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06
한제의 주작이 네 번째 각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집념을 태워 얻은 업의 화염 덕분이었다. 이제 한제는 더 많은 화염의 힘이 필요했다.
그때였다. 지의 환계 상공에서 암적색 빛이 번득이더니 이내 가느다란 핏방울이 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염룡의 정화가 깃들어 파멸적인 열기가 느껴지는 핏방울이었다.
핏방울들은 대지에 닿기도 전에 모여들더니 한제의 주위를 맴돌며 크지 않은 피 구슬을 하나 형성해냈다. 이 피 구슬은 활활 타오르다가 주작에게 흡수됐다.
그 순간, 한제의 몸에서 피어오른 화염이 증폭됐고 동시에 아홉 빛깔의 주작이 우렁차게 울었다.
“캬오오오!”
지의 환계를 채운 모든 화염도 눈 깜짝할 사이 전보다 한층 짙어졌다.
핏방울은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계속해서 화염을 일으켰고 핏방울에 적셔지던 화염 속의 주작이 날카롭게 울부짖는 동안 온몸의 깃털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아직 부족하다!”
한제가 한탄하듯 내뱉었다.
바로 그때, 미간에 주작 낙인이 새겨진 중년 사내의 두 눈이 기이하게 번득였고 그가 결인을 그린 두 손을 크게 휘두르자 낙인이 떠올랐다. 허상의 화염 같은 낙인이었다.
중년 사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저자에게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나의 제자 노운의 기운이⋯⋯. 당시 내가 그곳을 떠나면서 그 아이는 무척 힘들었을 테지.”
중년 사내는 5대 주작 노운의 스승인 4대 주작이었다.
4대 주작은 어두운 표정으로 손을 뻗어 전방의 화염을 움켜쥐더니 힘껏 내던졌다. 그러자 지의 환계에서는 한 줄기 허상의 화염이 이글거리며 일어났다.
열기는 없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허상의 화염은 순식간에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어 한제 앞에 이르더니 주작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4대 주작은 이미 주작의 네 번째 각성을 경험하고 허상의 화염의 경지에 이른 상태였다. 그런 그가 쏘아 보낸 허상의 화염이 체내로 녹아든 순간, 한제의 주작은 다시 한번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캬오오오!”
동시에 한제의 온몸을 뒤덮다시피 한 화염도 몇 배로 증폭됐다.
“크아아!”
한제는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그의 온몸에서 화염이 이글거렸고 아홉 종류의 화염으로 이루어진 폭풍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제와 주작을 뒤덮은 채 회전했다. 아홉 종류의 화염은 금방이라도 하나로 합쳐질 것만 같았다.
폭풍이 점점 빠르게 또 격렬하게 회전하는 동안 서서히 뒤섞이기 시작했고 색의 구분도 모호해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붉은색이 무너져 사라졌다. 뒤를 이어 주황색 화염 역시 눈 깜짝할 사이 흩어졌다.
두 가지 화염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화염의 폭풍은 전보다 더 강력해졌다. 지의 환계를 가득 채운 불바다 역시 격렬하게 타올랐다.
한편, 대제성에서는 염룡이 멍하니 2대 주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고름집은 이미 바짝 말라 있었다.
2대 주작은 눈을 부릅뜨고는 호통을 쳤다.
“젠장, 뭘 쳐다봐! 정화가 담긴 피가 없으면 그냥 피라도 낼 일이지! 덩치가 그렇게 큰 녀석이 피 좀 흘린 게 무슨 대수겠느냐!”
2대 주작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염룡의 입을 틀어막았고 그러자 포효를 내지르려던 녀석은 끄르륵 앓는 소리만 냈다.
동시에 2대 주작이 오른손으로 몸을 훑자 염룡의 몸에는 1천 척 길이의 상처가 생겨나더니 폭포처럼 피가 솟았다.
“여기서 멈춘다면 여태 해온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어버리지 않느냐! 저 녀석이 주작을 각성시키지 못한다면 나 역시 약속을 지킬 수 없다!”
염룡은 억울하다는 눈으로 2대 주작을 쳐다봤지만 노인이 눈을 홉뜨자 두 눈을 감고는 힘껏 피를 짜냈다.
