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56
노부자를 가장 오랫동안 따른 염뇌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 무렵, 열운자를 비롯한 이들의 눈빛도 한층 신중해져 있었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불길함을 느낀 것이다. 그들에게 노부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전설에나 존재할 법한 인물이었다. 한데 그런 노부자가 저토록 놀란 모습을 보이자 불길함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한데 노부자가 설명을 하기도 전에 이들 역시 심신이 크게 진동했다.
강력한 위압감이 덮쳐 든 순간, 이들은 표정이 급변했고 심신이 무너지는 듯한 착각까지 하게 됐다.
다행히 이 위압감은 순식간에 스쳐갔다. 허나 그 찰나의 순간에 느낀 위압감만으로도 이들은 얼굴이 창백해진 상태였다. 그제야 그들은 노부자가 그토록 놀란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노부자는 어두워진 얼굴로 눈을 번득였다. 그는 워낙 신중하고 조심스런 자였다. 딱 한 번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다가 탁삼에게 당해 큰 고생을 한 이후로는 더욱 그런 성격이 됐다. 특히 방금 느낀 상대의 강한 위압감은 놀라울 정도로 직접 나서기는 꺼려졌다.
“너희 넷, 나천환경(羅天幻鏡)을 설치하라. 저자가 누군지 봐야겠구나. 나천성역에는 무슨 일로 왔는지 알아봐야지.”
네 노인은 공손하게 허리 숙여 답하고는 떨리는 심신을 안은 채 곧장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그곳에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똑같은 신통술을 발휘했다. 노부자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끊임없이 수련해온 그들은 이 신통술에 통달해 있었다.
그들이 그려대는 결인 아래 하얀 빛 한 줄기가 번득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네 사람의 중앙에서 나타난 이 빛은 갈수록 밝아지다가 잠시 후 수면과 같은 하얀 거울로 변했다. 거울 면은 흐릿했고 수많은 왜곡이 있었다.
노부자는 눈을 번득이며 결인을 그린 오른손 검지로 수면과 같은 거울 면을 가리켰다. 그러자 거울 면에서 일어나던 파문이 우뚝 멈추더니 잔잔하게 가라앉아 어딘가를 비추었다. 그 안에서는 백의에 백발을 기른 한 사람이 걷고 있었다.
★ ★ ★
한편, 한제는 나천성역을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싼 모든 것이 매우 낯익었다. 나천성역은 연맹성역과는 분명 달랐지만 한제는 이곳에서도 꽤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적지 않은 자취를 남겼다.
‘그들은 지금도 그곳에 있을까?’
당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떠올린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데 이내 그의 미간이 구겨지더니 고개를 들어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보았고 오른쪽 눈동자에서 번개 문양이 번득였다.
“꺼져라!”
그 한마디에 오른쪽 눈에서 번개 문양이 튀어나오더니 콰르릉 소리와 함께 어딘가로 향했다.
노부자는 그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허상의 거울 면에서는 전광이 번득이며 튀어나와 사방을 휩쓸었다.
콰르릉!
우렁찬 천둥소리와 강력한 기세에 허상의 거울 면이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노부자는 화들짝 놀라며 소매를 휘둘러 이 충격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허나 무궁무진한 천둥번개는 일제히 하늘로 솟구쳐 끊임없이 울리면서 사방의 모든 수련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온 우주를 채운 듯한 천둥번개를 볼 수 있었다.
“큭!”
염뇌자는 피를 토하며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그는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이한제! 저자는 이한제야!’
백의에 백발 사내는 염뇌자로서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자였다.
다른 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모두 충격에 피를 토하며 밀려났고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한제가 그 짧은 시간에 이토록 강해졌다는 사실과 함께 자신이 한제에게 저지른 잘못을 떠올리고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열운자는 마지막으로 주작성종에서 마주쳤을 때 한제에게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혈신자는 자신의 추격에 도망치다가 청수 덕에 가까스로 살아난 자가 이토록 강력한 위압감을 발휘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향운동은 특히 창백해져 있었다. 이들 중 수준이 가장 낮은 한제가 발산한 위압감에 휩쓸리면서 도심에 한 줄기 깊은 균열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상대가 사랑해 마지않는 아내를 되살려주겠다는 말로 한제를 속인 일, 자신의 선조가 그의 생기를 억지로 빨아들였던 기억을 떠올렸다. 저자는 자신에게 더없이 큰 원한을 가졌을 것이 분명했다.
