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45
한제는 손에 든 문양을 내려놓았다. 문양은 순식간에 암석 조각에 녹아들었다.
‘허나 외부인들을 죽이는 것만이 숫자 문양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게야. 나로서는 당해낼 수 없는 자들도 있고 시간도 부족하다. 하지만 또 다른 방법이 있지!’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세 종류의 기운을 융합해 미간을 눌러 문양을 생성해냈다가 얼른 거두었다.
시간이 지나자 주위의 안개는 매우 짙어졌고 또 격렬해졌다. 하지만 한제는 줄타기를 하듯 눈치껏 행동했기에 안개는 그를 덮치지는 않았다.
한제는 이런 식으로 몇 시진 만에 수백 개의 숫자 문양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그의 암석 조각은 7급에 이르렀다.
이제 그것은 하나의 대륙에 가까워 보였다. 심지어 사방의 안개도 그 기세에 감히 다가서지 못하고 밀려났다. 동시에 암석 조각에서 번득이는 금빛이 사방의 안개를 한 번 더 밀어냈다. 일부 안개는 금빛에 휩쓸리면서 증발되듯 사라졌다.
한제의 머릿속 지도도 한 부분이 더 열렸다. 허나 한제가 집중한 것은 지도가 아니라 심신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였다.
“지부는 영혼을 위한 곳이다. 내가 평생 죽인 세 선존의 혼이 지부에 갇혀 있다. 그 혼들을 제련해 분신으로 만들어 후대에게 물려줄 생각이었으나 그들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그러니 누구도 이들을 내보내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 혼의 주인 모두 생전에 혁혁한 명성을 날린 자들이니⋯⋯.”
목소리는 곧 흩어졌다.
‘드디어 지부가 무엇인지 알게 됐군.’
더불어 인부에 있다던 인화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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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지도의 지역.
한제의 암석 조각이 7급으로 진화한 순간, 구천마존은 두 눈을 부릅뜨며 벌떡 일어나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막 7급으로 승급한 암석 조각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차였다.
“7급 암석 조각! 대체 누구지? 5급 암석 조각을 만든 자가 나를 포함해서 총 여섯이었다. 한데 얼마 전에 한 명을 흡수해 6급 암석 조각을 만든 자가 벌써 7급에 이르렀단 말인가!”
구천마존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저자도 나처럼 여러 분신을 이용해 수많은 수련자를 죽인 모양이군. 벌써 7급이라⋯⋯. 허나 신경 쓸 것 없겠지. 내 암석 조각은 거의 8급에 이르러 있으니까. 9급 암석 조각을 먼저 만드는 건 나일 것이다!”
그는 다시 가부좌를 틀고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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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지도에 담긴 지역의 또 다른 곳.
거의 7급 암석 조각에 가까워 보이는 암석 조각 하나가 빠른 속도로 전진하고 있었다. 그 위에는 백의의 여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녀 역시 방금 7급 암석 조각이 탄생한 것을 눈치챘지만 그 이유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누구지? 나야 비술로 이곳을 떠도는 흩어진 문양들을 흡수했다지만 저자는 대체 어떻게⋯⋯?’
여인은 미간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한데 바로 그때, 그녀의 암석 조각이 바르르 진동하더니 7급으로 진화하기 시작했고 이에 생각은 뚝 끊겨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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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지도로 그려진 지역.
혼란스러운 기류로 가득한 이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속도가 느려진 탁삼이 분노한 얼굴로 전진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무덤! 빌어먹을 도고! 유산 얻기를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 놓다니! 도고 엽막! 내가 너의 부족원이다! 유산을 넘길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이냐!”
탁삼 뒤편에는 7급 암석 조각이 하나 떠 있었고 그 위에는 요염한 여인이 신중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탁삼을 약 올리지 않았다. 대신 신중한 눈으로 뒤쪽을 돌아보았다.
‘7급 암석 조각이 또 하나⋯⋯. 하지만 9급 암석 조각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있어. 난 이미 아홉 번째 지도에 표시된 곳에 이르렀고 탁삼의 방향 감각이 있으니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지. 지부에 있다는 세 선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처리할 수 있어! 게다가 엽막이 밝히지는 않았지만 지부 안에는 그들만이 아니라 중요한 물건도 하나 있지. 그 물건이라면 늙은이라도 눈을 벌겋게 뜨지 않을 수 없을 거야.’