‘주작이라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다 이 모양인가? 1대 주작도 어린 나를 염역(炎域)에서 꾀어내 끊임없이 피를 요구했지. 이런 나날은 대체 언제쯤 끝이 날까! 2대 주작이 자유를 약속했으니 믿어보는 수밖에…’
대량의 피가 두 번째 향 위로 쏟아져 내리자 지의 환계에 내리던 붉은 비는 더욱 거세어졌고 불바다도 한층 격렬하게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비록 염룡의 정화가 담긴 비는 아니었지만 양은 더 많았다.
덕분에 한제에게는 큰 도움이 됐다. 이미 주위를 맴돌던 화염의 폭풍에서는 노란색 화염과 녹색 화염이 사라진 상태였다.
대제성에서는 2대 주작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이를 악물더니 결인을 그린 왼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가 두 번째 향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체내에서 나타난 허상의 화염이 곧장 향을 향해 돌진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도와줄 것이다. 허나 네 번째 각성에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네 운에 달려 있다!’
그 무렵, 지의 환계 안에서는 붉은 비에 이어 2대 주작이 보낸 허상의 화염이 나타나 하늘을 뒤덮더니 한제의 주작에게 녹아들었다.
그 순간, 한제를 맴돌던 화염의 폭풍에서 파란색, 남색, 보라색의 화염이 동시에 무너져 내리며 사라졌다. 화염의 폭풍은 일곱 종류의 화염이 서로 뒤섞인 상태로 흑과 백의 화염만이 남아 저항하고 있었다.
폭풍에 휩싸인 한제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가 힘껏 휘두르며 외쳤다.
“화염은 이미 극한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더 이상 어떤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 힘으로 흑백의 화염을 녹여내겠다! 도술, 융합!”
한제의 낮은 외침에 따라 주위에서 회전하고 있던 화염의 폭풍이 바르르 진동했다. 그때 한제의 체내에서 기이한 힘이 발산됐고 그 순간 흑백의 화염 중 백색 화염이 그대로 흩어져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흑색 화염뿐이었다. 흑색 폭풍은 여전히 회전하고 있었지만 빛깔은 점점 옅어졌고 기세 또한 한층 약해져 있었다.
“무릎을 꿇어라!”
한제가 하늘을 향해 우렁차게 포효하자 흑색 화염이 붕괴했다.
드디어 아홉 가지 화염이 하나로 합쳐졌다. 그리고 그 순간, 폭풍에서 주작이 튀어나왔다. 은은한 허상의 화염으로 뒤덮인 주작은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캬오오오!”
네 번째 각성을 알리는 울음이었다.
“네 번째 각성이여, 내 실체의 화염을 허상의 화염으로 전환시켜라!”
한제는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아홉 빛깔의 연꽃이 순간 산산조각 나더니 일제히 주작을 향해 몰려들었다.
주작이 네 번째로 각성한 순간, 지의 환계의 화염은 우뚝 멈추었다가 일제히 응집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 사방에서 몰려든 화염과 부서진 연꽃 조각들이 모여들어 주작에게 흡수됐다. 주작의 몸에는 아홉 빛깔의 갑옷이 생겨났다.
마치 주작이 아니라 불멸의 화염의 영혼 같은 모습이었다. 몸의 안팎을 둘러싼 화염은 실체의 화염의 절정에 이르러 있어 허상의 화염의 경지를 눈앞에 둔 상태였다.
주작의 체내를 채운 화염은 콰르릉 소리와 함께 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과정이었지만 방해는 허락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생긴다면 변화는 즉각 사라져 버리고 앞으로 다시는 네 번째 각성의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 한제에게도 주작에게도 매우 중요한 순간인 셈이다.
한데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지의 환계 밖, 대제성 시합장의 수만 명 수련자들은 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래서 대제성을 에워싼 안개가 꾸물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이는 매우 드물었다.
콰르릉!
갑자기 대제성이 크게 진동했고 시합장을 둘러싼 수만 명이 수련자들은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떨림을 느꼈다.
긴 띠 형태의 대제성은 본래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느릿하게 회전했다. 허나 지금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나침반의 바늘처럼 돌기 시작했다.
