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13
사묵자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았다.
“너를 사묵자라고 불러주랴, 아니면 사마묵이라고 불러주랴?”
한제의 마지막 말이 천둥처럼 울려 퍼진 순간, 사묵자의 온몸에서 타오른 허상의 화염은 더욱 격렬해졌다. 그러자 사묵자의 체내에서는 펑, 펑 소리가 났다.
“크으으…”
사묵자는 이를 악물고는 뒤로 물러나던 것을 멈추었다. 그의 체내에서는 일곱 가지 빛이 번득이며 튀어나왔는데 그중 보라색이 나머지 여섯 개의 빛을 거의 억누르고 있었다.
“난 사마묵이 아니다! 사묵자다!”
사묵자는 체내에서 일어난 허상의 화염에 불타오르며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그러나 그 피는 곧장 화염에 불타 재가 되어버렸다.
그는 살기 가득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면서 허공을 움켜쥐었다.
“네놈을 반드시 죽여주마!”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거대한 균열이 나타났다. 그러자마자 주위의 모든 수련자는 그 너머의 또 다른 세계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수련성에 떠 있었는데 각 수련성에는 수많은 사람이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의 숭배에 따라 향불의 힘이 흘러넘쳤다.
“내 향불의 세계다. 제자들의 혼이여, 나와라!”
사묵자가 소매를 휘두르자 균열 안의 수많은 수련성에 있던 사람들이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 소리는 하나로 합쳐지면서 주문이 되어 균열 밖으로 흘러나왔다.
동시에 사묵자의 주위로 허상의 혼백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씩 모여들다가 거대한 덩어리를 이룬 혼백은 눈 깜짝할 사이 온 세상을 뒤덮어버렸다.
끝도 없이 퍼져 있는 혼백들은 두려울 정도였으나 심지어 아직 모든 혼백이 모습을 드러낸 상태도 아니었다.
혼백들은 광기 어린 눈빛을 드러내는 한편 대량의 향불을 발산했다.
“오직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만이 발휘할 수 있는 향불 신통술이야! 향불 신통술은 모든 생령을 소멸시키지!”
수많은 수련자가 기겁하며 물러났다. 감히 다가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2대 주작은 번득이는 눈으로 그런 사묵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자들이여, 나를 숭배하라!”
사묵자의 낮은 외침에 온 세상을 가둔 채운 듯한 향불의 혼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절을 했다.
콰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한 줄기 향불의 바람이 일어났다. 보라색을 띤 바람은 곧장 사묵자를 향해 달려들었고 그 엄청난 기세에 사묵자의 몸을 불태우던 허상의 화염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많은 힘을 소모한 향불의 혼들도 흐릿해졌다.
이 놀라운 광경에 한제의 표정도 급변했다.
‘이것이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의 힘이구나! 허상의 화염조차 향불에 의해 꺼져버렸어. 나는 정말 저자에게 이길 수 없는 것인가?’
하지만 그 생각이 들자마자 한제의 눈빛에는 저항심이 차올랐다.
‘아니!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무슨 대수란 말인가!’
그때 사묵자가 몸을 홱 돌리더니 서늘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낮게 외쳤다.
“내게는 향불의 힘을 생성할 수 있는 수많은 제자가 있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자가 아니라면 향불의 힘을 견뎌낼 수는 없지. 그리도 죽고 싶다면 죽여주마! 향불의 제자들이여, 숭배하라! 나의 힘을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을지 지켜볼 것이다!”
사묵자가 오른손으로 한제를 가리켰다. 그러자 수많은 혼들이 일제히 몸을 돌려 한제를 바라보았다. 하늘을 뒤덮은 듯 빽빽한 혼들의 눈빛에 한제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향불의 숭배!”
사묵자의 외침에 이 수많은 향불의 혼들은 모두 한제를 향해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순간 보라색 광풍은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한제는 이해할 수 없는 규칙이 사방에서 몰려드는 것을 느꼈고 동시에 온몸을 휘감는 끔찍한 고통이 닥쳐왔다. 무시무시한 힘이 그의 온몸을 갈가리 찢어놓으려 드는 듯했다.
