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47
여덟 선비(仙妃) 중 하나와 구천마존은 회오리 안으로 들어선 후 양쪽에서 한제에게 돌진했다.
한제는 서늘한 눈으로 둘을 살피면서도 계속해서 숫자 문양을 만들어냈다. 이 방식이 저들에게 알려져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사실 이 방법은 자신과 탁삼 외에는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직접 문양을 만들다니!’
구천마존은 흠칫 놀랐지만 돌진을 멈추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이나마 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회오리 깊은 곳의 고요를 건드리거나 방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인 듯했다.
한편 분홍 옷의 여인 역시 한제가 문양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다소 놀랐으나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빠르게 달려들었다.
회오리 내부로 들어설수록 움직이기가 힘들었고 자연히 속도는 훨씬 느려졌다. 그럼에도 둘 다 멈추지는 않았다.
이곳에 몰아치는 고요의 기운은 모든 신통술에 영향을 미쳤지만 두 사람은 뛰어난 강자답게 어느새 7천 척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두 사람을 가만히 응시하던 한제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가 재빨리 휘둘렀다. 그러자 마혼병이 곧장 떠오르더니 수많은 고마의 혼을 뿜어냈다. 동시에 한제의 미간에서는 고신의 반점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짙은 고신의 기운을 발산했다. 그 힘이 마혼과 섞여 든 순간, 회오리에 깃든 고요의 기운이 몰려와 융합했다.
한제는 세 종족의 기운이 융합해 만들어진 기이한 힘을 급속도로 수축시켜 온몸에 둘렀다. 그러자 미간뿐만 아니라 몸 곳곳에서 수많은 숫자 문양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구천마존과 분홍 옷의 여인은 흠칫 놀라더니 회오리 속 고요를 깨울지도 모른다는 걱정 따위 집어치우고 속도를 높여 달려들었다.
그 무렵, 대황상인 역시 이곳에 도달해 회오리 안으로 발을 들였다.
뒤이어 백의의 여인도 나타났다.
구천마존과 분홍 옷의 여인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한제가 냉소했다.
“늦었다!”
동시에 그는 온몸을 바르르 떨며 몸에 새겨진 수많은 문양들을 털어냈다. 문양들은 곧장 그의 주위로 떠올랐다.
한제는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두 손을 크게 휘둘렀고 숫자 문양들이 빛을 번득이는 사이 훌쩍 뛰어오르며 자신의 암석 조각을 소환했다.
8급 암석 조각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허공에 떠 있던 문양을 흡수하더니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강력한 금빛을 사방으로 발산했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문양을 흡수한 암석 조각은 진동하면서 부풀어 오르더니 순식간에 9만 척에 이르렀다.
이 암석 조각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조금 전까지 발하던 금빛을 거두었고 더 이상 어떠한 색도 발하지 않았다. 다만 전보다 더욱 격렬하게 진동했을 뿐이다.
한제는 곧장 암석 조각 위에 섰다.
“9급 암석 조각!”
구천마존이 빠드득 이를 갈더니 달려들었다. 분홍 옷의 여인 역시 전과 달리 다소 표독스런 얼굴로 돌진해왔다. 대황상인 또한 탐욕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냅다 몸을 날렸다. 오직 백의의 여인만이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한데 그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소리를 제압할 만한 요란한 쉭 소리가 오래된 무덤 안에 울려 퍼진 것이다. 아주 멀리서 시작된 것 같던 소리는 눈 깜짝할 사이 바로 귓가에서 울리는 것처럼 가까워졌다.
★ ★ ★
아홉 번째 지도의 지역. 고함을 지르며 나아가던 탁삼이 돌연 급변한 얼굴로 우뚝 멈춰서더니 재빨리 옆으로 물러섰다.
콰쾅!
그가 물러서기가 무섭게 우렁찬 소리와 함께 거대한 손 하나가 앞에서 불쑥 나타났다. 재빨리 피하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탁삼을 치고 지나갔을 터였다.
허나 직접적인 타격은 피했을지 몰라도 그 손의 기세에 휩쓸리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강력한 그의 육신도 그 강력한 기세에 나가떨어졌고 피를 토하며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지금껏 거리낄 것 없이 오만하게 지내온 그조차도 경악한 눈으로 저 멀리 사라져가는 거대한 손을 응시했다.
