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82
같은 시각, 태고 성신 우주 어딘가에서 존재하지 말아야 할 세계가 벌어진 공간의 균열에 나타났다.
이곳은 선기로 가득했고 하늘은 구름과 노을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한 이곳에는 선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 꼭대기에 한 여인이 있었다.
중년의 이 여인은 절세미녀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온화하고 점잖으면서도 고고한 기운이 풍겼다. 궁궐에서나 입을 법한 옷을 입은 그녀의 미간에는 붉은 타원이 새겨져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던 여인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면서 손을 들어 전방을 가리켰다. 그러자 작은 옥 조각이 나타났다. 옥 조각에는 죽은 꽃이 붙어 있었는데 이 꽃은 여인의 손짓에 따라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다.
피어나던 꽃에서는 곧 아홉 개의 꽃잎이 떨어지더니 회전하기 시작했고 회오리를 일으켜 하늘로 솟다가 곧 사라졌다.
“네가 아직 결단을 못 내렸다면 내가 도와주지!”
여인은 작은 소리로 외치며 왼손을 들어 머리에 꽂혀 있던 금색 뒤꽂이를 뽑아 내던졌다.
★ ★ ★
남사족이 기거하는 남산.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짙은 살기가 때로는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기이한 칠현금 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두 가지 극단적인 느낌이 연주자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남몽도존은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뭔가 중대한 결정 앞에서 심사숙고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천매는 맞은편에 앉아 그런 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남산 위의 하늘에서 돌연 파문이 일더니 그 안에서 한 줄기 금빛이 휙 날아들었다. 중년 부인이 내던진 뒤꽂이였다.
뒤꽂이는 빛을 번득이며 허공을 가르고 남산으로 날아들어 순식간에 이천매와 남몽도존 사이의 바닥에 꽂혔다.
팅-!
순간 칠현금의 현 하나가 끊어졌다. 남몽도존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바닥에 꽂힌 뒤꽂이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는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고 한참이나 흐른 뒤에야 그는 안색을 되찾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남몽도존이 손을 휘두르자 끊어진 현이 칠현금으로부터 분리되더니 남색 빛에 휩싸였다. 남몽도존은 혀끝을 깨물어 그 위로 피를 뿜어냈다. 피가 섞여 든 칠현금의 현은 곧장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이 현은 공간을 뛰어넘어 봉계의 진 밖에 떠 있는 천벌전 앞에 나타났다. 남몽도존의 피와 마음으로 연결된 칠현금의 현에서는 짙은 향불의 힘도 느껴졌다.
★ ★ ★
태고 성신 서쪽 끝.
옅은 흰색 빛을 띠는 이곳의 우주에 진입하면 심신이 서늘해지면서 체내의 수준 역시 얼어붙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저 멀리 아홉 개의 수련성이 회전하고 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아홉 개의 거대한 얼음조각 같았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하나의 얼음조각이었다. 아홉 개의 수련성이 거대한 하나의 얼음으로 봉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얼음조각 안에는 일고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동자 하나가 가부좌를 튼 자세로 얼어붙어 있었다.
한데 죽은 것만 같았던 동자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기이하게도 각 눈에는 세 개의 눈동자가 있었다.
동자가 두 눈을 뜬 순간 아홉 개의 수련성을 봉인하고 있던 거대한 얼음조각에서는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허상의 눈이 나타났다. 이 눈 역시 동자와 마찬가지로 눈동자가 세 개였다.
허상의 눈이 나타난 순간, 세 개의 눈동자는 세 갈래의 어스름한 빛으로 휙 튀어나왔다.
물러설 수 없다
태고 성신, 선기로 가득한 어느 공간의 균열. 그 안에는 하나의 대륙이 떠 있었다. 아주 오래된 기운을 풍기는 이 대륙이 어디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그 위에는 한 여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여인은 붉은 옷을 입었고 머리카락 역시 붉은색이라 멀리서도 눈에 띌 터였다. 몸에 딱 달라붙는 의상 탓에 가는 허리와 상체의 굴곡이 도드라진 요염한 자태에 사내라면 심장이 뛸 수밖에 없을 것만 같았다. 더구나 얼굴 역시 백옥같이 하얗고 아름다웠다.
