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37
‘묘음도존! 상대의 온몸에는 비린 독이 가득하군. 그 역시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다. 아직 그가 누군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확실한 건, 땅에서 싸우고 있던 수련자들 틈에 봉멸족 여인이 있다는 것. 한데 묘음도존의 수준은 조금 이상하군. 방금 본 그의 수준은 사묵자와 거의 비슷해 보였다.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고⋯⋯.’
한제는 고민에 잠겼다. 사실 그는 오래된 무덤에 들어와서 보게 된 백의의 여인이 바깥에서 봤을 때보다 한참이나 수준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내심 이곳의 규칙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묘음도존을 본 순간 그 추측에는 확신이 한층 더해졌다.
‘도박을 할 것인가?’
한제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만약 자신의 추측이 틀렸다면 저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태고 5존은 너무도 강력해 그로서는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한제는 결심한 듯 흡혈마수들을 이끌고 봉인된 공간으로 향했다.
‘이곳 오래된 무덤에는 수준에 대한 제약이 반드시 있을 터! 그러지 않고서야 태고 5존이 다른 이가 들어서는 것을 꺼릴 이유가 없으니까! 묘음도존은 두려워하고 있다. 더구나 무시 못 할 적과 맞붙은 중이니 이 기회를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봉멸족 여인은 그의 시녀다. 허나 난 반드시 그녀를 손에 넣어야 해.’
결정을 내린 한제는 눈 깜짝할 사이 왜곡된 안개 속으로 진입했고 흡혈마수들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한편, 봉인된 땅 안에서는 우렁찬 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데 그때, 돌연 하늘에서 흡혈마수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이 요란한 등장은 당연히 단번에 모든 수련자의 시선을 끌었다.
눈 깜짝할 사이 나타난 수많은 흡혈마수는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었다.
뒤이어 녀석들 뒤로 길이가 3만 척에 달하는 짙은 보라색의 암석 조각도 나타났다. 그 위에 선 한제는 더없이 싸늘한 눈으로 사방을 훑었다.
한제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공간이 진동했다. 특히 봉멸족 소녀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싹 가셨고 이어서 짙은 살기를 풍겼다.
“3급 암석 조각이야! 또 다른 엄청난 수준의 수련자인가!”
“저 흉수들은 뭐지? 처음 보는데… 설마 오래된 무덤의 흉수들인가?”
한편 한제는 나타나자마자 곧장 아래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흡혈마수들이 웅웅 소리를 내며 지면의 수련자들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는 폭풍에 휩싸여 교전을 벌이고 있는 묘음도존과 대황상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암석 조각으로부터 벗어나 봉멸족 소녀를 향해 번개처럼 돌진했다.
“주인님, 살려주십시오!”
봉멸족 소녀가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주위에서는 묘음도존 편의 수련자 수십 명이 신통술을 발휘해 소녀를 보호하려 했다.
소녀 또한 물러나는 와중에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렇게 봉멸족의 낙인을 드러낸 그녀는 곧장 한제를 가리키며 외쳤다.
“봉멸족 후손인 나의 혼으로⋯⋯.”
하지만 한제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 어느새 그들 앞에 이르러 있었다.
어느 중년 수련자는 한제가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아님을 알아차리고는 살기를 풀풀 풍기며 앞을 막아섰다.
반면 한제는 덤덤했다. 그는 상대가 달려들자 가볍게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중년 사내의 심신에서는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그가 품은 살기에 허상의 화염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끄아악!”
상대는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났지만 허상의 화염은 더욱 강하게 일어나 타올랐다. 그의 몸은 순식간에 화염으로 뒤덮여 버렸다.
한제는 멈추지 않았다. 눈으로 쫓기도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달려드는 그를 막아서려 했던 일고여덟 명의 수련자는 허상의 화염에 당한 중년 수련자의 모습에 크게 놀라 머뭇거렸다.
한제는 그들의 눈에서 두려움을 읽고는 가볍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이 수련자들 역시 두려움에서 일어난 허상의 화염에 뒤덮였다.
“우리… 부족의 봉인을… 소환하려… 하니⋯⋯.”
