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40
호를 그리듯 뻗어 나가던 팔은 어느 순간 다섯 손가락을 펼쳤다. 이에 한제와 대황상인은 거인 손바닥의 돌멩이처럼 오래된 무덤의 깊은 곳으로 내던져졌다.
그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한제와 대황상인은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보다도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만약 한제가 고신의 육신을 갖지 못했더라면 형태가 없는 안개와의 충돌만으로도 이리저리 찢겨졌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한제의 온몸에서는 펑, 펑 하고 피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의 몸은 무사히 오래된 무덤 깊은 곳에 이르렀다. 미리 이런 상황을 예측했기에 거대한 손바닥에서 던져진 순간 원력으로 몸 주위에 방어막을 형성했고 광영순까지 소환한 덕이었다.
심지어 한제는 손바닥에서 던져지기 직전 오른발로 손바닥을 강하게 굴러 대황상인보다도 빠르고 강하게 몸을 날렸다. 덕분에 그는 상대보다 더 빨리 안개 속으로 사라질 수 있었다.
사실 현무족의 술법을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런 수작을 부릴 엄두조차도 낼 수 없었을 터였다. 자칫 그 반동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육신이 파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황상인이나 한제나 상대의 속내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니 차라리 서로 떨어지는 것이 더 나았다.
한제는 만약 대황상인이 거대한 손을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추측을 알려주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는 심지어 상대가 자신과 같은 추측을 한 상황이라 한 발 앞서서 팔을 자극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했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거나 상황을 상세히 분석할 시간도 없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일단 떠나야겠다는 결론은 금방 나왔다.
한편, 대황상인은 한제가 자신보다 빠른 속도로 나아가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더니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다가 언제부터 그리고 있었는지 모를 오른손의 결인을 풀었다.
“신중하고 꾀 많은 녀석이군. 방금까지 녀석을 죽일 기회가 세 번이나 있었는데 녀석은 그 기회를 모두 제거해버렸어. 던져지는 순간 독공을 하려 했는데 그마저도 눈치챈 모양이야!”
대황상인은 허탈하게 웃으며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 무렵, 한제의 몸을 감싼 광영순은 빠른 속도로 안개를 가르는 와중에 무너졌다가 다시 응집되기를 반복했다. 한제가 배치한 금제 방어막 역시 층층이 무너져 내리면서 추진력을 더해주었고 그 힘은 반 시진 후에야 완전히 흩어져 사라졌다.
속도가 점차 느려지면서 전방의 안개도 더 이상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챈 한제는 입가의 피를 닦고는 고개를 돌려 뒤를 살폈다.
잠시 후 한제는 암석 조각을 꺼내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는 묘음도존의 것도 꺼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그 암석 조각을 강하게 후려쳤다. 그러자 묘음도존의 암석 조각 위에 새겨져 있던 숫자 문양이 떨어져 나오더니 한제의 손짓에 따라 그의 암석 조각으로 녹아들었다.
문양을 흡수한 암석 조각이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하고 빛을 번득이면서 부풀다가 4만 척에 이르러서야 멈추었다. 색은 이제 완연한 검은색이 되어 있었다.
4급 암석 조각이었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오른손을 다시 휘둘렀다. 그러자 1백 개에 가까운 문양이 허공에 나타났다. 이 문양들은 무너져 내린 봉인의 땅에서 죽은 수련자들의 것으로 한제는 그것들까지 따로 챙겨놓은 상태였다.
그 문양들 역시 하나하나 녹아들자 한제의 암석 조각은 쾅 소리와 함께 다시 진동하면서 부풀어 올라 눈 깜짝할 사이 5만 척에 이르렀다.
“5급 암석 조각.”
한데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제는 신식과 같은 무언가가 암석 조각에서 자신의 체내로 흘러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경험해본 적 있는 느낌이라 놀라지는 않았다.
그는 가만히 집중해 머릿속에 지도를 떠올렸다. 지도에는 두 부분이 더 드러났는데 이렇게 드러난 총 다섯 부분은 전체 지도의 절반에 달했다.
