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12
그 무렵, 한제를 응시하던 사묵자의 눈빛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저 한 줄기 냉기가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지금의 그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강력한 위엄이 그의 체내에서 피어올라 사방으로 퍼지자 근처의 공간이 왜곡되기까지 했다.
이렇게 왜곡된 공간에서는 수많은 허상의 영혼이 어렴풋이 드러나더니 소리 없이 울면서 대제성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어쩌다 한번 내 분신을 이겼다고 감히 내게 도전을 해? 그리도 죽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마!”
사묵자는 덤덤한 표정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유성처럼 돌진했다.
모든 수련자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심지어는 숨조차도 쉴 수 없었다.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들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이 흥분하는 것도 당연했다.
“파천구멸(破天九滅)!”
사묵자는 덤덤한 목소리로 외치며 삽시간에 한제로부터 1천 척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르렀다. 그러더니 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한제를 응시하며 손을 크게 휘둘렀다.
“일멸, 천(天)!”
콰르릉!
한 번의 손짓에 하늘이 진동하면서 수많은 균열이 생겨났다. 강제로 찢기고 뜯어지면서 생겨난 상처 같은 균열들이 곧장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균열은 점점 더 많아졌다.
“이멸, 지(地)!”
이번에는 대지에서 콰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방의 수련자들이 분분히 몸을 물리는 사이 거대한 거북이 주위의 대지가 꿈틀거리더니 수많은 산봉우리가 솟아올랐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구친 산봉우리는 땅에서 떨어져 나와 일제히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삼멸, 생(生)!”
사묵자가 다시 한 번 오른손을 휘두르자 이번에는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한제에게로 향했다. 한제의 호풍과 매우 비슷한 이 서늘한 바람은 모든 생기의 불을 꺼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향불의 숭배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묵자의 모든 공격에는 반드시 한제를 죽이고 말겠다는 의지가 어려 있었다.
사묵자의 세 가지 공격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순간, 한제는 가볍게 손을 들어 허상의 화염으로 이루어진 폭풍을 일으켰다.
“아홉 빛깔 허상의 화염이여, 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염령(炎靈)으로 임하라!”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허상의 화염으로 이루어진 폭풍을 힘차게 떠밀었다.
콰르릉!
폭풍은 우렁찬 소리를 냈는데 심지어 용의 포효 같은 소리도 섞여 있었다. 뒤이어 그 안에서 거대한 용의 머리가 드러났다.
전체적으로 붉은빛인 이 용은 낮게 포효하면서 튀어나와 하늘에 나타난 균열들을 향해 돌진했다.
짙은 핏빛 화염이 곧 균열들을 가득 채웠고 이에 하늘은 무시무시하게 빛났다.
그 순간, 폭풍 속에서 또 하나의 용이 나타났다. 이 용은 주황색으로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튀어나와 대지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산봉우리를 향해 돌진했다.
길이가 수만 척에 달하는 이 용의 기세에 휩쓸린 산봉우리는 곧장 타올랐다.
뒤이어 화염의 폭풍에서는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아홉 번째인 흑룡까지 모두 아홉 마리의 용이 나타났다.
아홉 마리의 염룡이 모두 튀어나오자 폭풍은 흩어져 사라졌다.
아홉 마리의 용에 둘러싸인 한제의 왼쪽 눈동자가 아홉 빛깔 화염을 드러냈고 그의 체내로부터 강력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멀리 물러나 지켜보던 수련자들은 이 광경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한제의 모습은 그들의 심신 깊이 새겨져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됐다.
“사멸, 망(亡)! 오멸, 시(時)! 육멸, 허(虛)! 칠멸, 황(荒)! 팔멸, 윤회! 구멸, 파천!”
사묵자의 표정에는 여전히 살기도 분노도 담기지 않았다. 심신도 매우 덤덤했다. 허상의 화염을 가진 수련자와 싸울 때는 침착함과 감정 제어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사묵자는 주문을 외울 때마다 앞으로 한 걸음씩 나서며 곧장 한제에게로 향했다. 동시에 그의 주위로는 수많은 허상이 나타났다.
가장 먼저 나타난 허상은 무덤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온 세상을 뒤덮은 무덤에서는 짙은 죽음의 기운이 풍겼다.
뒤를 이어 시간의 힘이 사묵자의 두 발에 나타나더니 반짝이는 빛이 되었다. 사묵자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시간이 빠르게 변화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흐릿한 허상이 나타나 그와 수많은 무덤을 뒤덮었고 덕분에 그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됐다.
흐릿한 허상에 몸을 숨긴 채 눈 깜짝할 사이 한제로부터 1백 척 거리에 이른 사묵자는 마지막 구멸의 주문을 외침과 동시에 앞으로 나섰다. 이제 한제로부터 30척 정도 떨어진 곳에 다다른 그는 오른손을 힘껏 후려쳤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묵자의 손이 휘둘린 순간, 그를 뒤덮었던 모든 허상들이 무너져 사라지면서 산산조각이 나 사묵자의 오른손으로 흡수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허나 한제는 덤덤하게 두 손가락만 펼친 오른손으로 사묵자의 손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몸을 에워싸고 있던 아홉 마리의 염룡이 낮게 포효하며 그의 손가락을 타고 사묵자에게 돌진했다.
사묵자의 손에는 하늘을 깨부술 듯한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의 힘이 실려 있었다.
그런가 하면 한제의 두 손가락은 아홉 마리의 염룡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마치 한제의 두 손가락이 용이 된 것만 같았다. 아홉 마리의 염룡은 포효하며 불빛을 발산했다.
