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31
이를 지켜보던 영동상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자신만만하게 나선 고 노인이 이리 볼썽사납게 실패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한제의 곁에 있던 몸집이 비대한 수련자가 피식 웃었다. 그러자 영동상인의 음산한 눈빛이 곧장 그에게로 향했다.
비대한 수련자가 얼른 앞으로 나서며 영동상인에게 포권을 하더니 여전히 웃음기가 어린 얼굴로 말했다.
“후배 허복이 영동상인을 뵙습니다. 저 안개 속 금제, 제가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선배님께 말씀드릴 비밀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들 중 허상의 화⋯⋯.”
“네가 저 안개 속의 금제를 해결한다면 목숨을 살려주고 네 법보도 빼앗지 않겠다!”
영동상인은 비대한 수련자가 말을 채 맺기도 전에 외쳤다. 그의 관심은 온통 안개 속 도령뿐이었기 때문이다.
“걱정 마십시오. 전 오랫동안 저 안개 속 금제를 관찰해왔습니다. 선배님께서 약간만 도와주신다면 7할 이상의 성공을 자신할 수 있습니다!”
허복은 고개를 돌려 한제를 힐긋 보더니 곧장 붉은 안개를 향해 갔다. 이내 안개로부터 1백 척 떨어진 곳에 이른 그는 신중한 얼굴로 손에 쥔 주판을 휘둘렀다.
타닥! 탁!
짧은 격타음이 이어지던 중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주판이 터져나갔다. 동시에 주판알이 사방으로 휘날리며 금제의 회오리를 형성하자 허복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안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으려고 환장을 했군.’
한제는 속으로 차게 비웃었다. 뒤이어 그의 시선은 깃털 부채를 쥔 채 입가에 냉소를 드리운 문인에게로 향했다.
‘역시 만만한 자가 아닐 터! 어쩌면 저자 역시 붉은 안개를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
한제는 생각을 정리하며 몰래 금제 하나를 자신의 발밑에 소환했다.
허복이 두 손으로 그린 결인에 주판알들이 주위를 빠르게 회전하다가 그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 기이한 그림을 그려냈다. 바둑판의 마지막 국면처럼 보이는 그림이었다. 주판알은 바둑알이 되어 별처럼 총총 박혀 있었다.
허복은 진지한 얼굴로 주문을 중얼중얼 외우더니 결인을 그린 오른손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그러자 바둑판을 형성하고 있던 주판알들이 곧장 붉은 안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주판알이 달려들자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그 안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내 안개는 앞으로 튀어나와 바둑판 모양의 금제를 집어삼키려 했다.
쾅!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바둑판이 오색찬란한 빛을 발산했다. 심지어 하나하나의 허상이 나타나더니 결인을 그리며 붉은 안개를 후려치기까지 했다. 그로 인해 보이지 않는 힘이 퍼져 나가자 붉은 안개는 뒤로 밀려났고 결국 주판알로 이루어진 금제를 삼키지 못했다.
주변의 수련자들은 이 광경을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었다. 영동상인은 옅게 웃고 있었지만 중년 문인만큼은 여전히 비웃음을 흘리는 중이었다.
허복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다시 결인을 그렸다. 뒤이어 그는 바둑판에서 발산되는 빛 아래 하나하나의 허상들에 둘러싸인 채 붉은 안개로 돌진했다.
그때 한제의 눈빛이 번득였다. 금제를 해제하는 허복의 수법에는 참고할 만한 면이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범상치 않은 주판의 주판알은 각각 수많은 금제를 품고 있었던 듯했고 그것들이 조합하면서 더욱 기묘하고도 강력한 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평범한 금제였다면 충분히 해제됐을 터였다. 허나 붉은 안개 속 금제를 해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저 금제는 매우 복잡했다. 고혼금뿐만 아니라 세월금도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 둘의 융합으로 인해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허복이 소환한 바둑판이 빛을 번득이며 붉은 안개를 향해 달려들어 그 안으로 사라진 순간, 안개 속에서는 한층 더 격렬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든 수련자들이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갑자기 허복의 표정이 급변했다. 이어서 그는 창백한 얼굴로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주판알이 파괴되면서 법보와 연결되어 있던 그의 원신도 타격을 입은 모양이었다.
“크윽!”
허복은 곧장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두 걸음을 채 물러나기도 전에 붉은 안개가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다가와 그를 삼켜버렸다.
