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75
계외 태고 성신.
장존회의 명령은 성역 전역 각 부족들에게 내려진 상태였다.
“원고 선역의 뜻이다! 봉계의 힘이 다시금 깨어난 지 수만 년이 지난 지금, 세 번째 봉계 전쟁이 곧 발발할 것이다. 태고 성신의 모든 수련자는 장존회의 명을 받들어 계내를 피로 물들여라!”
비열한 수작
운해 9급 성역, 신종. 대장로 수도자는 이 수련성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 꼭대기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동자와 같은 모습으로 청의를 입은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는 서늘한 빛이 번득였다.
그의 사방에는 네 개의 봉우리가 있었는데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마치 손가락 같은 이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수련성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채 구름을 뚫을 듯 높이 솟은 것을 알 수 있을 터였다.
수도자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고 불안한 기색마저 어려 있었다. 일찍이 한제의 기운을 느낀 순간부터 생겨난 불안감이었다.
당시 한제가 몇 개의 본원으로 그에게 안겼던 충격은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게다가 얼마 전에 느껴졌던 영동상인과 주진의 기운 역시 그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솔직히 믿기 힘들 정도였다.
“계외 묘음도존에게 알렸는데도 살아서 돌아오다니, 운이 좋은 놈이로군.”
수도자는 굳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더니 결인을 그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하고 바람과 구름이 몰아치더니 이내 그의 앞에 세 개의 운학(雲鶴)이 나타났다.
웅장한 기세를 발산하는 운학들을 바라보며 수도자는 혀를 깨물어 피를 한 움큼 뿜어냈다. 피는 세 갈래로 갈라져 각각의 운학에 녹아들었고 피와 융합된 운학들은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며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 사라졌다.
운학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수도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구름 연기가 일어나 일곱 개의 옥패로 변했다.
그중 하나의 옥패를 손에 쥔 수도자가 입을 열었다.
“신종 대장로의 이름으로 명한다. 운해성역에서 전쟁 준비를 마친 모든 수련자는 신종 밖에 운집해 구멸여천진(九滅黎天陣)을 배치하도록!”
말을 마친 뒤 손을 휘두르자 그가 쥐고 있던 옥패는 곧장 쏘아져 나가 사라졌다.
뒤이어 수도자는 두 번째 옥패를 쥐었다.
“신종의 이름으로 명한다. 7급 분종은 속히 귀원종 소속 수련자를 모두 잡아 신종에 데려오도록. 내 명이 떨어지면 귀원종 내에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참수하라!”
살기가 주입된 옥패도 곧 어딘가로 사라졌다. 수도자는 멈추지 않고 세 번째 옥패를 손에 쥐었다.
“모은미, 속히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네 수준 역시 높여주겠다. 그러니 그 단약을 먹고 나와 나를 도와라!”
세 번째 옥패도 곧 사라졌다.
“파천종 종주, 속히 신종에 와 내 앞에서 목숨을 끊어라! 그러지 않으면 파천종은 소멸될 것이다!”
네 번째 옥패가 우주 속으로 녹아들었다.
“태아라, 넌 흉수의 황제로서 이미 인간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으나 아주 오래전 봉인되었다. 이 수도자가 당시 봉계의 지존이 걸어둔 그 봉인을 풀고 너를 고향으로 돌려보내주겠다. 대신 그전에 나를 도와 한 사람을 죽여라!”
다섯 번째 옥패는 그대로 무너져 내리면서 수도자의 목소리를 싣고 허공으로 녹아들었다.
그제야 수도자는 어느 정도 불안이 가신 듯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는 여섯 번째 옥패를 움켜쥔 채 잠시 생각에 잠겼고 두 눈은 살기로 번득였다.
“운해, 소하, 연맹, 나천. 난 신종의 수도자라네. 봉계의 지존 좌하의 동자로서 수만 년간 신종을 지켜왔고 계외와의 두 번째 전쟁에서는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지! 한데 오늘 접한 소식에 따르면 연맹성역 출신의 이한제라는 수련자가 계외 장존의 장기 말 중 하나라는군! 주인님이 원고 선역에서 가지고 나온 천역주를 손에 넣어 요종을 꾀어 속였으나 난 속아 넘어가지 않았네.”
그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말을 이어갔다.
“그자는 이제 계외로 돌아와 이곳을 뒤흔들려 하고 있네. 태고 성신 대군의 침입에 앞서 간교한 수를 쓰려는 거지! 하여 오늘 나는 주인님을 대신해 봉계령을 내리려 하네. 반드시 그자를 죽여야 해! 그자를 죽인 사람은 천역주를 얻게 됨은 물론 계내의 영웅이 될 걸세! 또한 우리 신종의 다음 종주가 될 것이고 천 년간 주인으로 받들어질 것이라 약속하네!”
수도자는 손을 세차게 휘둘렀다. 광기 어린 목소리가 담긴 옥패는 곧장 어디론가 흩어져 사라졌다.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 보느냐? 망할 자식!”
수도자는 일곱 번째 옥패를 손에 쥐더니 마지막 신식을 전달했다.
“원고 상선이시여, 주인님의 온전치 못한 영혼이 예측한 계외의 침략이 코앞에 닥쳤는데 우리 봉계의 힘이 부족하여 견뎌내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부디 강림하시어 도와주십시오!”
수도자는 일곱 번째 옥패를 꽉 움켜쥐며 다시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피는 옥패에 녹아들며 붉은 문자로 변했다.
핏빛 문자가 새겨진 옥패는 짙은 붉은 빛을 발산하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 붉은 빛은 하늘을 온통 뒤덮고 땅까지 물들일 정도였다.
