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35
그때, 천황로 안에 나타났던 여덟 고신이 하나로 융합되더니 아홉 번째 고신이 됐다. 이 고신은 도끼를 높게 쳐들었다가 영동상인에게 열 번째 도끼질을 했다.
꽈릉!
우렁찬 소리와 함께 떨어진 도끼는 눈 깜짝할 사이 영동상인의 코앞에 이르렀다.
영동상인은 멍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이 상황에 저항하려 했다.
한데 바로 그때, 냉랭한 목소리가 천황로 안에 울려 퍼졌다.
“넌 영동이냐? 아니면 노예냐?”
영동은 온몸을 바르르 떨며 무궁무진한 두려움이 어린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넌 대체 누구냐!”
“난 이한제다!”
천황로 밖의 한제는 피로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천황로 안에서 영동상인의 심신에 내리치는 천둥번개가 됐다. 이에 영동상인의 귓가에는 이한제라는 이름만이 계속해서 울렸다.
열 번째 고신의 도끼는 영동상인의 정수리에 떨어져 둥그런 낙인이 되어 그의 미간에 박혔다.
영동상인은 빛을 잃은 눈으로 벌렁 나자빠지더니 혼백의 폭풍에 실려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갔다.
★ ★ ★
한제는 한층 더 피곤해 보였으나 그럼에도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천황로의 힘을 빌리고 몽도라는 도술까지 사용한 끝에 그는 영동상인의 마음을 흔들고 자신의 낙인을 남겼다.
하지만 아직 시간을 더 두고 계속해서 제련해야 했다. 또한 만약을 위해 수많은 금제를 걸어둘 필요도 있었다. 그 모든 조치가 끝나고 나서야 노예가 된 영동을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일단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게 아쉽군.’
한제는 깊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천황로를 가득 채웠던 혼탁한 기운이 곧 빠르게 흩어져 사라지더니 또 다른 세상을 드러냈다. 한제가 따로 봉인한 도령이 있는 세상이었다.
기린 같이 생긴 도령은 끊임없이 낮게 포효했다. 온몸이 화염으로 뒤덮인 녀석은 내상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는 중이었다. 곧 완전히 회복할 것만 같았다.
사실 한제는 도령이 뭔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한데 녀석의 빠른 회복 속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령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부터 알아봐야겠군!”
그는 결인을 그린 두 손을 휘둘렀다. 순간 천황로 안 도령의 앞에 거대한 돌문 하나가 나타났다. 풍의 선계 안에 있던 그 문이었다.
“유월⋯⋯.”
그가 유월을 발휘하자 시간이 빠르게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한제는 거대한 돌문 너머를 통해 세월의 흐름 아래 비밀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도령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한제는 돌연 표정이 급변해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한제는 매우 신중한 표정으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눈에는 여전히 충격이 남아 있었다. 방금 본 것을 믿기는커녕 심지어 그것이 진짜인지 거짓인지조차 구분할 수가 없었다.
‘천도는 이미 죽었다. 천도는 이미 죽었어.’
2천 년 넘는 삶을 살아오는 동안 그런 말을 한두 번 들어본 게 아니었다. 여러 차례 연구하고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 답도 얻지 못했다. 미로처럼 복잡해 어떠한 단서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 끝에 내린 결론은 ‘천도는 정말로 죽어버렸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한제는 복잡한 눈으로 천황로 안에 허상으로 나타난 도령을 바라보았다.
빠르게 회복하던 도령은 한제의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돌리더니 낮게 포효했다. 번득이는 두 눈에서 광기를 읽어낼 수 있었다.
한제의 눈앞에는 방금 전에 본 광경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도령은 유구한 세월을 살아온 존재이기에 유월이라는 신통술 앞에서도 그 과거를 살피기란 불가능했다. 이는 한제도 예측한 바였다. 그렇기에 도령의 과거 전체를 살피는 게 아니라 그저 조금의 단서라도 파악해내는 것이 목표였다.
한데 유월 신통술이 도령을 뒤덮은 순간, 놀라운 변화가 발생했다. 거슬러 올라간 시간이 한제의 한계를 빠르게 초월한 것이다.
