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32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는 층층이 갈라졌다. 소정은 흥분한 얼굴로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한데 그 순간, 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며 기묘한 미소를 지었고 반대로 두 눈에는 두려움이 들어찬 채 다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마, 말도 안 돼!”
그는 덜덜 떨면서 두 손으로 계속해서 자신의 얼굴을 문지르고 닦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이한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짙어져 갔다.
심지어 얼굴에 상처가 나면서 피가 흘렀지만 소정은 그것조차 느끼지 못한 채 계속해서 얼굴을 문질렀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몸부림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소정이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그러나 입은 여전히 기이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급기야는 하늘을 향해 껄껄 웃기까지 했다. 반면 두 눈은 점점 두려움에 잠식되어 갔다.
“크하하하! 우, 웃지 마! 웃지 마! 크하하핫!”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그는 다급하게 물러났다. 하지만 수십 척 정도 물러난 순간, 그는 몸을 바르르 떨며 피를 왈칵 토해냈고 동시에 눈동자는 빛을 잃었다. 뒤이어 그의 몸 역시 쿵 하고 대지에 떨어져 내렸다.
육신은 물론 원신까지 소멸해버렸지만 육신에도 원신에도 기이한 웃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생사금의 결과였다.
잠시 후, 적막에 휩싸인 공간에 검은 빛 한 줄기가 날아들더니 한제가 나타났다.
아까 소정이 붉은 안개 주위를 맴돌며 쏘아대던 금제를 알아챈 자는 한제뿐이었다. 그 역시 금제에 조예가 깊지 않았더라면 4대 금제 중 세 가지에 통달하지 못했더라면 아무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을 터였다.
소정이 쏘아댄 것은 분명 붉은 안개 속 금제를 풀어내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런 금제들이 모여 조합되면 기이한 전환이 일어난다. 이에 붉은 안개 속 금제를 풀어내기는커녕 오히려 그 힘을 더 격화시켰다.
그가 마지막에 영동상인에게 향불의 힘으로 도와달라고 한 것은 붉은 안개 속 금제의 힘을 제대로 활성화해 평소보다 몇 배의 위력을 발하는 폭발을 일으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폭발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던 대로 그곳의 모든 이들을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서도 혹여 누군가의 의심을 살까 안개 속에 몸을 숨긴 채 비명을 내질러 죽음을 꾸며내기까지 했다.
그렇게 이곳에 있던 수련자들을 몰아냈을 뿐만 아니라 확산된 붉은 안개를 이용해 하늘 가장자리의 균열들까지 전부 봉함으로서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실로 대담하면서도 훌륭한 책략이었다.
한제는 기이한 미소를 지은 채 쓰러져 있는 시체를 후려쳤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시체는 붕괴해 재로 흩어져 사라졌다.
“이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더는 살아나지 못하겠지!”
한제는 일찍이 소정의 수작을 꿰뚫어보고 이곳으로 다시 올 수 있는 금제를 남겨두었다. 금제에 통달한 데다가 수준도 높은 그로서는 자신이 남겨둔 금제를 누군가가 간파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균열 밖으로 잠시 나갔다가 돌아왔다.
허나 소정의 죽음은 한제 때문이 아니라 미처 파악하지 못한 금제 때문이었다. 붉은 안개 속에는 고혼금과 세월금뿐만 아니라 생사금도 있었던 것이다.
소정의 시체로부터 시선을 거둔 한제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서 붉은 안개 속 금제 근처에 이르렀다. 이 간단한 금제가 수많은 수련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을 보며 그는 새삼 수련계의 잔혹함을 깨달았다.
금제를 멈춰둔 세 개의 옥패를 잠시 살피던 한제는 다시 안개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생사금이로군.”
잠시 후, 그는 손을 빠르게 뻗었다. 펑, 펑 하는 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멈춰 있던 안개가 회전하면서 붉은 회오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회오리 안에서는 한 줄기 검은색 선이 어렴풋이 나타났다. 주변을 뒤덮은 붉은색과 명확한 대비를 이룬 선이었다.
