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65
“이 법보의 이름은 나천수(羅天樹)라 하겠다. 어떤가 도우?”
노부자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한제를 돌아보며 물었다. 나천성역을 뿌리로 삼고 수련자들의 피를 혈맥으로 삼았으며, 본원으로 촉진하고 자신의 높은 수준으로 압축해 만들어낸 법보다. 최강이라 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짧은 시간에 이 정도의 법보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그는 충분히 만족했다. 한 움큼의 피와 본원의 힘까지 동원한 게 조금 아깝기도 했으나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사방이 고요했다. 수만 명에 달하는 뇌선전 수련자들은 감격한 얼굴로 나천수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 법보를 손에 넣기를 간절히 원했다. 심지어 열운자 등도 마찬가지였으나 이들은 애써 그 갈망을 숨겼다.
뇌의 선계에서 제련한 법보를 가지고 있는 염뇌자만이 다소 덤덤했으나, 그런 그 역시 노부자가 직접 제련한 법보에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 한제조차 나천수를 훑어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저 안에 담긴, 수련자 수만 명의 피로 만들어진 혈맥은 화룡점정(畫龍點睛)처럼 이 법보를 단순한 차공열 법보가 아닌 혈맥을 가진 유산으로 만들었다. 수련자 수만 명을 위한 유산.
이곳에 모인 수만 명의 수련자는 나천성역 각 가문 출신으로 말하자면 나천수는 나천성역 모든 가문의 피를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천성역 출신 수련자라면 얼마든지 이 법보를 통제할 수 있을 터. 이토록 적용 범위가 넓은 혈맥 유산은 매우 드물었다.
게다가 나천수는 나천성역의 별빛을 뿌리로 하고 있는 데다가 노부자의 피와 본원으로 촉진된 것이기 때문에 세월의 흐름을 통해 제련하지 않고도 완성될 수 있었다.
게다가 나천수에는 나천성역에 오랜 세월 축적되어 온 무궁무진한 먼지를 응집시켜 세월의 흔적까지 남겨졌다.
허나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법보에 담긴 한 줄기 전의였다. 계외와의 전쟁을 앞두고 죽음까지 불사하겠다는 나천성역 수련자들의 전의. 말하자면 결함이 없는 이 법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기도 했다.
만약 한제가 이 법보를 파괴한다면 그 안에 담긴 전의를 파괴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천성역 모든 수련자가 품은 전의를 파괴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았다. 그 사실을 꿰뚫어본 노부자의 음흉하고 교활한 수작이었다.
이런 법보는 오직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만이 제련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세 번째 단계 수련자라 해도 평생에 걸쳐 이런 법보를 많이 만들어낼 수는 없다.
“좋은 법보로군!”
한제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에 노부자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주위에서는 수만 명의 수련자들이 일제히 환호했고 노부자를 향한 눈빛은 거의 맹목적인 믿음으로 가득했다. 만약 노부자가 칼날로 이루어진 산과 불바다에 뛰어들라고 해도 그들은 기꺼이 그 명에 따를 터였다.
“이제 도우 차례일세. 어떤 법보를 만들어낼지 궁금하군!”
노부자는 한제를 훑어보며 말했다.
“나천성역 수련자들은 충분한 전의를 갖고 있지만 살기는 조금 부족한 것 같군. 피비린내가 부족해. 그래서야 전쟁에서 적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
한제는 툭 내뱉으며 수백 개의 수련성으로 이루어진 진을 향해 손을 뻗어 허공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진을 이루고 있던 여러 개의 수련성 중 하나가 산산조각 났고 그 안에서 배어 나온 한 방울의 금색 액체가 한제 앞으로 둥둥 떠갔다.
가벼운 손짓 한 번에 벌어진 일이었고 이는 수만 명의 수련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심지어 노부자 역시 두 눈이 굳어졌을 정도였다.
‘저자의 육신은 대체 얼마나 강한 것인가! 당시 주작성에서 봤던 고신과도 거의 차이가 없는 것 같군!’
주작성에서 보았던 탁삼을 떠올린 노부자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한편, 한 방울 금색 액체를 바라보던 한제의 머릿속에 고신 서사가 연기하던 기억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고신은 연기를 할 때 일곱 빛깔 옷을 입은 도인과 마찬가지로 수련성을 재료로 삼았다.
한제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가 가볍게 휘두르자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여덟 개의 수련성이 무너져 내렸다. 이어서 여덟 방울의 금색 액체가 일제히 날아들더니 한제 앞에 원형을 이룬 채 둥둥 떠서 회전했다.
“첫 번째 방울에는 주작성에서 저질렀던 끝없는 살육을⋯⋯.”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오른손을 들어 첫 번째 액체 방울을 건드렸다. 그 순간,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살기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제의 기억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등가를 멸문시켜 그들의 머리로 탑을 만들고 조나라 대지에 피의 강이 흐르게 했던 일, 수마해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였던 살육, 백일주살령 등 주작성에서 벌인 갖가지 살육과 그때의 모든 살기가 주입되자 액체 방울은 곧장 선홍색으로 변했다. 동시에 살기가 줄기줄기 퍼져 나가 사방을 뒤덮었다.
