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74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한 줄기 신식을 지하마수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지하마수는 입을 벌려 영동을 토해냈다. 뒤이어 주진과 고식엽들, 마지막으로 거대한 망월까지 뱉어냈다.
밖으로 나온 망월은 끊임없이 몸을 부풀려 원래의 크기로 돌아왔다.
한제는 주진과 영동을 천황로에 넣고 고신의 반점에 거두었다. 망월과 고식엽까지 회수한 후에야 그는 지하마수 앞에 서더니 미간을 살짝 구겼다.
‘녀석의 기억은 상당히 혼란스럽군. 칠채계를 삼킬 때 상당한 힘을 쓴 모양이야. 삼켜서는 안 될 것을 삼킨 것 같은데⋯⋯. 한데 이상하군. 어떻게 도과를 삼켰을까?’
허나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을 얻어낼 수는 없었기에 한제는 묵묵히 지하마수의 몸에 오른손을 얹었다.
지하마수는 몸을 바르르 떨면서 일곱 색깔의 빛을 줄기줄기 토해냈다. 벌어진 거대한 입안에는 수백 척에 달하는 주황색 열매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도과!’
줄기줄기 도념의 기운이 피어오르는 주황색 도과를 응시하던 한제의 두 눈이 번득였다.
‘원인과 결과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의 본원을 완성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허나 세 가지 경지 모두 도념이니 도과를 몇 개 얻는다면 본원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한제는 손을 휘둘러 주황색 도과를 거두었다. 그러자 지하마수의 날카로운 눈빛은 사라졌고 녀석은 멍하게 변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도과를 삼키고 그 기운을 어느 정도 흡수한 덕에 이전보다는 훨씬 더 똑똑해진 상태였다.
한제는 지하마수의 기억 속에서 녀석을 두 번이나 놀라게 만들었고 동시에 그 자신도 두 번이나 놀라 기겁했던 그 불쌍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가 있던 지하마수의 체내 세상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한제로서도 알 길이 없었다.
허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은 짧았다. 한제는 결인을 그린 손으로 지하마수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지하마수는 순간 흐릿해지면서 한 줄기 어스름한 빛이 되어 미간의 두 번째 반점으로 녹아들었다.
일을 마친 한제는 이내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로써 나천성역에서 해야 할 네 가지 일을 다 마쳤다. 완료해야 할 인과도 몇 개 완료했고 오래 전 알고 지내던 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제 더 이상 해야 할 일은 없었다.
한편, 지하마수의 체내 세상. 이 세상에는 끝이 없었다. 제멋대로 커졌다가 작아지는 혼돈의 세상일 뿐이었다.
지금 그 세상에는 멍한 얼굴로 서성이는 불쌍한 몰골의 수련자가 있었다. 그는 벌써 수백 년째 이 세상에서 출구를 찾아 헤매는 중이었다.
“진짜 끈질긴 녀석이군. 수백 년이나 그 앞에서 날 기다리다니. 허나 끈기라면 내가 한 수 위다! 녀석은 결국 떠나버렸으니까. 한데 칠채계가 무너진 건 알겠다만 여긴 대체 어디지?”
그는 거의 넋이 빠진 표정으로 이 의문에 대해 수백 년째 고민해왔다.
“젠장, 대체 어떤 성역이기에 수백 년이 지나도록 살아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난 적이 없는 거지? 진짜 공간의 균열은 아니겠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반드시 나갈 길이 있을 거야!”
그는 지난 수백 년을 그랬던 것처럼 끊임없이 스스로를 격려해가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 ★ ★
나천성역 어딘가의 수련성. 망망한 우주를 뒤덮을 듯 강한 붉은 빛을 발하는 이 수련성 근처에 이르기만 해도 짙은 피비린내 어린 기운이 느껴졌다.
한제는 이 수련성 근처의 왜곡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만히 수련성을 응시하던 그는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저물공간에서 혈신자 체내의 고요가 튀어나왔다.
“말해. 무슨 비밀이지?”
한제가 목을 틀어쥔 채 묻자 고요는 분노와 갈등으로 범벅된 눈으로 답했다.
“말하면 날 놔주겠다고 약속해!”
절박한 고요와 달리 한제는 차분하고 여유 넘치는 얼굴로 피식 웃었다.
“그거야 그 비밀이 내게 유용할 때 얘기지. 그렇다면 마지막 기회를 주마.”
“그걸로는 부족해! 날 놓아주겠다고 약속하지 않는다면 죽어도 이야기하지 않겠다! 수혼술을 펼쳐도 소용없다. 난 고족의 일원인 고요다. 수혼술에 대항할 방법을 알고 있다고!”
고요는 겁에 질린 와중에도 이를 악물고는 악에 받쳐 외쳤다.
한제는 말없이 고요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럼에도 고요는 숨 막힐 듯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말하지 않겠다면 관둬.”
한제는 한참 뒤에야 툭 내뱉더니 고요를 다시 저물공간으로 집어넣으려 했다.
“마, 말할게! 말한다고!”
고요가 날카롭게 외쳤다.
“말할 테니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은 꼭 지켜라!”
한제는 짜증이 난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고요는 재빨리 말했다.
“저 붉은 수련성 안에는 숨겨진 공간의 균열이 있다. 나만 열 수 있는 곳이지. 그 안에는 제단이 있고 그 제단에는 어마어마한 신통술이 있다. 원고 선계의 물건이거든. 운이 좋다면 그것을 통해 삼명술(三命術)도 깨달을 수 있지. 성공하면 세 개의 목숨을 갖게 되는 거야!”