“크윽!”
한제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다. 허나 도망칠 곳은 없었다. 세상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막강한 힘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견뎌내는지 두고 보마! 감히 내게 도전하다니, 분수도 모르는 놈 같으니!”
싸늘하게 내뱉는 사묵자의 두 눈이 보랏빛으로 번득였다.
하지만 그 보라색 빛에 온몸이 뒤덮인 상태에서도 그의 미간에는 손톱만 한 불빛이 미약하게 타올랐다. 그리고 한제는 그 미약한 불빛에서 사묵자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이 작은 사묵자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살려줘⋯⋯.”
보라색 광풍이 달려들던 순간, 한제는 사묵자 미간의 불빛에서 흘러나온 아주 희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편 2대 주작은 걱정스런 얼굴로 한제를 돕기 위해 몸을 훌쩍 날렸다.
‘사묵자의 향불이 이렇게 많다니!’
한데 그가 막 한쪽 발을 뗀 순간 한제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배님, 저 혼자서 할 수 있습니다!”
향불의 세계를 봉인하다
사묵자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그는 살기가 충만했지만 사실 대제성에서, 그것도 2대 주작 앞에서 한제를 죽일 마음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신도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허나 한제를 죽이지만 않는다면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터였다. 어쨌든 사묵자의 배후에는 장존회가 있고 먼저 도전을 한 것은 한제였으니까. 그래서 사묵자는 향불의 힘으로 한제의 저항 의지를 꺾고 중상을 입힐 생각이었다. 그럼 자신은 무사하게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수많은 향불의 혼이 절을 한 순간 보라색 광풍이 사방에서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온 세상이 보라색으로 물든 것만 같았다.
향불 신통력의 위력은 다섯 번째 천쇠에 이른 수련자를 소멸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하지만 천둥번개의 본원을 완성하고 화염의 본원도 허상의 화염의 경지에 올린 한제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두 눈은 전의로 불타올랐다.
엄밀히 말해 한제가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와 싸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도자와 싸움에서는 수동적으로 저항했을 뿐 공격은 하지 못했다. 허나 태고 성신에서 지내는 동안 그의 수준과 힘은 크게 성장했기에 이제는 적극적으로 공격까지 할 수 있었다.
보라색 광풍이 달려든 순간, 한제는 오른쪽 눈동자로 전광을 번득이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는 한편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열려라, 태고의 뇌계!”
꽈르릉!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보라색 광풍으로 뒤덮인 하늘에 거대한 균열이 나타났다. 길이게 1만 척에 이르는 균열이었다.
균열 안에서는 천둥소리와 함께 오래된 기운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커다란 포효도 들려왔고 번득이는 전광 사이로 태고 뇌룡들이 언뜻 들여다보였다.
뒤이어 균열 밖으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천둥번개가 보라색 광풍을 휩쓸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태고 뇌계를 열자마자 한제의 오른쪽 눈동자에서 번득이며 튀어나온 번개 문양이 균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균열에서는 모든 천둥소리를 제압할 만큼 우렁찬 포효가 울려 퍼지고 태고 뇌룡이 10만 척에 이르는 거대한 몸을 드러내더니 곧장 번개 문양으로 돌진했다.
태고 뇌룡은 한제의 번개 문양뿐만 아니라 아홉 갈래의 천둥번개 중 하나와도 재빨리 융합해 그 위력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뒤이어 균열 밖으로 나타난 뇌룡들 역시 천둥번개와 합쳐져 엄청난 속도로 보라색 광풍을 향해 돌진했다.
“태고 뇌계는 내 번개 문양의 근원이 될 것이고 아홉 마리 태고의 뇌룡은 내 천둥번개의 혼에 녹아들어 그것이 가진 극치의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섬뇌족의 불멸의 번개를 삼키고 섬뇌족 대장로의 기억을 뒤진 한제의 천둥번개 신통술은 이미 정점에 이르러 있었다. 천둥번개의 본원을 완성했을 때 소환된 공의 문을 조금이나마 열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제가 손을 들어 앞을 가리키자 태고 뇌룡과 융합한 아홉 갈래의 천둥번개가 번개 문양을 중심으로 빠르게 회전하면서 보라색 광풍에 맞섰다. 멀리서 보면 1만 척 길이의 균열은 한 줄기 천둥번개와 같았다. 그 안팎에 가득 번득이고 있는 천둥번개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였다.
