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72
지하마수는 분노와 고통이 뒤섞인 포효를 내질렀고 허상의 지하마수는 무너져 내릴 것처럼 바르르 진동했다.
허나 그 순간 흡입력이 증폭하기 시작했다. 한제의 주먹까지 그대로 삼켜버릴 듯한 힘이었다.
가장 먼저 지하마수의 체내로 빨려 들어간 것은 영동상인이었다. 뒤를 이어 주진 역시 사라졌다.
허나 이들은 세 번째 단계 수련자답게 빨려 들어가는 순간에도 향불의 힘으로 그 검은 구멍을 잠깐이나마 막아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한제는 짧은 순간이나마 흡입력에서 벗어나 지하마수의 혼 안에 머무를 수 있었다.
‘지금이다! 최대한 빨리 이 혼을 봉해야 해!’
두 강력한 노예가 벌어다 준 시간은 많지 않았기에 한제는 재빨리 지하마수 혼을 향해 결인을 그린 두 손을 뻗었다. 동시에 미간의 일곱 반점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쏘아 보냈다.
“왕족 고신과 도고 후계자의 이름으로 너의 혼을 봉한다!”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어린 한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순간, 일곱 개의 반점이 지하마수 혼에 그대로 찍혔다.
거의 동시에 네 개의 반점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고 한 줄기 오래된 혼의 힘이 이 반점들을 통해 한제의 심신에 떨어졌다.
‘일곱 개의 반점이 모두 밝아져야 혼을 봉인할 수 있다!’
허나 이 무렵 영동과 주진이 향불의 힘으로 버텨내던 시간이 끝나고 다시 지하마수의 강력한 흡입력이 한제를 덮쳐왔다.
“하앗!”
위기의 순간, 한제는 낮게 기합을 넣으며 지하마수의 혼 깊은 곳에 숨겨진 또 다른 세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동시에 고식엽을 있는 대로 소환해 시커먼 구멍 같은 세상의 입구로 날려 보냈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흡입력이 잠시 약해진 틈에 다섯 번째 반점이 반짝 하고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고식엽마저 검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다시 흡입력이 느껴졌다.
한제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이미 그는 큰 대가를 치렀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는 처음부터 상세한 분석을 마친 상태였고 지금 처한 상황 또한 그의 계획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두 개의 반점 역시 곧 밝아지리라!’
한제는 소매를 휘두르면서 거대한 망월을 소환했다. 망월은 소환되자마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검은 구멍을 향해 돌진했다.
콰르릉!
망월의 거대한 몸이 검은 구멍을 틀어막으면서 한제는 다시 짧은 시간을 벌었다. 아마도 이게 그가 벌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리라.
그때 여섯 번째 반점이 밝아졌고 잠시 후 일곱 번째 반점도 빛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반점들은 급속도로 회전하면서 지하마수의 혼을 봉인했다.
‘외부를 봉인했고 이제 혼도 봉인했다. 남은 건 내부를 봉인하는 것!’
할 일을 마친 고신의 반점들은 한제의 미간으로 돌아왔다.
한데 그 순간, 갑작스런 변화가 나타났다. 봉인된 지하마수의 혼에서 돌연 일곱 가지 색채의 빛줄기가 나타난 것이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짙은 이 빛은 눈 깜짝할 사이 반경 수십 만 척으로 퍼져 나갔다.
“칠채!”
한제가 경악성을 내뱉는 사이 일곱 색깔의 빛은 사방을 휩쓸며 지하마수의 혼을 감싸더니 그 거대한 몸뚱이까지 뒤덮었다. 번득이는 빛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 아래 지하마수의 체내에서는 쾅, 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어느새 일곱 색채의 빛에 뒤덮여 외부의 봉인은 절반 이상 흩어진 상태였고 혼의 봉인도 순식간에 어두워져 있었다. 특히 그중 세 개는 손을 써볼 틈도 없이 빛을 잃고 말았다.
‘지하마수에게 칠채… 칠채의 힘이라니!’
한제가 충격에 잠시 흔들리는 동안 일곱 색깔의 빛이 급속도로 번득이며 다시 밝아지면서 수많은 허상이 지하마수의 혼에서 튀어나왔다.
