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49
주진의 두 무릎이 땅에 닿았다. 그는 영동상인과 마찬가지로 덜덜 떨면서 감히 고개를 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한제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눈빛은 영동과 주진을 넘어 저 멀리로 향해 있었다. 그의 눈에는 대 주위의 모든 수련자들이 마치 수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처럼 보였다.
이내 한제의 심신과 그의 눈에 어떤 화면들이 나타났다.
그중 한 화면에서는 누군가가 우산을 들어 올렸다. 우산을 든 중년 문인은 달려드는 수만 명의 수련자들과 의자 위에 앉은 존재를 묵묵히 바라보다가 이내 왼손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콰쾅!
한제의 눈에 비친 대 주위의 세상이 흔들렸고 수만 명의 수련자들이 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뒤로는 그보다 열 배는 더 많은 수련자들이 기합을 내지르며 돌진해왔다. 죽음도 불사하는 모습이었다.
그보다 더 멀리 떨어진 뒤로는 거대한 전차가 온 세상을 파멸시킬 듯 강렬한 빛줄기들을 발산하면 요란하게 굴러왔다.
그때, 궁전 내부의 허공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더니 키가 1만 척에 달하는 고족 백여 명이 강림해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며 돌격했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면에 내려선 고족들은 신통술과 강력한 육신의 힘, 법보 등 가능한 모든 공격 수단으로 수십만 명의 수련자들을 상대로 싸워나갔다.
모든 것이 너무도 생생해 한제는 마치 당시로 돌아가 직접 전쟁을 목격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당시 이 의자에 앉아 있었을 누군가처럼 조용히 앉아 냉랭한 눈으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자신감과 거친 기세가 체내에 계속해서 쌓였다가 폭발했고 이제 한제는 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뒤이어 거대한 소리와 함께 상공의 균열 속에서 거대한 인영 여덟 개가 나타났다.
쾅! 쾅!
거인들의 등장은 이 공간을 또 한 번 뒤흔들었다.
여덟 명의 거인은 강력한 육신의 힘을 이용해 두 팔을 휘둘렀고 수많은 수련자가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심지어 육신이 그대로 무너져 버리기도 했다.
한데 여덟 거인이 나타난 순간 저 멀리서 우산을 들고 있던 수련자가 뭔가를 낮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세상이 왜곡되기 시작하더니 거울처럼 변해갔다.
“캬아아아!”
거울 안에서는 포효가 울려 퍼지며 몸길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용 여덟 마리가 튀어나와 하늘을 맴돌다가 대를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다. 그 어떤 방어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릴 법한 기세였다.
한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허상으로 나타난 장면이 너무도 사실적이기 때문일 수도 어쩌면 그가 빌려와 체내에 녹여낸 기세와 위력이 그를 당시 이 의자에 앉아 있던 자로 만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통제를 받은 한제는 팔을 들어 올리더니 주먹을 뻗었다. 그 순간 허상의 화면 속 세상에는 콰쾅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화면 속 의자 전방으로 맹렬히 달려들던 수천 명의 수련자는 몸을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신진(神震), 병사들! 위치로!”
한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피를 토해낸 수련자들의 몸이 기이하게 왜곡됐다. 마치 회오리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그들은 곧 네 줄의 대열을 이루었다.
이런 일이 사방에서 똑같이 이루어졌다.
짙은 죽음의 기운이 사방을 뒤덮었다. 대열을 이룬 모든 수련자들은 한제의 주먹질에 내장과 원신, 그리고 모든 생기를 파괴당한 상태였다.
한제는 주먹을 허공에 든 채 손을 쫙 펴더니 크게 휘둘렀다.
“요술, 봉화성산(烽火成山)!”
그러자 대열을 이룬 수만 명의 정수리에서 순간 화염이 일어났다. 활활 타오르며 연기를 피워 올리는 녹색 화염은 멀리서 보면 마치 봉화대에 붙은 불 같았다.
한제의 손짓에 따라 연기는 돌진하던 수천 명의 수련자를 휩쓸며 대 주위로 여덟 개의 산을 형성했다.
연기의 산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내부에서부터 거대한 흡입력을 발산했다.
