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79
“폭발해라, 폭발! 폭발!”
수도자는 광기 어린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며 금색 방울에 피를 한 움큼 뿜어냈다. 오직 그의 통제만을 따르는 방울에는 한제에 대한 깊은 원한이 배었다.
수도자의 고함에 따라 금색 방울에서는 파멸적인 기운을 급속도로 피어올랐다. 이 기운은 세상을 뒤집듯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점점 더 강해졌다. 그러더니 어느새 수많은 균열로 뒤덮였고 이내 파멸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원고 선역에서 온, 계내에 1백 년의 시간을 더 줄 수 있었던 방울은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크하하하! 죽어라! 죽어!”
수도자의 광기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금색 방울이 무너져 내리면서 일어난 금빛 폭풍이 달려들었다.
계내와 계외 사이에 놓인 양날의 검 같은 봉계의 진을 1백 년간 더 단단히 버티도록 해주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힘이 온통 한제를 공격하는 데 쓰이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한제만이 아니라 주덕과 운봉자 영동상인과 주진, 심지어 신종의 모든 이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고 운해성역 또한 순식간에 죽음의 땅으로 변할 터였다. 이미 정신이 나간 수도자는 한제를 운해성역 전역과 함께 묻어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네깟 놈이 감히 나를 죽이려 하다니!”
수도자는 금색 방울을 폭발시킨 위력이 봉계의 진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주리라 믿었다. 심지어 진에 구멍이 날 수도 있다. 그러면 그 구멍을 통해 태고 성신으로 도망칠 수도 있고 계외로부터 큰 공로를 인정받게 될 터였다.
금빛 폭풍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눈 깜짝할 사이 퍼져 나가면서 운해성역을 파괴시켰다.
운해성역의 대륙들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마구 진동하기 시작했다. 안개는 일찍이 흩어진 상태였고 그 안에 숨어 있던 흉수들이 슬피 울부짖었다.
영성을 가진 녀석들은 저항할 수 없는 한 줄기의 힘이 지금 폭발하고 있음을 느꼈다. 만약 그 폭발의 기세가 확산된다면 그들은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질 것이다.
진동하는 수련성의 수많은 일반인들이 숨을 거뒀고 하나같이 얼굴이 창백해진 수련자들은 마치 종말을 맞은 듯 머릿속이 텅 비었다.
길이가 수억 척에 달하는 거대한 균열이 줄기줄기 나타나며 운해성역 아래 거대한 봉계의 진 역시 번득이면서 거친 기운을 뿜어냈고 진령(陣靈)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명은 장황했지만 실제로는 찰나의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이때 신종 내 수련성의 한제 뒤에서는 홍삼자가 나타났다. 그는 빠드득 이를 갈며 앞으로 나서더니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뒤덮을 듯 강한 기세의 폭풍을 막아섰다.
그 맞은편에서는 연맹성역 시음종에서 온 노인이 거의 동시에 나타나 신중한 표정으로 두 손을 뻗었다.
주덕과 운봉자 역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싸움을 멈추고는 얼른 합류했다.
영동상인과 주진도 한제의 명에 따라 폭풍으로 달려들었다.
“소용없다! 누구도 막지 못한다! 당시 봉계의 지존도 막지 못한 나를 어느 누가 막는단 말이냐! 크하핫!”
수도자는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이한제! 나를 죽이고 싶은가? 허나 넌 운해성역과 엮여 있다. 목숨이 천 개라도 살아날 수 없어! 네 도심에 흠결이 나는 걸 똑똑히 보고 싶구나! 계내의 죄인이 된 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지켜보마!”
그 무렵, 천쇠에 이른 요종의 수련자 수십 명이 분분히 허상으로 나타났다. 창백한 얼굴로 다급하게 나타난 이들은 자신들의 모든 힘을 바쳤다.
일찍이 수도자의 편에 서 있던 신종의 장로들도 얼른 달려들어 폭풍의 폭발을 막으려 했다.
