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80
“터져라!”
수도자는 도망치면서도 붉어진 두 눈을 번득이며 소리쳤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허상의 주먹을 감싼 얼음층이 무너져 내렸다. 한데 허상의 주먹은 폭발하지 않고 그대로 튀어나와 모든 장애물을 파괴하며 파멸적인 기세로 수도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헛!”
수도자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허상의 주먹은 수도자를 후려쳤다. 그러자 수도자는 온 얼굴에 핏줄이 울룩불룩 돋아난 채 두 팔을 뻗어 가까스로 허상의 주먹에 저항했다.
하지만 그의 두 팔은 거의 순식간에 펑 소리를 내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크악!”
두 팔이 마디마디 와해되는 사이 수도자는 피를 토해냈고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허상의 주먹에서 발산되는 것을 느꼈다. 저 주먹 앞의 수도자는 수레를 막으려 하는 사마귀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가라!”
한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허상의 주먹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도자의 몸을 그대로 짓눌렀다.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기고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수도자의 육신은 그대로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수도자의 원신은 살아남아 뒤쪽으로 도주하려 했다. 허나 한제가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이야말로 그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수도자! 넌 당시 네게 맞설 힘도 없던 나를 거의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날, 네가 오늘처럼 내 앞에서 상갓집 개 같은 꼴이 될 것을 알았느냐? 이것이 바로 인과다! 이제 내가 네 목숨을 거둘 차례다!”
한제의 눈에 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넌 나를 죽여서는 안 된다! 나는 신종의 장로이자 운해성역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이며 봉계 지존의 노예다! 난 계내를 위해 공을 세울 수 있다! 계외의 정보도 알고 있다! 아니, 네 노예가 될 테니 목숨만은 살려다오!”
수도자는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인 만큼 강력했지만 심성은 한참 뒤떨어졌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그는 다급하게 도망치는 와중에도 목이 터져라 빌었다.
한제는 눈 깜짝할 사이 수도자의 곁에 이르렀다.
“이건 봉계의 지존을 대신하는 주먹이다!”
한제는 의외로 덤덤한 목소리로 싸늘하게 외치며 수도자의 원신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크아악! 너, 넌 나를… 죽일 수 없다. 난 세 번째 단계의⋯⋯.”
수도자의 원신은 요란한 비명을 내질렀고 절망스런 얼굴로 다급히 물러났다.
허나 한제는 수도자의 말을 듣지도 않고 다시 주먹을 날렸다.
“이건 이천매를 위한 주먹이다!”
한제의 목소리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주먹까지 침착했던 것은 아니다. 그 주먹에 담긴 힘에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인 수도자의 원신은 두 다리가 터져나갔다.
“끄아악! 나, 난 봉계 지존의 노예다! 날 노예로 삼으면 네게 도움이…”
수도자는 체면도 잊고 노예가 되기를 자처했지만 한제는 여전히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건 운해성역의 수련자들을 귀원종 수련자들을 위한 주먹이다!”
한제는 세 번째로 주먹을 휘둘렀고 이번에는 수도자의 가슴을 강타했다.
“꺽!”
숨넘어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수도자의 원신은 바르르 떨더니 거의 투명해졌다. 금방이라도 흩어져 사라질 것 같았다.
“이건 네가 방금 소환한 금빛 폭풍에 대한 주먹이고!”
네 번째 주먹질에 수도자의 왼쪽 팔이 펑 하고 터졌다.
“이건 나 이한제를 위한 주먹이다!”
다섯 번째 주먹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도자 원신의 가슴을 꿰뚫고 거대한 구멍을 냈다.
수도자는 순간 밀려드는 극심한 고통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이건, 그저 너를 죽이기 위한 주먹이다!”
적당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자 한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둘러대며 마지막 휘둘렀다.
그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수도자가 빽 소리를 질렀다.
“내… 내 목숨은 모은미와 연결되어 있다! 날 죽이면 그녀도 죽어! 그녀까지 죽일 셈이냐?”
수도자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한제의 심신을 파고들었다.
계내에서의 첫 번째 전투 (1)
쾅!
살의가 가득 담긴 한제의 주먹은 수도자로부터 겨우 3촌 떨어진 곳에 간신히 멈추었다.
수도자는 질끈 감았던 눈을 떴을 때 자신의 코앞에 멈춰선 한제의 주먹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이내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어째서 멈춘 것이냐? 죽여 보아라! 날 죽여 보라니까! 흐흐흐, 모은미 이 멍청한 계집. 수준을 회복시켜주는 단약이라는 말에 자신과 내 영혼을 하나로 묶어두는 단약을 덥석 받아먹더구나! 크하하핫!”
수도자는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더니 하나 남은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에 왜곡이 일어났고 그 너머로 거대한 진 위에 앉은 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두 눈을 감은 그녀의 백의는 피가 흥건했다.
그녀는 뭔가를 느낀 듯 속눈썹을 바르르 떨더니 두 눈을 떠 전방을 바라보았다. 창백한 얼굴에 박힌 그녀의 눈은 왜곡 너머 한제에게 닿았다.
그녀의 얼굴에 점차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 미소에서는 어쩐지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줄곧 나를 미워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줄곧 아파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류미가 네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류미는 나고 내가 곧 류미다⋯⋯.”
