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39
묘음도존의 표정에는 큰 충격이 드러났다. 그 순간, 조각상에서 발산된 파멸적인 힘이 그를 덮쳐들었고 그 힘 안에 자리한 영동상인이 오른손으로 묘음도존의 미간을 꾹 눌렀다. 그러자 미간에 박혀 있던 바늘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갔다. 아쉽게도 아직 완전히 박힌 것은 아니었다.
“크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른 묘음도존의 온몸이 순간 검은색으로 뒤덮였다. 체내에서 폭발하는 독소와 그를 강타한 파멸적인 힘에 거의 죽음에 가까운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묘음도존은 뒤로 나가떨어지면서 피 안개를 분출했다. 동시에 육신을 잃은 대황상인의 분혼이 다급하게 다가와 묘음도존의 체내에 스며들어 억지로 육신을 빼앗았다.
이것이 바로 한제가 마지막을 위해 준비해둔 일격이었다.
영동상인은 노예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소환해놓을 수는 없었다. 이에 결정적인 기회가 다가오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태고 5존의 일인인 묘음도존의 강력함은 오래된 무덤의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도 가공할 정도였다. 만약 그가 한제를 얕잡아보다가 붉은 검에 중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대황상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가장 강력한 신통술을 발휘하지 않았더라면 이 작전은 실패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한제가 세 번째 단계에 반쯤 걸쳐 있는 영동상인을 노예로 삼았다는 사실이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이것이야말로 묘음도존에게는 치명적이었다.
허나 그 와중에도 영동상인은 묘음도존을 공격한 반발력에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고 그가 소환한 조각상도 무너져 내렸다.
한제 역시 두 귀가 웅웅거리는 것을 느끼며 피를 토해냈다. 묘음도존의 날카로운 비명이 체내로 파고들어 원신에 극심한 통증을 안겼고 이에 한제는 피를 뿜으며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억지로 멈춰 서서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서더니 오른손을 맹렬히 휘둘렀다. 그러자 천황로가 수십만 척으로 불어나더니 검게 오염된 바다를 그대로 집어삼켰다.
이미 독이 퍼져 짙은 비린내를 풍기는 바닷물 속 향불의 혼 역시 독으로 가득 뒤덮인 독혼(毒魂)이 된 상태였다. 독혼으로는 향불의 힘을 낼 수가 없었지만 독으로 오염된 바다는 한제에게 있어 희귀한 법보였다. 이에 대황상인이 그것을 거두기 전에 얼른 나선 것이다. 영동상인이 공격에 나서기 전에 묘음도존을 저 멀리 밀어낸 것도 그의 미간에 박힌 세 개의 바늘을 완전히 박아 넣지 않았던 것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비록 대황상인이 자신을 몹시 아끼는 것처럼 말했다고는 하나 쉽게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둘이 손을 잡은 것도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일 뿐이었다.
수만 년을 수련해온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게다가 묘음도존과의 약속도 깨버린 그가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해서 깨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대황상인의 분혼은 묘음도존의 칠규에 스며들며 육신을 잔인하게 탈취했다. 만약 한제가 좀 전에 세 개의 바늘을 완전히 박아 넣었더라면 묘음도존은 조금도 반항하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일말의 생기로 대황상인의 분혼에 힘겹게 맞섰다. 덕분에 시간을 번 한제는 오염된 바다를 천황로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천황로로 제련해 바닷물 전체를 한 방울로 응집시킨다면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에게도 통할 만큼의 힘을 발휘할 것이다.
천황로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계가 존재하지만 한제의 수준으로는 그중 두 개밖에는 열 수가 없었다. 그는 하나의 계에는 독으로 오염된 바다를 다른 하나의 계에는 영동상인을 담아냈다.
이 무렵, 오래된 무덤의 안개 안에서 향불의 세계를 내보이던 거대한 균열은 빠르게 맞물려 거의 사라지려 했다. 허나 그대로 둘 한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대황상인과 손을 잡은 이유가 묘음도존의 향불이었으니까.
사실 그에게는 향불이 필요하지 않았다. 허나 충분한 향불이 있으면 노예가 된 영동상인은 진정한 세 번째 단계에 진입할 수 있을 터였다.
한제는 거의 사라지려 하는 향불의 세계로 향했다. 그 세계에는 독으로 오염되지 않은 보라색 바다가 철썩이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향불이 담겨 있었다. 묘음도존이 수만 년간 모으고 빼앗아온 그것들은 그를 태고 5존의 일원으로 만든 근원이기도 했다.
사방의 안개는 좀 전에 울려 퍼진 요란한 소리에 의해 저 멀리 밀려나 있었고 이미 무너져 내린 봉인된 땅의 수련자들은 숨을 거둔 상태였다.
아래쪽의 안개 바다 역시 조금 전의 충격으로 한참을 더 가라앉아 텅 빈 구멍이 드러났다.
한데 돌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안개 바다 안에서 대량의 안개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엄청난 속도로 솟구쳐 오른 것이다. 특히 그 안개 바다 아래에서 쑥 뻗어 나온 수십만 척 굵기의 거대한 팔에 한제는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한제로서는 두 번째로 보는 팔이었다.
