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04
콰콰쾅!
하늘에서는 거대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다가 강력한 힘을 형성했다. 하늘을 찢어놓을 듯 엄청난 힘이었다.
다음 순간, 대제성의 거대한 거북이 등 위에 놓인 첫 번째 향 끄트머리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붙었다!”
“첫 번째 향에 불이 붙었다!”
대제성에 모인 수만 명의 수련자는 긴 기다림에 지쳐 있는 상태였다. 만약 그럴 수만 있었다면 진즉 떠나갔을 터였다. 한데 드디어 첫 번째 향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자 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검은 연기는 처음에는 아주 가늘고 희미했지만 눈 깜짝할 사이 굵고 짙어졌다. 뜨거운 열기를 품은 연기는 하늘을 뒤덮으며 퍼져 나갔고 향의 불이 화르륵 타올랐다. 그리고 불은 일단 한번 붙자 맹렬한 기세로 커져 삽시간에 향의 절반 이상을 태워버렸다.
한데 향을 집어삼키던 화염이 갑자기 우뚝 멈춰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화염은 이곳의 모든 수련자의 심신에 녹아들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의 심신을 진동시켰다.
사묵자 또한 그 향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곁에서는 운락 대사가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한편 한제는 인의 환계 안에서 검은 주작의 등에 올라탄 채 검은 업의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숨을 깊게 내쉬면서 고개를 숙여 저 아래 산봉우리를 내려다보며 주저앉아 있는 모완에게 조용히 말했다.
“난 이한제라고 한다.”
그는 모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뒤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와라, 구전업겁!”
구전업겁은 업의 화염에 대한 징벌이었다. 당시 1대 주작은 선존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 재앙 아래 숨을 거두었을 터였다. 허나 6대 주작인 한제를 도울 사람은 없었다. 그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 이 구전업겁을 견뎌내야 했다.
순간 빨, 주, 노, 초, 파, 남, 보 그리고 흑과 백까지 아홉 가지 색이 나타났다. 각각의 색은 검은 화염에서 일어나 검은 화염에서 꺼지면서 순환됐다. 만약 이 아홉 개의 난관을 모두 통과한다면 업의 화염을 완전히 손에 넣고 주작을 네 번째로 각성시켜 허상의 화염의 경지에 이를 터였다.
구전업겁이 달려들었다.
한제를 뒤덮은 검은 화염이 사방을 휩쓸며 눈 깜짝할 사이 피처럼 붉게 변했다. 그 강렬한 빛에 대지 역시 붉게 물들었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제를 둘러싼 무궁무진한 붉은 화염이 사방에서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대제성에서는 첫 번째 향이 다시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향에 불이 붙은 순간부터 딱 숫자 하나를 셀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피처럼 붉은 화염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사방에서 한제를 향해 다가왔다. 이 붉은 불바다에는 온 세상을 태워버리기에 충분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검은 주작에 올라탄 한제는 그 열기에 온몸이 불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구전업겁의 첫 번째 관문인 붉은 화염은 한제가 자신의 집념을 위해 저질러온 무궁무진한 학살을 의미했다. 그간의 학살을 그대로 되갚아주겠다는 듯 기세가 아주 맹렬했다.
“캬오오!”
한제를 태운 주작은 붉은 화염에 휩쓸리자 날카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새로 응집된 한제의 혼백도 무너져 내릴 듯 활활 타올랐다. 구전업겁을 얕잡아보지는 않았지만 설마 첫 번째 관문조차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놀라울 지경이었다.
붉은 화염은 너무도 뜨거워 찰나의 순간도 억겁처럼 느껴졌다.
검은 주작 또한 버티기 힘든 것인지 점점 줄어들었고 몸에서 피어오른 검은 화염도 빠르게 붉게 물들어갔다.
만약 주작이 완전히 붉게 변해버린다면 구전업겁 첫 번째 관문의 일부가 되어 더욱 강력히 덮쳐들 터였다.
“나는 굴하지 않는다!”
하늘을 향해 낮게 울부짖은 한제는 광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며 두 팔을 휘둘렀고 맹렬히 숨을 들이마셨다.
“네가 나를 태우는 것과 내가 너를 삼키는 것. 어느 것이 먼저인지 해보자! 후읍!”
한제의 목소리에는 광기가 묻어났다. 위기 상황수록 한제의 저항은 거세지는 것이다.
한제가 숨을 들이마시자 사방으로 퍼져 나갔던 붉은 화염이 곧장 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늘을 채웠던 붉은 화염은 눈 깜짝할 사이 씻은 듯 사라졌다. 허나 한제의 체내에서는 폭발이 일어났고 그는 금세 혈인(血人)이 되어버렸다. 체내에서 발산된 붉은 빛이 금방이라도 온몸을 찢어발길 것만 같았다.
한제의 영혼으로 이루어진 몸은 그렇게 붉은 화염에 타올랐다.
그 무렵, 대제성의 거대한 거북이 등껍질 위 첫 번째 향은 빠르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주위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고 있던 검은 연기는 순식간에 붉게 변하더니 대제성의 하늘을 뒤덮었다.
“헛!”
“이게 무슨 일이람!”
수련자들은 찬 숨을 들이마시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 한층 더 짙은 붉은 빛이 향을 짚고 선 한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몸을 타고 흐르면서 열기를 발산했다. 그와 동시에 첫 번째 향을 태우던 화염은 또다시 멈췄다.
2대 주작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첫 번째 향을 응시했다.
인의 환계에서는 붉은 화염을 전부 빨아들인 한제가 온몸을 와해시킬 듯한 체내의 극심한 고통을 견뎌내고 있었다.