손은 여덟 번째 지역으로 향했다.
같은 시각, 첫 번째 지도의 지역에서도 거대한 손이 불쑥 빠져나왔다. 그곳에 있던 수십 명의 수련자는 안개 속을 질주하며 도주했지만 거대한 손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눈 깜짝할 사이 그들의 바로 뒤에 이르렀다.
“끄아아!”
여기저기서 끔찍한 비명이 울렸으나 거대한 손이 대기를 가르는 요란한 소리에 묻혔고 수련자들은 물론 그들의 암석 조각조차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 손은 아홉 번째 지도의 지역에서 나타난 손보다 열 배는 빨랐는데 세 번째 단계 공현기 수준의 수련자나 낼 법한 속도였다.
거대한 손은 눈 깜짝할 사이 오래된 무덤을 가로질러 일곱 번째 지도의 지역에 이르렀다. 물론 이곳의 수련자들 또한 거대한 손에 휩쓸려 모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심지어 4급 암석 조각을 완성한 수련자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이렇듯 9급 암석 조각의 등장으로 인해 이곳은 종말이라도 온 것만 같았다.
굵기만 해도 수십만 척에 달하는 두 손은 오래된 무덤 양 끝에서 나타나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곧장 고요의 회오리에 도달했다.
양쪽에서 달려든 손이 닿은 순간, 회오리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진동하며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두 손은 이어서 그 안에 있던 사람들과 9급 암석 조각에 이르렀다.
미리 멀찍이 피해 있던 백의의 여인은 깜짝 놀라 몸을 바르르 떨었고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도 강력한 기세에 휩쓸린 것만으로도 피를 한 움큼이나 토해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녀보다 처지가 좋지 못했던 대황상인은 가장 먼저 거대한 손에 휩쓸려 펑 하고 피범벅의 살덩이로 무너졌다. 묘음도존에게서 빼앗은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의 육신도 별 소용이 없었다.
“크아앗!”
다급한 비명과 함께 무너진 육신에서 분혼을 빼낸 대황상인은 곧장 달아나려 했다. 허나 거대한 손이 일으킨 폭풍 같은 충격에 휩쓸려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설명은 장황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거대한 손은 구천마존과 분홍 옷의 여인을 지나 9급 암석 조각으로 향했다.
순간 구천마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청년과 노인의 모습 사이를 수시로 오가던 그의 얼굴은 완전히 노인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는 결인을 그린 두 손을 휘두르며 거대한 손을 막아서려 했다.
쾅!
짧은 굉음과 함께 구천마존은 피를 토했고 그의 모습은 노인에서 중년으로 이어서 청년으로 마지막에는 소년으로 변했다.
그 순간, 그가 오래된 무덤 곳곳에 분산시켜 놓았던 여러 분신이 하나둘 무너져 내렸고 이를 통해 구천마존은 겨우 한 줄기 생기를 붙잡았다.
소년이 된 구천마존의 몸은 기이하게도 투명해지면서 거대한 손을 그대로 관통해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났다. 입가로 피를 흘리며 곧장 몸을 날려 멀리 피한 그의 눈에는 두려움과 경악이 가득했다.
분홍 옷의 여인 역시 표정이 크게 변한 상태였다. 그녀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분홍색 안개를 한 움큼 분출해 그 안에서 나타난 검은색 끈을 꽉 움켜쥐어 온몸을 감쌌다. 동시에 거대한 손이 달려든 순간 옆으로 수만 척을 물러났지만 손가락 끝에 살짝 닿자 피를 토해냈다.
그때, 반대편에서 달려든 또 하나의 손은 곧장 고요의 회오리를 휩쓸고 회오리 깊은 곳, 고요가 잠들어 있던 혼탁한 기운을 스치면서 그 위에 드리운 봉인을 파괴했다.
그 순간, 회오리 안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고요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왼쪽 눈동자에서는 여덟 개 하고도 반 개 정도 되는 반점이 빠르게 회전했다.
“크아아아!”
고요는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포효했다. 어느덧 흐릿해진 그의 몸을 그대로 관통한 거대한 손은 다시 9급 암석 조각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 개의 거대한 손은 거의 동시에 9급 암석 조각 양쪽에 충돌했다.
