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8
한 달이 흘렀다.
한제는 갑자기 옥패를 챙겨 놓은 뒤 몸을 훌쩍 날려 잡초 풀숲으로 진입했다. 그 순간, 잡초들이 흔들리며 붉은색 안개가 사방에서 흘러나왔다.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한 잡초들은 예리한 무기가 되어 붉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휘휘.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예리한 무기들이 모두 한제를 노리고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한제는 그 무기들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마치 자기 집 화단을 거닐 듯 앞으로 걸어 나갔다. 수많은 예리한 검들이 그의 몸에 닿는 순간, 한제는 오른손을 아무렇게나 흔들었다.
느릿해 보이는 동작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예리한 검보다도 더 빠른 속도를 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이 광경을 봤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 분명했다. 이는 이 금제를 완벽하게 연구해야만 파악할 수 있는 교착술(交錯術)이었다.
한제는 교착술이 뭔지도 몰랐다. 다만 그는 자신의 손이 날아드는 예리한 검보다 빠르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빨라졌다.
그는 오른손을 흔들어 허공에 원 하나를 그렸다. 이 간단한 동작은 그가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깨달은 것으로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오른손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 몇 천 번이나 동작을 바꾸어가고 있었다.
원이 그려지자 쏟아 붓는 듯했던 예리한 검들의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다시 풀잎이 되어 한제를 맴돌았다.
한제는 시종일관 침착했으며, 그의 발은 풀숲에 들어온 순간부터 조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그 풀잎들은 분분히 흩어지기만 할 뿐 그의 발걸음을 조금도 붙잡지 못했다.
막힘없이 걷던 한제가 막 풀숲을 벗어나려 할 때, 사방의 붉은 안개에서 몇 갈래의 붉은 빛을 번쩍였다. 그러자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오른손을 뻗었다가 매섭게 움켜쥐었다.
그 순간, 모든 붉은 빛들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붙잡힌 듯 조각조각 부서졌다. 곧 그 조각들은 다시 붙으며 조합되기는 했지만 이전처럼 하늘에서 내려치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뿌려져 길을 이루었다. 한제는 담담하게 그것을 밟고 금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어휴.”
금제를 빠져나오자마자 한제는 하늘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한 달을 훌쩍 넘게 공을 들인 결과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이내 금제로 시선을 돌린 한제는 오른손으로 그 제한 안에 파동을 일으켰다.
그러자 이 금제 안에 있던 잡초들이 모두 방향을 바꾸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전보다 훨씬 복잡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에 이곳에 도착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심해야 할 것이다.”
방금 자신의 힘으로 금제를 극복한 한제는 그 위에 한 층의 금제를 더해버렸다. 그러니 누군가 이곳에 진입할 경우 한제가 배치한 두 번째 금제까지 풀어야만 한다.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는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었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다음 잡초 풀숲으로 향했다.
산꼭대기까지 이어진 금제는 갈수록 그 난도가 높아졌다. 또한 사방에 자리한 금제의 틈은 모두 막혀 있었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금제로 진입해야만 했다.
★ ★ ★
산허리에 있던 육욕마군은 전방의 짙은 안개를 주시했다. 이 안개는 이곳에 사흘 동안 미동도 안고 떠 있었다. 육욕마군은 각종 법술을 펼쳤지만 이 안개를 흩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었고 그의 곁에는 여태까지 줄곧 그를 따라온 젊은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 역시 멍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서 안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육욕마군은 청년을 한 번 훑었다가 뒤쪽을 바라보며 차게 웃었다.
그가 건너온 첫 번째 관문은 수행(水行)의 땅이었다. 얼음이 가득한 그곳은 그에게 익숙한 곳이기도 했다. 고왕의 빙풍 덮개는 없었지만 1천 년간 준비해온 그의 실력으로 충분히 건너올 수 있었다.
더구나 5백 년 전 얻은 보물 덕분에 그는 수둔술(水遁術)을 펼칠 수 있었는데 그 작용은 왕청월의 토행주(土行舟)와 비슷했다. 그렇게 그는 어떤 우여곡절도 겪지 않고 청년과 함께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첫 번째 관문과 두 번째 관문 사이의 불귀로(不歸路)에서도 그는 별 고생을 하지 않았다. 1천 년 전 처음으로 그 다리에 올랐을 때는 거의 죽을 뻔했지만 지금 그는 이미 화신기 수준이었다.
더 이상 그에게 정서와 욕망 따위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불귀로는 그에게 마치 아이 장난과도 같았다. 만약 이 젊은 청년의 안전을 보호할 필요가 없었다면 단숨에 그 다리를 빠져나올 수도 있었을 터였다.
진정으로 그가 신경 쓰고 있던 것은 이 두 번째 관문이었다. 이 두 번째 관문은 ‘금산(禁山)’이라고 불렸으며, 그 이름대로 산 전체에 금제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금제는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복잡하고 위력도 강했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살아남은 네 사람은 각자 자신보다 훨씬 강한 사람 곁에 빌붙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뿐이다. 그럼에도 이곳에서는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다.
