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84
허나 한제 역시 피하지 않고 돌진했다. 수많은 적과 수많은 법보, 그리고 수많은 신통술에 그를 감싸고 있던 광영순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고신의 육신은 역시 강력했다. 광영순이 무너져 내렸음에도 한제는 두려워하지 않고 돌진했고 그의 손끝이 향한 곳에서는 수련자들이 폭발하며 숨을 거두었다.
한제의 두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에게 가까이 있던 수련자들은 허상의 화염에 불타며 자폭했지만 그 육신에서 피어오른 허상의 화염은 한제에게로 날아와 그 곁을 맴돌았다.
한 번의 돌격으로 몇 명을 죽였는지 알 수도 없었다. 한제의 몸에는 이미 수많은 부상이 생겨났지만 이는 빠르게 아물어갔다.
그 무렵, 허상의 거대한 도끼가 다시 한 번 공격을 가해 순식간에 5천여 명의 수련자를 짓이겼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영동! 주진! 계외의 수련자로서 우리를 배반할 셈이냐!”
동적자는 강력한 수련자답게 소매를 휘둘러 혼자서 영동과 주진을 가로막는 동시에 다시금 공격을 가하려는 거대한 도끼에도 저항했다.
주진은 착잡한 표정이었지만 공격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한편 영동은 동적자의 말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침착한 모습이었다.
“이한제를 죽여라!”
계내로 진입한 운락 대사는 한제를 보자마자 두려움이 어린 눈빛으로 손을 들어 전방을 가리키며 날카롭게 외쳤다.
화작족 선조는 몸을 홱 틀더니 거대한 도끼를 내버려둔 채 한제에게 돌진했다. 남조상인과 화작족 선조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그 무렵 천벌전의 비쩍 마른 노인은 봉계 지존의 옥패에서 뿜어져 나온 부드러운 빛과 봉계 지존의 신식에 저항하고 있었다. 막상막하의 위력에 짧은 시간 안에 승부가 갈릴 것 같지는 않았다.
전쟁은 순식간에 절정에 이른 상태였다.
봉계의 지존 덕분에 저울은 계내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지만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태고 성신에서는 십여 개의 부족이 모든 준비를 마친 채 대기하고 있었는데 장존회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순식간에 몰려든 것이다. 이들은 십여 개 부족으로 모두 합치면 그 수가 8만 명이 넘었고 그중에는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둘이나 됐다.
한제는 싸늘한 눈으로 저 멀리서 달려드는 화작족 선조와 남조상인을 노려보았다. 화작족 선조 정도는 둘이서 덤빈다 해도 한제 혼자서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나, 남조상인이 문제였다. 그는 무려 공령기 경계에 이른 수련자로 말하자면 혼자서도 충분히 한제를 죽일 수 있는 정도였다. 게다가 그에게는 대황상인에 비견할 만한 독공도 있다.
화작족 선조는 오른손을 들어 힘껏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미간의 화작족 낙인에서 몸길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검은 불새가 나타나 허상의 화염의 힘을 품은 채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불새는 무궁무진한 향불과 작열하는 기운을 품은 채 눈 깜짝할 사이 한제 앞에 이르렀다.
남조상인은 싸늘한 눈으로 단지 오른손만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하얀 그의 손이 형용할 수 없는 맹독을 품은 듯 시커멓게 물들었다. 그는 잔인한 미소를 입가에 드리운 채 엄청난 거리를 뛰어넘어 화작족 선조가 소환한 불새를 관통해 한제에게 그 시커먼 손을 휘둘렀다.
한제는 재빨리 몸을 틀며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그때, 저 멀리 운해성역의 허공에 왜곡이 일었고 이어서 홍삼자와 남운자가 튀어나왔다. 두 사람은 매우 신중하면서도 살기 어린 얼굴로 순식간에 전장에 이르렀다.
그들 뒤로 우렁찬 포효와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운해에 영광을!”
“운해에 영광을!”
수만 명의 수련자가 강력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물론 운해성역의 수련자들이었다.
수만 명의 수련자가 빛을 그리며 줄기줄기 날아드는 광경은 수련자들의 전쟁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일반인으로서는 유성우 한 번 보기도 힘들지만 지금 이 광경은 그보다 수백 수천 배는 놀라웠다.
이들에게서는 결사항전의 의지가 느껴졌다. 그 어떤 장벽이라도 이들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만 같았다.
운해에 영광을!
우렁차게 울리는 구호가 한 줄기 기세가 되어 피를 뜨겁게 했다.
홍삼자 역시 일찍이 전장에서 죽음을 각오한 상태였기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돌진했다. 그 웃음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자부심과 위엄, 그리고 세 번째 단계 수련자로서 세상 그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세가 어려 있었다.
곁에서는 아직 한제가 잘 알지 못하는 남운자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함께 달려들고 있었다.
그 무렵, 한제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세 번째 단계에서도 공령기에 이른 수련자는 향불의 힘을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향불로 자신의 영혼을 만들 수도 있다.