봉멸족 소녀는 사력을 다해 뒤로 물러나며 주문을 이어갔으나 두려움에 질린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떨려왔다. 이제 한제와의 거리는 3백 척도 채 되지 않았다.
아직도 두 사람 사이에는 열 명이 넘는 수련자가 남아 있었다. 허나 이들은 하나같이 기겁해 돌진하는 한제를 피하기에 바빴다.
한제는 엄청난 기세로 거리를 좁혀들었다.
그때였다.
“어딜 감히!”
묘음도존의 호통이 울려 퍼졌다.
한데 곧바로 거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자 쾅 하는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뒤이어 묘음도존의 신음이 들려왔다. 아마도 그의 상대가 웃음소리를 통해 묘음도존을 방해한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줄기 검은 빛이 튀어나와 허공을 가르더니 순식간에 한제에게로 돌진해왔다. 향불의 힘 10만 갈래가 응집된 빛이었다.
봉멸족 소녀의 날카로운 목소리도 이어졌다.
“이자의 본원을 봉인해⋯⋯.”
한제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검은 빛은 본 척도 않고 오른쪽 눈을 번득였다. 그러자 그의 뒤로 아홉 갈래의 천둥번개에 휩싸인 번개 문양이 나타났다.
동시에 왼쪽 눈에서 이글거리던 아홉 빛깔의 화염이 그 천둥번개에 녹아들었다.
천둥번개의 본원과 화염의 본원은 그렇게 완벽하게 융합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번개 문양이 되었다. 이 번개 문양은 우렁찬 소리와 함께 검은 빛과 충돌했다.
꽈르릉!
“크윽!”
힘의 제약이 있다 해도 역시 묘음도존은 상상을 넘어서는 강자라, 한제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냈다. 허나 그 반동을 이용해 남은 30척을 순식간에 좁혔고 봉멸족 소녀의 미간을 향해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뻗었다.
“헉!”
소녀는 주문의 마지막 한 구절을 맺지 못한 채 한제의 손가락에 미간을 내어주고 말았다. 동시에 그녀의 입에서는 왈칵 피가 쏟아졌다.
한제는 수많은 금제로 단단히 봉쇄한 뒤 소매를 휘둘러 그녀를 저물공간에 집어넣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모든 일을 마친 한제는 휙 돌아서더니 서늘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백여 명의 수련자는 심신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방금 일어난 일은 그들이 미처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에 끝났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제 인파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한제를 막아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묘음도존의 시녀를 사로잡고 허상의 화염을 일으킨 그의 위력에 잔뜩 겁을 먹은 까닭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은 태고 5존의 일원인 묘음도존의 향불 공격에도 한제가 끄떡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야말로 기겁할 정도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허상의 화염의 수련자일 뿐만 아니라 도존의 공격을 견뎌냈어! 심지어 상처 하나 입지 않다니!”
“방금 저자가 발휘한 신통술은 분명 본원이었어.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는 아니더라도 거의 그 경지에 이른 것이 분명해!”
“저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무렵, 새카맣게 사방을 뒤덮은 흡혈마수들이 지면으로 강림했다. 백여 명의 수련자는 싸움을 멈추고 다급히 뒤로 물러나야 했다.
하늘을 뒤덮은 폭풍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한제의 서늘한 눈이 향한 순간, 폭풍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손에 찢겨나가듯 중간부터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두 개의 인영이 양쪽으로 하나씩 튕기듯 밀려났다.
오른편으로 밀려난 대황상인은 뒤로 밀려나는 와중에도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웃었다.
“크하하! 과연 그 늙은 새의 후배답구나! 감히 태고 5존의 하나인 묘음도존의 눈앞에서 그의 시녀를 사로잡다니. 그 담력, 그 결단력! 훌륭하다! 그 손톱을 선물해준 것이 전혀 후회되지 않는구나! 하하하!”
대황상인은 한제의 비범함을 알아보았다. 만약 한제와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한편, 잘생긴 소년의 모습을 한 묘음도존은 표정이 잔뜩 어두워져 있었다. 한데 그는 허공에 뜬 채 고개를 숙여 한제를 응시하다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차갑게 웃던 그는 시선을 다시 대황상인에게 돌리며 손을 휘둘렀다. 순간 그의 손에서 길이가 1만 척에 달하는 푸른 뱀이 한 마리 나타났다. 이 뱀은 나타나자마자 몸부림을 치며 쉭쉭 소리를 냈다.