“가서 열어.”
충격을 받을 거라는 고요의 예상과 달리 한제는 덤덤하게 대꾸하더니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이에 고요는 자유를 얻게 되었지만 감히 저항할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얼른 붉은 수련성을 향해 날아갔다.
한제는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고요는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수련성을 가리켰다. 그러자 붉은 수련성은 콰쾅 하고 요란하게 진동했고 대지가 바르르 떨리다가 갈라지면서 거대한 균열이 나타났다.
붉은 수련성을 가로지른 균열은 더욱 깊숙이 뻗어 나갔다. 마치 예리한 검에 꿰뚫리기라도 한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이내 거대한 수련성은 반으로 뚝 갈라지면서 두 개의 반구로 분리되었다. 두 개의 반구는 줄기줄기의 붉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 수많은 붉은 선 깊은 곳에 길이가 1백 척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의 균열이 어렴풋이 보였다.
마치 거대한 입 같은 그 공간의 균열 가장자리는 대량의 금제로 봉인되어 있었다. 닫히지 않도록 봉인한 것이리라.
갈라진 수련성 밖에 선 고요는 여전히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로 저기다. 저 붉은 선들은 요가의 혈맥과 내 요기를 품고 있지. 내가 안내하지 않는 한 누구도 저 안으로 진입할 수는 없어. 저 공간의 균열은 매우 약해져 억지로 들어서려 하면 곧장 무너져 내리지.”
“앞장서.”
한제는 붉은 선들을 훑어보며 짧게 내뱉었다.
고요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붉은 선들은 뭔가를 느끼기라도 한 듯 수축하면서 길을 내주었다.
한제는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고요는 매우 긴장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한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이 한 번의 기회에 달려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머지않아 그는 균열로부터 1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 다다랐다. 그 무렵 그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지만 표정에는 그런 기색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다.
“제단은 바로 이 안에⋯⋯.”
고요는 균열 밖에 멈춰 서서 입을 열고는 한제의 결정을 기다렸다. 어쩌면 한제는 직접 데려가기보다는 노예를 들여보낼지도 모른다.
‘저자가 직접 들어가건 나를 끌고 들어가건, 어쨌든 누군가가 저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나는 벗어날 수 있다!’
그런 생각에 고요의 긴장감은 점점 높아졌다. 어떠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긴장했군.”
한제는 균열 너머 붉은 연못 속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제단을 응시하면서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허나 그 말에 고요의 심신은 바르르 진동했다. 그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대꾸를 하기도 전에 이어진 한제의 말에 그야말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계외 태고 성신 봉멸족이 잃어버린 제단은 저것과 다른 것 같은데?”
균열에서 시선을 거둔 한제가 덤덤한 눈으로 고요를 바라보았다.
“너⋯⋯ 너!”
고요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한제가 그 사실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다. 허나 네게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은 지켜야 하니 이번에는 봐주지. 이제 진짜 제단을 내놔라.”
한제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으나 그가 침착한 모습을 보일수록 고요의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대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걸까!’
고요는 심신이 바르르 진동했다.
“셋을 세겠다. 하나, 둘⋯⋯.”
“이, 이 균열 안에 있어! 하지만 네가 보았던 그건 아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직접 꺼내주지! 아니면 함께 들어가도 좋고.”
고요의 목소리는 절박했고 상대에게 모든 것을 간파당한 듯한 느낌에 저항 의지를 잃었는지 표정은 씁쓸했다.
“네가 들어가도록.”
한제는 고요를 바라보며 서늘한 목소리로 짧게 대꾸했다.
고요는 떨리는 마음을 안은 채 균열로 다가갔다. 한데 그 순간, 그는 한제의 눈에 스치는 듯 드러난 경멸의 빛을 볼 수 있었다.
‘나에게 들어가라고 하다니, 무슨 자신감이지? 설마…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몸에 금제를 남겨두기라도 했단 말인가?’
균열 안으로 들어서는 그 순간이 고요에게는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미 한 발을 균열 안으로 내딛는 와중에도 그는 망설였다.
찰나의 순간에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모든 고민과 망설임을 억누르고 발을 내딛으려 했지만 그 순간 어떤 한숨 소리가 전해져 오면서 그의 심신을 무너뜨렸다.
‘도박을 할 것인가? 아니, 그럴 수 없다. 도박이 성공한다 해도 나의 생사를 확신할 수 없는 반면 실패한다면 반드시 죽는다. 게다가 성공 확률도 극히 낮아.’
고요는 씁쓸하게 웃더니 막 내딛으려던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몇 걸음 물러나더니 균열을 향해 뻗은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격렬하게 진동하는 균열 안에서 이전에 보였던 제단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그 아래에서 붉은 누각이 빠른 속도로 날아올라서는 균열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균열은 맞물려 사라졌다.
“봉멸족의 제단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각 부분에는 하나씩 총 세 개의 혈각(血閣)이 들어 있다. 여기에는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둘은 이미 사라졌어. 자 이제 약속을 지켜라!”
고요는 쓰게 웃으며 눈을 감아버렸다.
한제는 손을 가볍게 휘둘러 고요를 저물공간에 집어넣고는 혈각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거의 똑같은 것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잠시 후, 한제는 혈각을 거두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운해성역과 맞닿은 나천성역의 가장자리였다. 두 성역 사이에는 장벽이 사라졌고 이제 텅 빈 공간만이 남아 있었다.
‘수도자! 복수를 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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