생사금을 해제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 속에서 한 줄기 생기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을 찾아내고 생기를 뽑아낼 수 있다면 생사금은 자연히 해제된다. 하지만 생사금을 알지 못한다면 생기를 뽑아내는 방법을 알 리 만무했다.
한제는 눈도 떼지 않고 살피다가 오른손으로 빠르게 결인을 그렸다. 눈 깜짝할 사이 한 줄기 금제가 수중에 나타나자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그 금제를 조심스럽게 회오리 쪽으로 떠밀었다.
펑! 펑!
폭발음이 울려 퍼지는 사이 안개 회오리가 우뚝 멈추며 한제의 금제를 흡수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나타난 검은 선이 점차 또렷해졌다. 한제는 회오리 안으로 손을 뻗어 검은 선을 움켜쥐고는 휙 잡아당겼다.
쾅!
검은 선이 그대로 뽑혀 나왔다. 긴 뱀처럼 꿈틀대던 그것은 한제의 손에서 흩어져 사라졌고 뒤를 이어 붉은 안개로 이루어진 회오리가 무너져 내렸다.
끓는 물을 끼얹은 눈처럼 순식간에 사라진 회오리 안으로 긴 통로 하나가 드러났다. 통로는 안개 속의 암석 조각과 연결된 듯했다.
한제는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통로로 들어서려 했다. 한데…
“멈춰라!”
누군가의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니 참새가 뒤에서 기다리고 있더라는 말이 있지!”
하늘을 뒤덮은 안개 속에서 누군가의 흐릿한 인영이 나타났다. 바로 영동상인이었다. 그의 뒤로는 길이가 2만 척에 달하는 암석 조각이 떠 있었다.
그에게서는 기쁨도 슬픔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아까 전과 같은 멍청한 모습도 지워버린 그의 눈에서는 비웃음의 빛이 번득이고 있었다.
한제는 당황한 얼굴로 쓴웃음을 지으며 영동상인을 돌아보았다.
“영동상인을⋯⋯ 뵙습니다.”
한제는 포권을 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려 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그대로 죽을 줄 알아라!”
영동상인이 음산한 목소리로 외쳤다.
“상인께서는 빈틈이 없으시군요. 대단하십니다!”
한제는 더욱 씁쓸한 얼굴로 우뚝 멈춰 섰다. 당황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는 기색이었다.
“난 일찍이 소정의 야심을 알고 있었다. 나를 감쪽같이 속인 줄 알았겠지. 하하하! 난 비록 금제에는 뛰어나지 못하나 너희 둘이 이렇게 금제를 열어놓았으니 덕분에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게 됐구나! 하하하!”
영동상인은 냉소했다.
“이리 나와 한쪽에 서서 기다리도록!”
자연스럽게 생성된 도령을 얻기 위해서는 수혼술을 당하지 않은, 완전한 영혼으로 제사를 지내야 했다. 그가 보기에 한제는 자신에게 위협이 될 자는 아니었기에 살려두었다가 제물로 쓸 생각이었다.
한제는 창백해진 얼굴로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이고는 안개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영동상인이 오른손을 가볍게 휘둘러 형태 없는 우리로 한제를 가두었다.
애초에 상대의 수준이 자신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데다가 우리를 만들어 가두어두기까지 했으니 영동상인은 이제 한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몸을 훌쩍 날려 회오리 안의 통로로 향했다. 하지만 갑자기 발걸음을 우뚝 멈추더니 고개를 홱 돌려 한제를 노려보았다.
한제는 여전히 씁쓸한 얼굴로 영동상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이 바뀌었다. 네가 먼저 들어가라!”
한제는 흠칫 놀랐으나 찰나의 순간 드러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를 놓치지 않은 영동상인은 피식 웃더니 곧장 몸을 돌려 통로로 들어섰다.