수련자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때, 결인을 그리던 운락의 오른손이 펑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다. 그녀는 급기야 뒤로 밀려나더니 창백한 얼굴로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대제성의 급격한 변화로 태고 성신에 재난이 일어났어!’
그녀는 두려움에 잠식된 눈으로 몸을 바르르 떨었다.
계속해서 진행하던 예측이 막바지에 이른 순간, 알 수 없는 곳에서 달려든 힘에 의해 오른손이 터져버린 상황이었다. 허나 비록 예측은 중단됐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 허상의 화면이 하나 떠올랐다.
흐릿한 누군가의 뒷모습이었다. 그 주위로는 구슬 하나와 나침반의 바늘 같은 뭔가가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진 태고 성신은 짙은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시체가 끝도 없이 널려 있었다.
태고 성신 전역에 온통 붉은빛뿐이었다.
운락 대사는 묘음도존의 육신이 무너져 내리고 원신이 스러지는 것을 보았고 태고 성신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들이 끔찍한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또한 봉계의 진이 붕괴하는 것도 보았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자신도 보았다. 흐릿한 허상의 상대에게 일격을 당한 순간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육신은 재가 됐고 원신은 그대로 소멸했다. 화면 속의 그녀는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숨이 끊어졌고 그 순간 흐릿한 뒷모습의 사내가 그녀를 힐긋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은 운락의 악몽이 됐다.
“쿨럭!”
또 한 번 피를 토해낸 운락은 뒤로 수십 척을 밀려났다. 그녀의 얼굴은 원초적인 두려움에 물들어 있었다.
그때 묘음도존이 훌쩍 뛰어오르며 발아래의 구름을 흩어 없앴다. 구름은 부채가 되에 그의 손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신식으로 허공을 훑던 그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남몽도존의 두 눈도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는 손을 휘둘러 남색 빛으로 자신과 딸을 감싼 채 이미 혼란스러워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안개로 가득했다. 대제성을 두른, 자력(磁力)과 모든 것을 찢어놓을 듯한 힘을 발하던 안개는 어째서인지 대제성 안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2대 주작은 신중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심지어 지금껏 거대한 도마뱀 위에 가부좌를 튼 채 눈조차 뜨지 않았던 태황상인조차 놀란 얼굴이었다.
하물며 주위에 모여 있는 수만 명의 수련자들이 받은 충격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들은 소리를 질러대며 뿔뿔이 흩어졌다. 대제성은 빠르게 회전하면서 온 세상이 뒤흔들리는 듯한 느낌은 점점 또렷해졌다.
“쿠오오오!”
시합장 위의 거대한 거북이가 고개를 들더니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한층 강력해진 자력을 품은 안개가 하늘에서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시합장의 거북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어째서 이런 변고가…”
수련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제각기 도망쳤다. 2대 주작을 비롯한 몇몇 강력한 수련자만이 빠르게 달려들고 있는 자성의 회오리를 응시했다.
자성의 회오리는 거북이가 아니라 그 등껍질에 세워진 두 번째 향으로 향했고 순식간에 그 안으로 녹아들었다. 두 번째 향은 순식간에 자성의 안개를 모두 삼켜버렸다.
2대 주작은 자기도 모르게 찬 숨을 들이마셨다.
“이건⋯⋯.”
사묵자는 거의 넋이 나가 있었다. 그로서는 두 번째 향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창백한 얼굴의 운락 대사는 자력을 지닌 안개가 두 번째 향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더니 전보다 더 큰 두려움을 드러냈다.
‘설마…그 흐릿한 뒷모습이 그자였단 말인가!’
한편, 묘음도존은 이 광경에 심신이 진동했다.
‘천역주다! 이것은 분명 천역주의 힘이야!’
그 무렵, 두 번째 향 안에서는 한제가 실체의 화염을 허상의 화염으로 전환시키는 중이었다. 한데 그 순간, 내내 숨겨져 있던 천역주가 그의 체내로부터 한 줄기 힘을 폭발시켰다.
표정이 급변한 한제는 지의 환계가 바르르 진동하면서 빠르게 회전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때, 지의 환계의 하늘에서도 강력한 자력을 지닌 안개가 나타나더니 곧장 한제에게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