“두 번째 방울에는 연맹성역에서 내 손에 죽음을 맞은 수많은 혼들을⋯⋯.”
두 번째 금색 액체 방울 역시 한제의 손이 닿자 핏빛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더욱 짙어진 살기가 온 우주를 진동시켰다.
“나천성역에서도 난 적지 않은 사람들을 죽였지.”
하늘과 땅을 붉게 물들이고도 남을 정도였다.
“운해성역에서는 붉은 안개 곳곳에 살기가 숨어 있었다.”
뇌선전의 수련자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점점 짙어지는 살기에 물러나기 시작했다. 한제를 향한 그들의 눈빛에는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배어 있었다.
“칠채계에서는 도과의 살기가⋯⋯.”
염뇌자를 비롯한 이들의 표정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혈신자는 짙어지는 살기에 피를 한 움큼 토해내기도 했다.
“계외 태고 성신에서는 피가 강처럼 흘렀고⋯⋯.”
온 우주가 진동하는 사이 핏빛이 퍼져 나가며 수련성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진을 피바다로 물들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확산되는 강한 살기에 나천성역 곳곳을 돌아다니던 수많은 수련자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섬뇌족을 섬멸했고⋯⋯.”
날카롭게 울부짖는 혼들이 허상으로 나타나 포효를 내지르는 한편 모든 이들의 영혼으로 파고들었다.
“오래된 무덤 안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지.”
이 무렵, 노부자조차 찬 숨을 헉 들이마셨다. 한제의 체내에서 발산된 살기는 그조차도 충격에 빠지게 만들 정도였던 것이다.
“나천으로 돌아온 뒤에는 동림성을 무너뜨렸다!”
한제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저질러온 살육들을 떠올리며 무시무시한 살기를 발산했다. 어느새 아홉 방울의 금색 액체는 모두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뒤이어 고개를 번쩍 쳐든 그는 나천수 뒤에 자리한 노부자를 응시했다.
노부자는 심신이 콰쾅 하고 울렸다. 한제와 눈이 마주친 순간 우주를 뒤덮은 짙은 살기가 수많은 비수가 되어 온몸을 관통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이에 노부자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나천수는 바르르 진동했고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조짐을 보였다.
“나 이한제의 삶에 비하면 나천성역 수련자들은 살기가 모자라!”
한제가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아홉 방울의 핏빛 액체가 하나로 응집해 결정체를 이루었다. 지금껏 저지른 한제의 모든 살육이 배어 있는 붉은 결정체는 곧장 붉은 빛을 그리며 노부자에게 달려들었다.
노부자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결정체 안에서 무궁무진한 망혼을 목격했다. 한제의 손에 죽은 그 모든 혼들은 황천에서 이승으로 돌아온 듯 허상으로 나타나 온 세상을 다 집어삼키려 했다.
뇌신전의 수련자들 역시 그 붉은 결정 안에서 두려울 정도의 살기를 느끼며 피를 토해냈고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심지어 염뇌자와 혈운자 등도 마찬가지였다.
수만 명에 달하는 수련자들을 물리칠 수 있을 정도의 살기를 담은 결정체, 그것은 곧 한제였다.
“이 법보에는 본원도 혈맥도 전의도 없으며 네가 나천수에 숨겨둔 것과 같은 수작도 없다. 그저 내 평생의 살기만 담고 있을 뿐. 허나 이 법보로 나천수를 얼마든지 파괴할 수 있다!”
물러나던 노부자는 고함을 내지르며 두 손을 휘둘러 핏빛 결정체의 접근을 막았다. 몸이 바들바들 떨려 왔고 두 눈에는 경악이 어려 있었다. 한 사람의 삶에 이토록 짙은 살기가 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한제의 뒤로는 계내 전체를 뒤덮을 수 있을 만큼 무궁무진한 피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이제 노부자의 눈에 한제는 더 이상 수련자가 아니었다. 그런 존재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노부자의 머리가 저릿해졌다. 그는 더 이상 상대를 건드릴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저 법보에는 살기만 담겨 있을 뿐인데 어찌 내 나천수를 파괴한단 말인가!”
뒤로 물러나던 노부자는 이내 우뚝 멈춰서더니 호기롭게 외쳤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못 믿겠다면 보여주지!”
한제는 별일 아니라는 듯 내뱉었지만 그 목소리에서는 매우 강력한 자신감과 패기가 느껴졌다.
노부자는 핏빛 결정체를 본 순간 자신이 상대를 얕잡아봤음을 깨닫고 속으로 씁쓸함을 삼켰다. 그는 나천성역 수련자들의 전의를 빌려 상대를 압박하려 했지만 만약 나천수가 파괴되면 계외에 대한 나천성역 수련자들의 항전 의지는 꺾여버리고 말 터였다. 한데 상대가 그 사실을 알아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점을 이용해 반격을 해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둘은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듯 마주보았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잠시 후, 노부자는 이를 악문 채 외쳤다.
“첫 번째 대결은 네 승리다!”
“다음으로 도념을 겨룬다. 받아들이겠느냐?”
