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34
“기이하군.”
한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애초에 답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오래된 무덤에서는 암석 조각이 매우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겠다는 것만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이 암석 조각은 3급에 이르렀다. 계속해서 급이 높아진다면 지도의 나머지 부분을 열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어쩌면 암석 조각 자체가 어떤 신통술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몰라.”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곧 천황로를 살폈다.
천황로 안, 천둥번개와 화염 그리고 고신의 기운으로 뒤덮인 채 제련되고 있는 안개는 이미 8천여 척으로 줄어들었고 계속해서 수축했다.
한제는 가부좌를 튼 채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금제를 생성해 천황로 안의 안개를 향해 쏘아 보냈다.
고혼금을 제외하면 자신이 가진 모든 금제에 통달한 한제가 계속해서 금제를 쏘아 보내자 안개는 층층이 흩어져 버렸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났을 무렵에는 1천 척으로 줄어들었다. 덕분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1만 척 길이의 암석 조각이 드러났다.
한제는 소정이 남긴 세 개의 옥패를 소환해 천황로 안의 안개에 부착했다. 그러자 안개가 움직임을 멈췄다.
뒤이어 한제는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천황로를 꾹 눌렀다. 그의 체내에서 흘러넘친 고신의 힘에 천황로 안에서는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수없이 많은 혼백이 튀어나와 1천 척으로 줄어든 안개를 맹렬히 찢어버렸다.
펑!
안개가 찢겨나가자 그 안에 숨겨진 것들이 훤히 드러났다.
“쿠오오오!”
동시에 찢겨진 안개 속에서 4품 도령이 분노의 포효와 함께 튀어나오더니 곧장 천황로 밖의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는 기린 같은 도령이 천황로에 부딪혀 다시 그 안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싸늘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안개 속에서 영동상인과 싸우면서 적지 않은 고생을 한 탓인지 도령은 온몸이 상처로 가득했다. 허나 녀석의 두 눈에서 번득이는 험악한 빛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녀석의 뒤로는 시체가 한 구 있었다. 피범벅으로 엉망이 된 영동상인의 시체였다. 허나 한제는 그가 죽은 척하고 원신을 회복시키는 중임을 쉽게 간파했다.
“얕은 수를 쓰는군.”
한제는 손을 들어 천황로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혼백들이 도령을 어딘가로 끌고 갔고 이제 영동상인만 남게 됐다.
“죽은 척할 필요 없다. 널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나로서도 죽여 없애는 것보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른 노예를 두는 편이 낫지.”
차갑게 외친 한제의 미간에서 여섯 개의 반점이 회전했다. 그 반점에서 뿜어져 나온 고신의 힘은 천황로로 몰려들더니 잔혹한 제련을 진행했다.
영동상인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가부좌를 튼 채 험악한 눈으로 천황로 너머의 한제를 곧게 바라보았다. 허나 지금 그의 상태는 풍전등화와 다를 바가 없었고 안색이 매우 창백했다.
“보아하니 네놈은 일개 무명 수련자는 아닐 것이다. 대체 누구냐!”
영동상인의 입에서 짙은 원한이 담긴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제는 말없이 고신의 힘을 주입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천황로 안에서는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크아악! 가 감히 나를 제련하려 하다니! 절대 안 된다! 비록 함정에 빠져 이 모양 이 꼴이 되긴 했으나 나는 수만 년을 수련해온 수련자다! 그 굳건한 마음을 네가 어찌 제련할 수 있겠느냐!”
영동상인은 대답 없는 한제는 바라보다가 두 눈을 감고 회복에 집중했다.
그는 상대가 짧은 시간에는 절대로 자신을 제련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니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힘을 회복해 이 기괴한 도가니를 깨고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사실 자신의 힘으로는 세 번째 단계에 반쯤 걸친 수련자를 제련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한제도 알고 있었다. 천황로의 도움을 받아 엄청난 시간을 들인다 해도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하물며 이 오래된 무덤 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결국 제련할 수 없는 건가?’
한제는 쓰게 웃으면서도 더 많은 고신의 힘을 천황로에 주입했다. 그러자 천황로 안에서는 점점 더 많은 혼백이 나타나 혼탁한 폭풍을 형성했고 이 폭풍은 영동상인의 주위를 맴돌았다. 혼백의 폭풍은 곧 거대한 고신의 허상으로 변했다.
온몸이 붉은 데다가 거대한 도끼를 든 기이한 고신이었다.
“천황로 열 번의 도끼질!”
한제가 고신의 언어로 외쳤다. 그의 말은 하나하나 낙인이 되어 천황로에 떨어졌다.
콰르릉!
천황로 안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고 허상의 붉은 고신은 손에 든 도끼를 맹렬하게 내리쳤다. 도끼는 폭풍을 관통해 곧장 영동상인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네가 나를 어떻게 제련하는지 두고 보겠다!”
영동상인은 두 눈을 번쩍 뜨고는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떨어지고 있는 도끼를 노려보았다. 뒤이어 그는 낮은 기합을 내지르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그의 뒤로 거대한 조각상 하나가 허상으로 나타났다. 이전에도 소환한 적이 있던 마신의 조각상이었다.
쾅!
눈 깜짝할 사이 떨어져 내린 도끼와 조각상이 발산한 어스름한 빛이 충돌했다. 그러자 도끼는 흩어져 사라졌고 조각상 역시 바르르 진동하다가 곧 무너져 내렸다.
“우욱!”