한제의 두 손가락과 사묵자의 손바닥이 충돌했다. 하늘을 깨부술 듯한 힘과 허상의 화염의 정면 승부이자 규칙의 힘끼리의 대항이었다.
콰콰콰쾅!
격렬한 소리가 대제성 전역에 울려 퍼졌다.
“크억!”
“쿨럭!”
사방의 수련자들 상당수는 피를 왈칵 토해냈다. 이들은 두 귀가 웅웅 울리는 것을 느끼며 상처 입은 심신을 안고 다급히 물러났다.
한편, 뒤로 1천 척 정도 물러난 한제의 얼굴은 기이하게 붉어져 있었고 고개를 번쩍 쳐든 그의 눈에서는 서늘한 빛이 번득였다.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는 과연 강력하구나!’
그러나 사묵자의 손바닥도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는 화염의 힘이 자신을 향해 튕겨온 것을 똑똑히 느꼈다.
하늘을 깨부술 수 있는 그의 힘으로도 이 화염을 꺼뜨릴 수 없었다.
이에 덤덤하고 침착했던 그의 얼굴에는 순식간에 놀란 기색이 담겼다.
이것은 찰나에 가까운 순간이었다. 허나 한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번득이며 들어 올린 손으로 사묵자를 가리켰다.
“허상의 화염이여, 일어나라!”
허상의 화염은 오행에 속하지 않았다. 실체의 화염이 절정에 이르면 세상 모든 것을 불태울 수 있는 허상의 화염으로 전환될 기회를 갖게 될 뿐이었다.
허상의 화염에게는 모든 감정이 연료가 된다. 그게 허상의 화염을 가진 수련자와 싸울 때 감정의 파동을 일으켜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인 사묵자는 감정 통제력이 상당했다.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자 한다면 그의 감정은 곧장 잔잔하고 고요한 물처럼 가라앉았다.
허나 지금, 사묵자는 찰나의 순간 작은 충격을 드러냈다. 절대 일으켜서는 안 되는 감정의 파동이 나타난 것이다.
허나 사묵자에게는 후회할 틈도 없었다. 충격을 드러낸 순간 그의 온몸에서 허상의 화염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체내에서부터 타오른 허상의 화염은 눈 깜짝할 사이 온몸을 뒤덮었고 이에 그의 표정은 삽시간에 급변하고 말았다.
표정이 급변했다 함은 감정에 파동이 일어났다는 의미. 당연히 허상의 화염은 더욱 격렬해졌다.
2대 주작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난 저놈의 뺨을 때리면서 미리 허상의 화염의 씨앗을 심어두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셋째 소재가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와 맞서기는 조금 더 힘들었겠지. 이한제, 네가 과연 이 기회를 살릴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
물론 수많은 사투를 겪어온 한제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는 없었다.
사묵자의 몸에서 허상의 화염이 피어오른 순간, 한제의 두 눈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한제는 방금 입은 내상을 힘껏 억누르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가 앞을 가리켰다.
그 손짓에 왼쪽 눈동자에서 맴돌던 아홉 빛깔 화염이 허상의 화염으로 화해 튀어나오더니 곧장 사묵자에게 달려들었다.
“아직 부족하다. 세상 모든 허상의 화염이여, 모여라!”
한제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소매를 휘둘렀다. 그로 인해 일어난 뜨거운 광풍이 사방 수만 명의 수련자들을 휩쓸었다.
그 순간 수련자들의 체내에서는 감정의 급격한 파동으로 인해 허상의 화염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허상의 화염들은 그들을 태우는 대신 한 마리 염룡으로 변했다.
36793마리의 염룡이 포효하며 튀어나와 하늘을 뒤덮은 채 포효했다. 그야말로 두려운 광경이었다.
이제는 한제 혼자가 아니라 한데 응집된 수련자 수만 명의 감정이 사묵자와 맞서는 것만 같았다.
수련계 전역을 통틀어 화염의 힘으로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자는 한제뿐이었다. 4대 주작도 2대 주작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의 허상의 화염은 분명 강력했지만 발산할 수만 있을 뿐 흡수하거나 응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면 한제의 허상의 화염은 천역주를 통해 자력을 갖게 되어 다른 이들의 것까지 빨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제의 왼쪽 눈에서 튀어나온 허상의 화염으로 형성된 아홉 마리의 염룡을 중심으로 수만 마리의 염룡이 곧장 사묵자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도중에 하늘과 땅을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폭풍이 되더니 사묵자의 체내에서 허상의 화염이 피어오른 순간 그의 체내로 파고들었다.
“헉!”
사묵자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는 사이 두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드러났지만 그는 얼른 감정을 통제했다.
‘조금만 더!’
한제는 이를 악물고 뛰쳐나가며 외쳤다.
“사묵자! 파천종을 기억하느냐?”
뒤로 물러나던 사묵자의 몸이 순간적으로 바르르 진동했고 두 눈이 흔들렸다. 허나 그는 애써 모든 감정을 억눌렀다.
“사묵자! 네 둘째 사제과 셋째 사제를 그리고 네게 동굴 밖으로 쫓겨난 열여섯째 사제를 기억하느냔 말이다!”
이제 사묵자는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채 경련했다.
“사묵자! 이것을 알아보겠느냐?”
한제는 오른손을 휘둘러 저물공간에서 옥패 하나를 꺼냈다. 파천종 사마묵의 신분 옥패였다.
사묵자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더욱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럼 이건 알아보겠나?”
한제는 손을 휘둘러 또 무언가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짐승 뼈로 이는 사마묵이 파천종에서 쫓겨난 원인이 된 것이기도 했다.
“닥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