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10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 그냥 저 망할 녀석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는데…’
그 무렵, 세 번째 향은 격렬하게 타들어가 남은 길이는 수십 척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제는 여전히 버텨내고 있었다.
열다섯!
천의 환계에서는 한제가 서 있던 조각상의 손바닥이 돌연 바르르 진동하더니 주먹을 쥐기 시작했다. 이에 손바닥의 중앙에 있던 한제는 세 번째 질문을 할 기회도 없이 다섯 손가락을 피해야만 할 상황이 됐다.
허나 기이한 힘이 강림해 한제는 그곳을 벗어날 수도 없었다. 거대한 다섯 손가락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한제는 이를 악물고는 두 손을 뻗었다.
펑! 펑!
그의 온몸에서는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거대한 다섯 손가락이 한제의 두 팔을 강하게 압박했다.
“크으으…”
온몸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압박감에 한제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때, 그의 하반신이 콰르릉 하고 와해됐다.
열여섯, 열일곱… 열여덜!
한제의 몸은 계속해서 무너져 내렸다. 이제 그의 시야에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손가락이 시야를 온통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아홉!
손바닥이 완전히 주먹을 쥐었다.
한데 그 순간…
“캬오오오!”
주작의 울음소리가 주먹에서 울려 퍼지더니 한 줄기 허상의 화염이 손가락 사이로 번득였다. 이때 한제의 혼백은 주작으로 변해 있었다.
1대 주작의 조각상은 기이하게 번득이는 눈으로 자신의 주먹을 보았다. 예리한 두 눈은 주먹 안에서 힘겹게 몸부림치고 있는 한제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했다.
조각상의 미간에서 아홉 빛깔의 화염이 번득이더니 허상의 화염이 나타나 주먹으로 녹아들었다. 조각상의 주먹은 곧장 화염으로 뒤덮였다.
“네 목숨은 내 손에 달려 있다. 그런데도 너는 여전히 사실을 고하려 하지 않는구나. 난 용갑족 수련성에서 네 비밀의 실마리를 파악했다. 너를 살려둔 것은 네 정체를 알기 위해서였고 소제라는 신분을 준 것은 너를 이곳에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이제 사실대로 말해라. 넌 대체 누구냐! 어째서 주작족인 척을 했느냐!”
그 말이 터져 나온 순간, 1대 주작의 두 눈에서는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화염이 드러났다. 그는 주먹 속에서 몸부림치는 한제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한편, 한제는 1대 주작의 말에 흠칫 놀라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끝까지 그렇게 고집을 피우겠다면 죽여주마!”
1대 주작의 주먹을 뒤덮은 허상의 화염이 한제의 영혼으로 이루어진 주작의 체내로 파고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1대 주작은 어떤 기억을 볼 수 있었다. 기억 속에서는 5대 주작이 한제의 미간에 주작의 낙인을 남겨주었고 한제는 주작을 각성시켰다.
그 기억들을 몇 번이고 거듭해서 본 뒤에야 1대 주작은 숨을 깊게 내쉬었다. 뒤이어 그의 눈빛에서 싸늘함이 사라지고 대신 자애로움이 나타났다. 꽉 쥐어져 있던 주먹도 풀어졌다.
“더 버틸 수 있겠느냐?”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냉랭함이 아니라 대견함이 어려 있었다.
할 수 있습니다
주작으로 변한 한제는 말없이 1대 주작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난 한때 사람을 잘못 보고 주작족 일원으로 들였다가 끝이 좋지 않았다. 천의 환계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신세가 됐지. 그러니 갑작스레 나타난 네게도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해주길 바란다.”
한제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3대 주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수혼술을 발휘했음에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줄곧 관찰했는데도 의심스러운 점은 없었지. 배신을 당한 후에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를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대 주작의 목소리에는 짙은 한이 어려 있었다.
“향불이 없는 상황에서도 넌 체내에 다섯 갈래의 본원을 가지고 있다. 아직 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 해도 놀라운 일이지. 허나 넌 잘못된 길을 따르고 있다!”
1대 주작은 근엄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넌 천둥번개의 본원을 완성한 뒤 공의 문을 소환했지만 열지는 못했다. 아마 힘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했겠지. 허나 그것은 반만 맞다. 넌 화염의 본원을 완성해 공의 문을 열겠다는 생각뿐이지 심지어 다섯 번의 천쇠는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천쇠를 통과하지 않고 그저 쇄열기 절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건 틀려도 아주 심하게 틀린 거다!”
