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6
게다가 맹타자의 전공인 독극물 제작 방법이 기록된 옥패도 있었다. 그 방법에 대한 설명은 매우 상세해, 한참이나 그것을 들여다본 한제는 독극물에 대한 이해가 전과 비교도 할 수 없게 늘어 있었다.
수많은 옥패들 중 흑녹색 옥패가 한제의 시선을 끌었다. 이 옥패에는 공법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공법 이름에는 ‘冥(명)’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한제는 이 공법을 일단 ‘명결’로 부르기로 했다. 명결이 기록된 옥패에는 ‘독을 이용한 공법인 명결은 하늘과 땅을 놀라게 할 만큼 신통한 법술이며 총 아홉 개의 단계로 나뉘어 있다’고 쓰여 있었다. 6단계까지 익히면 상대가 화신기 수준이라고 해도 이 공격에서 요행히 살아남기는 힘들 것이라고도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 공법은 너무나 포악해 수련을 하려면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며, 각종 독약으로 몸을 자극해 몸이 곧 독이 되는 지경에 이르러야 했다.
9단계의 경지에 이르러 체내의 독을 배출하고 진정한 명독(冥毒)을 달성하면 일반인과 같은 상태의 몸으로 돌아가지만 그 수준에 이르기 전까지 몸에는 각종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그중 가장 명확한 변화는 농양이었다.
한제는 명결에 대한 설명을 다 보고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이 공법을 배울 생각을 접었다. 맹타자의 몸에서 풍기던 악취도 분명 이 공법 때문에 발생한 것이리라.
한제는 육신에 큰 미련이 없었지만 옥패에서는 이 명결을 깊이 익힐수록 체내의 독도 많아지는데 그 독의 기운이 신식의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정신을 잃고 살인만 저지르는 살인귀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비록 그 공법을 익힐 마음은 접었으나, 그 안에 포함된 적지 않은 법술과 독약 배합법은 한제에게 충분한 도움이 될 터였다.
독약 제조에 대해 맹타자가 평생 동안 기록해둔 결과를 살펴본 한제는 가슴이 설렜다.
그는 저물대에서 각종 병과 관들을 꺼내 옥패에 나온 대로 하나하나 분별해 보았다. 대부분의 병에는 독약이 들어 있었지만 오직 단 하나의 옥으로 된 병 안에는 한제가 물고 있었던 방독용 단약이 들어있었다.
이 방독용 단약 역시 옥패에 나와 있었다. 중급 효과를 가진 이 단약에 미약한 독 한 종류를 더 섞으면 더욱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한제는 맹타자의 저물대에 있던 것들을 전부 자신의 저물대로 옮긴 뒤 비어버린 저물대는 땅에 버려두었다. 이어서 그는 또 다른 물건 하나를 들고 신중하게 살폈다.
이것은 맹타자의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던 법보인 초록색 솥이었다.
이 솥은 둘로 나뉘어 있었지만 아직도 미약하나마 영력이 흐르고 있었다. 다만 그 영력에는 독성이 가득했다. 이 솥에서 솟아오른 초록색 안개가 작은 마수들을 무참히 죽이는 광경을 보았던 한제는 더욱 신중을 기해 솥을 살폈다.
맹타자의 저물대에서 가장 귀중한 물건은 명결이 기록된 옥패와 최상품 영석을 제외하면 이 초록색 솥이었다. 이 솥은 화신기 수준이었던 맹타자와 영혼으로 연결된 법보였으며, 수천 년간 그와 함께했던 물건이었다.
방금 그가 살핀 옥패에는 이 초록색 솥에 대한 설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명결을 2단계까지 익히고 나면 체내의 치명적인 독으로 끔찍한 보물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 작은 솥은 본래 전설속의 보물 약왕정(藥王鼎)의 모조품으로 그것을 본 따 만든 것이지만 진정한 약왕정과 비교해도 재료로는 전혀 뒤지지 않았다. 다만 약왕정은 수만 년간 초목 영기의 정화를 흡수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한제가 들고 있는 이 솥은 원래 어느 3성 수련국의 보물이었다. 수백 년간 공을 들여 그 국가의 어느 문파에 제자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한 맹타자는 천부적인 자질 덕에 그 문파의 정식 제자가 되는 데 성공했다.