“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에 이어 마치 짐승이 뼈째로 무언가를 씹는 것처럼 으적으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름끼치는 소리였다.
“쓸모없는 놈 같으니!”
영동상인의 얼굴이 다시금 일그러졌다. 금제를 해제할 방법이 없다면 억지로 파괴해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그 안에 있는 도령도 손상을 입게 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얻을 수 없는 물건이라면 다른 사람이 손에 넣어서도 안 되지. 아예 파괴해버리는 것이 낫겠군!”
이내 영동상인은 서늘한 얼굴로 몸을 날렸다.
한데 바로 그때, 깃털 부채를 든 중년 문인, 소정이 포권을 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인, 상인께서 억지로 열기 전에 제가 한 번 시도해 봐도 되겠습니까? 금제를 완전히 해제하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열기만 한다면 도령의 손상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영동상인은 소정을 돌아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야 할 것이다!”
소정은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더니 부채로 왼손을 톡톡 두드리면서 붉은 안개로 다가갔다.
한제는 비록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집중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그의 발아래로는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점점 더 많은 금제가 응집되고 있었다.
붉은 안개 앞에 이른 소정은 잠시 뭔가를 계산하듯 손가락을 꼽으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는 오른손으로 전방을 가리켰고 잔영을 그리며 빠르게 뻗은 손이 순식간에 붉은 안개를 건드렸다.
콰르릉!
붉은 안개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리더니 마치 팔뚝처럼 한 갈래 안개가 소정을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소정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해서 결인을 그렸고 안개를 두드렸다.
그러던 중 그의 손이 어느 부분을 건드린 순간, 뻗어 나온 안개가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영동상인의 두 눈이 번득였다.
반면 한제의 눈은 가늘어졌다. 저자는 어떤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고 금제에 있어서도 이전의 수련자들보다 한참 위였다.
소정의 이마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지만 그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냉랭했다.
그는 몸을 훌쩍 날려 유려하게 붉은 안개 주위를 돌면서 결인을 그린 손으로 안개를 건드렸다. 안개의 포효는 점차 격렬하고 거칠어졌다.
한제는 속으로 냉소를 흘렸다. 소정은 비밀을 꽁꽁 숨긴 채 금제를 해제하고 있었지만 한제는 이미 그의 수단과 의도를 파악한 상태였다.
“하앗!”
소정이 돌연 낮은 기합을 넣으며 우뚝 멈춰 서더니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붉은 안개를 꾹 누르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상인! 향불의 힘으로 도와주십시오! 그러면 이 금제의 절반은 풀어낼 수 있습니다!”
영동상인은 소정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오른손을 들어 올려 향불의 힘을 체내에서 피워 올렸다. 그리고는 향불의 힘을 응집시킨 오른손을 곧장 휘둘렀다.
콰쾅!
향불로 이루어진 손바닥 하나가 나타나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붉은 안개를 강타했다. 그러자 붉은 안개의 겉면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이에 짙은 안개는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한데 영동상인의 얼굴에 희색이 어린 순간, 붉은 안개가 전보다 더 우렁차게 포효하면서 쩍 벌어져 소정을 덥석 삼켜버렸다.
“크아악!”
찢어질 듯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지는 사이에 붉은 안개는 영동상인의 향불로 이루어진 손바닥도 흡수해버리면서 더욱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쿠르릉!
우렁찬 소리는 천둥처럼 울려 퍼지면서 이 공간을 크게 흔들었다. 이어서 파멸적인 힘이 세상을 다 휩쓸어버릴 듯한 폭풍이 되었다. 이 폭풍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이 봉인된 공간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콰쾅! 콰르릉!
요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붉은 폭풍을 미처 피하지 못한 수련자들은 그대로 무너져 내리면서 원신까지 소멸돼 버렸다.
“흠!”
영동상인 역시 안색이 크게 변했고 폭풍에 담긴 끔찍한 힘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다급히 뒤로 물러나 2급 암석 조각에 올라섰다. 이어서 그가 소매를 휘두르자 그 암석 조각은 한 줄기 빛이 되어 빠르게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던 모든 수련자는 공간이 붕괴하기 시작한 순간 물러났다. 조금이라도 굼뜬 자는 폭풍에 휩쓸려 죽음을 맞게 됐다.