이 거대한 팔은 극강의 기운을 내뿜으며 쫙 펼친 손으로 한제와 묘음도존의 육신을 움켜쥐려는 듯 달려들었다.
한제는 저항할 수 없는 힘에 뒤덮여 온몸이 갈가리 찢겨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매섭게 달려든 팔은 순식간에 묘음도존의 육신에 닿았다. 그러자 묘음도존은 피를 토해냈고 이 기회를 틈타 대황상인은 묘음도존의 영혼을 압박했다. 하지만 그 순간 묘음도존의 육신은 거대한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가 꼼짝하지 못했다.
거대한 손바닥은 뒤이어 곧장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하늘을 떠받친 기둥처럼 거대한 다섯 손가락이 붕괴한 하늘처럼 쏟아져 내렸다.
“쿨럭!”
엄청난 압박감에 한제는 피를 왈칵 토해냈다. 손바닥으로부터 벗어날 공간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잡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게다가 1천 척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향불의 세계로 들어갈 기회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균열은 어느새 1만 척정도 아래로 줄어들어 금방이라도 자취를 감춰버릴 것만 같았다. 이대로 사라져 버리면 한제로서는 목숨을 걸고 묘음도존과 싸운 보람도 사라져버릴 터였다.
구명 신통술인 오래된 비호는 사용한 지 얼마 안 된 상태라 지금은 발휘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신통술을 발휘할 때마다 팔목 보호대에 손상이 가해지기 때문에 언제 망가질지 모른다는 불안함도 있었다.
거대한 손바닥이 눈앞으로 다가온 순간, 한제는 이를 악물고 하늘을 향해 포효했고 몸을 부풀려 눈 깜짝할 사이 수천 척에 달하는 고신이 됐다. 고신이 된 한제는 거대한 손바닥보다도 2천 척 정도 더 컸고 덕분에 빠르게 수축하고 있던 향불의 세계와의 거리도 단숨에 좁힐 수 있었다.
“봉인!”
고신이 된 한제는 낮게 기합을 넣으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두 개의 고식엽이 나타나 1천 척 정도로 줄어든 균열 양쪽에 붙었다. 그러자 빠르게 줄어들던 균열은 그대로 멎어버렸다.
한제는 얼른 오른손을 균열 안으로 집어넣어 수많은 향불의 혼을 끄집어냈다.
그때, 안개에서 뻗어 나온 거대한 팔이 한제의 옆구리를 꽉 움켜쥐었다.
“큭!”
거대한 팔은 한제의 육신을 그대로 으스러뜨리려는 듯 엄청난 힘을 체내로 주입했고 그를 아래쪽으로 잡아당기기도 했다. 묘음도존의 육신을 탈취하는 데 성공한 대황상인과 한제를 안개의 바다로 끌어들이려는 것 같았다.
그 힘은 너무도 강했고 한제에게는 잡고 버틸 공간도 없었다.
향불의 세계에 집어넣었던 오른손이 빠지려던 순간, 한제의 몸은 거대한 팔의 악력에 그대로 끌어당겨졌다.
“크아아! 나를 방해하지 마라!”
한제는 포효하며 고신의 힘을 가동해 고식엽으로 봉인된 균열의 양쪽 끝을 움켜쥐었다. 고신의 엄청난 힘에 균열의 가장자리는 무너지려 했지만 그럼에도 한제는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그의 옆구리를 움켜쥐고 끌어당기는 거대한 팔의 힘에 끔찍한 고통이 몰려왔다. 온몸이 반으로 잘려나갈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심지어 그가 움켜쥔 균열도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찢어진 균열 너머로는 보라색 바닷물이 넘실대는 향불의 세계가 있었다.
한제의 두 눈이 광기로 번들거리는가 싶더니 그는 입을 쩍 벌려 숨을 강하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균열 안 향불의 혼들이 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많은 향불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한제는 끝이 없는 구멍처럼 그 향불의 혼들을 계속해서 들이마셨다. 균열 안의 향불 중 1할 정도를 흡수했을 때, 한제의 몸은 수만 척이나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하지만 한제는 고통을 참아내며 균열의 끝을 더욱 단단히 붙잡았다. 그러자 균열이 아래쪽으로 길게 찢어졌다.
“천황로!”
균열이 더 넓어진 그때, 한제는 재빨리 천황로를 소환해 균열 안으로 반 정도 집어넣었다. 그러자 천황로는 향불의 세계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무궁무진한 향불의 혼을 포함한 보라색 바닷물이 천황로로 쏟아지듯 흘러들었고 그렇게 균열 너머 향불의 혼 중 2할을 더 손에 넣었다. 그것만으로도 천황로는 이미 가득 차서 더 이상 무엇을 담아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한제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고통을 참아내면서까지 균열을 붙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동시에 천황로와 두 개의 고식엽을 거두어들였다.
한제의 몸은 아래로 끌려 내려가 곧 안개의 바다로 사라졌다. 뒤이어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사방에서 몰려든 안개가 거대한 팔이 빠져나온 구멍을 메웠다. 그렇게 안개에 완전히 뒤덮인 공간은 천천히 안정을 찾아갔다.