“깨달아라. 천도의 수감자는 생을 거듭하며 수많은 벌을 받아야 한다. 깊은 지옥에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얌전히 수련의 길을 기다려라.”
지하마수의 혼에서 튀어나온 허상들의 먹먹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든 생명은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며 현생을 풀어야 한다. 하늘의 의지에서 벗어나고 삶의 길을 얻어야 한다.”
“하늘의 의지를 봉인하고 어두운 시기를 새겨라. 모든 생명이 진정한 도를 얻지 못하고 고통의 바다에 침잠하며 진정한 길을 찾지 못한다. 얌전히 수련의 길을 기다려라.”
허상은 점점 많아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 지하마수를 빽빽하게 에워쌌다.
“깨달은 자!”
한제는 또다시 경악했다. 그는 이제야 어째서 겁이 많기로 유명한 지하마수가 도망치지 않고 자신에게 맞섰는지, 안개 속에 배설물을 남겼는지, 마치 영수처럼 교활한 지략을 부렸는지, 두 개의 봉인을 칠채로 폭발시켰는지 알게 됐다.
‘녀석은 칠채계를 삼켰다!’
상상치도 못했던 상황에 한제의 심신이 바르르 진동했다. 그리고 그의 예측은 거의 정확했다.
사실 한제가 뇌의 선계에서 이곳으로 전송되었을 당시 지하마수는 안개 속을 떠돌고 있었다. 누구도 이 막강한 존재를 건드릴 수 없었기에 녀석이 다가오기도 전에 주위의 모든 생령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지하마수는 혼란스러운 상태로 곳곳을 돌아다녔다. 본디 지능이 부족한 녀석은 대부분의 시간을 잠을 잤고 이따금 깨어나도 멍한 상태로 방랑할 뿐이었다.
하지만 한제가 선유족 사람들을 데리고 떠날 때 잠에서 깬 이 지하마수는 굶주림을 느꼈고 무언가를 삼키고자 안개 속을 헤맸다. 안개 너머로 나갈 용기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부유하던 중 거대한 균열이 하나가 나타났다. 그 균열에서는 일곱 색깔의 빛이 번득였고 그 안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넝마가 된 옷을 걸치고 있던 그는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마침내 나왔다! 마침내 그 빌어먹을 곳을 벗어나 자유를⋯⋯.”
하지만 그의 광소는 뚝 끊겼다. 지하마수의 끔찍함 위압감을 느낀 것이다.
허나 당황하기는 겁 많은 지하마수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한동안 멍하니 서로를 살폈다.
그때, 균열에서 나타난 사내가 창백해진 얼굴로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자 본디 겁이 많은 지하마수도 반사적으로 포효를 내질렀다.
지하마수로서는 그저 겁을 집어먹고 내지른 비명에 가까웠으나, 그 안에 담긴 무시무시한 위력에 수련자는 몸을 바들바들 떨더니 다시 일곱 색깔의 빛이 번득이는 균열로 돌아갔다.
사내가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지하마수 또한 다급하게 물러났다.
그렇게 한참을 물러난 지하마수는 겁에 질린 눈으로 균열을 살폈다.
일곱 색깔의 빛을 번득이는 균열도 그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누군가도 그리고 그가 내지른 날카로운 비명도 지하마수에게는 큰 두려움을 안긴 상태였다.
아무도 자신을 쫓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도 지하마수는 한참을 더 고민한 끝에 조심스레 균열로 다가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일곱 색채의 빛이 어쩐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겁 많은 녀석이 다시 돌아올 일은 없었을 터였다.
지하마수는 한참이나 멍하니 그 균열을 바라보았다. 뭔가를 고민하는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시간이 무려 1백 년이 넘었다.
긴 시간을 고민해 봐도 이 균열이 왜 나타났는지, 심지어 이게 무엇인지도 알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번득이는 일곱 색채의 빛이 어쩐지 머릿속에 콕 박혔기에 차마 떠날 수가 없었던 것뿐이다.
그로부터 다시 10여 년이 흘렀을 무렵, 녀석은 균열에 10척 거리까지 다가갔다. 균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볼 생각이었다.