아홉 갈래의 천둥번개가 폭풍을 형성한 순간 보라색 광풍 역시 한 줄기 폭풍이 되더니 사묵자의 손짓 아래 매섭게 달려들었다.
한제가 만들어낸 천둥번개의 폭풍은 끝없는 천둥번개를 생성했다. 거기다 태고 뇌계에서 풍기는 오래된 기운 아래 그 힘은 더욱 강력해졌다.
콰콰쾅!
두 개의 폭풍이 충돌한 순간 대제성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충격에 대지는 갈라지기 시작했고 거대한 거북이 역시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더니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콰르르!
시합장 역시 순식간에 와해됐고 멀리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수련자들은 피를 토하며 더 멀리 나가떨어졌다.
그때 천둥번개의 폭풍이 폭발하면서 수많은 전광을 퍼뜨렸고 아홉 갈래의 천둥번개 역시 뒤로 떠밀려 나갔다. 심지어 태고 뇌계의 균열 역시 왜곡되다가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보라색 폭풍도 무사하지는 못해 크게 진동하더니 천둥번개 본원 아래 절반이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향불의 혼은 사방으로 휩쓸려 나가다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손처럼 대지를 휩쓸었던 충격이 하늘까지 휘저어 향불의 혼들을 하나하나 소멸시킨 것이다.
사묵자의 옷자락이 돌풍을 맞은 것처럼 마구 휘날렸다. 그는 이를 갈며 두 손을 들어 올리더니 낮게 외쳤다.
“내 향불의 혼은 무궁무진하다. 네가 소멸시킨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 나와라, 향불의 혼들이여!”
그 외침에 사묵자 뒤편의 거대한 향불의 세계에서는 전보다 더 많은 향불의 혼이 튀어나왔다.
한제는 창백한 얼굴로 입가의 피를 닦아내고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전의가 그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동시에 그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마치 유성처럼 튀어나가더니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노랗게 말라버린 나뭇잎 하나가 소환됐다.
“사마묵! 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간에서 고신의 반점이 나타났고 한제는 입을 벌려 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고신의 피였다. 그 피가 떨어지자 나뭇잎은 붉은 빛을 발산했다.
한제가 힘껏 내던지자 나뭇잎은 붉은빛에 휩싸인 채 사묵자에게 돌진했다. 경악할 만큼 빠르게 달려드는 사이 나뭇잎은 점점 커지더니 순식간에 10만 척에 이르렀다.
탐랑에게서 가로챈 고식엽이었다.
당시 탐랑이 오래된 무덤에서 얻은 보물 중 하나인 이 나뭇잎은 내력이 무척 신비로웠으나 그의 수준으로는 한제가 축지성촌으로 추격해오는 것을 막는 데에 그쳤다. 하지만 한제는 고신의 피를 이용해 이 법보를 더욱 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제 고식엽은 하늘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해진 상태였고 사묵자의 곁을 스쳐 지나가더니 향불의 세계가 담긴 균열을 뒤덮었다.
“봉인!”
한제의 외침에 따라 고식엽은 빛을 반짝이며 균열에 달라붙자마자 막강한 힘으로 그것을 봉인했다. 그러자 향불의 세계가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향불의 혼이 꽁꽁 묶인 듯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묵자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소환한 향불의 세계를 봉인할 수 있는 법보라니,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이, 이게 대체…?’
놀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2대 주작 역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녀석이 어찌 저런 법보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 무렵 운락의 두 눈은 두려움으로 크게 흔들렸다. 심신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녀는 자신이 본 미래에서 99개의 나뭇잎으로 온 세상을 봉인하고 엄청난 신통술로 태고 성신의 수많은 수련자를 죽이던 한제의 모습을 똑똑하게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