그 기회를 이용해 이 솥에 접근한 그는 사부를 죽이고 솥을 손에 넣은 뒤 곧장 수마해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 솥을 자신과 영혼으로 연결된 법보로 만들었다.
억지로 약왕정을 독왕정(毒王鼎)으로 만든 그가 만약 죽지 않고 명결의 9단계까지 익혔다면 이 솥은 전설 속의 약왕정만은 못할지 몰라도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보물이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솥의 주인은 죽었고 이제 이는 한제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한제는 고민에 빠졌다. 명결을 익힐 마음이 없는 그로서는 이 법보를 사용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법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게 불만스러웠다. 만약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 초록색 솥을 쓸 수 있다면 생존율을 높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독왕정(毒王鼎)
한제는 깊은 물처럼 가라앉은 얼굴로 고개를 들어 끝도 없이 이어진 눈앞의 돌다리를 바라보았다. 순간 눈을 번득인 그는 두 말 않고 입을 벌려 반짝이는 빛을 토해냈다. 수정 비검은 나타난 순간 사방을 한 바퀴 돈 뒤 한제의 앞에 떠올라 서늘한 빛을 발했다.
한제는 이를 악문 뒤 비검을 맹렬하게 쳤다.
바르르.
진동하며 소리를 낸 비검 위로 피처럼 붉은 실들이 한 가닥씩 나타났다. 이 실들은 한제가 조나라에 있을 때 혈련술로 응결시킨 정혈로 조나라에서 비검은 한제의 육신과 함께 소멸되었지만 그 당시에도 정혈은 비검의 검령 안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검령은 본디 형태가 없었지만 오랜 기간 동안 한제의 신식의 바다 안에 존재했고 한제가 탄혼으로 살던 때에도 줄곧 그 안에 머물면서 완벽하게 보존되어 왔다. 그리고 한제가 전신전의 연기술로 검령을 위해 새로운 검의 배(胚)를 만들어 주었을 때, 그 검령은 마침내 이 비검에 전이됐다.
말하자면 이 비검은 한제를 위해 혁혁한 공을 세워온 셈이었다. 이 비검에 죽은 사람의 수는 셀 수조차 없었고 날이 갈수록 검령 안의 살기는 더욱 짙어져 지금은 이미 흉기에 가까워졌다.
한제는 진중한 눈빛으로 검 위의 붉은색 실을 따라 오른손을 천천히 이동시켰다. 손이 움직이자 검 위의 붉은 실은 점점 더 붉어졌다.
쩌적-
결국 비검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조각나서는 바닥에 떨어졌다.
허공에 남은 붉은 실들 안에 어렴풋한 검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저물대를 두드려 반응로를 꺼낸 한제가 초록색 솥을 가리키자 그 두 조각난 솥은 반응로 안으로 들어갔다.
치익-
그 순간, 초록색 안개가 반응로를 뒤덮었고 그 안에서는 이따금씩 소리가 났다.
한제는 두 손으로 연신 결인을 하며 초록색 안개를 뚫고 그 결인을 반응로에 찍었다. 진동하며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한 반응로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결국 반응로를 뒤덮은 초록색 안개는 초록색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한제가 손을 휘두르자 바닥에 떨어진 수정 비검의 조각들이 그의 손으로 들어왔다. 한제는 그중 한 조각을 집어든 채 빠르게 돌고 있는 반응로를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오른손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비검 한 조각이 한 줄기 빛이 되어 반응로 안에 정확하게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조각은 액체로 녹아들었다.
한제는 반응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오른손을 연신 휘둘렀다. 한 시진 만에 모든 비검 조각들은 그 반응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한숨을 내쉰 한제는 두 손으로 내뿜은 몇 갈래의 영기를 반응로에 쏟아부었다. 그러자 반응로의 회전 속도는 배로 빨라져 이제는 그 윤곽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 위로 피어오른 초록색 소용돌이는 언뜻 보면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돌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직 부족해!”
한제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반응로 안은 지금 회전으로 인해 뜨거워져 있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초록색 솥을 녹이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초록색 솥은 그저 약간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을 뿐, 녹을 기미조차 없었다.
탁.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저물대에서 몇 개의 물건을 꺼낸 뒤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중 하나를 집어 반응로 안에 정확하게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 물건이 반응로 안에 들어간 순간, 한 덩어리의 푸른색 화염이 피어올랐다. 반응로의 속도는 여전했지만 그 안의 온도는 배로 치솟았고 초록색 솥의 색은 완전한 붉은색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아직도 녹을 것 같은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방금 한제가 던져 넣은 물건은 전신전의 특수한 연기(煉器)용 재료였다. 계혈석(鷄血石)이라고 부르는 이 재료는 영력으로 고온을 발생시켰다.