한제는 뜻밖의 변화에 매우 놀랐지만 그 흐름을 막지 않고 그대로 흘러가게 두었다.
눈앞에 서서히 첫 번째 장면이 떠올랐다. 매우 눈부신 빛으로 뒤덮인 도령의 모습이었다. 빛이 어찌나 밝은지 그 안의 존재를 제대로 살필 수도 없었다.
그 빛 안에서 도령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갔다. 빛은 모든 것을 뒤덮었으나 한제는 그 너머의 존재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를 찾아낸 순간, 한제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것은 사람 머리통만 한 금색 단약이었다. 눈부신 빛은 빠르게 회전하는 단약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도령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단약 하나만 있었을 뿐이다.
‘도령은 단약의 영혼인가?’
허나 진정으로 한제를 놀라게 한 것은 뒤이어 펼쳐진 광경이었다.
세월이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는 사이 단약은 비틀리고 왜곡되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언제 존재했는지 알 수 없는 우주를 드러냈다.
이 우주는 계내도 계외도 아니었다. 세월 속에 존재하는 듯 오래된 기운을 풍겼고 계내나 계외의 우주에 비하면 노인이라 할만 했다.
이 낯선 우주는 셀 수 없이 많은 수련성으로 가득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홉 개의 타오르는 수련성들이었다.
하늘마저 태워버릴 듯 강렬하게 타오르는 가운데 눈부신 빛을 발하는 그것들은 마치 태양 같았다. 어쩌면 정말로 그 하나하나가 태양인지도 모른다.
망망한 세월 속, 일곱 빛깔 도포를 두른 흐릿한 인영이 나타났다. 그가 검지에 비취색 반지가 하나가 끼워진 오른손을 휘두르자 아홉 개의 태양 중 하나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궤도를 바꿔 사내에게로 달려들었다.
아득한 거리를 단숨에 주파한 태양의 기세와 열기에 우주가 바르르 진동했다. 칠색 도포의 사내는 다시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머지 여덟 개의 태양 역시 진동하면서 그에게 끌려갔다.
칠색 도포의 사내 앞에서는 아홉 개의 태양이 서로 충돌하면서 거대한 굉음이 우주 전체를 무너뜨릴 듯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홉 개의 태양은 서로 섞여들고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면서 점점 작아지더니 결국 하나로 뭉쳐졌다.
칠색 도포의 사내가 일곱 색깔의 숨결을 한 줌 불어넣었다. 숨결이 퍼져 나가자 공간이 맹렬히 수축하더니 머리통만 한 금색 단약이 나타났다. 앞서 본, 도령의 단약이었다.
한제가 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은 아홉 개의 태양으로 형성된 단약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 사내의 정체 때문이기도 했다. 비록 모습은 흐릿했지만 한제는 어렴풋이나마 그의 정체를 파악했다.
탐랑에게서 빼앗은 조각상의 주인공이었다. 다만 조각상의 오른쪽 검지에는 저자와 같은 반지가 없다는 점만 달랐다.
탐랑은 그 조각상을 오래된 무덤에서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제는 도령으로부터 그 조각상 사내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충격적인 상황에 대담한 한제마저 뒷걸음질을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충격에 이어 느껴본 적 없을 정도의 두려움과 불신이 뒤따랐다. 그 두려움과 불신은 칠색 도포의 사내가 오른손으로 단약을 움켜쥐며 내뱉은 말 때문이었다.
“도단(道丹)으로 천도를 사육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빼앗아온 천도를 빠르게 성장시킬 다른 방법을⋯⋯.”
한제의 심신이 크게 요동쳤다. 마음이 흔들리자 유월 역시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와해됐다.
‘천도를 사육한다고!’
칠색 도포의 사내가 내뱉은 혼잣말이 한제의 귓가에서는 천둥소리보다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한참 뒤에야 심신을 애써 가라앉혔다.
‘천도란 무엇인가? 도령은 천도의 먹이인가? 저자는 대체 누구지? 혹시 원고 선황인가?’
