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14
한편, 한제는 고식엽으로 사묵자의 향불의 세계를 봉인하자마자 곧장 돌진했다.
“고마의 혼!”
눈 깜짝할 사이 사묵자로부터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른 한제가 낮게 외치자 그의 가슴팍에서는 검은 안개의 회오리가 피어올랐다.
짙은 마기가 풍겨나는 이 검은 안개가 응집되더니 곧장 한제와 똑같이 생긴 작은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마의 혼이었다.
“캬아악!”
고마의 혼은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허상과 실체 사이를 오가는 긴 창을 쥐고 사묵자에게 돌진했다.
사묵자의 두 눈이 살기로 번득였다. 그 순간 체내에서는 허상의 화염이 다시 일어났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앞으로 나서며 오른손을 들어 보라색 빛을 번득였다.
“난 장존을 위해 공을 세우고 일곱 가지의 빛 중 보라색 도를 하사받았다. 보라색 도는 광기의 씨앗이지. 너의 그 법보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면 나의 도 아래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사묵자는 보라색 빛을 움켜쥔 손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그러자 순간 보라색 빛이 안개처럼 변해 고마의 혼을 덮쳐들었다.
고마의 혼은 번득이는 눈으로 날카롭게 울부짖더니 보라색 안개가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달려 나가며 입을 쩍 벌렸다. 녀석의 눈에 담긴 흥분은 갈수록 짙어졌다.
고마는 세상 모든 악마의 우두머리다. 그런 존재가 광기를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미칠수록 악마의 본성이 더 짙어지기 때문이다.
보라색 안개를 일부 삼킨 고마의 혼은 두 눈이 새빨개졌고 전보다 더욱 빠르게 보라색 안개를 뚫고 사묵자에게 돌진했다.
무마창을 감싼 고마의 혼이 순식간에 달려들자 사묵자의 두 눈이 바짝 졸아들었다. 한제가 만만치 않다는 건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이자가 정말로 공의 문을 연다면 그때는 내가 대적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거야! 게다가 나의 과거를 알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계내에서 왔을 터! 반드시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해! 허나 대제성에서는 그럴 수가 없군.’
사묵자는 뒤로 물러나는 대신 바짝 졸아든 두 눈동자로 서늘한 빛을 번득였다. 그러나 그 눈빛이 드러난 순간 그는 감정을 억눌렀고 한 움큼 피를 토해내며 뒤로 물러났다.
‘젠장, 장존의 말씀이 맞았어. 허상의 화염을 가진 이들은 모두 죽어야 해! 허상의 화염은 피할 수가 없어. 조금이라도 감정을 가졌다가는 모조리 불태워 버리니 이대로는 내가 불리하다!’
사묵자는 무언가 결정을 내린 듯 손을 들어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하얀 비단 천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천 위에는 핏방울이 점점이 뿌려져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는 매화 같았다. 그 모습이 퍽 소름끼쳤다.
사묵자는 비단을 쥐더니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비단은 곧장 나부끼기 시작했고 그 위의 핏자국들이 붉은 안개가 되어 사묵자의 앞을 뒤덮었다.
안개 속에서는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뒤이어 한제는 붉은 안개 속에서 누군가의 유약한 인영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얀 면사를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여인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고마의 혼을 향해 고운 손을 뻗었다.
순간 한 줄기 세월의 힘이 그녀의 손끝에서 흘러나와 전방을 왜곡시켰다. 고마의 혼도 그 힘에 뒤덮였다.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한제는 앞으로 나섬과 동시에 손을 휘둘러 미간에서 고신의 반점을 회전시켰다. 그러자 첫 번째 반점에서 어스름한 빛이 빠르게 반짝이기 시작했고 전방에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도가니가 나타났다. 매우 거대한 도가니에서는 아주 오래된 듯한 기운이 풍겼다.
사묵자와 붉은 안개 속 여인은 순식간에 도가니에 갇혔다.
왕족 고신의 법보, 천황로였다.
표정이 급변한 사묵자는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한 걸음 나서며 붉은 안개 속의 여인을 데리고 천황로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한데 그가 막 이동하려 한 순간, 한제가 두 눈을 붉게 번득이며 손으로 사묵자를 가리켰다.
“정(定), 정, 정!”
세 번 연달아 정의 힘을 사용한 한제의 몸에서는 피가 분출됐다. 얼굴 가득 피로감이 퍼졌지만 두 눈에는 더욱 짙은 광기가 어렸다.