“지난 시간, 몸이 허약해짐에 따라 점차 내가 모은미라는 사실을 잊게 되었다. 난 내가 류미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에게 결과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평의 존재로 인해 우리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 단약이 내 수준을 회복시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자와 나의 영혼을 연결시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허나… 난 지쳤다⋯⋯. 곤허는 소멸되고 고향은 파괴되어 남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 사실을…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회복이 된들 그게 무슨 소용일까? 성녀라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일까? 아무리 보고 싶어도 자신의 아이조차 볼 수가 없는데…”
“너와 나는 지독한 인연으로 얽혀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네 마음속에 빼낼 수 없는 가시가 되었을 것임을… 난 알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네 손에 죽을 수 있어 차라리 다행이다. 우리 둘 중 빚을 진 쪽은 나지 너나 평이가 아니니까. 난 아주 많은 빚을 졌다⋯⋯. 난 좋은 어미도 되지 못했다. 만약… 언젠가 평이가 살아난다면… 부디 그 아이에게… 이모완이 친어미라는 것만 알려주기를… 나 같은 사람은⋯⋯ 어미도 아니니⋯⋯.”
“나의 죽음으로 너와 나 사이에 2천 년이나 이어져 온 해묵은 인연에서 너도 나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모은미의 눈에서 보석 같은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은 천천히 그녀의 옷깃을 적시고 이미 그 옷을 참혹하게 물들이고 있던 피에 섞여들었다. 눈물이 섞이자 피는 약간이나마 옅어졌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미간으로 가져갔다.
순간 수도자가 흠칫 놀랐다. 이때만큼은 모은미의 생사에 한제보다도 그가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한제는 모은미의 오른손이 미간으로 향한 순간, 두 눈을 번득였다. 동시에 멈춰 있던 주먹을 다시 뻗었고 왼손으로는 허상에 일어난 왜곡 너머 모은미를 가리키며 정신술을 발휘했다. 이에 모은미의 오른손은 미간에 닿기 직전에 그대로 멈춰버렸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형용할 수 없는 힘이 수도자의 원신으로 밀려들었다. 이에 오른손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이어서 머리로 달려든 힘이 그의 혼을 말살시켰다.
“끄아아아!”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봉계 지존의 노예이자 신종의 대장로이며 운해성역의 안 되는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인 수도자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의 입에서는 복잡한 구결이 흘러나왔다. 이 기이한 구결을 알아들은 것은 흩어지고 있던 귀종 출신의 9급 고요뿐이었다. 고요는 흠칫 놀라더니 한제를 돌아보았다.
“도고의 화명술(化命術)! 저건 도고의 화명술 아닌가! 조상님이 말씀하시길 평생에 오직 세 번만 발휘할 수 있는 술법이라고 했지!”
도고로부터 계승을 받으면서 알게 된 화명술은 모완에게는 쓸 수 없지만 지금 수도자의 모든 생기를 모은미의 것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가능했다. 수도자의 혼은 죽은 상태였지만 생기는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순간, 한제는 수도자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파괴하는 대신 수도자와 연결되어 있는 모은미에게 그 생기를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
정신술로 인해 그대로 멎어 있던 모은미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수도자의 생기가 특별한 방식을 통해 그녀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넌 내게 빚을 지지 않았다. 평에게도 마찬가지다.”
한제는 허공의 왜곡 속 모은미를 가만히 응시하고 오른손을 휘둘러 정신술을 거두며 말했다.
그때, 지하마수가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다시 한제에게 돌진해왔다. 그 눈에는 잔뜩 겁을 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이 둔하디둔한 녀석은 자신에게 안정감을 주던 한제가 사라진 것을 좀 전에야 눈치채고는 이렇게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다.
녀석은 왜 말도 없이 자신의 곁에서 떠나갔느냐고 원망하는 듯, 토라진 듯한 눈으로 한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제 곁에서 다시 안정감과 자신감을 찾자마자 아까처럼 포효를 내지르는 한편 온몸의 솜털을 바짝 세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는 와중에도 언제 한제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힐끔거리며 그를 감시했다.
그때 요종의 여러 수련자들이 종주의 지도에 따라 일제히 한제를 향해 절을 올렸다.
“요종의 수련자가 봉계의 지존을 뵙습니다!”
신종의 수련자들도 좀 전에 목격한 상황 때문인지 복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포권을 했다.
“신종의 수련자가 봉계의 지존을 뵙습니다!”
“운해성역 귀종, 봉계의 지존을 뵙습니다!”
“운해성역의 수련자 봉계의 지존을 뵙습니다!”
이어서 사방의 수련자들은 분분히 손을 모으며 한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수련자들의 목소리는 마치 파도처럼 울려 퍼졌다.
한제는 그들을 덤덤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곳에 돌아온 순간부터 그는 봉계 지존의 자리를 이어받은 자신이 계속해서 그 자리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자리를 내려놓을 마음이 없었다. 특히 ‘운해에 영광을’이라는 구호를 연호하던 이들의 모습을 본 순간에는 더욱 그랬다.
한제는 묵묵히 수련자들을 향해 포권을 했다.
영동상인과 주진은 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특히 주진의 표정은 매우 복잡했다. 그로서는 한제가 계내에서 이렇게까지 고귀한 신분일 것이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던 것이다.
‘봉계의 지존이라⋯⋯.’
반면 영동상인은 그리 복잡할 게 없었다. 어차피 한제에게 완전히 제련됐기에 그의 충성심은 이미 굳건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