번개처럼 이동한 그는 어느새 통로 중턱에 이르렀다. 한데 바로 그 순간, 찢어질 듯 비참한 비명이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크윽! 이, 이건…? 금제가 또 있잖아!”
그 순간, 한제의 두 눈에서 살기가 번득였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죽이다
영동상인의 비명이 들려온 순간, 한제는 손을 휘둘러 붉은 검을 소환했다. 붉은 검은 단숨에 한제를 가두고 있는 물방울을 무너뜨렸다.
한제는 여유롭게 통로로 향했다. 사실 그는 통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진즉 알고 있었다. 영동상인이 자신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했을 때는 짐짓 기뻐하는 듯한 기색을 잠시 드러냄으로써 조심성 많은 상대를 완벽히 속였다.
한제는 통로로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피를 토하며 창백한 얼굴로 다급히 후퇴하는 영동상인을 발견하고는 곧장 붉은 검을 쏘아 보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한제를 발견한 영동상인은 손을 크게 휘둘러 방어했다.
콰쾅!
“크아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영동상인은 붉은 검에 오른팔이 관통당한 채 비명을 내질렀다. 한제를 우습게보고 있었기에 설마 이 정도로 강력한 공격을 해올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탓이었다.
한제의 행동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상대가 세 번째 단계에 반 발짝 정도 들어선 강자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조금의 빈틈도 보여서는 안 됐다.
이에 한제는 붉은 검을 다시 휘두름과 동시에 오른쪽 눈으로 천둥번개를 번득여 번개 문양을 소환했다. 번개 문양은 아홉 갈래의 천둥번개에 휩싸인 채 안개를 뚫고 달려들어 영동상인의 몸에 떨어졌다.
“천둥번개의 본원!”
영동상인은 통로의 금제에 중상을 입고 붉은 검에 생각지도 못한 부상까지 당한 상태에서 번개 문양을 마주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번개 문양은 말 그대로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영동상인은 창백한 얼굴로 두 팔을 휘둘러 얼마 남지 않은 향불의 힘으로 거대한 조각상을 형성해 앞을 막아섰다.
콰쾅!
번개 문양과 조각상이 충돌하면서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각상과 맞닿은 번개 문양에서는 천둥번개가 흘러나왔고 이에 조각상 위로 수많은 균열이 생겨났다. 머지않아 조각상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번개 문양은 한제의 오른쪽 눈으로 돌아왔다.
“크윽!”
또다시 피를 토해낸 영동상인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도망치려 했다. 지금은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그때, 그의 뒤쪽에서 분노한 듯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안개 속에 봉인된 무언가가 깨어나 달려드는 것 같았다.
“크오오오!”
이내 통로 밖의 붉은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그 안에서 붉은 기린 같은 흉수가 포효하며 튀어나왔다.
“역시 4품 도령이었어!”
영동상인은 감탄했으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안개 속에 갇힌 상태에서 앞에는 한제가 뒤에는 폭주하는 4품 도령이 있다.
게다가 지금은 도령을 제련할 시간도 없었고 안개의 금제가 점차 깨어나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안개를 빠져나가지 않는다면 금제가 활성화됐을 때는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한제의 꾐에 빠져 맞게 된 통로의 금제는 그의 원신에 녹아든 상태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 금제를 억지로 제압했지만 붉은 검과 번개 문양에 연달아 부상을 당한 지금은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이에 금제는 그의 원신 안에서 마구 날뛰며 폭주했다.
영동상인으로서는 수만 년 만에 마주한 죽음의 위기였다. 우습게 여긴 수련자에 의해 이런 비참한 처지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세 번째 단계에 근접한 수련자답게 결단력이 있었고 과감히 도령을 포기하고는 곧장 한제에게 돌진했다. 눈에서 번득이는 살기를 통해 그가 한제에게 느끼는 분노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를 가둬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곳을 빠져나가 네 혼을 제련해주마!”
영동상인은 이를 갈며 빠르게 다가왔다. 금방이라도 안개를 벗어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