육신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반동을 동반한 힘을 사용하고서야 사묵자의 몸은 아주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한제에게 큰 기회였다.
“열려라, 왕족의 법보!”
그는 부상에 개의치 않고 결인을 그린 두 손을 양옆으로 휘둘렀다. 순간 천황로가 회전하면서 그 안은 아주 오래된 기운으로 채워졌다.
“오늘 이 이한제는 세 번째 수련자를 제련할 것이다!”
한제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거대한 천황로 위에 앉더니 두 손을 도가니 위에 얹었다. 그러자 그의 왼쪽 눈에서 아홉 빛깔의 화염이 튀어나와 왼손을 타고 천황로를 맴돌았다. 동시에 오른쪽에서 나타난 번개 문양은 끝없는 천둥번개가 되어 오른손을 타고 천황로에 녹아들었다. 천둥번개와 화염은 힘을 합쳐 제련을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수련자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를 제련하고 있어!”
“들어본 적도 없는 이야기야! 대체 셋째 소제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 거지?”
2대 주작 또한 충격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제가 사묵자를 이길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해 애초부터 몰래 도와주려 했다. 한데 뜻밖에도 한제는 사묵자와 거의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몽도(夢道)
두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와 대등한 싸움을 하다니. 태고 성신 전역을 놀라게 할 만큼 엄청난 일이었다. 물론 2대 주작의 도움이 약간 더해져 있었고 그의 존재 때문에 사묵자가 모든 힘을 다하지 못한 탓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놀라운 일이었다.
‘좋아! 과연 나의 후배답군. 제련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런 기백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걸출한 인재라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야!’
2대 주작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 무렵, 향불의 세계를 봉인한 고식엽을 제외하면 하늘은 거대한 도가니로 가득했다. 한제는 그 위에 앉아 체내의 원력을 끊임없이 가동하는 한편 본원의 힘을 천황로에 녹여 넣으며 제련을 진행했다.
고신 왕족의 법기인 천황로의 위력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또한 왕족 고신인 한제의 통제로 그 위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
한제의 미간에서 고신의 반점이 빠르게 회전하며 고신의 힘을 천황로에 주입했다.
천황로에 갇힌 사묵자는 혼란에 빠진 한편 분노했다.
‘겨우 이깟 도가니로 나를 가두겠다고?’
그는 결인을 그린 두 손을 사방으로 강하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온몸을 뒤덮고 나타난 보라색 빛은 두 개의 거대한 손이 되어 천황로의 벽을 강타했다.
콰쾅!
굉음과 함께 천황로가 바르르 진동했고 그 위에 앉은 한제의 몸 역시 크게 떨렸다. 허나 그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더니 피를 한 움큼 뱉어 천황로에 뿌린 후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온몸의 힘을 더욱 크게 일으켜 계속해서 제련을 진행했다.
‘이건 대체 무슨 법보란 말인가!’
사묵자는 갖은 신통술을 발휘했지만 천황로가 꿈쩍도 않자 표정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오히려 공격이 이어질수록 도가니 안의 온도가 높아졌고 열기와 함께 애달픈 곡성이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 눈을 번득이며 고개를 번쩍 쳐든 사묵자의 표정이 순간 급변했다.
그의 주위로 대량의 혼백이 허상으로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고마 혹은 고요의 모습을 한 이 거대하고 수많은 혼백은 구슬프게 울면서 사묵자의 심신을 찔러 들었다.
지금껏 천황로에 제련된 생령들의 혼인 허상의 혼백들은 사묵자의 주위를 맴돌며 점점 더 요란하게 울었다.
하얀 천에서 피어오른 붉은 안개와 씨름하고 있던 고마의 혼도 훌쩍 물러나더니 사방의 혼백 틈으로 녹아들었다.
붉은 안개는 하얀 면사포를 쓴 여인의 모습으로 응집되어 사묵자의 곁에 묵묵히 섰다.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부드러운 느낌만은 생생히 느껴졌다.
사묵자는 그녀로부터 시선을 거두더니 냉랭한 눈으로 위쪽을 올려다보며 차게 외쳤다.
“이 망할 녀석, 법보가 제법 많구나! 허나 이것으로 나를 가둘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사묵자는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칠채신공정!”
