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36
녀석은 반갑다는 듯이 다가와 거대한 주둥이를 한제에게 마구 비볐다. 남들이 보면 끔찍한 외모였지만 오직 한제에게만 보이는 그리움과 기쁨의 눈빛이 있었다.
한제 역시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저 아래 붉은 강을 가리켰다.
흡혈마수는 한제의 뜻을 파악하고는 곧장 쉭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흡혈마수 무리에서 한 녀석이 곧장 아래로 돌진했다.
녀석은 붉은 강에 주둥이를 담고 쭉 빨아들였고 그러자마자 몸을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동시에 체내에서 펑, 펑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녀석의 몸은 눈 깜짝할 사이 배로 불어났고 기운 또한 한층 강해졌다.
거대해진 녀석의 몸에서는 붉은빛이 맴돌았다. 고개를 번쩍 쳐든 녀석은 흡혈마수의 왕을 향해 뭔가 말이라도 하듯 쉭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흡혈마수의 왕은 10만 마리의 무리를 이끌고 곧장 지면으로 돌진했다. 곧 대지는 흡혈마수로 가득 뒤덮였다.
붉은 강에 흐르는 피가 흡혈마수에게는 단약 못지않은 듯했다. 덕분에 흡혈마수 대군의 전투력은 적지 않게 높아질 터였다.
흡혈마수들이 피를 흡수하는 동안 한제는 고신과 고요, 고마의 시체 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완전한 죽음을 맞이한 세 구의 시체는 텅 빈 채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완전한 죽음에는 이르지 않은 고마의 몸뚱이를 찾아낼 수 있다면 내 고마 분신을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한제는 시체들 쪽으로 다가가 고마의 몸에 오른손을 얹고는 원력을 불어넣었다.
반 시진 뒤, 지면에 흐르던 붉은 강이 한 방울도 남김없이 사라졌을 때 고신의 등에 있던 1만 척의 암석 조각을 비롯한 이 장소의 모든 것은 한제의 것이 되었다.
영동상인에게서 빼앗은 보랏빛 3급 암석 조각 위로 돌아간 한제는 소매를 휘둘러 각자 몸집이 두 배 이상 커진 10만 마리의 흡혈마수를 주위에 배치했다. 그야말로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
한제는 사방을 뒤덮은 흡혈마수 사이로 드러난 고대 종족들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꿇어앉은 채였다.
잠시 그들을 내려다보던 한제는 몸을 돌리고 암석 조각을 이동시켜 숨겨진 균열을 통해 빠져나갔다.
균열을 빠져나온 순간 한제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짙은 안개였다. 흡혈마수들은 쉭쉭 소리를 내며 안개 속에서 움직였다. 그들의 날갯짓에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한제는 머릿속으로 이곳의 지도를 떠올리며 오래된 무덤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가 지나가는 동안 곳곳에서는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짙은 안개 속에 숨어 있던 수많은 흉수들이 흡혈마수들에게 죽임을 당하며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짙은 피비린내가 안개를 타고 흘렀다.
얼마를 나아갔을까. 한제는 30여 명으로 이루어진 수련자 무리를 마주쳤다. 그중 한 명의 암석 조각만이 2급이었고 나머지는 평범했다.
그들은 수많은 흉수에게 포위된 채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제길, 끝이 없군!”
“뭔가 방법을 찾아야…”
그들이 끝없이 밀려드는 흉수들에 질려가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 안개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꿈틀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흡혈마수가 한 마리 튀어나왔다. 녀석은 험악한 눈으로 1만 마리에 이르는 흉수들과 녀석들에게 둘러싸인 수련자들을 훑어보았다.
수련자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절망이 교차했다.
“저건 또 무슨 흉수지?”
“새로운 흉수가 나타났다!”
그러나 충격에 빠진 그들의 탄성은 곧 뚝 끊겼다. 방금 나타난 녀석의 뒤를 이어 비슷한 흉수 떼가 안개 속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 수가 적어도 수만 마리는 되어 보였다.
한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뒤로 나타난 길이가 3만 척에 이르는 거대한 암석 조각과 그 위에서 백발을 휘날리는 백의의 수련자였다. 그는 냉랭한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3급 암석 조각!”
2급 암석 조각을 차지하고 있던 노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제는 우뚝 멈춰 서더니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를 에워싸고 있던 10만 마리의 흡혈마수가 두 눈을 벌겋게 빛내며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흉수들에게 달려들었다.
