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0
빠르게 이동하던 한제는 주위의 원추형 돌들이 처음 이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봤던 것들과 크기가 거의 비슷해졌음을 깨달았다. 이 공간은 너무 넓기에 단순히 돌 크기만으로 이전의 그곳이 맞는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단서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토행(土行)의 땅 (1)
한제는 어느 원추형 돌 위에 서서 눈을 빛내며 위쪽을 바라보았다. 크기가 거의 비슷한 이 돌들의 무리 속에서 그는 아주 오랫동안 날아온 끝에 마침내 맨 처음에 이곳으로 진입했던 그 빛의 고리를 찾아냈다.
그의 위쪽으로 펼쳐진 공간 속에 거대한 빛의 고리가 떠 있었다. 관문을 돌파하지 못해 조금 안타깝기도 했다.
만약 네 번째 공간으로 들어가 고대 신의 몸속에 진입했다면 분명 어마어마한 것들을 찾아낼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한제는 자신의 수준으로 이곳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쉰 뒤 몸을 훌쩍 날려 그 빛의 고리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가 그 빛의 고리에 닿은 순간, 한 줄기의 보라색 빛이 나타났다. 이 빛은 그의 몸 앞에서 한 데 얽히더니 움푹 파인 마름모 모양의 도안을 만들어냈다.
한제는 흠칫 놀랐다. 그의 몸은 마치 거대한 저항력에 가로막힌 듯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마름모 모양으로 움푹 파인 곳을 바라보던 한제는 심장이 덜컥했다. 그 홈의 크기는 최상급 영석을 넣었던 홈의 크기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한제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마름모 모양의 홈은 다시 보라색의 빛으로 돌아가더니 이내 사라졌으나, 한제가 다가가려 하면 다시 나타나 홈을 만들었다. 한제는 그것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방향을 돌려 위쪽으로 나아갔다.
한제는 이곳은 첫 번째 관문으로 진입하는 통로이고 돌 위에 앉아있기만 하면 돌이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이곳을 통과할 수 있다던 육욕마군의 말이 떠올랐다.
원추형의 돌은 모두 나선형을 그리며 위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제는 곧장 위로 향했고 장장 보름 만에 돌들을 따라 꼭대기에 이르렀다.
원추형 돌들의 종착점인 이곳에는 끝없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떠 있었고 모든 원추형 돌들은 소용돌이에 휩쓸려 그 안으로 천천히 사라져갔다.
한제는 소용돌이를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다가 저물대에서 비검 한 자루를 꺼냈다. 몸 앞에 둥둥 뜬 비검에 신식을 찍은 한제가 손을 휘두르자 비검은 곧장 소용돌이 쪽으로 날아갔다.
한제는 두 눈을 살짝 감고 신식을 통해 빠르게 날아가고 있는 비검을 느꼈다. 비검은 소용돌이에 닿자마자 곧장 그 안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간 순간, 비검은 살짝 멈칫 하는가 싶더니 마치 진흙 속에 빠진 듯 한참 후에야 천천히 통과했다.
소용돌이의 다른 한쪽 끝을 통해 나온 비검이 이른 곳은 반짝거리는 빛이 사방에 가득한 세상이었다. 바닥은 두꺼운 얼음 층이 깔려 있었고 하늘은 어스름했지만 그 하늘에서 번져 나온 은은한 빛이 얼음 층에 반사됐다. 미풍이 살랑살랑 불러와 얼음 층을 몇 번 때렸다가 저 먼 곳으로 날아갔다.
끝없이 펼쳐진 그곳에는 일정한 거리마다 검은색 탑이 하나씩 세워져 있었다.
비검이 떨어진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검은색 탑은 높이가 1백 척을 넘지 않았지만 멀리 있는 탑일수록 점점 더 높아졌다. 한제가 신식을 통해 살펴본 바로는 가장 먼 곳의 탑은 높이가 심지어 4백 척이 넘었다.
이 탑들은 검은색 돌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바닥에 깔린 얼음이 반사한 빛을 완전히 흡수해 전혀 아롱거리지 않았다.
비검은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가 소용돌이를 통해 다시 돌아와 한제의 손에 떨어졌다.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뜨고 비검에 심어놓은 신식을 거두었다. 그리고 비검을 다시 저물대에 챙겨 넣은 뒤 교룡의 힘줄을 꺼내 흔들었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마혼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번에는 누굴 죽일까요? 어? 어어, 여긴 어디지?”
마혼은 잔뜩 흥분해 사방을 둘러보더니 점점 얼떨떨해졌다. 그러다가 시선이 거대한 소용돌이에 닿자 손바닥을 비비며 떠보듯 물었다.
“나, 나한테 저기로 들어가라는 건 아니겠죠?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한제는 말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마혼을 노려보았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었다. 여러 번의 검증을 거치지 않고 무작정 달려들 수는 없었다.