허공에 나타난 태아라 또한 급변한 표정으로 낮게 고함을 내지르며 두 손으로 폭풍을 단단히 막아섰다.
귀종의 수련자들도 허공을 가르며 달려왔다. 대황상인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뒤이어 짙은 요기가 일어나는가 싶더니 허공에 거대한 고요의 얼굴이 하나 나타났다. 왼쪽 눈동자 안에서 회전하던 아홉 개의 반점이 빠른 속도로 튀어나와 폭풍을 가뒀다.
하지만 금빛 폭풍을 통제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힘을 합쳤음에도 불구하고 폭풍은 점점 커지고 거세졌다.
봉계의 지존
“홍삼자 운해성역을 포기하세.”
맞은편에서 시음종의 노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홍삼자는 말없이 이를 악문 채 본원의 힘을 가동해 끊임없이 불어나고 있는 금색 폭풍에 저항했다.
허나 폭풍은 갈수록 격렬해지면서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더는 그 폭풍의 여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터였다.
한제는 묵묵히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수도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찾아왔다. 하지만 지금 수도자는 운해성역 전역을 이 전투에 끌어들였다.
‘이렇게 되어서는 안 돼⋯⋯.’
한제는 급속도로 불어나고 있는 금색 폭풍을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들었다.
“이제 됐네. 다들 물러나. 최대한 많은 이를 데리고 떠나게. 운해성역은⋯⋯ 끝났어. 봉계의 진이 열리면 전쟁은 곧장 시작될 걸세! 하지만 그전에 난 수도자를 죽여야겠네!”
더는 저항할 수 없음을 깨달은 홍삼자는 비참하게 웃으며 뒤로 물러나 수도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비통한 마음으로 물러났다. 운해성역이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운해성역의 수많은 수련자들과 생령들이 끝을 맞이하게 되리라. 그리고 앞으로 계내에는 네 개의 성역이 아니라 세 개의 성역만 남게 될 터였다.
한데 이들이 물러나고 금빛 폭풍이 물꼬를 튼 듯 더욱 급속도로 불어나려던 그때, 한제의 오른손이 미간을 두드렸다.
“지하마수!”
미간의 두 번째 반점이 빠르게 번득이더니 온 세상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뒤이어 거대한 지하마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마수는 멍한 눈으로 금빛 폭풍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이게 무슨 장난감인지 고민하는 듯했다.
한편, 지하마수의 등장에 모든 수련자들은 충격을 받았고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시선을 집중했다.
“삼켜!”
한제가 두 팔을 휘두르자 금빛 폭풍이 폭발했다. 이에 뒤로 물러나던 사람들 일부가 비명을 내질렀다.
지하마수는 멍한 얼굴로 눈을 끔뻑이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그 안에서는 거대한 지하마수의 혼이 나타났다.
지하마수는 그 거대한 입을 벌리더니 한제의 명령에 따라 숨을 흡 하고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그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이 몰린 금빛 폭풍이 지하마수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내 폭풍을 완전히 삼킨 지하마수는 맛을 되새기듯 몇 번 쩝쩝거린 뒤 다시 한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
“…”
고요했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 채 지하마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강력한 금빛 폭풍을 빨아들인 지하마수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 하는 듯했다.
한제 역시 말없이 지하마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하마수의 눈에서는 혼란스러운 빛이 드러났다.
마치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어 하는 듯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이내 녀석은 바들바들 떨었고 이에 따라 체내에서는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듯 먹먹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지하마수의 포효와 두 눈에 담긴 두려움도 점점 짙어졌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본단 말인가!
녀석의 포효는 멀리까지 퍼져 나가며 수많은 사람들의 귀에 닿았다. 깊은 분노가 담긴 듯한 포효였지만 사실 그 안에 담긴 감정이라고는 두려움뿐이었다.
이전이었다면 최대한 빨리 도망쳤겠지만 한제와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금 녀석은 한제를 가장 친근한 존재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놀란 아이가 엄마를 찾듯, 거대한 몸집을 가진 지하마수는 한제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제를 잡아먹으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광경이었다.