지도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위치를 찾아낸 한제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기로군!”
거대한 손바닥의 힘을 빌린 덕에 단 반 시진 만에 네 번째 지역을 관통해 다섯 번째 지역, 오래된 무덤의 가장자리가 아닌 내부에 도달했다.
다섯 번째 지도를 보니 지금 있는 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는 숲을 뜻하는 나뭇잎이 그려져 있었다. 한제에게 익숙한 그 나뭇잎은 다름 아닌 고식엽이었다.
‘탐랑은 은시(銀屍)를 놀라게 만든 조각상도 그곳에서 찾았다고 했지.’
★ ★ ★
여섯 번째 지도에 표시된 곳. 이곳을 채운 안개는 짙지 않았지만 수없이 많은 공간의 균열이 있어 자칫하면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갈 듯했다.
이곳에는 길이가 6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암석 조각이 하나 있었다. 그 위에는 수많은 두개골이 쌓여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는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것 같았으나 사실 거대한 두개골 모양의 진을 이룬 상태였다.
피비린내가 짙게 풍기는 이 암석 조각의 중앙에는 한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이 노인의 머리카락은 절반은 검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얀 색이었다. 얼굴 또한 청년과 노인의 모습을 계속해서 왔다 갔다 했는데 미간에는 초승달 낙인이 새겨져 있었다. 한데 이 낙인은 월서족의 것이 아니라 악마의 봉인처럼 보였다.
이 노인은 태고 5존 중 한 명이자 당시 타락의 땅에서 중상을 입고 도망친 구천마존이었다.
가부좌를 튼 구천마존은 두 눈을 부릅뜨며 어두운 빛을 번득였다.
“여섯 번째⋯⋯.”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꼭 비검 두 자루를 비빌 때 나는 소리처럼 거칠고 소름 끼쳤다.
★ ★ ★
네 번째 지도에 표시된 지역에서는 안개가 회오리쳤고 사방에서는 원혼이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련자를 보기는 매우 힘든 이곳에서 길이가 5만 척에 달하는 암석 조각이 안개를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 위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상반신을 벗은 채 매우 강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는 그의 뒤로는 거대한 늑대의 그림자가 떠서 낮게 포효했다.
그의 암석 조각은 말라붙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사내의 몸 곳곳에도 상처가 가득했다. 그는 한제를 쫓아 이곳 오래된 무덤에 들어온 봉천랑족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였다.
암석 조각이 나아갈수록 사내의 표정은 신중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가 돌연 두 눈을 번득이며 결인을 그린 오른손을 아래로 뻗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사내는 한층 더 어두워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또 하나의 5급 암석 조각이 나타났군!”
★ ★ ★
오래된 무덤 깊은 곳. 안개 바다의 상공에는 봉인된 수많은 암석 조각이 표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암석 조각들의 위쪽, 그러니까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는 길이가 5만 척에 이르는 암석 조각 하나가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 암석 조각의 주인은 여인이었다. 하얀 옷을 입고 검은 머리를 휘날리는 그녀의 표정은 매우 냉랭했다.
여인은 돌연 미간을 팩 찌푸렸다가 한참 뒤 서늘한 눈빛을 번득였다.
“누굴까? 혹시 묘음일까?”
여인은 고민에 잠겼다.
흉수
오래된 무덤 안, 더 깊은 곳. 이곳에는 안개가 없었다. 무궁무진한 기류만이 쉭쉭 소리를 내며 흐를 뿐이었다. 육신과 법보의 보호를 산산조각 낼 법한 강력한 기세의 기류였다.
낮은 포효가 어렴풋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키가 수백 척에 달하는 거대한 인영이 나타났다. 그는 똑바로 걷고 있었는데 빠른 속도를 내지는 못했고 기류에 휩쓸릴 때마다 상처가 생겨나며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다.