노부자가 근엄하게 물었다.
“삼재결인지 뭔지 벌써 지겨워지는군.”
한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고개를 돌리더니 저 멀리 겁에 질려 있는 혈신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불쑥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노부자를 그대로 지나쳐 곧장 혈신자를 붙잡으려는 듯했다.
삼재결의 첫 번째 대결에서 패해 화가 나 있던 노부자는 한제의 이런 행동을 본 순간 극도로 치달은 분노에 웃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그는 두 손을 휘둘러 자신의 모든 기세를 뿜어냈다.
그 기세는 폭풍처럼 노부자의 바람의 본원에 실려 우주 전체를 진동케 했다. 사방에서는 광풍이 몰아치면서 길이가 수십만 척에 달하는 허상의 용 아홉 마리가 나타나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용들의 포효가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다. 나천성역 전역이 강력한 폭풍에 휩쓸린 듯했고 사방에서 바람이 요란하게 불어닥쳤다.
“이한제! 정말 나와 전면전을 벌일 생각이라면 받아주마!”
노부자는 분노에 찬 일갈을 내지름과 동시에 결인을 그린 손을 휘둘러 거대한 균열을 냈다. 허상의 균열에서는 부러진 검 한 자루가 번득이며 튀어나왔다.
검은 부러진 채로 절반 정도만 남은 상태였지만 하늘을 가를 만큼 예리한 기운이 담긴 검기를 한제에게 발산했다. 8성급 고신인 탁삼의 육신을 꿰뚫은 검이었다.
부러진 검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노부자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하늘을 가리켰다. 우주에서는 콰쾅 소리를 내며 형태 없는 기운이 일어나 수만 명의 수련자들을 저 멀리 밀어냈다. 그와 동시에 허상의 그림자 하나가 노부자의 뒤에 나타났다. 이 그림자는 그 자체로 하나의 계였다.
바로 풍의 선계.
하지만 한제가 당시 본 바 있는 풍의 선계와는 전혀 달랐다. 허상으로 나타난 선계에는 비록 광풍이 몰아쳤지만 무너지거나 파괴된 곳은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선기로 가득한 그곳에서는 수많은 선인이 있었다. 덕분에 선계 대지의 중심에 우뚝 솟은 거대한 돌문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선인들은 마치 숭배하듯 돌문 아래 꿇어앉아 있었다.
영동이 나타나다
이 선계의 짙은 선기는 발산된 순간 나천성역 전역을 뒤덮었다. 동시에 듣는 순간 마음이 트이고 기분이 좋아지는, 선계의 아름다운 곡조도 퍼져 나갔다.
심지어 선계에서는 향불의 기운까지 노부자에게 흡수되기도 했다. 사실 이 풍의 선계야말로 노부자가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된 관건이었다.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되는 데 필요한 향불을 이 허상의 풍의 선계에서 얻어낸 것이다.
“풍의 선계는 내 수련의 근간이자 내 향불의 근원이지. 네 육신이 아무리 강건하다 한들 세 번째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고 향불도 없다. 그런 네가 과연 어떻게 나와 맞설 것인지 두고 보겠다! 또한 네게 어째서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가장 강한 수련자인지 똑똑히 보여주마. 이 모든 것은 향불 때문이다. 오직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만이 발휘할 수 있는 향불 신통술!”
이미 결전을 결심한 노부자는 거대한 풍의 선계를 통해 무궁무진한 자신감을 얻었다.
한제는 마치 잔잔한 수면 같은 눈동자로 덤덤하게 노부자를 지켜보았다. 노부자의 기세가 눈 깜짝할 사이 절정에 이르렀는데도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의 눈에 비친 노부자는…
‘아직 부족하군.’
반면 한제의 침착함에 노부자는 막막함을 느꼈다. 그는 대체 무엇이 이한제를 저렇게 침착하게 만드는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저자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내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준을 숨기고 있을 리는 없다. 허나 저토록 침착한 것은 분명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
노부자의 앞에는 부러진 검의 검기가 떠 있었고 뒤쪽에 허상으로 나타난 풍의 선계의 짙은 선기에서 발산된 향불은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이 순간, 노부자는 마치 진정한 선인이 된 듯 강력한 기세를 자랑했다.
그는 결인을 그린 손을 들어 수련성으로 이루어진 진을 가리켰다. 순간 수백 개의 수련성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진이 콰쾅 하고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수련성의 혼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 기운은 나천성역 전역을 뒤흔들며 끊임없이 퍼져 나갔다. 심지어는 풍의 선계, 우의 선계, 뇌의 선계에서도 이 진의 흘러넘치는 듯한 기운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계외와의 전쟁을 위해 준비한 진이나 네가 그렇게 나오니 어쩔 수 없구나!”
노부자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휘날리는 동안 진에서는 수련성의 혼으로 이루어진 회오리가 하나하나 나타나기 시작했다. 회오리들은 찰나의 순간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하늘을 뒤흔들 정도의 기세를 발산했다. 마치 나천성역 전역을 뒤덮은 수련성의 혼이 자체적인 세상을 만들어내려는 것만 같았다.
그때, 한제는 진의 정중앙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