이 계혈석은 수량이 넉넉하기만 하면 온도를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온도를 낮출 수도 있었다. 때문에 한제는 몇 조각의 계혈석을 던져 넣은 뒤 더는 넣지 않았다.
이때 반응로 안의 온도는 이미 놀라울 정도로 치솟은 상태였으나, 초록색 솥은 여전히 붉은색으로 달아올라 있기만 할 뿐 녹지 않았다.
한제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자월(紫月) 덩굴과 쇄화석(碎花石), 남월목(藍月木) 등 수십 종의 전신전 연기술 재료를 연거푸 던져 넣었다. 그러자 반응로 위에 알록달록한 연기가 솥과 같은 모습으로 피어올랐다.
이 솥 같은 모양의 연기는 곧장 초록색 소용돌이를 흩어버리더니 또 기이한 형태를 이루어 초록색 연기와 함께 흩어졌다가 급속도로 수축하며 전부 반응로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르릉-!
그때 반응로에는 점점 균열이 일었다. 한제는 정신을 집중한 채 그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솥을 주시했다. 두 조각으로 쪼개진 솥은 이제 완전히 녹아든 상태였다. 다만 녹는 속도가 너무 느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완전히 융화되기 전에 반응로가 깨질 가능성이 높았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들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한 덩이의 푸른 화염이 떠 있었다. 이 화염이 나타나자 사방의 온도는 삽시간에 내려갔다. 이 푸른 화염은 황천승규결을 끝까지 수련한 끝에 얻어낸 황천 얼음 화염이었다.
이 얼음 화염은 이미 한제 체내의 금단과 융합되어 끊임없이 생장 중이었지만 과도하게 사용하면 그 금단에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그래서 한제는 여태까지 얼음 화염을 절대 가볍게 사용하지 않았다.
이때 눈앞의 반응로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깨지기 직전에 이르렀다. 한제는 손을 앞으로 뻗었고 얼음 화염은 곧장 앞으로 튀어나가 반응로에 닿았다.
한제는 고도로 집중해 눈도 깜빡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얼음 화염을 통제해 천천히 접근시켰다. 특히 그 안의 영기를 조절해 조금의 파동도 일으키지 않는 방식으로 최대한 얼음 화염이 낮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러자 반응로의 균열은 더욱 늘어났지만 더 확산되기 전에 얼음 화염에 감싸이면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단 몇 초 만에 한제는 땀으로 범벅이 됐다. 사실 방금의 행동은 도박이었다. 잘만 된다면 반응로를 응고시킬 수 있었지만 잘못될 경우 반응로는 더욱 빨리 부서졌을 것이었다.
얼음 화염 덕에 반응로의 균열은 더 커지지 않았지만 만약 얼음 화염이 온도를 너무 낮춘다면 그 안에 들어있는 초록색 솥이 녹지 않을 게 뻔했다. 그래서 한제는 더욱 조심스럽고 신중해졌다.
천천히 초록색 솥이 녹아들었다. 그러는 동안 한제는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초록색 솥은 완전히 녹아 진한 초록색의 액체로 변했다.
한제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오른손으로 결인을 해 한 줄기의 영력을 반응로에 찍었다. 그러자 반응로가 진동하더니 회전을 멈추었다. 한제가 손을 뻗자 그 안에 들어 있던 초록색 액체가 둥실 떠올랐다.
이 액체에서 언뜻 작은 솥의 모습이 비추었다. 그것은 독왕정의 정령(鼎靈)이었다.
한제가 손을 뻗자 허공에 떠 있던 검령이 곧장 날아와 이 녹색 액체에 섞여들었다.
그 순간, 정령 역시 검령에 섞여 들어갔다. 한제는 진중한 눈으로 두 영(靈)을 주시했다. 한제의 추측과 달리 서로 공격하고 삼키려 하지는 않았다.
한참 후, 정령은 초록색 빛을 번쩍이는 영기가 되어 비검의 검령을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두 가지 존재는 빠르게 한 데 섞여 들어갔다. 한제는 한시름 놓고 두 손을 연달아 휘저었다. 그러자 액체가 천천히 응고되더니 흑녹색 작은 검이 됐다.
