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08
한제의 왼쪽 눈에서는 아홉 빛깔의 화염이 허상으로 나타나 급속도로 회전했다. 그 모습이 퍽 기이했다.
또한 동시에 한 줄기 허상의 화염이 체내에서 폭발해 엄청난 기세로 사방을 향해 퍼져 나가면서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마구 나부꼈다.
첫 번째 향에 얹었던 손을 거둔 그는 몸을 돌려 주위의 수련자를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수련자는 자력의 안개가 몰려들어 변고가 일어났을 때 뿔뿔이 흩어져 도망친 탓에 남은 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한제를 응시하고 있던 운락 대사는 한제가 두 눈을 떴을 때 그의 왼쪽 눈동자를 똑똑히 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두려움에 몸을 바르르 떨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창백한 안색이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저, 저 눈은⋯⋯?’
운락 대사는 좀 전에 예언을 통해 떠올린 화면 속에서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 흐릿한 뒷모습을 보였던 자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의 외모를 제대로 보지는 못했으나, 왼쪽 눈에서 아홉 가지 빛깔이 회전하던 모습만큼은 잊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제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은 순간 얼른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곁에서는 사묵자가 죽일 듯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면서도 두려움에 침을 꼴깍 삼켰다.
한쪽에서는 묘음도존이 기이한 눈빛으로 한제를 보고 있었는데 입가에는 보일 듯 말 듯한 냉소가 떠올랐다.
2대 주작은 뿌듯한 듯 크게 웃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다섯 갈래의 본원도 그렇고 한제는 그를 여러 번 놀라게 했다.
“업의 윤회를 아홉 가지 화염으로 만들고 주작을 네 번째로 각성시켰다. 뿐만 아니라 허상의 화염의 경지에 이르렀군. 정말 잘했다! 하하하!”
태황상인의 눈빛은 어딘가 달랐다. 2대 주작과 수차례 맞붙은 그는 허상의 화염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한제가 허상의 화염의 경지에 이르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천매는 말없이 한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 딸을 보며 남몽도존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만약 내가 그때 월의 기억을 지워버리지 않았다면 이한제 저자를 곁에 두고 온 힘을 다해 수련을 도왔다면… 세 가지 신통술을 전수해주지 않았다면⋯⋯.’
남몽도존은 처음으로 그때의 일을 후회했다.
한제는 이들을 전부 한 번씩 훑어본 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의 눈에는 모든 이들의 몸에 흐르는 감정이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특히 운락에게서는 다른 이들보다 몇 배는 짙은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 감정들을 허상의 화염으로 만들 수 있을 터였다.
시선을 거둔 한제는 2대 주작에게 공손히 포권을 했다.
“후배가 살아 돌아왔습니다.”
2대 주작은 씨익 웃으며 여태 쥐고 있던 염룡을 휙 내던졌다.
“넌 이제 자유다.”
대량의 피를 흘려보낸 탓에 거의 죽음에 이르러 있었음에도 염룡은 주작의 말에 눈을 번득이더니 포효하며 재빨리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시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향, 천의 환계에서 누군가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 가 보거라!”
2대 주작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 번째 향은 꺼졌고 두 번째 향은 부러졌지만 세 번째 향은 절대 꺼지지도 부러지지도 않을 것이다. 이 향은 1대 주작, 타락의 땅의 대제께서 직접 지키고 계시며, 잠재력을 시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오래 버틸수록 잠재력이 크다는 뜻. 나는 열둘, 4대 주작은 열넷을 셀 때까지 버텼다. 너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노인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만약 네가 4대 주작의 기록을 갈아치운다면 저 바보 같은 염룡의 체내에 걸어둔 금제를 알려주마. 그 금제만 있으면 염룡이 타락의 땅 밖으로 나간다 해도 녀석이 어디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있을 게다. 녀석을 호신용으로 데리고 있으면 네가 이곳을 떠나도 난 안심할 수 있어.”
2대 주작은 모든 이야기를 신식으로 전했기 때문에 한제만이 들을 수 있었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염룡이 떠나간 하늘 끄트머리를 바라보았다.
염룡은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대제성을 빠져나간 후였다. 심지어 기쁨에 겨운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는데 만약 방금 2대 주작의 말을 들었더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시선을 거둔 한제는 말없이 마지막 향 아래에 섰다. 그리고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 이내 오른손을 향에 얹었다.
‘태고 성신에는 주작족이 있다. 한데 어째서 화작족까지 있는 거지? 또한 주작족이 있다면 청룡과 현무, 백호의 부족도 있을까? 원고 선존과 봉계의 지존이 말한 원고 선황은 같은 사람일까? 그게 아니라면 둘은 어떤 관계지? 주작족의 첫 번째 조상이자 원고 선존 휘하 4대 전장 중 한 명인 1대 주작이라면 이 질문들의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제는 말없이 두 눈을 감고 천의 환계로 들어섰다.
★ ★ ★
천의 환계는 이전의 두 환계와는 전혀 달랐다. 이곳은 온통 하얀 구름과 거대한 조각상 하나가 전부였다. 세상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의 조각상이었다.
조각상은 한 노인의 모습이었는데 코는 마치 주작의 부리 같았고 등에는 커다란 날개까지 달려있었다. 두 눈을 감고 있었는데 미간에서는 아홉 빛깔의 화염이 활활 타올랐다.