너무도 강력해 저항할 수 없는 흡입력은 수십만 명의 수련자들을 끌어당겼다. 그들은 아무리 반항을 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크아악!”
“끄아아!”
찢어질 듯한 절규와 비명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고 여덟 개의 연기 산에 삼켜진 수십만 명의 수련자는 시체의 산을 이루었다.
한 번의 주먹질, 한 번의 손짓을 마친 한제는 이어서 검지를 뻗어 전방을 가리켰다.
“마도 생사역동(生死逆動)!”
낯선 말이 한제의 입에서 흘러나온 순간, 수십만 명의 수련자 뒤에서 거대한 전차들이 일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한제의 손가락 끝에서 발산된 파문이 확산되며 전차들이 품고 있던 생기를 사기로 만들어 버렸고 전진하던 전차는 우뚝 뭄춰 섰다.
파문은 계속해서 퍼져 나가면서 대를 향해 돌진하던 여덟 마리의 용에게까지 미쳤다. 그러자 용들은 조금도 저항하지 못하고 바르르 경련을 일으키더니 생기가 순식간에 사기(死氣)로 변해 버렸다.
생과 사의 역전, 삶과 죽음의 전환이 찰나의 순간 일어난 것이다.
퍼져 나가는 파문에 닿은 모든 수련자도 여덟 마리의 용도 파문이 닿기 직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허공에 떠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고도 무선(無仙)!”
한제는 중얼거리며 펼친 손바닥으로 허공을 후려쳤다. 그러자 미간에서 고신의 반점이 급속도로 회전하면서 여섯 개에서 아홉 개로 변했고 그의 두 눈에서 나타난 열두 개의 반점도 동시에 증폭해 열여덟 개로 변했다.
9성급 고신!
9성급 고요!
9성급 고마!
세 종족의 힘이 찰나의 순간 융합되면서 도고의 힘이 되어 한제의 오른손에 녹아들었다. 이어서 그의 손이 전방을 후려치자 앞에는 거대한 허상이 나타났다.
허상으로 나타난 것은 하늘을 떠받칠 듯 거대한 머리로 온 우주의 수명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기운을 발산했다. 다만 약간 흐릿해 그 생김새를 또렷하게 파악하기는 힘든 상태였다.
거대한 머리는 입을 벌려 한 줄기 기운을 뿜어냈다. 이 기운은 전방을 휩쓸면서 죽음을 맞이한 수련자들을 돌로 만들어 버렸다.
찰나의 순간, 석대 맞은편에서 우산을 들고 있던 중년 사내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우산을 펼쳤다. 그러더니 그 안에서 일곱 색깔의 빛을 뿜어냈다. 이렇게 뿜어져 나온 빛들은 한데 합쳐져 칠색(七色)의 태양을 형성하더니 일곱 빛깔을 띤 빛을 사방으로 발산했다.
도고의 힘이 이 일곱 빛깔에 대항하면서 온 세상이 바르르 흔들렸다.
한데 바로 그때, 돌연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르릉!
우산을 들고 있던 중년 문인의 뒤편에서 내내 눈을 감고 있던 수련자의 손에 아홉 개의 봉인으로 번득이는 거대한 활이 나타나 있었다. 뼈로 만들어진 듯한 활의 머리에는 달과 해가 새겨져 있었고 끝에는 별이 찍혀 있었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활의 현에서는 매우 오래된 기운이 풍겼다.
이 흑의의 수련자는 화살도 없이 활을 당겼다. 한데 현이 힘껏 당겨지자 아홉 개의 깃털이 달린 화살이 어느덧 시위에 걸쳐져 있었다.
화살대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수많은 수련자를 죽인 이 화살은 말하자면 짙은 살기가 응집된 존재였다.
흑의의 수련자는 당겼던 활시위를 놓은 뒤에야 그때까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쐐애액!
화살이 형용할 수 없는 기세를 일으키며 쏘아져 나갔다. 온 세상을 붕괴시킬 정도의 빠른 돌진에 지면에는 거대한 균열이 생겨났다.
콰르릉!
화살이 쏘아져 나가며 일으킨 강력한 바람이 모든 소리를 압도했다.
화살은 우산을 든 남자의 일곱 빛깔을 관통하고 도고술로 소환된 머리가 뿜어낸 파멸적인 기운마저 관통했다. 세상 그 무엇도 이 화살을 막을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콰쾅!