영동상인은 피를 토해냈다. 한데 그가 뿜어낸 피는 순식간에 다시 조각상이 되어 우뚝 섰다.
한제의 얼굴도 약간 창백해진 상태였으나 그는 망설임 없이 오른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천황로 안의 고신은 손에 다시 도끼를 소환해 두 번째 도끼질을 가했다.
한데 이 두 번째 도끼가 영동상인에게 떨어지기도 전에 고신의 뒤로 혼백이 모여들더니 역시 도끼를 든 고신이 하나 더 나타났다. 이 고신 역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도끼를 매섭게 후려쳤다.
허나 아직도 끝이 아니었다. 그 고신들 뒤로 혼백이 모여들더니 순식간에 여섯 고신이 더 나타냈다.
여덟 고신이 휘두른 여덟 개의 도끼는 찰나의 순간 하나로 합쳐졌다.
“제련!”
한제의 살기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콰쾅!
격렬한 소리가 천황로 안에서 울려 퍼졌다. 영동상인이 소환한 조각상은 첫 번째 도끼에 맞은 순간 바르르 진동했으나 무너지지 않고 간신히 버텨냈다.
뒤를 이어 두 번째 도끼가 맹렬히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여덟 번째 도끼까지 꽂히자 조각상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조각상을 파괴한 도끼의 여파는 그대로 영동상인에게로 향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영동상인의 정수리에 이른 그 힘은 그대로 그를 관통해 지면에 떨어졌다.
쿠르릉!
천황로가 격렬하게 흔들렸고 영동상인은 피를 한 사발이나 뿜어냈다. 동시에 그의 눈빛이 다소 탁해졌다.
‘지금이다!’
한제가 기다리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는 두 눈으로 기이한 빛을 번득이면서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도술, 몽도!”
그 순간, 천황로 안의 영동상인이 몸을 바르르 떨었고 눈빛이 한층 탁해졌다. 평생의 기억이 한순간에 그의 눈앞을 스쳐가는 듯했다.
“자질이 훌륭하니 영동족에 들여보내주마. 무언가를 성취하느냐 마느냐는 너 자신에게 달렸다! 내 이름을 기억해라. 내 이름은 이한제다!”
흐릿한 모습의 청년 하나가 꿇어앉은 소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소년은 감격에 젖은 눈빛으로 의지를 담아 말했다.
“넌 우리 영동족의 사람이 아니나 우리 부족에 충성을 다했고 천부적인 자질 역시 매우 훌륭하다. 그러니 네게 우리 부족의 낙인을 선사하마. 잘 해내도록!”
창백한 얼굴의 노인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가슴팍은 피범벅이 된 채 뭉그러져 있었다. 중상을 입으면서 원신까지 무너져 내려 거의 죽음에 이른 듯 보였다.
노인 앞에는 중년 사내가 꿇어앉아 있었다. 영동상인이었다.
“네 스승의 진짜 이름은 네가 알고 있는 그것이 아니라⋯⋯ 이한제다!”
“이한제⋯⋯ 이한제.”
중년 사내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답
태고 성신. 한 노인이 피를 토하며 빠른 속도로 도주하고 있었다. 그의 뒤를 세 명의 수련자가 끈질기게 추격해오는 중이었다.
“이 영동이 오늘 여기서 죽게 되는 것인가!”
노인의 눈빛은 절망으로 뒤덮였다.
그를 뒤쫓던 세 사람은 이미 지척에 이르러 있었다. 그들이 신통술로 소환해낸 세 마리의 용이 포효를 내지르며 영동을 집어삼킬 듯 달려들었다. 이에 영동은 비참한 웃음을 지으며 그냥 죽을 수는 없다고 자폭을 해서라도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겠다고 결심했다.
한데 그때, 우주 저 멀리서 부드러운 빛 한 줄기가 나타나 거대한 허상의 손으로 변하더니 영동을 뒤쫓던 세 사람을 휩쓸었다. 세 사람은 피를 토하며 황급히 달아났다.
“너를 구한 나의 이름은 이한제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노인은 그 이름을 들은 순간 눈빛이 멍해졌다.
“이한제⋯⋯?”
영동족 주성. 한 백발노인의 온몸이 썩어가고 있었다. 거의 죽음에 이른 듯한 모습이었다.
“다섯 번째 천쇠⋯⋯ 이 영동은 결국 여기까지인가!”
노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검은 피를 토해낸 뒤 두 눈을 감았다.
한데 그 순간, 그는 어느 기이한 세상에 이르러 있었다. 흐릿하고 모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는 그를 등진 채 선 인영이 보였다.
“네가 나의 노예가 된다면 네 도를 완성해주마!”
냉랭한 목소리가 그 인영으로부터 흘러나왔다.
“넌 누구냐!”
노인의 두 눈이 굳어졌다.
“내 이름은 이한제다!”
인영이 몸을 돌려 전광과 같은 눈빛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노인의 표정이 급변했다. 자제력이 강한 그였지만 한제의 이름을 듣는 순간 심신이 급격히 떨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영동족에 들어갔을 당시부터 내내 그와 함께하며 도움을 준 존재의 이름이 바로 이한제였기 때문이다.
“네가 동의한다면 앞으로 넌 영동이 아니라 노예로 살게 될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흐릿한 세상이 그대로 무너져 내려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고 영동상인의 모든 기억을 찢어놓았다. 동시에 천황로 안의 그는 격렬하게 경련하며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