한제는 번득이는 빛과 함께 활짝 펼쳐진 조각상의 오른손 위에서 나타났다.
★ ★ ★
태고 성신의 고요한 우주 어딘가에서 줄기줄기 파문이 파도처럼 퍼져 나갔다. 그리고 한 줄기 어스름한 빛이 허공에서 번득이며 파문으로 다가왔다. 이 빛이 지나간 자리에 있던 황량한 수련성은 생령이나 영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순식간에 재로 변해 파문을 타고 흩어졌다.
한데 그때, 황량한 수련성이 무너져 내린 곳에서 길이가 1백 척에 달하는 균열이 하나 나타났다. 그 안에서는 짙은 죽음의 기운이 발산되더니 바깥으로 확산되었고 균열은 점점 크게 벌였다.
균열 안으로는 또 다른 세상이 흐릿하게 들여다보였는데 그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돌조각이 떠다녔다. 그리고 각 돌조각에는 거대한 머리가 하나씩 놓여있었다. 더러는 고신의 것이었고 더러는 고마의 것이었으며, 더러는 고요의 것이기도 했다.
균열은 1천 척 길이로 벌어지고 나서야 확장을 멈추더니 먹이가 오길 기다리는 입처럼 제자리에 떠 있었다.
태고 성신의 수많은 수련자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 폭풍의 씨앗이 이렇게 뿌려졌다.
오래된 무덤이 열린 것이다.
★ ★ ★
천의 환계 안, 한제는 형형한 눈으로 전방의 거대한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조각상은 무척 기괴했다. 그 외모는 수련자라기보다는 주작과 비슷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조각상을 향해 포권을 했다.
“6대 주작이 조상님을 뵙습니다.”
그 순간, 조각상의 미간에서 아홉 빛깔의 화염이 격렬하게 타오르며 하늘로 솟구쳐 사방을 훤히 비췄다. 조각상의 감긴 두 눈에서도 빛이 번득였다.
“많지도 않은 혈맥으로 용케 주작을 네 번이나 각성시켰구나. 대단하다!”
뒤이어 웅웅 하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는⋯⋯.”
한제가 막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데 웅웅거리는 목소리가 말을 끊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시험을 진행하면서 물어라. 난 당시 입은 부상에서 아직 회복되지 않은 탓에 오랫동안 깨어 있을 수가 없다. 시험 도중에 다섯을 세는 동안 한 번씩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어떤 감정도 어리지 않은 목소리가 울린 순간, 한제가 서 있던 조각상의 손바닥 위에서 화염이 솟아올랐다.
허상과 실체를 급속도로 오가는 화염은 아홉 번의 전환을 겪을 때마다 위력이 증폭되었다.
“이것은 허상의 화염이 아니라 내 심신의 화염이다. 과거에는 주작삼라염(朱雀森羅炎)이라 불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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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 성신. 오래된 무덤의 황량한 기운은 1천 척 길이의 균열 밖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 기운은 태고 성신에 녹아들었다가 우주를 휘감으면서 끊임없이 확산돼 눈으로는 보기 어려운 먼지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점점 많은 먼지가 모여들더니 폭풍이 생겨났다.
폭풍은 균열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사방을 거칠게 휩쓸었고 점점 커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 온 우주를 진동시키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 폭풍에서는 한 줄기 끔찍한 힘이 튀어나가 주위의 모든 것을 소멸시켰다. 사방의 황량한 수련성들도 그 힘에 빨려 들어가 산산조각이 나더니 폭풍의 일부가 되었다.
태고 성신 북쪽에는 열아홉 개의 수련성이 일(一)자로 늘어서 있었는데 정중앙의 열 번째 수련성은 전체가 바다로 이루어진 수성(水星)이었다. 그리고 그 바닷속 깊은 곳, 한 수련자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이 노인의 백발은 물속에서 이리저리 나부꼈고 한 번 호흡할 때마다 바다에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파도가 사방으로 몰아쳤다.
오래된 무덤의 균열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폭풍이 형성된 순간, 노인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눈은 바다처럼 아주 깊고 넓었다.
“뭔가 이상하군.”
노인은 눈을 번득이며 잠시 고민하더니 약간의 망설였다.
“천역주를 손에 넣겠답시고 대제성에서 난리를 피울 수는 없지. 조금 더 기다려야겠어. 분신은 어서 돌아와 저 폭풍을 살펴라.”
노인은 태고 5존 중 묘음도존의 본체였다. 대제성에 있는 잘생긴 소년은 그의 세 분신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한편 타락의 땅 밖에서는 타원형의 거대한 흉수가 수많은 촉수를 꿈틀거리며 느릿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녀석의 등에 앉아 있던 음험한 노인이 돌연 두 눈을 번쩍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기이한 눈으로 먼 곳을 내다보았다.
“이건⋯⋯”
노인이 혼잣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를 태운 거대한 망월이 갑자기 우뚝 멈춰 서더니 몸을 바르르 떨었다. 두 눈이 두려움과 흥분으로 물든 녀석은 동시에 날카로운 고함을 내지르기도 했다.
음험한 얼굴의 노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망월의 방향을 틀어 오래된 묘지가 있는 곳으로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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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성. 수만 명의 수련자들이 세 번째 향에 집중하고 있던 이때, 묘음도존의 분신이 급변한 얼굴로 2대 주작을 비롯한 이들에게 포권을 하며 웃었다.
“도우들, 난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겠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