붉게 물든 하늘에 거대한 회오리가 나타났다. 마치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통로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수도자는 고개를 든 채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전방에 나타난 저물공간에서 빛이 번득이더니 거북이 등껍질이 튀어나왔다. 이 거북이 등껍질에서는 매우 오래된 기운과 함께 짙은 선기도 느껴졌다.
“제 신분을 증명하는 등껍질입니다. 저는 봉계 지존의 동자입니다. 원고 상선이시여, 부디 강림하시어 보물을 하사해주십시오!”
수도자는 손에 쥔 거북이 등껍질을 높이 쳐들며 무릎을 꿇었다.
이내 붉은 하늘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회오리 안에서 어떤 눈빛이 나타나 수도자가 들어 올린 거북이 등껍질에 닿았다.
“하계의 수련자여, 그것은 분명 봉계 지존의 신물(信物)이로구나. 내 너에게 보물 하나를 내려주마. 이 보물을 봉계의 진에 녹여 넣으면 계외의 침략을 1백 년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1백 년이면 원고의 존자(尊者) 몇몇을 소생시키기 충분할 터.”
붉은 하늘에 나타난 회오리에서는 위엄 어린 목소리와 함께 금빛을 번득이는 법보가 하나 나타났다. 그것은 금색 방울이었다.
방울이 아래로 내려오는 동안 맑고 고운 소리가 사방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기억하거라. 그것을 봉계의 진에 녹여 넣어 얻어낸 1백 년 동안 원고는 단단히 봉쇄되어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다⋯⋯.”
금색 방울은 천천히 수도자의 앞에 이르렀다. 수도자는 광기 어린 기쁨을 드러내며 그 방울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와 방울과의 연계가 형성됐다.
하늘을 뒤덮은 붉은 빛이 흩어져 사라지면서 세상은 차차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수도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늙은이가 남겨준 물건이 제법 쓸모가 있군. 원고 선역에서 내려준 보물까지 가진 이상 이한제 따위가 문제겠는가? 녀석을 죽인 후 이 방울로 큰 공까지 세운다면 장존께서는 내게 무궁무진한 향불을 주실 터!”
방울을 봉계의 진에 녹여 넣어 계외의 침략을 1백 년 지연시킨다는 계획은 수도자의 머릿속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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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閃)의 봉계 아래 소하성역. 이곳에는 거대한 회오리가 하나 있었다. 언제나 존재해왔던 이 회오리는 소하성역의 금지(禁地)로 누구든 이 근처에 이르면 모든 원력을 빼앗긴 채 그 안에 산채로 갇혀버렸다.
회오리 깊은 곳에는 수련성이 하나 있다. 크지 않은 이 수련성은 새카맸고 늪이 아주 많았는데 늪은 짙은 독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늪과 진흙, 독기로 뒤덮인 이 수련성 깊은 곳에는 검은 도포를 입은 한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끔찍한 노인이었다. 피부에는 독이 찬 고름집이 가득했고 주위의 늪에서 피어오른 검은 기운들이 칠규를 통해 흡수되고 있었다.
노인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무정한 두 눈이 뜨인 순간 늪에서는 한 줄기 구름 연기가 나타나 한 마리의 운학으로 변했다.
“주덕 도우, 내 6품 도령을 대가로 도우의 도움을 한 번 받고 싶은데!”
운학에서 흘러나온 수도자의 목소리가 수련성에 울려 퍼졌다.
검은 도포의 노인은 두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으로 운학을 움켜쥐고는 고민에 빠졌다.
“인색하기로 유명한 수도자 도우가 무려 6품 도령으로 내 도움을 받으려 하다니, 대체 어떤 적을 건드린 겐가? 어쨌든 내 돕기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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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하성역, 반쯤 폐허가 된 어느 수련성의 일반인 도시. 이곳에는 전당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주인은 온화해 보이는 중년 사내였다. 하지만 이 도시 사람들은 이 중년 사내가 겉보기와 달리 동전 한 닢이라도 조목조목 따지는 성격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내는 지금 손에 쥔 옥패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한편 손님을 수시로 살폈다.
“썩 좋은 옥은 아니군요.”
그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주인장, 하지만⋯⋯.”
주인은 손님의 대꾸에 미간을 팩 찌푸리며 소리라도 버럭 지를 기세였는데 어느 순간 표정이 싹 바뀌더니 문밖을 내다보았다.
“은 열두 개를 드리지요!”
말을 마친 그는 예상치 못한 높은 금액에 놀라는 손님에게 은 열두 개를 건넸다. 그리고는 손님이 떠나자 오른손을 휘둘렀다.
허공에 운학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수도자의 목소리가 심신으로 흘러들었다.
“운봉자 도우, 내 봉계의 지존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정신술을 알려줄 테니 그 대신 나를 한 번 도와줬으면 하는데!”
순간 중년 사내는 밝아진 눈으로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정신술이라⋯⋯ 재미있군, 재미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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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해 9급 성역, 귀종. 귀종은 운해성역의 매우 신비로운 문파로 안개 속에 숨겨져 있는 데다가 출입하는 제자의 수도 매우 적었다.
한 노인이 귀종의 동굴 안에서 가부좌를 튼 채 폐관수련을 하고 있었다.
청의를 입은 노인의 주위에는 수많은 도깨비불이 떠 있었는데 그 어스름한 빛 때문에 그의 모습은 한층 더 음산해 보였다.
한데 좌선을 하던 노인이 불현듯 두 눈을 번쩍 떠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한 줄기 구름이 피어올라 운학으로 변했다.
“대허. 자네가 나를 한 번 도와준다면 내 오억 명의 음양 제자를 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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