그 순간 일곱 가지 색채의 빛 스물아홉 갈래가 사묵자 앞에 나타나 서로 뒤얽히면서 천황로 안을 맴돌았다. 그러자 허상의 혼들은 뒤로 물러났다. 갑자기 나타난 스물아홉 개의 못에 큰 두려움을 느끼는 듯했다.
“칠채정, 이 도가니를 부숴라!”
사묵자가 손을 휘두르자 스물아홉 갈래의 빛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달려들었다.
콰콰쾅!
격렬한 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칠채정들은 천황로를 뚫고 곧장 밖으로 나갈 듯 맹렬하게 부딪혔다.
천황로 위에 가부좌를 튼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가 깔고 앉아 있는 천황로에서 날카로운 가시들이 돋아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총 스물아홉 개의 날카로운 가시가 일곱 가지 색채를 띤 채 천황로를 뚫을 듯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한제는 싸늘한 눈으로 이를 지켜보다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손에 옥병이 하나 나타났다.
마혼병이었다.
혀끝을 깨문 한제는 고신의 피를 마혼병에 떨어뜨리며 낮게 외쳤다.
“왕족 고신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와라, 3만 마리의 고마!”
순간 병의 주둥이에서 마기가 분출되었고 뒤이어 수많은 고마가 포효하며 튀어나왔다. 고신의 피를 흡수한 이들은 매우 거칠고 포악하게 천황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를 본 사묵자는 이를 악물고 낮게 기합을 넣으며 허공을 움켜쥐어 짐승의 뼈를 소환했다. 3척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작은 뼈는 평범해 보였는데 그 위에는 누군가의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심지어 지문까지 보일 정도였다.
“겨우 도가니 따위로 나를 제련하겠다고?”
이 짐승의 뼈는 장존이 하사한 것으로 그 위에 남겨진 손자국 역시 장존의 것이었다. 말하자면 장손이 힘이 깃든 법보였다.
사묵자가 오른손을 들어 올려 짐승 뼈에 새겨진 손바닥 자국을 꾹 누르려는 순간, 그의 뒤에서 깊은 한숨과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집에 데려가 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사묵자의 오른손이 바르르 떨렸다. 그의 눈빛이 갈등으로 흔들렸고 미간에서는 손톱만 한 불빛이 격렬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수준을 그에게 돌려주고⋯⋯ 집에 가자.”
이때 천황로 위의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더니 숨을 깊게 내쉬었다. 형태 없는 숨결이 천황로에 떨어지며 퍼져 나갔다.
“도술, 몽도(夢道)⋯⋯.”
한제는 세 개의 신통술을 창조해낸 바 있다. 잔야, 유월, 그리고 천역주 안의 도의 경지에서 만들어낸 도술인 몽도였다.
잔야의 강력함은 놀라웠지만 태초의 규칙은 매우 희귀해 오직 아침 해가 떠오르는 순간에만 가장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지금 한제는 잔야를 창조해냈을 때에 비해 수준이 훨씬 높아진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억지로 잔야력을 발휘하려 한다면 우주와 행성의 경로와 자리를 적절히 바꿔야 했다. 그러니 꼭 필요한 순간에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유월은 잔야에 비하면 비록 위력은 좀 떨어지지만 시간의 규칙 아래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월은 세상 모든 것에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한제의 세 번째 신통술은 수도자와 싸운 뒤 거의 죽을 위기에 이르렀을 때 깨달은 것이었다. 당시 그는 천역주에서 봉계 지존의 도움을 받은 바 있지만 지금까지도 도경이 대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지 못했다.
도경에 들어갔을 때 한제의 머릿속에는 두 개의 신통술이 떠올랐다. 그중 하나는 요령의 땅에서 천운자에게 심각한 중상을 입히고 8성급 고신의 목숨을 살려주었던 원고 시대의 꿈, 몽회원고(夢回遠古)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가 처음으로 접해본 도술로 칠채계에서 봉멸족 노인이 발휘했던 도를 흩어버리는 기술, 산도술(散道術)이었다.
이 두 가지 신통술의 강력함은 한제의 기억에 깊게 남았다.
그리고 도경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한제는 이 어마어마한 위력의 몽회원고와 산도술을 깨닫는 데 성공했다.
몽회원고는 고신의 신통술로 본래 수련자가 발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신의 육신을 가진 한제라도 이 신통술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제의 삶에는 위험과 행운이 공존했는데 칠채계 안 봉멸족 노인의 산도술은 그에게 도술이라는 문을 한쪽 열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