여인의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두 눈이 살며시 뜨였다. 어딘가 원한이 깃든 눈이었다. 동시에 여인은 손을 들어 입가로 가져가더니 손가락을 살짝 물었다.
여인의 손가락 끝에서 몽글몽글 솟아난 세 방울의 피는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거대한 귀신들로 변했다. 끔찍한 몰골의 이 귀신들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하늘을 향해 비명을 내질렀다.
잠시 후 세 귀신은 적의의 여인에게 절을 하더니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 ★ ★
봉계의 너머. 빛의 검과 칠현금의 현, 아홉 개의 꽃잎 옆으로 어스름한 빛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눈의 허상이 나타났다. 그 안에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세 개의 눈동자가 들어 있었다.
그 눈이 나타난 순간, 우렁찬 포효와 함께 세 귀신도 모습을 드러냈다.
계외의 수준 높은 수련자들이 각자의 법보를 봉계의 진으로 보낸 이때, 태고 성신 내 장존의 궁전에서는 고함의 위력에 중상을 입었던 검은 도포의 사내가 촛불 앞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사내는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비쩍 마른 손을 들어 전방의 허공을 꽉 움켜쥐었다.
“정중로월!”
거칠지만 허약한 그의 목소리가 궁전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수련자 9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봉계의 진은 바르르 진동했고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동시에 빛을 번득였다. 동시에 갖가지 진령(陣靈)이 번득였고 피비린내 가득한 법보가 강력한 위력을 발산했다.
고향으로 향하던 한제는 이 변화를 눈치채고는 두 눈이 바짝 졸아든 채 봉계의 진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9만 명에 이르는 계외의 수련자들은 한제가 진 너머에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태고 성신에서 계내와의 첫 번째 전투를 일으킬 장소로 택한 곳은 운해성역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봉계의 진을 뚫기 위해 노리고 있는 그 부분을 공교롭게도 한제가 막 지나던 참이었다.
한제는 그물처럼 펼쳐져 있는 거대한 진이 약간 흐릿해지는 것을 눈치챘다. 모종의 힘이 안쪽으로 뚫고 들어오려 하는 것이 분명했다.
한제의 표정이 급변했다.
계내는 아직 전쟁 준비를 마치지도 칠채계를 다 찾지도 못한 상태였다. 한데 전쟁은 바로 코앞으로 닥쳐왔다.
봉계의 진은 양날의 검이었다. 그것은 계내의 향불을 단단히 막아 계내 수련자들의 수준을 제한했다. 말하자면 계내 수련자들의 근본을 잘라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허나 이 진은 보호 작용도 했다. 그 안으로 들어가기도 밖으로 나가기도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콰쾅!
봉계의 진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진의 혼이 뭔가에 의해 뽑혀나가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없었다. 한계로서는 누군가에게 알릴 필요도 없었다. 계내의 수준 높은 수련자들은 이미 눈치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한제로서는 비록 홀로 계외의 힘을 버텨낼 수는 없더라도 대비를 해야 했다
당장 이곳에서 떠날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것은 침략이다. 고향을 위해, 집을 위해, 계내 수련자로서의 영광을 위해 한제는 도망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가 지금껏 행한 살육은 모두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
허나 수도자와의 전투에 앞서 운해성역 수련자들이 보여준 숭고함을 목격했을 때, 그 역시 계내 수련자로서의 영광을 느꼈다.
전쟁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는 이 전쟁에서 죽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에게 모완을 살릴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허나 그는 지금 자신이 아닌 자신의 고향을 위해 싸우기로 했다.
대의를 위해 그는 반드시 싸워야 했다. 홍삼자가 그에게 죽음에 이를 때까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물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것은 전쟁이었다.
그리고 한제는 이미 이 전쟁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런 여러 가지 감정 아래, 한제는 수도자를 죽인 뒤로 약간 흩어졌던 살기를 다시 한번 일으켜 살육의 본원을 증폭시켰다. 누구든 계내로 들어오는 자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저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살육이 아니다. 그건 도살에 가깝다.