이곳의 흉수는 수련자에게도 단약 같은 존재였지만 흡혈마수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흡혈마수들은 폭풍처럼 몰아치며 흉수들을 공격했다. 사방에서 피가 튀었고 비명이 난무했다.
수련자들이 미처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전투는 끝이 났다. 전투 중에 1만 마리 정도의 흡혈마수가 목숨을 잃었지만 살아남은 녀석들은 흉수로부터 얻은 생기 덕에 더욱 강력해진 상태였다.
눈 깜짝할 사이 싸움을 끝낸 흡혈마수들은 험악한 눈으로 수련자들을 응시했다. 한제의 손짓 한 번이면 곧장 그들에게 달려들 터였다.
“너희를 위해 흉수를 처리해주었으니 2급 암석 조각을 내게 넘겨라!”
한제는 싸늘한 눈으로 2급 암석 조각 위의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어두운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던 노인은 이내 말없이 바로 옆의 빈 암석 조각으로 옮겨 가더니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2급 암석 조각이 한제 앞으로 이동했다.
이 암석 조각에 총 312개의 문양이 새겨져 있음을 확인한 한제는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2급 암석 조각이 바르르 진동하더니 그 위에 새겨진 모든 문양이 곧장 한제의 3급 암석 조각으로 옮겨졌다.
문양을 잃은 암석 조각은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펑 하고 무너져 내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제의 암석 조각에 새겨진 문양은 이제 9백 개가 넘었다. 색깔 역시 보라색에서 거의 검은색에 가까워졌다.
“6백 개를 넘겼을 때 3급으로 진화했지. 4급으로 진화하려면 문양이 몇 개나 더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곧 진화할 듯하군.”
목적을 달성한 한제는 수련자들을 내버려둔 채 다시 질주했다. 수련자들을 포위하고 있던 흡혈마수들도 곧장 한제를 둘러싼 채 이동했다.
수련자들은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이 모습을 바라보았다.
“주공, 저 기괴한 흉수들이 많긴 했으나 우리가 전력을 다해 맞섰다면 이겼을 겁니다!”
중년 수련자 하나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저자는 3급 암석 조각을 가지고 있었네. 게다가 저 흉수들은 그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했지. 만약 맞붙었다가는 득보다 실이 컸을 게야.”
2급 암석 조각을 빼앗긴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중년 수련자는 여전히 불만스런 얼굴로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한데 그때,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저 앞에서 가고 있던 한제 역시 몸을 바르르 떨더니 홱 돌아서서 수련자들을 바라보았다. 두 눈은 바짝 졸아들어 있었다. 심지어 흡혈마수들도 덜덜 떨면서 일제히 뒤로 물러나 겁에 질린 듯 쉭쉭 거렸다.
그 순간, 수련자들의 발아래에서 안개가 피어올랐다. 뒤이어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일어난 안개 속에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굵기가 10만 척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팔이 하나 불쑥 나타났다. 마치 저 안개 깊은 곳에 한눈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큰 거인이 숨어 있는 것만 같았다.
안개 밖으로 뻗어 나온 오른팔의 등장에 수련자들은 기겁했지만 미처 피할 새도 없었다.
콰쾅!
굉음과 함께 암석 조각을 모두 무너뜨리고 수련자들을 사로잡은 그 거대한 팔은 곧장 가라앉아 꿈틀거리는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잠시 후, 안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지금 이곳에 도착한 사람이 있다면 서른 명에 이르는 수련자가 이런 식으로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터였다.
한제는 심신이 진동했다. 저 거대한 팔에는 고신의 기운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다만 등장과 퇴장이 너무도 급작스러워 그 기운을 자세히 분석하지 못한 상태였다.
어쨌든 그 팔이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오래된 무덤⋯⋯.”
한제는 고개를 숙여 저 아래 무궁무진한 안개를 바라보았다. 들여다볼수록 기이함과 신비로움은 커져만 갔다.
이내 고개를 든 한제는 안개에 유의하며 다시 지도를 따라 질주했다.
“저 앞에 4품 도령이 있는 봉인된 땅이 나타난다면 지도가 틀리지 않다는 뜻. 더 나아간다면 무덤 깊은 곳으로 향할 수 있다. 봉멸족 여인의 몸에 남겨둔 낙인을 통해 살펴보니 그녀 역시 저 앞에 있군. 그녀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거야. 게다가 두 번이나 되살아난 능력의 비밀을 풀고 나 또한 그런 능력을 얻을 수 있다면⋯⋯?”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더욱 빠르게 나아갔다.