마혼은 구겨진 얼굴로 굳은 결심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여기에 뭐가 있는지 누가 압니까? 아주 이상한 느낌이 든단 말이에요. 안 갑니다. 절대 못 가요!”
한제가 저물대를 두드리자 영혼의 깃발 몇 개가 빠져나왔다. 역시 모두 다른 사람들을 죽여 얻은 깃발들이었다. 그중 하나를 들어 서늘한 눈빛으로 잠시 살피던 한제가 오른손을 앞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상목의 영혼이 깃발에서 빠져나왔다. 상목을 처음 만난 날, 한제는 그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묻고 그의 영혼을 뽑아 이 깃발에 봉인을 해두었다.
미약한 흰색 빛이 한제의 손에서 깜빡거리더니 상목의 겁에 질린 얼굴이 은은하게 나타났다. 한제는 오른손을 휘둘러 그 하얀색 빛을 마혼 쪽으로 내던졌다.
마혼은 입술을 핥으며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두 말 않고 그 영혼을 집어 삼켰다. 그리고 배를 매만지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가요! 아직은 못 가요!”
한제는 말없이 마혼을 노려보다가 극의 신식을 펼쳤다.
“으악!”
그러자 마혼은 비참하게 비명을 내질렀고 몸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혼은 괴로워하며 몇 번이고 애원을 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소용돌이 쪽으로 날아갔다.
마혼의 체내에 심어둔 신식을 통해 한제는 다시 한 번 소용돌이 안의 전경을 살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한제의 안색이 변해버렸다.
이번에 소용돌이 안쪽에 펼쳐진 세상은 얼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불바다로 변해 있었다. 틀림없는 불바다였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으며, 화염의 색은 저 먼 곳으로 갈수록 검은색을 띄었다. 저 멀리서 검은 화염이 하늘을 찌를 듯 무섭게 날름거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은 자홍색으로 타올랐고 뜨거운 열기가 훅 끼쳐왔다. 뿐만 아니라 불로 이루어진 수많은 마수들이 그 화염 속에서 뛰어올랐다. 이 불바다에도 높이가 점점 높아지는 검은색 탑이 일직선을 이루며 끝도 없이 서 있었다.
“으아악!”
마혼은 이 화염에 겁을 먹은 듯 비명을 내지르며 얼른 소용돌이를 통해 돌아왔다.
한제는 한참이나 말없이 소용돌이를 주시하다가 마혼을 쳐다보며 오른손으로 소용돌이를 가리켰다. 마혼은 울며불며 애원했다.
“그럼 영혼 하나를 더 주세요!”
한제는 군말 없이 깃발에서 또 하나의 영혼을 꺼내 던졌다. 마혼은 그 영혼을 삼킨 뒤 다시 결심한 얼굴로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다.
소용돌이 속의 세상은 또 한 번 바뀌어 있었다. 이번에는 사막이었다. 거대한 선인장들이 매우 많았고 저 멀리서는 회색빛의 회오리바람이 줄지어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의 두 세계와 마찬가지로 끝없이 검은색 탑이 늘어서 있었다.
한제는 이후로도 몇 번의 실험을 통해 소용돌이 속에서 칼로 이루어진 산과 거대한 나무로 이루어진 숲까지 보았다. 이 모든 것을 합하면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 오행의 땅이 그 소용돌이 안에 펼쳐진다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
한제는 왜 단목극이 왕청월을 찾았는지 이제 알게 됐다. 왕청월은 오행의 은둔술을 잘 다루는 사람이었다. 그가 있다면 얼음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든, 불바다든, 사막이든, 칼산이든, 숲이든 상관하지 않고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오행의 땅 중 한제가 선택할 곳은 당연하게도 사막이었다. 그에게는 토둔술이 있었으므로 모래로 이루어진 땅에 숨어 움직이는 데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한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몸을 훌쩍 날려 옆에 있는 돌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돌을 따라 천천히 소용돌이로 향했다. 그가 곁눈질을 하자 마혼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순순히 앞장섰다.
얼마 후, 한제가 앉아 있는 돌이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 순간, 한제는 몸을 곧장 뒤로 물리며 또 다른 돌 위에 앉았다. 그 무렵, 마혼은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왔다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작업을 몇 차례 반복한 끝에 마혼이 네 번째로 소용돌이 안에 들어갔을 때, 한제는 눈을 빛내며 두 말 않고 몸을 날려 그 안으로 들어갔다.
★ ★ ★
시선이 닿는 곳에는 끝없이 펼쳐진 모래뿐이었고 이따금 모래 폭풍이 거센 소리를 내며 불어 닥쳤다. 저 멀리 하늘에서는 무수히 많은 검은색 회오리바람이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위로는 하늘, 아래로는 땅과 이어진 회오리바람의 기세는 말 그대로 하늘을 뒤덮을 듯했다. 회오리바람에 실려 있는 모래는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한제는 마혼을 챙겨 넣고 쪼그려 앉아 발아래의 노란 모래를 만져보았다. 그리고 발을 살짝 굴러 토둔술을 펼친 그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1천 척 떨어진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1천 척 밖에는 토행(土行)의 땅의 첫 번째 검은색 탑이 놓여 있었다.