진정한 살육에는 대의가 있어야 한다. 이상을 위해, 보호해야 할 사람이나 세상을 위해 저항하는 것이 진정한 살육이다. 그리고 이런 살육이야말로 본원으로 피어날 수 있다.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소환한 천만 개의 검기를 봉계의 진으로 날려 보냈다. 동시에 소매를 휘둘러 영동상인과 주진을 동시에 소환했다. 그들이 태고 성신과의 전쟁을 원하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지금으로서 그들은 한제의 명령에 따라야만 한다.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한제는 결인을 그린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수많은 금제가 나타나 봉인을 진행했다.
이어서 한제는 붉은 검을 소환했다. 검에서 발산된, 우주를 뒤덮을 듯한 붉은 빛 아래 한제는 두 팔을 휘둘러 온몸으로 하얀 빛을 발했고 온 우주의 빛을 흡수해 광영순을 형성했다.
왼쪽 눈에서는 아홉 색깔의 화염으로 형성된 폭풍이 언제든지 튀어나갈 준비를 했고 오른쪽 눈에서는 번개 문양이 회전하면서 우렁찬 기세를 드러냈다.
덤덤한 얼굴로 봉계의 진 앞에 선 한제는 마치 한 명의 전선(戰仙) 같았다. 홀로 10만 명의 수련자와 맞서는 것이 가능한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풀거리는 백발과 백의가 그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 주었다.
그에게서는 또한 계내 수련자로서의 영광을 엿볼 수도 있었다.
이때 계외 수련자들의 눈에는 봉계의 진이 거대한 우물로 보였다. 태고 성신에서 기이한 기운이 커다란 손처럼 그 우물 안의 혼을 끄집어내는 중이었다.
콰르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봉계의 진은 끊임없이 진동했고 진령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며 반격을 해왔다. 그러자 곧바로 장존회 천벌전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거칠게 울려 퍼졌다.
“파진(破陣)!”
그 외침에 우주가 진동하더니 빛으로 이루어진 검이 곧장 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주위의 다른 법보들도 마찬가지였다.
진을 파괴하는 것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태고 성신 두 명의 선비(仙妃)와 세 명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 그리고 장존까지 총 여섯 명이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법보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진령을 향해 공격을 퍼붓자 봉계의 진에서는 은백색 전광이 번득였다. 그러더니 전광이 한데 응집해 한 자루 창이 되었다.
무궁무진한 천둥번개의 힘을 발산하는 창은 곧장 빛으로 이루어진 검을 향해 달려들었다. 빛의 검은 향불의 힘을 폭발시켜 대항했다.
콰콰쾅!
검과 창이 충돌한 순간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고 봉계의 진에서는 보라색 빛이 일어났다. 계외에서도 계내에서도 똑똑히 보일 만큼 짙은 빛이었다.
이 빛 아래 거대한 채찍 하나가 응집하더니 이내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남몽도존이 보낸 칠현금의 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서로 뒤얽히며 요란하게 충돌했다.
다음으로 나타난 것은 피와 같은 붉은 빛이었다. 끔찍한 고통의 비명과 함께 퍼져 나가던 붉은 빛은 아홉 개의 머리가 달린 거대한 망치가 되되니 거친 기세로 선비가 보낸 아홉 개의 꽃잎에 돌진했다.
이어서 진에서는 뜨거운 기운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거대한 허상의 전차가 나타났다. 그러자 작열하는 듯한 기운이 사방으로 발산되었다.
전차는 10만 척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투석기였다. 아주 오래된 기운이 느껴지는 이 투석기는 세상의 모든 생령을 다 불태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화염 덩어리를 내던졌다. 화염 덩어리는 얼음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눈동자가 담긴 눈을 향해 달려들었다.
뒤이어 봉계의 진이 검은 빛을 번득이더니 거대한 낭아봉(狼牙棒)이 나타났다. 낭아봉은 시커먼 피로 물든 수많은 못이 박힌 채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면서 또 다른 선비가 날려 보낸 세 방울의 피로 이루어진 귀신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콰쾅!
봉계의 진이 격렬하게 진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