실제로 저 멀리 전방에는 한제의 예상대로 봉인된 땅이 하나 있었다. 거칠고 험악한 그곳은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살기로 가득했고 두 사람이 허공에 뜬 채 요란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백여 명의 수련자들이 싸우고 있었는데 봉멸족 소녀도 있었다. 살기를 풀풀 풍기는 그녀의 곁에는 10여 명이 시체가 되거나 반쯤 죽은 채 쓰러져 있었다.
“묘음! 네가 감히 나의 도령을 앗아가려 해? 나의 본체가 음해(音海)로 가 그곳의 모두를 학살하고 네 본체를 소멸시킬 것이다!”
“대황! 넌 한 줄기 영혼으로 이곳에 왔을 뿐이지만 난 분신으로 와 있다. 그러니 지금 너는 나의 적수가 되지 못해! 네 분혼(分魂)이 죽임을 당한 상태에서도 본체로 음해에 갈 수 있을 것 같으냐? 게다가 성격이 괴팍해 타락의 땅에서 떠나지 못하는 늙은 새를 제외한 누구도 너를 가까이하지 않는 마당에 하물며 이 오래된 무덤에서 누가 너를 돕겠느냐? 네가 무슨 수로 내게서 도령을 앗아갈 수 있느냔 말이다!”
서늘한 눈으로 하늘을 보다
대황상인의 한 줄기 혼과 융합된 노인은 오른손을 휘둘러 비릿한 바람을 일으키는 한편 향불의 힘으로 주위를 에워싸 묘음도존에 대항했다.
두 사람은 모두 강력한 수련자였다. 이곳에는 공열기 초기 수준의 위력을 발휘하는 게 한계였지만 그들의 전투는 여전히 위험하고 격렬했다.
대황상인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가 이 봉인된 땅을 발견하고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겨우 금제를 해제해 봉인된 4품 도령을 확인한 순간, 묘음도존이 나타나 도령을 훔쳐갔다.
묘음도존의 말대로 대황상인은 분혼에 불과했다. 더구나 지금 이 육신은 스스로 제련한 것이 아니었기에 향불의 힘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었다. 분신으로 온 상대에 비해 너무도 불리했다.
만약 보통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를 상대하는 거라면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상대는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였다.
게다가 묘음도존의 말은 사실이라 거만하고 기괴한 대황상인은 벗이라 할 만한 이가 많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백 번이 넘는 공격을 주고받은 그들의 뒤로는 길이가 4만 척에 달하는 검은색 암석 조각이 떠 있었다.
두 사람의 신통술이 충돌함에 따라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아래에서 싸우던 백여 명의 수련자들은 떨리는 심신을 부여잡아야 했다.
그때 짙은 보라색의 3급 암석 조각이 전장으로 접근해왔다. 그 위에 선 한제는 수만 마리의 흡혈마수에 둘러싸인 채 서늘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안개를 헤치고 나아가는 동안 봉인된 땅과의 거리는 점차 좁혀졌다.
몇 시진 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안개로 인해 왜곡된 곳이 나타났다.
‘역시 봉인된 땅이 있었군. 지도에 나타난 대로야. 이렇게 계속 북쪽으로 가면 오래된 무덤 가장자리에 이를 거야!’
한제는 안개의 왜곡으로 봉인된 땅에서 10만 척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추더니 잠시 고민했다.
‘봉멸족 여인도 이곳에 있군. 허나 저 안에는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해.’
그가 손을 휘두르자 오른편에 있던 흡혈마수 중 한 마리가 나섰다.
한제가 신식 한 줄기를 체내에 녹여 넣자 녀석은 안개를 향해 거칠게 달려들어 이내 사라졌다.
그 무렵, 봉인된 땅의 하늘에서는 묘음도존과 대황상인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한 줄기 폭풍이 주위를 맴돌고 있어 그 격렬한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 폭풍만으로도 충격적이었다.
하늘 가장자리에 나타난 흡혈마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 눈을 통해 한제는 순식간에 그곳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데 그때, 돌연 한 줄기 검은 빛이 이곳을 뒤덮은 폭풍에서 튀어나와 흡혈마수에게 달려들었다.
미처 피할 틈도 없이 그 빛에 적중당한 흡혈마수는 순식간에 죽어버렸고 그 안에 깃든 한제의 신식 역시 그대로 소멸했다.
“이곳에는 어떤 외부인도 들어올 수 없다! 썩 꺼져라!”
묘음도존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봉인된 땅 밖, 한제는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서늘한 눈빛을 번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