굉음과 함께 공기를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살은 도고의 숨을 파고들면서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그 기운을 뚫고 나와 허상으로 나타난 머리의 왼쪽 눈에 박혔다. 그러고도 멈추지 않고 결국 왼쪽 눈을 꿴 채로 뒤통수를 통해 빠져나왔다. 화살촉 끝에 박힌, 피범벅이 된 왼쪽 눈이 섬뜩했다.
화살은 그대로 궁전을 뚫고 허공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계승 (2)
“크윽!”
끔찍한 고통이 한제의 심신에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기억마저 파괴할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한제는 돌연 피눈물을 흘렸고 그의 왼쪽 눈 안에 빌려놓았던 고요의 반점 아홉 개도 무너져 내렸다.
“이광은 내 반평생의 기억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왼쪽 눈을 쏘았지.”
한제는 머릿속에 울렸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지금의 그는 극심한 고통 아래 스스로를 잊고 도고 엽막이 된 상태였다.
“내 눈을 내놔라!”
한제의 우렁찬 포효가 메아리치는 사이 거대한 머리가 뿜어냈던 기운은 우산을 든 남자가 쏘아 보낸 일곱 빛깔의 빛을 무너뜨렸다. 그러자 우산을 든 남자는 피를 토했고 순식간에 모든 생기를 잃은 채 굳어버렸다. 그가 들고 있던 우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기운은 중년 문인을 지나 화살을 쏘았던 수련자를 덮쳐들었다. 말없이 두 눈을 감고 있던 그 수련자 역시 그 상태로 돌이 되어버렸다.
“난 너와의 약속을 지켰다.”
눈을 감은 순간 그가 내뱉은 처음이자 마지막 말이었다.
한제는 몰랐지만 계승은 그가 의자에 앉은 순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시간이 무심히 흐르는 동안 한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화면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그 안에서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주위의 모든 수련자들은 침묵을 지켰고 그들의 정수리에서 일어난 화염만이 계속해서 타오르고 있었다.
어느 날, 어디에서 왔을지 모를 일곱 빛깔 도포를 입은 사람이 이 궁전에 나타났다. 그는 우산을 든 중년 문인의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침묵했다.
“내 평생 거둔 세 아이 중 너는 가장…”
사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중년 문인을 스쳐 가더니 이번에는 손에 활을 쥔 채 굳어버린 이광 앞으로 다가갔다.
“너와의 약속은 지킬 것이다. 이 활은 천도가 다 자란 뒤 너를 대신해 네 종파에 보내주마.”
수련자는 이광의 손에서 활을 거두었다. 한데 그 순간, 그는 안색이 급변하더니 곧장 몸을 날렸다. 비할 데 없이 빠른 속도였다.
“고도 무선!”
한제의 머릿속에서 펼쳐진 화면 별안간 거친 목소리가 나타났다. 그 순간, 한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죽지 않은 건가!”
칠색(七色) 옷의 수련자는 온몸을 일곱 색깔의 빛으로 에워싼 채 뒤로 물러나면서 한 움큼 피를 토하고는 한 걸음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한제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화면도 흩어져 사라졌다. 몸을 바르르 떤 그는 차차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완전히 깨어났을 때에는 체내에 빌려온 기세가 급속도로 솟구쳐 올랐다. 그의 체내에서 발산되어 다시 의자로 돌아가려는 듯했다.
그 순간 의자 안에서는 비할 데 없이 강력한 힘이 폭발했다. 이 의자에는 그 옛날의 주인 외에는 누구도 앉을 자격이 없다는 듯이 한제를 밀어내려 했다.
처음 한제가 이곳에 왔을 때, 의자의 의지는 깨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체내에 고요와 고마의 기운이 녹아들고 머릿속에 화면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면서 한제가 정신을 차릴 때 의자의 의지도 깨어난 듯했다.
의자의 의지는 한제를 밀어낼 뿐만 아니라 체내에 녹아들었던 기운까지 회수하려 했다.
한제는 무의식적으로 체내의 기운을 묶어두어 흘러나가지 않게 했다. 이에 그와 의자 사이에는 강력한 충돌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