그의 뒤로는 길이가 7만 척에 이르는 암석 조각이 하나 떠 있었다. 그 위에 가부좌를 튼 분홍색 옷차림의 새초롬한 여인은 심신을 뒤흔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탁삼 오라버니, 조금 더 빨리요. 저로서는 오래된 무덤의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가 없으니 오라버니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니까요. 호호호!”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은 입을 가린 채 웃었다. 아름다운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간지러웠다.
“닥쳐라! 이 요망한 것, 귀찮아 죽겠구나! 한 번만 더 떠든다면⋯⋯.”
탁삼의 포효와도 같은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인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몸까지 떨며 웃는 그녀의 모습은 꼭 한 송이 꽃 같았다.
“전 그렇게 거친 모습이 좋더라고요. 아니면 조금 쉬었다 갈까요? 화를 풀 수 있도록 제가 달래드릴게요. 어떠세요?”
탁삼의 이마에 힘줄이 두드러졌다. 그는 더 이상 그 여인에게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다시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의 모습은 점차 먼 곳으로 사라졌지만 간드러지는 여인의 웃음소리만은 오래도록 흩어지지 않았다.
★ ★ ★
다섯 번째 지도에 표시된 지역에 들어선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암석 조각에 집중시켰던 생각을 거둬들이려 했다.
한데 바로 그때, 그의 암석 조각에 스며든 신식이 돌연 변화를 일으키더니 아주 오래전으로부터 전해져온 목소리처럼 한제의 머릿속에 울렸다.
“5급 암석 조각을 얻었다는 것은 윤회의 문을 열고 나의 유산을 얻을 수 있는 이들 중 한 명이 됐다는 뜻. 암석 조각은 최대 9급에 이를 수 있다. 만약 나와 같은 부족원이라면 윤회의 문으로 들어와 나의 유산을 찾으라. 만약 나와 같은 부족원이 아니라면 가장 먼저 9급 암석 조각을 얻는 이는 나의 지부(地府)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니라. 나는⋯⋯ 엽막이다.”
머릿속에 울렸던 목소리가 사라진 순간, 한제는 자신의 신식이 암석 조각과 하나로 완전히 융합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이 오래된 무덤 안에 자신을 제외한 네 갈래의 흐릿한 기운이 존재하는 것을 똑똑히 감지했다.
“도고 엽막⋯⋯.”
한제의 심신이 바르르 진동했다. 두 번째로 들어보는 그 이름을 처음으로 언급한 것은 1대 주작이었다.
“난 고신의 수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허나 내가 활동했던 때 고신의 강력함은 온 세상을 뒤흔들기에 충분했지. 당시 도고 엽막의 경우, 선존처럼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선존들을 두렵게 만들 정도였다.”
한제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이곳에서 느껴지는 네 갈래의 기운이 5급 또는 그보다 높은 등급의 암석 조각을 가진 이들임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그들도 내 존재를 느꼈겠군. 이 오래된 무덤은 정말 기이한 곳이야. 한데 목소리가 말한 지부란 또 무얼 의미하는 걸까?”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고개를 숙여 암석 조각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오래된 무덤 안에서는 이 암석 조각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에 의하면 다른 사람보다 앞서서, 최대한 빨리 9급 암석 조각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고개를 든 한제는 멀리 떨어진 안개 너머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지도에 따르면 그곳은 기이한 숲이 있는 곳이었다.
“탐랑은 당시 그곳에서 고식엽과 조각상을 발견했다고 했어. 또한 그 조각상에 손을 댄 순간 회오리가 나타났고 그 안에 들어가자 곧장 오래된 무덤에서 빠져나가 계외에 이르게 됐다고 했지. 그 회오리가 아직까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기이한 숲은 살펴볼 가치가 있어!”
결정을 내린 한제는 암석 조각을 통제해 이동하며 몸 상태를 회복하는 데 주력했다. 동시에 일부러 기운을 발산했다. 그 기운에 끌려 다가온 흉수들은 붉은 검에 의해 처리됐고 한제는 녀석들의 생기를 흡수해 부상을 치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