“키야아아!”
묘음도존이 손을 꽉 움켜쥐자 푸른 뱀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흐릿해지기 시작했고 이내 무너져 내리더니 머리통 크기의 단약으로 변해버렸다.
짙은 약향(藥香)이 사방으로 퍼졌다. 냄새만 맡아도 온몸의 피가 빠르게 돌 정도로 각성 효과가 있는 약이었다.
“대황, 이 오래된 무덤 안에서 넌 내 적수가 되지 못한다. 여기에서 더 싸워봤자 아무 의미 없어. 허나 이 도령은 내가 훔친 것이니 돌려주지. 그러니 싸움은 멈추고 이제 그만 떠나는 게 어떤가?”
묘음도존의 말에 대황상인의 눈이 번득였다.
한제의 눈빛 역시 서늘하게 빛났다.
묘음도존의 말은 상황을 뒤바꾸는 독과 같았다. 태고 5존은 수만 년을 수련해온 자들이다. 그들은 모두 똑똑하고 꾀가 많은 자들이다. 묘음도존은 한제와 대황상인이 연합할 낌새를 눈치채자마자 몇 마디 말로 그 가능성을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대황상인, 자네가 원하는 것은 이 도령 아니었나? 그렇다면 주도록 하지. 저자가 가진 천역주에 비하면 이깟 도령이야 아무것도 아니니까.’
묘음도존은 생각과는 달리 덤덤한 얼굴로 대황상인의 선택을 기다렸다.
분산
한제는 냉소했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자신은 묘음도존을 마주치자마자 도망쳐야 한다. 허나 한제는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이곳에서 묘음도존은 공열기 초기의 힘 이상은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이길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제대로 맞붙는다면 상대 역시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한제에게는 영동상인이라는 노예가 있지 않은가.
대황상인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령만 넘겨준다면 곧장 떠나겠네.”
그럼에도 묘음도존은 말없이 대황상인을 바라보기만 했다.
“내 향불로 맹세하지. 도령만 받으면 곧장 떠나겠네.”
향불에 의거한 맹세는 세 번째 단계 수련자들이 서로를 믿기 위해 쓰는 약속 방법이었다.
상대의 의심을 간파한 대황상인은 망설임 없이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기이한 문양 하나를 소환해냈다. 이 문양은 곧장 묘음도존을 향해 날아갔고 묘음도존은 그 문양을 잡아챈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들고 있던 단약을 던졌다.
단약을 낚아챈 대황상인은 묘한 눈길로 한제를 힐끗 훑어보더니 곧장 몸을 돌려 떠나갔다.
그가 균열 안으로 사라진 순간, 한제 역시 훌쩍 날아올랐다. 동시에 그의 아래쪽에 번개 문양이 나타나 묘음도존에게 달려들었다.
“흥! 가소로운 것!”
묘음도존은 감정없는 얼굴로 차게 코웃음을 쳤다. 허상의 화염의 수련자와 붙으려면 모든 감정을 단단히 봉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결인을 그린 손을 크게 후려쳤다. 그러자 향불의 힘이 콰쾅 하고 쏟아져 나와 아름다운 자태의 선녀가 됐다. 선녀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한제를 향해 옥으로 만들어진 검을 휘둘렀다.
쏴아아!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검광이 모든 것을 갈라버릴 것처럼 강한 기세로 번개 문양에게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선녀의 검광과 번개 문양은 충돌했다. 검광은 번개 문양에 닿은 순간 수천수만 갈래로 갈라져 공격을 거듭했고 번개 문양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큭!”
한제는 피를 토해내며 표정이 잔뜩 위축된 채 다급히 도망치려 했다.
“어딜 가느냐!”
묘음도존이 몸을 훌쩍 날려 한제를 뒤쫓으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그의 뒤에서 검은 바람이 휙 불어닥치며 하늘을 왜곡시켰다. 그리고 그 왜곡 사이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불쑥 빠져나와 칠흑처럼 검은 손바닥이 됐다. 손바닥은 짙은 비린내와 독기를 발산하며 곧장 묘음도존을 압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