한제는 짧은 순간 버거울 정도의 큰 혼란을 느꼈다. 더구나 아무리 고민해봐야 쉬이 답을 알 수 없는 의문들이었다.
‘천도의 피⋯⋯. 천운자는 당시 우의 선계에서 천도의 피를 손에 넣기 위해 다양한 계략을 꾸몄지. 청룡성황은 천도를 피를 삼킨 적이 있다고 했고. 대체 천도란 무엇인가!’
한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고뇌에 빠져들었다.
‘천도는 일종의 법보일 수도 한 알의 단약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한 마리의 흉수인지도 모르지.’
한제의 표정에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의 머릿속에는 나천성역에서 보았던 지하 마수가 떠올랐다. 체내에 또 다른 세상을 가지고 있던, 하나의 계를 담아낼 만큼 거대한 녀석이었다.
이 무렵, 천황로 안의 4품 도령은 이미 절반 이상 회복을 마친 상태였다. 녀석의 몸에서는 점점 혈색이 돌았고 낮은 포효에도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제의 눈에 녀석은 더 이상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었다.
“겨우 단약으로 이루어진 영혼 주제에. 네가 비록 아홉 개의 태양으로 이루어진 존재라 해도 수만 년간 봉인되어 있으면서 이미 그 힘의 반 이상을 소모했겠지. 천도에게 먹히지 않은 것은 운이 좋았을 뿐. 얌전히 내 것이 되어라!”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외쳤고 단약을 바라보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크게 휘둘렀다.
순간 천황로가 격렬하게 진동했고 내부에서 화염을 일으켰다. 혼백으로 이루어진 폭풍이 사방을 휩쓸면서 도령이 회복되는 것을 방해하더니 오히려 제련하기 시작했다.
한제는 앞으로 한 발 나서며 천황로로 녹아들어 직접 손을 썼다.
대황
순식간에 사흘이 지난 그날, 천황로에서 돌연 하얀색의 짙은 기운이 분출됐다. 동시에 약향(藥香)이 뿜어져 나와 지면에 흐르던 붉은 강에 녹아들었다.
하얀 기운에서 튀어나온 한제는 허공에 떠올라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천황로가 흩어지듯 사라져 미간의 반점으로 돌아갔다.
이때 한제 앞에는 머리통 크기의 단약이 떠올라 있었다. 밝은 금빛을 강하게 발산하는 단약은 언뜻 보면 타오르는 태양 같았다.
단약을 응시하던 한제는 그 안에서 흘러넘치는 한 줄기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억지로 삼켰다가는 고신의 육신이라 해도 당장 터져버릴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한제는 숨을 훅 들이마셨다. 한 줄기 실 같은 화염이 단약에서 흘러나와 코를 통해 체내로 녹아들었다.
펑! 펑!
몸 곳곳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왼쪽 눈에서 화염이 폭발적으로 타올랐다. 체내에서도 화염의 힘이 가동됐고 화염의 본원은 한 줄기가 더 늘어났다.
오른쪽 눈의 번개 문양도 타올랐고 덕분에 문양에 남아 있던 불순물들이 제거되었다. 이제야 번개 문양이 완벽해졌다.
‘허상의 화염 다음인 도의 화염을 일으키면 화염의 본원을 완성할 수 있다. 이 단약에는 아직 영혼이 부족하고 제물도 필요하지만 그게 오히려 낫다. 나로서는 천천히 흡수할 수 있으니까.’
한제는 연거푸 숨을 들이마셨고 그러자 체내에 존재하는 화염의 힘이 온몸을 뒤덮으며 그를 각성시켰다.
그는 지면에 흐르는 붉은 강줄기를 바라보았다.
“이곳에 그토록 많은 흉수가 있었던 건 저 붉은 강과 관련이 있겠지. 이곳이 붉은 안개로 가득 찼을 때에도 와해되지 않은 것을 보면 저 강 또한 범상치 않은 존재인 것이 분명해.”
생각을 정리한 한제는 곧장 저물공간에서 수없이 많은 흡혈마수를 소환했다.
사방을 뒤덮은 10만 마리 흡혈마수를 이끄는 것은 당연히 흡혈마수의 왕이었다. 한제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녀석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