“선배님, 저자는 분명 이한제인데 수준이⋯⋯.”
향운동이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노부자에게 말했다.
노부자는 침중한 안색으로 멀리까지 퍼져 나가는 천둥번개를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이한제⋯⋯ 당시 연맹성역 내 고신의 땅에서 본 적이 있지. 저자는 아직 세 번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허나 나는 저자와 싸워 이길 자신이 없구나. 너희와 저자 사이의 일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겠다. 이곳에 머문다면 너희는 안전할 것이다!”
네 노인은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네 노인의 표정은 제각기 달랐다.
염뇌자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자신이 한제에게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음을 알게 됐다. 아니, 오히려 작게나마 도움을 주기까지 했다. 그러니 괜히 겁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전가의 선조인 열운자 또한 수차례 표정이 변하긴 했으나 시간이 흐르자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갔다.
반면 한제에게 원한을 산 혈신자와 향운동은 달랐다.
잠시 후, 향운동은 노부자를 향해 공손히 포권을 하더니 복잡한 얼굴로 다급히 떠나갔다. 이 소식을 하루 빨리 가문에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나천성역 전역의 수호자라 할 수 있는 노부자조차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는 자를 향가가 어찌 감당하겠는가! 향운동은 생각할수록 두려워졌다.
한편 혈신자는 잠시 고민한 끝에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로서는 이곳을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제는 반짝이는 별로 가득한 상공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조금 전 보이지 않는 파동 아래 누군가가 도술을 발휘해 자신을 옭아매려 했던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보아하니 나의 귀환이 많은 자의 주의를 끈 모양이군. 좋았어.”
한제는 피식 웃었다. 지금 그에게는 어떤 상황이든 당당히 마주할 만한 힘이 있었다. 그러니 자신의 귀환이 누군가의 주의를 끈다고 해서 문제될 것도 없었다.
한제는 다시 여유롭게 이동했다. 전혀 서두르는 기색은 없었지만 걸음을 뗄 때마다 어마어마한 거리를 뛰어넘었다.
그때, 전방 저 멀리에는 백여 명의 수련자 무리가 영기로 충만한 수련성 하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이들은 수련성과 이어진 가느다란 선 같은 것을 한 가닥씩 쥐고는 힘껏 끌어당기는 중이었다.
그중에는 한 중년 사내가 있었다. 전광과 같은 눈빛을 번득이는 그는 정열기 절정에 이르러 있었고 제법 위엄이 느껴졌다. 특히 번득이는 두 눈에서 튀어나온 호 형태의 번개들이 주위를 맴돌며 그 위엄을 더욱 드높여주었다.
“다들 집중하고 힘내라! 수련성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생겨서는 안 돼! 그랬다가는 뇌선전의 징벌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전쟁을 준비하는 나천성역 전역에 영향을 미쳐 처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중년 수련자의 천둥 같은 목소리에 수련자 무리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어렸다.
“전공열, 너는 전가에서도 워낙 높은 위치니까 그런 벌도 피해 갈 수 있겠지. 허나 나는 한창 전쟁 준비 중인 이 상황에 폐관수련 같은 처벌을 받고 싶지는 않다고!”
“전 형, 듣자 하니 이번에는 4대 성역 전체가 전쟁을 준비 중이라던데 운해성역이 주도한 거라면서요? 이해가 안 되네요. 왜 운해성역이 명령을 내리고 앞장서는 거요?”
그들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고 어느 순간 수련성은 돌연 쾅 하고 당겨지면서 본래의 궤적을 벗어났다.
위엄이 넘치는 중년 사내, 전공열 또한 수련성과 연결된 가느다란 실을 힘껏 당겼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주위 수련자들과 함께 앞으로 날아갔다.