콰쾅!
암석 조각은 바르르 진동하면서 수많은 돌조각으로 무너져 내렸다.
세상을 산산조각 낼 듯했던 두 손은 한제를 사이에 두고 깍지를 끼듯 합쳐졌다. 뒤이어 허공을 찢어발길 것처럼 벌어졌는데 그 사이에는 거대한 균열이 하나 나타나 있었다.
균열 너머로는 기이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한편, 한제는 얼굴만 다소 창백했을 뿐 어떤 피해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허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심신이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9급 암석 조각이 불러온 변화
오래된 무덤은 격렬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균열이 벌어진 순간, 오래된 무덤 안의 모든 안개가 전부 들끓듯이 부글부글 일어나더니 꿈틀거리며 사방으로 흘렀다.
내부의 변화는 외부의 변화를 야기해, 오래된 무덤 밖 태고 성신에서는 사라졌던 오래된 무덤의 균열이 번득이며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출현에 주위를 뒤덮고 있던 무궁무진한 안개 또한 오래된 무덤 안의 안개처럼 꿈틀거렸다.
안개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동시에 안개는 엄청난 흡입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순식간에 균열로 빨려 들어갔다.
같은 시각, 오래된 무덤에서 멀지 않은 곳의 말라 죽은 수련성. 분혼이 무너져 내린 대황상인의 본체가 가부좌를 틀고 있다가 창백한 얼굴로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에서는 무정한 빛이 번득였다.
그는 평생 수련을 해오는 동안 약속과 맹세를 저버리기 일쑤였다. 허나 그의 그런 면모를 아는 자는 적지 않았다. 대부분의 그의 손에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이기에 2대 주작과의 친분도 이득 앞에서는 얼마든지 저버릴 수 있었다. 수만 년을 살아오면서 친한 벗 하나 없는 건 모두 이런 각박하고 무정한 성격 때문이다.
그는 싸늘한 눈으로 몸을 훌쩍 날려 눈 깜짝할 사이 빠른 속도로 안개를 흡수하고 있는 오래된 무덤의 균열에 이르렀다.
안개 속에서 냉랭한 눈으로 한참이나 균열을 응시한 끝에 그의 눈에 결단의 빛이 떠올랐다.
‘역시 진입에 대한 제한이 사라졌군.’
이어서 그는 곧장 균열로 진입했다.
한편, 균열로부터 멀리 떨어진, 보라색 바다가 있는 곳. 파도가 강하게 몰아치는 바다의 바닥에는 가부좌를 튼 묘음도존이 있었다.
‘대황상인! 감히 내 분신을 앗아가고 이한제라는 녀석과 함께 내 계획을 망쳐놨겠다! 이제 오래된 무덤에는 진입에 대한 제한이 사라졌으니 네놈들은 나를 화나게 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는 이를 갈며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파도가 크게 몰아치면서 파도로 이루어진 듯한 거대한 문이 하나 나타났다.
노인은 문으로 들어서더니 오래된 무덤의 균열 앞에 나타났다. 그 순간 전방에서 왜곡이 일며 아홉 조각으로 갈라지더니 허상의 세계들이 드러났고 그곳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오래된 기운을 풍기는 중년 사내였다.
약간 거무스름한 얼굴의 중년 사내가 번득이는 눈으로 묘음도존을 훑어보았다.
“몇 만 년 동안 자해(紫海)를 떠난 적이 없던 묘음도존도 이 흙탕물에 뛰어들려 하다니, 뜻밖이군.”
“구천마존 자네가 왔는데 나라고 오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묘음도존은 거친 목소리로 답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안개를 빨아들이는 균열로 시선을 돌렸다.
“대황상인은 이미 들어갔군.”
“함정일 가능성은 없을까?”
묘음도준의 말에 구천마존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건 아닐 거야. 오래된 무덤에 함정을 설치할 수 있는 자라면 굳이 이런 짓을 벌일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두 사람은 다시 눈을 맞추고는 무언가 각오를 다지는 듯했다.
“대황상인을 봉인해야 하네!”
“내가 돕지. 대신 그에게서 얻어낸 물건의 6할은 내가 갖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