥병을 뒤쫓아 손에 넣은 한제는 곧장 몸을 돌리더니 축지성촌을 발휘해 다시 탐랑을 추격했다.
‘탐랑은 내게 복주머니와 같은 존재로군! 하하하!’
한제는 웃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그 무렵, 탐랑은 구름과 몸길이가 1천 척에 달하는 기이한 흉수에 둘러싸여 있었다. 흉수의 날개는 거의 1백 장에 달해 한 번 날갯짓을 할 때마다 속도가 증폭됐다. 눈으로는 그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때, 그 뒤편의 우주에서는 파문이 끈질기게 따라붙고 있었다. 수면에 이는 파도와 같은 파문은 점점 가까워졌고 그 너머로 한제의 모습이 보였다.
한제는 천둥번개의 본원을 이용해 빠른 속도를 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탐랑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허나 한제는 조급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지금 기분이 무척 좋았다. 특히 탐랑이 가진 법보들이 고족과 관련이 있음은 물론이고 이를 어디에서 얻었을지도 짐작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는 한제에게 있어 엄청난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탐랑은 그에게 그런 행운을 얻을 기회를 준 존재다. 그러니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떨어지지를 않는구나. 당최 떨어지지를 않아!’
한제와는 달리 탐랑은 고통으로 가득차 속으로 절규했다. 그는 수만 개의 바늘로 끊임없이 찔리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고통의 근원은 물론 한제였다.
‘저자는 부양검(浮惊劍)과 호골비, 천황로 무마창, 심지어 장천목령으로도 부족해 고식엽(古息葉)과 마혼병(魔魂甁)까지 가져갔어! 내 법보의 절반을 말이다! 그런데도 부족하단 말이냐! 내 모든 법보를 빼앗아야만 직성이 풀린단 말이냐!’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솟았는지 탐랑은 이를 악물고 멈춰 서더니 몸을 홱 돌려 한제가 있는 곳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천 번을 죽여도 부족할 너와 싸울 것이다!”
탐랑의 두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본래 엄청난 수준과 힘을 자랑하는 그였다. 만약 한제에 의해 도심에 균열이 가고 그로 인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만 아니었다면 싸우기도 전에 도망치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한제의 지나친 압박에 순간적으로 두려움에서 벗어난 순간, 그는 결인을 그린 두 손을 매섭게 휘둘렀다. 그러자 전방에 거대한 균열이 나타났다.
“요랑(妖狼)이여, 이 세상에 나타나 하늘을 벌하라!”
탐랑의 포효에 그의 옷자락이 마구 나풀거렸고 머리카락도 사방으로 날렸다. 동시에 전방의 균열에서 하늘을 뒤덮을 법한 짙은 요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한제에게는 매우 익숙한 고요의 기운이었다.
균열에서 흘러나온 요기가 우주를 뒤덮고 뒤이어 흘러나온 붉은 안개가 탐랑의 칠규로 몰려들었다.
“크아아아!”
극심한 고통에 탐랑은 포효했다. 그의 온몸에서는 푸른 핏줄이 돋아났고 얼굴은 잔뜩 찌푸려졌다. 이어서 옷자락이 갈기갈기 찢기더니 그 안에 가려져 있던 검은 갑옷이 드러났다.
한편, 탐랑의 뒤로 키가 10만 척에 이르는 거대한 늑대의 허상이 나타났다. 바로 요랑이었다.
요랑이 나타나자 우주를 채운 요기가 배로 증폭되면서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했다. 탐랑을 중심으로 한 회오리는 곧이어 파도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1천 리, 1만 리, 10만 리!
순식간에 반경 10만 리가 회오리로 바뀌었고 그 안에서는 콰쾅 하는 요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회오리의 중심에는 붉은색으로 번득이는 요랑이 있었다. 녀석은 보라색에 가까운 빛으로 번득이는 두 눈으로 하늘을 우러러보며 울었다.
“아우우우!”
세상 모든 생령의 심신을 뒤흔들 법한, 누구라도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두려움을 느낄 만한 울음소리였다.
“고요!”
한제의 표정이 한층 신중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