여인의 눈에 탐욕이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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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는 계속해서 하나하나의 문양을 응집해 암석 조각을 8급으로 진화시키려 했다. 이 방법에 익숙해지면서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마혼병에는 고마가 적지 않았으니 이 정도는 소모해도 무리가 없었다. 고신의 힘 역시 큰 무리는 되지 않았다. 다만 고요의 기운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다행이라면 저물공간에는 오래된 무덤에 들어와 거둔 수많은 고요의 보물이 있다는 점이었다. 고요의 기운을 뽑아내기 위해서라면 한제는 얼마든지 그 법보들을 파괴할 용의가 있었다.
몇 시진 뒤, 한제는 얼마 남지 않은 고요의 보물을 파괴해 그 안에서 고요의 기운을 뽑아냈다.
그렇게 만들어낸 문양을 녹여 넣은 순간, 암석 조각이 바르르 진동하면서 금빛으로 번득였다. 뒤이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8만 척에 이르렀다.
그 순간, 안개가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사방으로 끊임없이 밀려났다. 마치 안개 바다에 해일이 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오래된 무덤 전역에 울려 퍼졌고 오래된 무덤 안의 모든 수련자는 격렬한 안개의 파동을 느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안색이 크게 변했다.
세 번째 지도로 표시된 지역에는 수십 명의 수련자 한 무리가 대량의 흉수들에 둘러싸인 채 사력을 다해 저항하고 있었다. 한데 그때, 갑자기 꿈틀거리기 시작한 안개가 파도처럼 거칠게 움직였다. 그러자 흉수들은 겁에 질린 눈으로 물러나려 했으나 순식간에 안개에 휩쓸려 펑,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수련자들 역시 안개를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파도처럼 몰아치며 스쳐 가는 안개를 보았다. 그 요란한 움직임에 울려 퍼지는 거대한 소리가 그들의 비명마저 삼켰다.
한편, 네 번째 지도로 표시된 지역에서 빠르게 나아가던 3급 암석 조각 위에있는 수련자 하나는 당황한 얼굴로 틈틈이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뒤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세 개의 암석 조각이 추격해오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 안개 바다의 급격한 변화가 달아나던 수련자의 암석 조각을 강타했다. 암석 조각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그 위의 수련자 역시 안개 바다에 휩싸여 사라져 버렸다.
“아니! 저게 무슨 일이지?”
갑작스러운 변화에 그를 뒤쫓던 세 명의 수련자가 화들짝 놀랐다. 허나 후퇴할 틈도 없이 그들도 몰아치는 안개의 파도에 휩싸여 순식간에 소멸하고 말았다.
이런 광경이 오래된 무덤 곳곳에서 일어났다.
반면 요행히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놀랍고도 기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수련자가 죽어가면서 대량의 숫자 문양이 생겨난 것이다. 이에 숫자 문양 강탈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허나 이들 중 대황상인보다 교활한 자는 없었다. 그의 암석 조각은 순식간에 5급으로 진화했다.
한데 5급 암석 조각을 완성한 순간, 다른 암석 조각들의 존재를 느낀 그의 표정이 급변했다.
속도전
구천마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얼굴로 암석 조각을 우뚝 멈춰 세웠다.
“불과 몇 시진 전에 7급이었던 암석 조각이 벌써 8급에 이르다니! 말도 안 돼!”
오래된 무덤에 처음으로 나타난 8급 암석 조각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의 표정은 풀릴 줄을 몰랐다.
“하루도 안 돼서 5급에서 8급까지 진화하다니, 이게 대체⋯⋯.”
그는 본래 자신만만한 사람이었다. 가장 먼저 8급 암석 조각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이 될 거라고 자부했다. 그러니 지금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구천마존은 살기와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고 이내 방향을 휙 틀었다.
“어떤 자인지 봐야겠군. 그자를 죽이고 암석 조각을 빼앗아주지! 그전에 그가 어떻게 이리도 빨리 8급 암석 조각을 만들었는지 알아내겠다 그러면 도고 엽막의 지부는 내 차지가 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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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의 여인 역시 어두운 얼굴로 우뚝 멈춰 섰다가 방향을 틀었다. 목적이야 어쨌든 구천마존과 마찬가지로 방금 8급으로 진화한 암석 조각을 쫓을 생각이었다. 상대가 계속 이런 속도를 유지한다면 몇 시진 안에 9급 암석 조각을 만들어낼 것이 거의 틀림없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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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지도의 지역.
탁삼 뒤의 암석 조각에 앉아 있던 여인의 무표정했던 얼굴에는 지금 짙은 살기가 가득했다.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도 그 방법을 알게 해서는 안 돼!’
말없이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던 그녀는 암석 조각을 통제해 뒤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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