한제는 이를 악물고 오른손을 앞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몸의 절반 정도가 이미 붉게 물들어 있던 주작이 길게 울며 달려들더니 순식간에 그와 하나로 합쳐졌다.
“크으으.”
한제는 체내가 화염에 불타도록 두었다. 그리고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 붉은 화염을 체내에 녹여내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때, 하늘의 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주황색 빛이 돌연 튀어나왔다. 구전업겁의 두 번째 관문이 강림한 것이다.
한제는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주황색 화염에 뒤덮이고 말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거의 동시에 하늘이 노란 빛으로 뒤덮이더니 거센 파도와 같은 노란색 화염을 분출해냈다.
심지어 곧바로 녹색 화염이 줄기줄기 도깨비불처럼 일어나 하나의 장벽을 이루더니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주황색, 노란색, 녹색, 세 가지 화염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천벌과 달리 조금의 여유도 없이 각 관문이 들이닥치는 것이 바로 구전업겁의 무서운 점이었다. 그 힘에서 살아나가기란 요원해 보였다.
그 무렵, 대제성의 첫 번째 향 근처에서도 같은 반응이 일어났다. 붉은색으로 바뀐 연기에서 주황색, 노란색, 녹색 연기가 함께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관문도 통과하지 못했는데 세 개의 관문이 더 달려들다니⋯⋯. 한제 녀석이 대체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한단 말인가!’
2대 주작역시 구전업겁을 본 것은 처음이라 그 위력에 놀라고 있었다.
반면 사묵자는 은은한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그놈이 저 안에서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죽음을 면키는 어렵겠군. 녀석에게 얽힌 비밀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한편, 운락 역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른손에 생겨난 상처도 아물었다.
‘선조의 예언이 암시한 사람이 저자는 아닌 모양이군.’
“아버지⋯⋯.”
이천매는 입술을 깨문 채 남몽도존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아직 다소 멍했으나, 그보다는 고통과 슬픔의 빛이 더 짙었다.
남몽도존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위기에 빠진다면 내 저자를 살릴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허나 내 생각에 저자는 이번 난관을 능히 통과할 것 같구나.”
그 순간, 인의 환계에서는 한제가 여전히 붉은 기운에 둘러싸인 채 강렬한 저항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동시에 세 개의 난관이라. 좋다! 네놈들이 나를 어떻게 파멸시킬지 보자! 크하하하!”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전혀 굴복하려 하지 않았다. 길게 웃으며 고통을 참아낸 그는 두 팔을 휘두르며 다시 입을 벌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네 종류의 화염을 모두 내 영혼 속에 흡수하겠다. 네놈들이 날 완전히 불사르지 못한다면 내가 너희들을 삼켜버릴 것이다!”
당당한 외침에서는 삶을 살아가는 그의 마음가짐이 느껴졌다. 파란만장한 삶과 강력한 집착이 한데 합쳐져 운명에 대한 저항심으로 빚어졌다.
한제의 눈앞에서 기억 하나하나가 스쳐갔다. 부모님의 모습, 고향을 다시 밟았을 때의 씁쓸함, 가족들의 묘 앞에 무릎 꿇은 자신, 그리고… 부모님을 잃었던 날, 비 오던 밤.
기억들이 스쳐가는 사이 주황색 화염이 한제의 입으로 흡수되더니 붉은 화염과 뒤섞였다.
영혼이 슬픔으로 차 있을 때는 고향을 떠올리게 되기 마련이고 그 혼이 고향으로 돌아갈 경우에는 묘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 마련이다.
다음으로는 노란색 화염이 다가와 한제의 체내로 밀려들면서 타올랐다.
시간은 무정했고 떠나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가 됐다.
녹색 화염은 거세가 달려들면서 온 하늘을 녹색으로 물들였다. 도깨비불 같은 이 화염 역시 곧 한제의 체내로 밀려들었다.
한제의 눈에서 빛이 번득였다. 흐르던 기억이 우뚝 멈추었고 체내로 들어온 네 종류의 화염은 파멸적인 힘을 뿜어댔다. 이에 한제는 곧 산 채로 불살라질 듯 엄청난 속도로 제련됐다. 그 와중에 그는 손을 휘둘러 저물공간을 소환하더니 용의 피가 가득한 술동이를 꺼냈다.
“크하하하! 그래, 타올라라!”
용의 피는 한 모금만으로도 체내의 화염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한데 한제는 한 동이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콰쾅!
체내의 화염이 순식간에 증폭됐다. 용의 피로 인한 열기는 불바다가 되어 이미 체내로 흡수된 네 종류의 화염에 맹렬하게 맞서기 시작했다. 한제의 온몸을 채운 화염은 이미 한계치에 이르러 있었다.
서로 다른 화염이 대치하면서 한제의 혼백 깊숙한 곳에서는 한 줄기 회오리가 생겨났다. 점차 깨어나려 하는 천역주로 인한 회오리였다.
“난 이미 네 종류의 화염을 삼켰다. 한데 다섯 번째 화염은 강림하지 않는 것이냐! 그렇다면 내가 가주마!”
한제는 우렁차게 포효하더니 곧장 장벽과 같은 하늘로 돌진해 충돌했다.
콰쾅!
거대한 울림과 함께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네 번째 각성
사라진 하늘 너머로는 또 하나의 대지가 나타났다. 셀 수 없이 많은 혼백으로 둘러싸인 그 대지는 마치 저승 같았다.
그 무렵, 대제성의 수많은 수련자들은 첫 번째 향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한제로부터 1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춘 채였다.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당시 4대 주작은 불타는 첫 번째 향 아래서 다섯을 셀 때까지 버텨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한제는 이를 뛰어넘으려 하고 있었다.
묘음도존은 손에 든 복숭아도 내팽개친 채 기이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