한데 하필 그때 균열에서 튀어나왔다가 도로 들어간 그 사람이 균열 밖으로 머리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그도 지하마수에게 두려움을 느껴 백 년이 넘는 시간을 숨어 있었던 것이다.
산발이 된 머리에 비쩍 마른 그는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한데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휘휘 살피던 그는 바로 앞에 있는 거대한 무언가가 백여 년 전에 본 그 마수의 눈이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사색이 되어 또다시 비명을 내질렀다.
“끄악! 왜, 왜 아직도 여기 있단 말이냐! 젠장, 백 년이나 기다린 거냐!”
겁에 잔뜩 질린 그는 다시 칠채계로 돌아갔고 이제 밖으로 나올 엄두도 내지 못했다.
허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기는 지하마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녀석은 그때만큼 멀리 도망치지는 않았고 잠깐 뒤로 물러나 한참을 기다렸을 뿐이다. 그러고도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나지 않자 조심스레 균열 앞으로 돌아갔다.
★ ★ ★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2백 년, 3백 년⋯⋯ 5백 년⋯⋯.
그러던 어느 날, 극심한 허기에 시달리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지하마수는 뭔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쩍 벌려 일곱 빛깔을 번득이는 균열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칠채계는 지하마수의 체내 세상으로 흡수되었다.
한제는 이런 자세한 상황까지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결과만은 맞힌 셈이다.
허상의 깨달은 자들이 중얼거리는 순간, 지하마수의 혼에서는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비석이 하나 나타났다. 비석에는 경전의 글귀가 피처럼 붉은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깨달은 자들이 나타나 경전의 구절을 외울 때, 거대한 비석은 지하마수 위에 허상으로 나타나 있었다.
비석에 새겨진 붉은 글자에서는 광기 어린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 아래 깨달은 자들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고 무언가에 통제되듯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회오리를 형성하더니 파멸적인 힘을 사방으로 쏘아 보냈다.
그 힘에 밀린 한제는 세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앞으로 나서려 했다.
한데 그때, 비석의 허상에 새겨진 붉은 글자들이 하나하나 문양이 되어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칠채계에 가본 적이 있는 한제는 이 경전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고 있었기에 바짝 긴장했다.
귓가에는 먹먹한 목소리로 경전을 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달아라, 천도의 수감자는⋯⋯.”
회오리가 회전함에 따라 광기 어린 목소리는 일곱 색깔의 빛에 실려 확산되었고 그 순간 지하마수의 혼에 남아 있던 네 개의 반점 중 두 개가 꺼져버렸다.
지하마수의 혼이 몸에 스며들려고 하자 회오리에 휩싸여 있던 거대한 지하마수가 두려움 어린 눈으로 재빨리 물러났다.
녀석은 겁을 먹은 상태였다. 칠채계가 녀석의 성격은 바꿔놓았을지 몰라도 그 본성까지 바꾸지는 못한 것이다.
겁을 집어먹은 지하마수는 곧장 허화개자를 발휘했다. 녀석의 모습은 빠르게 흐릿해지기 시작했고 단 1천 척 정도 물러나는 것만으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러자 회전하며 회오리를 형성했던 깨달은 자들과 한제에게 달려들던 문자들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제련
“크아아아!”
홀로 남은 한제는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다. 영동과 주진, 망월, 고식엽까지 잃은 상황에서 이대로 녀석을 놓쳐버린다면 손실이 너무도 컸다.
‘그토록 철저히 계산하고 계획했건만 녀석이 칠채계를 삼켰을 줄이야!’
칠채계의 균열이 하필 이 안개 속에 나타난 것부터가 도저히 예측 불가능할 정도의 변수인데 그걸 또 지하마수가 삼키다니!
“절대로 도망치게 둘 수 없다!”
한제는 광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며 앞으로 나섰고 손을 뻗어 아래쪽을 가리켰다. 순간 그의 오른쪽 눈에서 번개 문양이 튀어나와 반경 1만 척을 뒤덮었다. 아홉 갈래의 천둥번개가 문양 주위를 맴돌며 빠르게 회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