몇 시진 후, 저 멀리서 스무 명 정도로 이루어진 수련자 무리가 이곳을 스쳐 갔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이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상하군. 지도에는 여기에 봉인된 땅이 하나 있다고 했는데⋯⋯.”
“한참을 찾았는데도 안 보이는 걸 보면 지도가 잘못된 모양이지.”
이들은 고개를 저으며 곧 먼 곳으로 사라졌다.
대황상인
안개 바다 깊은 곳. 거대한 손은 안개를 가르며 끊임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였으나 모든 소리는 안개에 흡수되어 멀리까지 퍼져 나가지는 않았다. 한데 이 팔은 직선이 아니라 약간 비스듬히 가라앉고 있었다.
한제는 옆구리 부근을 거대한 손에 꽉 쥐어진 까닭에 극심한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허나 다행히도 그 손은 더 이상 꽉 움켜쥐지는 않았다. 그저 한제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잡고 있을 뿐이었다.
묘음도존의 육신을 차지하고 원신을 제압한 대황상인은 거대한 손바닥 안에 가부좌를 튼 채 어두운 얼굴로 두 눈을 번득였다.
수십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손바닥에는 세 개의 암석 조각도 있었다. 한제와 묘음도존, 대황상인의 것이었다.
암석 조각들에는 적지 않은 균열이 일어나 있었으나 이 손바닥의 주인은 암석 조각을 파괴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대황상인은 서늘한 눈빛으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손 주위로 맹독을 품은 검은 기운이 맴돈 순간, 대황상인은 차게 코웃음을 치며 거대한 손바닥을 내려치려 했다.
“선배님, 그러지 마십시오!”
느닷없이 자신을 만류하는 한제의 목소리에 대황상인은 미간을 팩 찌푸렸다.
“선배님은 아직 묘음도존의 분신에 완전히 적응하시지 못해 느끼지 못하신 듯한데… 이 팔은 똑바로 내려가고 있는 게 아닙니다.”
한제는 설명을 하는 동안 몸을 줄여 원래의 크기로 돌아왔다. 그러자 거대한 손바닥은 다섯 손가락을 둥글게 모아 주먹을 쥐다시피 했다.
손바닥에 내려선 한제는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며 오른손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강력한 수련자답게 대황상인은 한제의 지적에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이 거대한 팔은 분명 수직이 아니라 약간 비스듬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 자극하면 이 손은 주먹을 꽉 쥘 겁니다. 그럼 저와 선배님⋯⋯.”
한제는 말끝을 흐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고 미간을 문지르던 오른손을 내렸다. 그러는 사이 수십 척 정도를 더 물러나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대황상인은 얼굴을 찡그렸다.
현재 거대한 손의 다섯 손가락이 한데 모이면서 그 사이사이로 적지 않은 공간이 있었다. 뒤로 물러나 대황상인으로부터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른 한제는 상대를 마주한 채 자신의 암석 조각과 묘음도존의 암석 조각을 챙겼다. 얼굴은 약간 창백해져 있었지만 그의 두 눈만은 밝게 번득였다.
“팔이 가라앉는 동선을 관찰해보니 뭔가 예상되는 바가 있습니다. 만약 제 추측이 옳다면 선배님과 제가 이곳을 벗어날 방법은 차차 찾더라도 늦지 않을 겁니다. 한데 제 추측대로라면… 이 거대한 손이 출현한 것은 저희 둘에게 절대 좋은 일은 아닐 겁니다.”
한제가 말을 이으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팔이 수직이 아니라 비스듬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저희를 잡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마도⋯⋯.”
한제는 오른손을 뒤로 비스듬히 뻗어 어느 정도 기울이더니 힘껏 앞으로 뻗어 자신의 몸을 붉은 빛으로 뒤덮었다.
“내던지겠다는 뜻이겠지요!”
한편, 대황상인은 한제가 묘음도존의 암석 조각을 챙기는 것을 저지하지도 못한 채 재빨리 자신의 암석 조각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듯 한제를 훑어보았다.
“그 늙은 새 녀석보다 훨씬 똑똑하구나!”
“똑똑한 것과는 무관합니다. 그저 추측을 했을 뿐이지요.”
한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거대한 손은 어느 정도 기울어졌다가 돌연 진동하기 시작했다. 안개를 가르는 소리도 멈춘 상태라 순간 적막이 찾아왔다.
한제는 신중한 표정으로 집중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그는 잔뜩 긴장한 채 자신의 추측이 적중했는지 그 답을 기다렸다.
대황상인 역시 한제의 추측이 일리 있다고 여겼는지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콰르릉!
고막을 찢어발길 듯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거대한 팔이 저 아래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온 먹먹한 포효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바위를 움켜쥔 거인이 팔을 뒤로 비스듬히 당겼다가 힘껏 내던지려 하는 것처럼 거대한 팔은 우렁찬 소리와 함께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그 강력한 기세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너무도 빠르고 강력한 팔의 움직임에 날카롭게 갈라진 안개가 한제와 대황상인을 덮쳐왔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