가장 빠른 건 한제였다. 그는 심지어 영동상인보다도 먼저 움직여 소정이 붉은 안개에 집어삼켜진 순간 하늘로 솟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급작스럽게 폭발한 붉은 폭풍에 열 명이 넘는 수련자가 소멸했다.
한제는 어느 균열을 통해 그곳을 빠져나갔다.
누가 참새인가
수련자들이 달아나고 얼마 후, 붉은 안개가 공간을 빈틈없이 채웠다. 그리고 다시 한참 뒤에 이 안개는 꾸물거리면서 수축하더니 고신이 짊어진 암석 조각을 감쌌다. 붉은 하늘의 균열들은 말끔히 사라져 이제 더 이상 누구도 이곳에 들어올 수 없게 됐다.
안개 속에서 울려 퍼지던 우렁찬 소리도 점차 약해졌고 이내 적막이 찾아왔다.
고요한 가운에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반 시진쯤 지났을 때, 그 안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소정이었다.
그는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영동상인도 별거 없군! 하긴 이 소정이 찍은 보물을 누가 가져갈 수 있단 말인가! 작은 속임수로 모두를 몰아냈으니 이제 도령은 내 것이다! 크하하하!”
그는 비릿하게 웃으며 안개를 바라보더니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손을 휘둘러 아홉 개의 옥패를 소환했다.
‘고혼금, 세월금! 나로서는 그것들을 완전히 해제할 수 없지만 두 개의 금제를 한동안 정지시킬 수는 있지! 스물을 헤아릴 시간 정도다.’
그는 조용히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아홉 개의 옥패가 어스름한 빛을 번득이며 둥그런 대형을 이루어 붉은 안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안개는 꿈틀거리며 또다시 격렬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옥패에서 발산된 어스름한 빛에 뒤덮여 우뚝 멈추었다.
소정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옥패로 이루어진 원 안으로 들어선 뒤 두 손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대로 멎어버린 안개에 한 줄기 균열이 일어났고 소정은 그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한데 바로 그때, 죽음처럼 고요한 적막으로 휩싸여 있던 그곳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말도 안 돼! 금제가 또 있다니! 분명 모든 금제를 정지시켰는데⋯⋯.”
다급하게 뒤로 물러난 그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온몸은 빠르게 썩어 들어갔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썩어 문드러진 시체가 됐다.
잠시 후, 붉은 안개 위에 붙어 있던 아홉 개의 옥패가 빛을 번득이며 빠르게 흩어져 사라졌고 안개는 차츰 움직임을 되찾았다.
다시 2각이 흘렀을 때, 썩어 문드러진 소정의 시체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곧 이전의 모습을 회복했다.
“누구도 이곳에 잠입하지는 않은 모양이군.”
그는 눈을 번득이며 붉은 안개를 바라보았다.
붉은 안개를 바라보던 소정은 입가에 미소를 드리웠다. 워낙 신중하고 교활해 태고 성신에서도 음흉한 여우라 불리는 자답게 그는 자신의 계략이 부족한 수준을 보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어떤 위험 앞에서라도 끝끝내 승리를 성취해낸 적이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영동상인이 탐내던 보물에 눈독을 들인 이번에도 그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거짓으로 죽은 척을 해 주위 사람들을 물리친 뒤에도 안심하지 않고 또 한 번의 함정을 팠다. 옥패를 이용해 안개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과 같은 상황이었으니 다른 누군가가 이곳에 남아 있었더라면 절대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튀어나왔을 터였다.
그럴 경우 상대를 안개 속에 그대로 가둬버릴 준비까지 해둔 상태였다. 이를 위해 썩어서 죽는 것처럼 보이는 신통술을 발휘하면서까지 미끼를 던졌던 것이다.
이제야 완전히 마음을 놓은 그는 붉은 안개 앞에서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안개는 꾸물거리며 뒤로 물러나더니 아홉 개의 옥패가 나타났다.
그중 여섯 개의 옥패는 갈라지면서 검은 재로 흩어져 버렸고 안개는 다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사실 아홉 개의 옥패 중 여섯 개는 금제를 정지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만약의 경우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었다.
소정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세 개의 옥패로 형성된 문으로 들어섰다. 이어서 오른손으로 붉은 안개를 연거푸 두드렸다. 그러자 굳어진 듯 멈춘 안개가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