“노부자 선배님과 다른 세 성역의 대표가 협의한 사항이야. 나도 아는 것은 많지 않아. 혹시라도 정보를 더 얻게 된다면 숨기지 않고 알려주지.”
노부자의 이름이 언급되자 수련자들의 눈빛이 굳건해졌다. 이들 모두 노부자를 알게 된 것은 최근이었지만 그들은 노부자를 나천성역의 최강자이자 수호자로 여겼다. 또한 노부자가 있는 한 나천성역은 영원하리라고 믿었다.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며 전공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자들과 달리 전공열의 눈빛은 덤덤했다. 마치 저들과 같은 열정적인 믿음을 바칠 대상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
아주 오래전, 그도 저들처럼 저런 눈빛과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그 대상이 된 사람의 명이라면 그는 무엇이든 목숨 걸고 했을 것이다. 심지어 그 마음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오히려 점점 커져만 갔다.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
전공열의 눈빛은 깊고 아련하게 변해 갔다. 그리고 이내 자신처럼 그분의 영향을 받은 신공호가 떠올랐다.
‘흥! 신공호…‧.’
전공열은 속으로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최근 신공호와 그는 거의 모든 안건에서 반대편에 섰고 둘 사이의 갈등은 점점 격렬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백여 명의 수련자는 점점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한데 잠시 후 갑자기 전방 저 멀리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는 수련자들을 발견하고는 우뚝 멈춰 섰다.
이 백의의 수련자는 단박에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전공열 또한 굳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상대의 모습은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가장 힘든 상황에 찾아온 벗
“조금 이상하군. 다들 조심!”
전공열은 무리의 가장 앞에 서며 일행에게 전달했다.
이들이 다가오는데도 상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덤덤한 얼굴로 서서 이들을 훑어볼 뿐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져도 저 백의의 수련자를 제대로 파악한 자는 한 명도 없었다. 마치 그의 주위에 시선을 왜곡시키는 막이라도 있는 것만 같았다.
찐득한 긴장감이 수련자 무리를 뒤덮었다.
허나 이들이 수련성을 끌고 그 백의의 수련자를 지나갈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준이 어마어마하군. 보아하니 우리 나천성역 사람은 아닌 듯한데⋯⋯?”
“다른 성역에서 온 자겠지. 이번에 4대 성역 사이의 장벽이 모두 열렸으니까.”
한편, 전공열은 점점 멀어져 가는 자신들을 여전히 바라보고 있는 사내를 다시 한번 살피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자⋯⋯ 왠지 익숙한데?’
그때쯤 한제 역시 전공열을 발견했다. 상대는 기억 속의 모습보다 약간 나이가 들어 있었다. 번개의 연못에서 만났을 때, 약하게나마 천둥번개의 본원을 깨달았던 자신에게 놀라 주인으로 모시겠다며 무릎을 꿇던 전공열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제는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매우 좋았다.
‘옛 친구를 다시 만나는 건 인생에 있어 큰 즐거움이지.’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 무렵, 전공열은 멀어져가는 한제를 바라보며 여전히 고민에 잠겨 있었다.
‘너무나 낯익어. 분명 어디선가 봤는데…’
전공열은 미간을 문지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던 중, 무언가가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전공열은 우뚝 멈춰 섰다. 방금 마주친 백의의 사내와 함께 누군가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듯하더니 이내 하나로 완전히 겹쳐진 것이다.
그 순간, 전공열은 십만 개의 천둥번개에 직격당한 듯 바르르 떨었다.
“그, 그분이야!”
기억이 떠오른 순간, 전공열은 몸을 홱 돌렸다. 이어서 어안이 벙벙한 모습의 일행을 남긴 채 한제가 사라진 방향으로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허나 최대의 속도로 날아갔지만 한제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아는 척도 하지 않으신단 말인가.’
한참을 나아가도 한제를 찾지 못하자 전공열은 씁쓸한 얼굴로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더니 한제가 갔을 것으로 보이는 방향을 향해 묵묵히 절을 한 번 올린 뒤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