그중 일부는 더 강력한 자들에게 금제의 위력을 시험하는 도구가 되어 죽어갔다. 육욕마군도 만약 사부와 함께 오지 않았다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었다.
다행히 당시 그의 사부는 금제 파괴에 일가견이 있었다. 허나 평생을 금제와 진을 연구해온 사부조차도 결국 꼭대기를 1천 척 정도 남긴 곳에서 멈추고야 말았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그는 정반대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곳에 걸린 금제에 또 하나의 금제를 걸어 두 개의 금제를 서로 견제하게 하고 몇몇 강자들에게 화신기 중기 수준의 수련자를 기습하게 해 그들의 피와 살로 통로를 만든 것이다.
허나 이 통로는 오직 3초 동안만 유지됐기 때문에 생존자들은 앞을 다투어 앞으로 나아갔고 결국 극소수만이 산꼭대기에 올라 세 번째 관문으로 들어갔다.
당시의 일을 떠올리던 육욕마군은 저도 모르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그는 화신기 중기에 이른 상태로 이 산의 꼭대기에 오를 시도를 해볼 만한 수준이었다.
이전까지 첫 번째 관문과 불귀로를 순조롭게 통과한 덕분에 육욕마군의 자신감은 한껏 차오른 상태였다. 또한 그는 운이 좋게도 세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아주 중요한 인물이 자신의 손에 들려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러는 데에는 그 사람의 목숨이 필요했으나, 육욕마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오로지 남은 1천 척을 어떻게 건너가야 할지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있었다. 1천 년을 준비해왔지만 과연 산꼭대기에 오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지난 1천 년 동안 그는 공을 들여 금제를 연구해왔다. 심지어 과거의 기억까지 더듬어 두 번째 관문에 자리한 금제를 떠올려보고 기억하기도 했다. 그렇게 1천 년을 보낸 끝에 그는 그 산봉우리에서 그의 발목을 잡을 금제는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만 하나하나 파괴할 때마다 방금 파괴했던 그 금제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생각이었다. 게다가 거기에 다른 금제를 덧씌울 생각도 했다. 그 목적은 한제와 똑같았다.
하지만 금산의 금제는 위로 올라갈수록 복잡해져, 육욕마군이라 해도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아주 오랜 시간 연구해야 겨우 하나를 건너갈 수 있었다. 게다가 눈앞의 이 구름은 1천 년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뜻밖의 존재에 육욕마군의 마음속에는 의심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편 몇 백 척 거리를 지나온 한제의 앞에 잡초는 점점 줄어들었고 대신 그 밑을 받친 검은색 돌이 빈번하게 보였다. 한제는 그 돌을 한참 동안 자세히 바라보다가 다시 옥패를 꺼내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 돌의 금제는 잡초에 걸린 금제와 완전히 달랐다. 잡초는 풀잎의 방향에 따라 묘한 규칙을 이루며 금제를 구성했지만 돌은 줄무늬를 제외하면 어떤 이상한 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위에서 피어오르는 영력의 파동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금제가 걸려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터였다.
한제는 주위에 전부 이와 비슷한 금제가 걸려 있음을 깨달았다. 이전에 그가 길을 건너온 방식대로 금제의 틈새를 따라 나아가면 통과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제의 흥미는 이곳을 통과하는 것보다 금제를 연구하는 데 쏠려있었다.
더구나 이곳은 간단하게 통과할 수 있을지라도 마지막 산꼭대기에 이르렀을 때는 반드시 금제를 뚫고 가야 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그전까지 금제에 대한 연구를 조금이라도 더 충실히 해두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한제는 돌에 걸린 금제를 자세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 ★ ★
어느덧 7년이 지났다. 이 날, 한제는 산허리의 툭 튀어나온 바위 위에서 영기가 깃든 액체를 벌컥 벌컥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는 지난 7년 동안 머리가 반 정도 하얗게 센 상태였다.
아무 것도 돌보지 않고 정신을 집중한 채 금제를 연구하고 있는 그는 시시각각 계산만 했기 때문인지 4년 전부터 머리가 하얗게 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계속 연구에 몰두했다. 심지어 지금 그의 수준은 부지불식간에 결단기 중기에 이르러 극의 경계로서 마지막 단계인 영변기에 한층 더 가까워졌다.
그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으며 기질 역시 이전과 전혀 달라졌다. 7년 전의 한제가 절대 녹지 않는 얼음이라 다른 사람에게 서늘하고 음침한 느낌을 주었다면 지금의 한제는 여기에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느낌까지 풍겼다.
그의 두 눈에 만상이 담긴 듯했고 이따금씩 그 안에서 해와 달과 별이 번득이는 듯했다. 만약 지금 단목극이 한제를 본다면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할 것이다.