한제가 탑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에서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내며 불던 바람이 곧장 사라졌고 사방은 고요해졌다.
탑 안을 자세히 살핀 한제의 눈빛이 신중하게 변했다.
총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이 탑의 1층과 2층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오직 3층에만 두껍게 먼지가 쌓인 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한참 동안 사방을 둘러보다가 아래로 내려가려던 한제는 우뚝 걸음을 멈춘 채 탁자를 노려보았다.
한제는 그쪽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폈다. 탁자에 쌓인 먼지의 높이가 약간 달랐다. 오른손을 살짝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자 먼지가 날아갔고 한 줄의 작은 글자가 흐릿하게 탁자 위에서 나타났다. 한제가 두 손을 살짝 흔들어 바람을 몇 번 더 일으키자 탁자에 나타난 글자는 더 선명해졌다.
누군가가 탁자에 써놓은 글자로 그 후 오랫동안 먼지가 쌓여 점점 그 글자를 덮어버린 모양이었다.
이곳에 와 글자로서 흔적을 남긴다
힘이 넘치는 필체였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기운이 느껴졌다. 한제는 그것을 한참 동안 잠자코 바라보고 있다가 검은 탑을 빠져나왔다.
탑을 빠져나온 순간, 바람은 다시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바람에 실린 모래가 하늘에서 춤을 추며 해를 가렸고 사방이 어두워졌다.
한제는 저물대를 두드려 비검 한 자루를 꺼냈다. 곧장 둥실 떠오른 비검은 1천 척 정도의 높이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불어온 회오리바람 때문에 뚝 떨어져 내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가루로 변해버렸다.
한제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가능성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으니 실망할 것도 없었다.
사방을 둘러본 그는 다음 검은 탑이 약 1백 리 정도 떨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발을 굴러 땅속으로 숨어들어 이동했다.
허나 땅속에 뭔지 모를 저항력이 있었다. 그 저항력이 한제를 막으려 했으나, 그리 큰 저항은 아니었기 때문에 억지로 밀고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다음 탑에 이르렀다.
두 번째 탑 안을 뒤진 한제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고왕을 비롯한 사람들이 먼저 이곳을 훑고 간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전에 그들이 했던 말과 빙풍 덮개에 대해 언급한 점으로 볼 때 그들은 얼음의 땅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바로 이때, 한제의 전방으로 수만 리 떨어진 곳에 있는 1만 척 높이의 검은 탑 안에서는 맹타자가 그늘진 얼굴로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휘이이이익
수많은 회오리바람이 탑의 사방에 바짝 붙어 귀신이 우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토행의 땅 (2)
현재 맹타자의 모습은 참혹했다. 그의 어깨에 앉아 있는 두꺼비도 잔뜩 풀이 죽은 채 맹타자의 머리카락에 숨어서 미약하게 꽥꽥 울었다. 맹타자는 두꺼비를 쓰다듬으며 한을 삭이고 있었다.
수개월 전, 그는 육욕마군 등의 사람들과 통로 안에서 붉은 교룡의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황수에 대적할 수 없었고 연합을 하더라도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각자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람의 목표는 통로 끄트머리에 있는 소용돌이였다. 오직 그 안으로 진입해 첫 번째 관문에 들어가야만 그 순간의 위험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붉은 교룡은 바싹 달라붙어 절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계획은 철저히 망가졌다.
원래 그들은 같은 공간으로 들어가 각자의 장기를 통해 그 관문을 통과할 생각이었다. 그리하면 첫 번째 관문을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고 각자의 영력도 크게 소모되지 않은 채 두 번째 관문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붉은 교룡 때문에 그들은 계획이고 뭐고 무작정 도망치기 바빴다. 소용돌이에 도착한 그들은 다음 사람을 기다릴 틈도 없이 그 안으로 달려들었고 결국 각자 다른 장소로 들어가게 됐다.
맹타자가 들어온 곳은 토행의 땅이었다. 사막을 본 그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원래 그들의 계획에 의하면 이번에 들어가야 하는 곳은 수행(水行)의 땅이었다.
저번에 왔을 때 비록 그 안에서 수많은 동료가 죽긴 했지만 그들은 통과했다. 일단 한 번의 경험이 있는데다가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까지 해둔 상태였으니 그곳을 무사히 통과하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 토행의 땅은 맹타자에게 굉장히 낮선 곳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 1만 리 정도 움직였을 때까지는 안전했으나 그 후부터 검은색 회오리바람이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달려들었고 그 속에 존재하는 기괴한 생물들은 소리를 통해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는 공격을 퍼부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