한제는 멍한 얼굴로 1대 주작을 올려다보았다.
1대 주작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모든 인간의 손에 손가락이 왜 다섯 개가 달려 있는지 알고 있느냐? 나 때는 다섯 번의 천쇠를 파공오지(破空五指)라고 불렀다. 사실 수련이란 하나의 손에 불과하다. 첫 번째 단계가 손바닥이라면 두 번째 단계는 장문(掌紋)이지. 장문은 곧 규칙이고 각자의 장문은 모두 다르듯 각자의 규칙도 모두 다르니까.”
한제는 말없이 이 새로운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리고 파공오지, 즉 다섯 번째 천쇠는 손가락이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면 반드시 다섯 손가락이 갖춰져야 하지. 네가 이 말을 이해한다면 다행이지만 이해하지 못한다면 절대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한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심신에서 울려 퍼지는 1대 주작의 목소리에 그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파공오지는 네가 공사경으로 돌파하기 위해 필요한 힘을 모으는 과정이다. 오직 그 힘을 절정으로 끌어올려야만 본원의 힘을 이용해 공의 문을 열 수 있어! 네 수준은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육체는 고신의 것이지. 허어, 고신이라니! 난 고신이 우리 부족 사람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1대 주작은 기이한 눈빛으로 미간 앞에 묶여 있는 붉은 검을 바라보았다.
“난 고신의 수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허나 내가 활동했던 때 고신의 강력함은 온 세상을 뒤흔들기에 충분했지. 당시 도고 엽막의 경우, 선존처럼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선존들을 두렵게 만들 정도였다.”
“도고라면…?”
한제는 멍한 얼굴로 1대 주작을 바라보았다.
“그때 한 약조가 있어 더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니 더는 묻지 마라. 만약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게다.”
1대 주작은 약간 어두워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만약 네가 고신의 몸으로만 수련을 해오고 그 힘을 도처럼 이용해 공의 문을 열었다면 일은 훨씬 간단했을 것이다. 허나 네 체내에는 무려 다섯 개의 본원이 있지. 그 때문에 오히려 세 번째 단계로 올라가기는 더 어려울 게다. 본원이 많을수록 어렵지. 본원을 포기하고 고신으로서만 수련하거나, 고신의 힘을 버리고 하나의 본원만을 남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한제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려면 본원을 완성해야 한다. 향불의 도움을 받고 도령을 삼킨다면 그 난관을 넘을 수 있지만 네게는 향불의 기운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구나. 네가 걸어온 길은,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길은 매우 어려운 길이다. 2대 주작이나 4대 주작과는 전혀 달라. 그 부분은 내가 도울 수 없다. 허나 네게 선택지를 하나 주마. 잘 생각해보도록 해라.”
한제는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선택지입니까?”
“고신의 육신을 버려라. 완성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직 흠이 있는 천둥번개의 본원도 포기해라. 화염의 본원을 제외한 나머지 본원들을 모두! 그리고 이곳 천의 환계에 남아라. 그러면 1백 년 안에 세 번째 단계에 이르도록 도와주겠다! 그럼 넌 주작의 화염이라는 하나의 본원만 갖게 될 터! 그렇게 세 번째 단계에 이르면 삼라염도 전수해주마! 그리고 언젠가 내가 이곳의 봉인을 풀면⋯⋯ 다른 주작들과 함께 이곳을 떠나는 거다!”
“이곳을 떠난다고요?”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그 말에 숨겨진 의미를 어렴풋이 읽어낸 것이다.
1대 주작은 기억을 더듬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왔던 세상으로 돌아가는 거지.”
한제는 심신이 바르르 떨려오는 것을 느끼며 무언가를 물으려 했다.
“묻지 마라. 말할 수 없다. 말하면 죽는다! 그들은 싸우고 싶어 하고 빼앗고 싶어 하지. 허나 난 피곤하다. 더는 그런 일에 말리고 싶지 않구나.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야.”
1대 주작의 목소리에서 피로한 기색이 느껴졌다.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주마.”
한제는 심장이 쿵쾅대는 것을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1대 주작의 제안은 엄청난 유혹이었다. 심지어 당시 남몽도존이 제안했던 것보다도.