한제가 이렇게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세월 동안 끊임없이 여러 금제들을 깊이 연구해왔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관문
한제의 두 눈동자가 번득였다. 그가 지난 7년 동안 연구했던 금제는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나의 금제를 연구할 때마다 적지 않은 시간과 힘을 쏟았으며, 너무 자세히 연구하고 살피느라 몇 번은 그 금제 안에서 목숨을 잃을 뻔 하기도 했다. 특히 몇몇 금제들은 누군가에 의해 덧붙여 설치되어 있기도 했다.
그런 금제까지 살피고 연구한 한제는 그 사람의 수준이 자신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해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에게 이곳은 그저 여러 금제들을 학습하는 곳일 뿐이었다.
이런 곳은 다른 데서 찾기도 어려울 터였다. 간단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까지, 쉬운 것에서부터 어려운 것까지 수많은 금제들을 맛볼 수 있는 이곳은 한제에게는 흔하지 않은 보물 같은 땅이었다.
정신을 집중하여 산을 오른 지난 7년 동안 한제는 하나의 금제를 풀 때마다 약간 변경시킨 금제를 몇 겹이나 덧씌웠다.
때문에 이전에 그가 풀었던 금제들이 칼로 이루어진 산과 불로 이루어진 바다처럼 위험천만했다면 그가 지나가고 난 뒤 그 금제들은 하늘을 삼키고 땅을 뒤집을 듯했다.
풀과 나무들마저 모두 잘 훈련된 병사처럼 변해 그 위험도가 몇 배나 늘어났다. 만약 누군가가 이 금제를 맞닥뜨리게 된다면 어지간히 강한 자라도 화를 면하기는 힘들 터였다.
지난 7년간 한제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금제 방면의 시야가 확연히 넓어져 이를 푸는 것은 물론이고 종종 법술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금제에 대한 흥미는 더욱 커졌다. 더구나 이 산을 넘기 위해서는 금제를 푸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또한 한제는 가장 간단하고 가장 기초적인 금제부터 연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차근차근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더구나 그는 조바심을 내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금제를 연구하는 데 더 유리했다.
주작성에는 금제를 사용할 수 있는 수련자가 매우 많지만 심층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현재 금제에 대한 한제의 수준은 몇몇 전문가를 제외하면 동년배 수련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최고였다.
허나 한제 자신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처음 진법을 접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결코 뛰어나지 않은 자신의 자질을 금제로 보완하려는 듯했다.
한제는 산중턱에 툭 튀어나온 거대한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멀지 않은 하늘의 구름과 안개를 바라보았다. 이 운무(雲霧)는 줄곧 꼼짝도 않고 있었다.
한제는 이틀 전부터 이곳에 앉아 운무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옥패를 꺼내 뭘 각인하기도 하고 손으로 바닥에 간단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원래 이곳에 있었던 금제는 단절된 산길 같아서, 그곳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운에 맡긴 채 날아야만 했다.
7년 전이었다면 작은 마수를 이용해 실험을 해봤겠지만 현재 그의 수준으로는 그럴 필요도 없이 그저 잠시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허공에 걸린 금제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운무 형태의 금제는 너무도 교묘했다. 이 운무는 교묘하게도 금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 금제의 변수는 몇 배나 더 늘어났다.
허나 한제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저 한참동안 운무를 주시했을 뿐이다. 그러다 불쑥 손을 움직여 잔영들을 만들어내며 빠르게 결인을 맺었다. 수많은 잔영 때문에 언뜻 보면 한제의 오른손이 수만 개는 되는 것 같았다. 이 잔영들은 마구 흔들리며 한제의 앞쪽에 펼쳐졌다.
한제의 동작에 따라 이 잔영들은 하나의 원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한제가 우뚝 멈추고 손을 앞으로 내밀자 잔영으로 이루어진 원이 빠르게 그의 손을 벗어나 운무 쪽으로 쏘아졌다.
휘이익.
잔영으로 만들어진 원은 운무에 진입한 뒤 곧장 흩어져 층층의 파문을 일으켜 운무를 뚫고 지나갔다. 한제는 그 모습을 관찰할 생각도 없는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천천히, 그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이 잔영의 원은 한제가 지난 7년간 금제를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낸 방법으로 끊임없는 개조를 거쳐 이제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
심지어 육안으로 볼 필요도 없이 그저 잔영의 원 안에 있는 신식의 파문을 통해 금제의 규칙과 구조를 살필 수도 있었다.
이 잔영의 원은 간단해보이지만 사실 몇 초 만에 만 번을 넘게 손을 흔들어야 하나가 만들어졌다. 게다가 그 손도 그냥 흔드는 것이 아니라 금제의 법에 따라 흔들어야 했다. 말하자면 이 잔영의 원 하나가 곧 하나의 금제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한참 후, 그가 두 눈을 번쩍 뜨고 오른손을 앞으로 뻗더니 진지하고 신중한 표정으로 거의 2각 동안이나 흔들었고 다시 잔영의 원이 나타났다.
열 번째 잔영의 원을 만들어냈을 때, 한제의 이마는 땀으로 흥건했고 오른손에는 감각이 없었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