한편, 수준 높은 수련자들 역시 뒤로 물러났지만 개중에는 탐욕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지하마수와 한제를 번갈아 보는 자들도 있었다.
‘영혼으로 연결된 흉수다! 지하마수를 길들이다니, 봉계 지존의 선택은 과연 틀리지 않았군!’
홍삼자는 흐뭇한 눈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연맹성역 시음종의 노인과 눈을 마주쳤다.
한제는 앞으로 나서더니 지하마수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지하마수의 눈에 담긴 두려움의 빛은 점점 사라졌다. 녀석은 한제 곁에 있을 때 느껴지는 따뜻함에 두려움마저 이겨낸 것이다.
이에 따라 체내에서 울리던 포효 역시 천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녀석은 마치 아기 고양이처럼 그 거대한 머리로 한제에게 조심스레 비비적거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몸짓과 모습도 주변의 수련자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녀석이 아무리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해도 그 거대한 몸뚱이 때문에 마치 산봉우리로 후려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 충격은 상당해서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전력을 다해 가한 공격과 맞먹는 기세였다.
지하마수를 보며 탐욕에 빠져들었던 수련자 중 하나인 주덕은 이 광경을 보고는 욕심을 싹 지워버렸다.
‘내 육신으로 저런 힘은 견뎌낼 수는 없을 터. 녀석이 나를 모시는 게 복이 아니라 화가 되겠군!’
그뿐만이 아니라 운봉자를 비롯해 지하마수를 욕심냈던 모든 수련자는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 무렵, 지하마수는 한제의 위로에 마음이 놓였는지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됐다. 하지만 한제조차 예상치 못한 것이 있으니, 두려움을 거둔 지하마수의 성격은 다소 기괴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
지하마수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더니 갑자기 거친 표정으로 낮은 포효를 내질렀다. 특히 이번 포효는 주위의 수련자들을 기겁하게 할 만큼 거칠고 맹렬했다. 한제의 명령이 떨어지기만 한다면 그들과의 싸움도 불사할 기세였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본래 매끄러웠던 녀석의 피부에서 갑자기 대량의 솜털이 돋아났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 솜털은 녀석의 포효에 바짝 서서 다소 기괴하기까지 한 모습이 됐고 이에 수련자들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주위의 수련자들을 바라보는 지하마수는 마치 분노의 화염에 휩싸인 듯했다. 조금 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에 한제 역시 놀라는 중이었다.
허나 녀석은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보였을 뿐, 실제로는 한제 곁을 떠나지 않은 채 점점 더 우렁찬 포효만 내지를 뿐이었다.
한편, 수도자의 눈빛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자신의 계획이 갑자기 나타난 지하마수 때문에 완전히 틀어졌으니 망연자실한 것도 당연했다.
허나 이내 정신을 차린 수도자는 모두의 시선이 지하마수에게 쏠린 틈을 타 몰래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때,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한제가 수도자를 잊었을 리 없었다.
콰쾅!
한제는 강렬한 기세로 수도자를 뒤쫓았다.
“헛!”
수도자는 화들짝 놀라며 결인을 그린 두 손을 휘두르더니 피를 토해냈다.
검은색에 가까운 보랏빛을 띤 그의 피는 음산한 기운을 담은 채 넓게 퍼져 나갔다.
동시에 보랏빛 피에서는 돌연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기운이 일어나 음산한 기운과 빠르게 뒤섞이더니 어두운 보라색 회오리가 되어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흥!”
한제는 차게 콧방귀를 뀌며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꽈광!
거대한 허상의 주먹이 곧장 보라색 회오리와 충돌했다. 그러자 쩌적 소리와 함께 허상의 주먹에는 얼음층이 나타나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 완전히 얼음에 뒤덮여 버렸다.
그 순간, 회오리에 섞여 있던 작열하는 힘이 기다렸다는 듯 그 위로 덮쳐들었고 강력한 힘에 얼음 조각은 미처 녹아내리기도 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