검의 양측에는 빽빽하게 작은 가시가 돋아 있었는데 번쩍이는 녹색 빛은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울 정도였다.
이제 비검은 완전히 모습을 갖추었다. 흑녹색의 비검은 안에 독왕정의 독성을 품고 있어 스치기만 해도 죽음을 면키 어려웠다.
하지만 한제는 감히 새롭게 굳어진 비검을 삼켜 몸 안의 금단으로 양성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칫하면 자신도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이 독왕정의 독에는 해독제가 없기 때문에 맹타자가 아닌 이상 누구도 해독할 수가 없었다.
한제는 비검의 서늘한 날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단숨에 죽여 버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생겨난 것이다.
한제가 손을 휘두르자 비검이 곧장 그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한제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저물대에 넣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비검에 찔려 독사(毒死)한다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 돌다리를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웅웅-
그러자 그의 뒤에 있던 회오리바람들이 소리를 내며 뒤따랐다.
불귀로 위에 올라서니 전경이 갑자기 바뀌기 시작했다. 발아래의 검은색 돌다리도 곧장 줄어들어 겨우 1천 척 길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리의 다른 한쪽 끝에는 천천히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한제는 눈빛을 번득이며 한참 침묵하다가 불쑥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작은 마수 한 마리가 그의 손에 날아들었다. 한제는 그 작은 마수를 돌다리 끝에 있는 소용돌이를 향해 내던졌다.
하지만 1백 척도 채 날아가기 전에 팔뚝만 한 굵기의 보라색 번개가 하늘에서 떨어져 정확히 그 작은 마수의 몸에 내리꽂혔다. 순식간에 그 작은 마수는 재로 변해버렸다.
한제는 다시 고민에 잠겼다. 이곳에 금제가 걸려 있지 않았다면 단 몇 초 만에 날아갈 수 있겠지만 비행 금제가 걸려 있는 만큼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1천 척도 되지 않는 눈앞의 길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한제가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그런데 1백 척 정도 걸었을 때, 갑자기 사방을 흐릿하게 채웠던 안개가 더욱 짙어지더니 그의 뒤에 있던 회오리바람과 그 안에 있던 두 번째 마혼까지 전부 사라졌다. 심지어 신식으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두 번째 마혼을 감지할 수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막 뒤를 돌아보려던 한제는 우뚝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잠시 고민에 잠겨 있다가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으아아아악!”
또 1백 척쯤 걸었을 때, 그의 뒤쪽에서 하늘을 뒤흔들 듯한 포효가 들려왔다. 심지어 돌다리도 바르르 진동했다. 한제는 무게 중심을 낮춰 균형을 잡았다. 그에게는 매우 익숙한 포효였다. 그 통로에서 보았던 황수(荒獸), 붉은색 교룡이 내던 소리가 분명했다.
뜨거운 비린내가 뒤쪽에서 훅 끼쳐왔다. 그러나 한제는 신식을 펼치지는 않았다. ‘불귀로(不歸路)’라 불리는 이곳은 그 이름처럼 한 번 오른 이상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뿐이라면 괜찮겠지만 한제의 생각에는 고개조차 돌려서는 안 되는 듯했다.
심지어는 신식조차 뒤로 펼쳐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없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모든 것을 불귀(不歸)라는 말에 맞춰서 진행해야 했다. 잘못했다가는 이전의 작은 마수들처럼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고 신식으로 살필 수도 없었지만 한제는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뜨거운 비린내가 느껴질 정도라면 그 붉은색 교룡이 거대한 입을 쩍 벌리고 자신의 등 뒤에 바짝 붙어 있어야만 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놀란 것도 잠시, 한제는 다시 평온을 찾았다. 생각해보면 그 붉은색 교룡은 이곳에서 나타날 수가 없다. 그러니 뒤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비린내는 일종의 환상일 것이었다.
스륵.
바로 그때, 그의 오른쪽에서 갑자기 붉은색 빛이 스쳐 지나갔다. 이번만큼은 한제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것은 분명 긴 혀였다. 한 줄기 식은땀이 이마에서 주륵 흘러내렸다. 한제는 곁눈질로 자신의 오른쪽 어깨 위에 떨어진, 끈적하고 기괴한 냄새를 풍기는 타액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