“그렇다면 혹시 고신의 육신과 나머지 본원을 버리고 세 번째 단계에 이른 뒤 다시 나머지 본원들을 수련해도 됩니까?”
한제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당연하다.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도 본원을 수련하니까. 본원이 많을수록 깨달음은 깊어지고 수준은 높아지지. 다만 새롭게 수련한 본원은 절대 완성되지 못한다. 세 번째 단계에서 그냥 멈춰버리고 말 거야. 허나 이 길을 따르면 위험은 없어. 집념을 포기할 필요도 없지. 나 역시 업의 화염을 일으킨 적이 있기에 네게 떼어낼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 사람에 대한 너의 집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1대 주작은 마치 당시의 자신이라도 되는 듯 한제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제의 호흡이 더욱 빨라졌다. 그는 이미 1대 주작의 제안에 거의 마음이 기울어진 상태였다. 지난 2천 년간의 힘든 시간과 달리 이곳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매력적이었다. 누군가가 머릿속에 대고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 남아. 더는 비린내가 어린 피바람을 일으킬 필요도 목숨을 위협하는 위기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도 없어! 1백 년 만에 세 번째 단계에 이를 수 있다잖아! 본원들이나 고신의 육신은 세 번째 단계에 이르면 다시 얻을 수 있어. 본원을 끝끝내 완성할 수 없다 해도 수련자로서 세 번째 단계에 이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어!”
한제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호흡은 더욱 가빠졌다. 천년처럼 느껴진 짧은 순간, 고민하던 그는 고개를 번쩍 들어 1대 주작을 바라보며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봉인을 풀어 이곳에서 떠나려 하실 때, 오직 저희 셋만 데려가실 수 있는 겁니까? 좀 더 많은 이들을 데려갈 수는 없겠습니까? 제게는 중요한 벗들이 있습니다.”
1대 주작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셋까지가 나의 한계다. 허나… 언젠가 정말로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한 명은 더 데려갈 수 있게 해주겠다. 그 이상은 안 돼! 그 이상 인원이 많아지면 돌아갈 수 없다.”
“한 명⋯⋯.”
한제의 눈앞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모완이었다. 하지만 뒤를 이어 사도환, 청수, 주은혜, 이천매, 그리고 그가 수련을 해온 지난 2천 년의 삶을 통해 친분이 쌓인 사람들도 함께 떠올랐다.
“자 이제 답해봐라. 어떻게 할 것이냐?”
1대 주작의 목소리가 심신을 파고들었다.
한제의 마음속에서 거대한 파도가 몰아쳤고 그는 망설였다.
한참 뒤 한제는 저물공간에서 관을 하나 소환했다. 관에는 이모완이 평온한 모습으로 잠든 듯 누워 있었다.
“이 여인을 되살리실 수 있습니까?”
한제의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선택지 앞에서의 고민은 그에게 한바탕의 전투와 다르지 않았다.
긴 한숨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1대 주작의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그 여인이 바로 네 집념의 대상이구나. 내가 본 적 없는 물건인 것을 보니 그 관은 후대의 누군가가 제련해 만든 것이겠지만 그게 무슨 작용을 하는지는 알 것 같다. 한데 이 여인은 수명이 끝에 다다랐을 뿐만 아니라 원영에 중상까지 입었구나. 이미 죽었다. 넌 이 관에 그녀의 원영을 넣어 육신을 새로 응집시킨 모양이지만 혼은 이미 무너져 내린 상태야.”
한제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관 안의 모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말 기이한 관이구나. 무너져 내린 혼을 흩어지지 않도록 붙들어두고 있어. 정확한 통제 방법만 알아낸다면 흩어진 혼들을 하나하나 되찾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허나 그렇게 모든 혼을 찾아낸다 해도 되살려내는 일은… 내게는 불가하다.”
한제는 절망에 휩싸였다. 그의 눈은 점점 어두워졌고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허나 내가 하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도 못 하리라는 법은 없지. 내 고향에는 이 여인의 혼을 융합해 부활시킬 수 있는 사람이 세 명 있다! 단지 그들은 수준이 매우 높은 이들이라 나로서는 그들에게 감히 어떤 요구를 할 수가 없다. 허나 걱정마라. 내 최선을 다해보마.”
한제는 말없이 관을 저물공간으로 들여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