향불의 힘은 세 번째 단계의 초입에서는 열력(涅力)으로 불리기도 했다. 열력, 즉 열반의 힘은 무궁무진한 향불을 의미한다. 공열기 수련자는 향불에서 취한 열력을 통제해 갖가지 신통술을 발휘한다.
공령기는 영혼을 승화시키는 과정으로 공령기 경계에 이르러 민첩하고 기민해진 수련자의 영혼은 원신과 융합할 수 있다. 때문에 공령기 수련자의 원신은 영신(靈神)이라고도 한다.
공령기 수련자 체내의 열력은 영력으로 전환된다. 물론 첫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흡수하는 영력과는 전혀 다른 영력으로 이것을 얻기 위해서는 향불을 열력으로 전환한 뒤 의지를 융합해 원신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세상으로 향불을 백성으로 삼아 얻어낼 수 있었다. 즉, 모든 공령기 수련자는 각각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공령기 수련자의 힘은 공열기 수련자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남조상인이 방금 휘두른 손에도 스스로를 기반으로 한 세상의 힘이 담겨 있었다.
순간 한제의 시야에서 남조상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를 비롯한 눈앞의 모든 것이, 심지어는 봉계의 진과 그 주위의 모든 수련자도 사라졌다. 마치 억지로 어떤 환각에 갇힌 것처럼 전에는 보지 못한 세상에 들어와 있었다.
이곳의 하늘과 땅은 새카맸다. 지독한 악취가 진동했고 주위에는 검은 옷을 입은 수련자들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 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끝없는 세상을 가득 채운 듯한 이들은 모두 남조상인의 향불 세상 속 백성이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다름 아닌 남조상인의 향불의 세계였다.
한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세 번째 단계 수련자 그중에서도 공령기 수준 수련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적었다. 영동상인과 주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직접 그 수준에 이른 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든 경지였다.
사실 한제는 계외에서 남몽도존을 만나고 장존과 겨룬 데다가 대황상인과 연합하는 등의 경험을 통해 공령기 수준에 이른 수련자를 은근히 멸시하는 마음이 생겨나던 차였다. 하지만 지금, 그 멸시는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손이 나타났다. 손 역시 새카만 데다가 비릿한 악취를 풍겼다.
하늘을 뒤덮을 것처럼 거대한 손바닥은 그대로 내리 떨어졌다.
쿠르릉!
대지가 진동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싼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제로서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그 소리만으로도 그는 초조해졌다.
이 모든 것은 환각이었지만 동시에 환각이 아니기도 했다.
사실 한제의 주위에서는 계외의 수련자들이 계속해서 질주해왔고 저 멀리서는 운해성역의 수련자들도 들이닥치고 있었다.
한제는 이 우주 속에 가만히 떠 있었다. 허나 그의 예리했던 눈빛은 사라지고 대신 텅 빈 눈빛만이 남아 있었다. 그런 그의 전방으로 검은 불새가 다가왔고 그 안에서 남조상인의 오른손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지금 한제가 느끼고 있는 모든 것은 너무나 사실적이었다. 그는 남조상인의 향불의 세계 속에서 거대한 손바닥이 된 하늘이 내리 떨어지고는 것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설명은 장황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홍삼자
한제는 재빨리 가부좌를 틀고 주위 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중얼거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 충동은 갈수록 강렬해져 육신을 짓눌렀고 이에 한제의 두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었다. 얼굴에서는 푸른 핏줄이 울룩불룩 돋아났다.
거대한 손바닥 역시 점점 가까워지면서 엄청난 압박을 가해왔다. 이제 한제와 거대한 손바닥의 거리는 1만 척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고신이다! 나는 도고다!”
그 순간, 한제는 고개를 번쩍 쳐들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오른손에는 고신의 팔목 보호대가 나타났다. 위기의 순간, 고신의 비호를 선택한 것이다.
거대한 고신이 한제 앞에 나타나 그를 감싸 안고는 거대한 몸으로 하늘에서 내리 떨어지는 손바닥을 막아주었다.
새카만 손바닥이 고신의 등에 정확히 떨어졌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이 한제를 감싸 안은 고신은 몸을 바르르 떨었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로서도 거대한 손바닥의 위력에는 저항해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찌 네놈을 숭배할 수 있겠느냐!”
한제는 하늘을 향해 거칠게 외쳤다. 그 소리에 그를 감싸 안았던 고신은 방향을 틀더니 주먹을 날렸다.
꽈릉!
고신의 주먹은 새카만 손바닥의 한가운데를 가격했고 강력한 충격이 사방으로 확산되면서 손바닥은 순식간에 10만 척 위로 튕겨 나갔다.
고신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흩어져 사라지더니 팔뚝 보호대가 되어 다시 한제의 오른팔을 감쌌다. 이내 그 팔뚝 보호대에는 쩌적 소리와 함께 균열이 일어났다.
한제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튀어나가며 주먹을 휘둘렀다. 허상으로 나타난 도고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그의 주먹에 녹아들었다.
“부서져라!”
화염과 천둥번개의 위력을 동시에 일으키며 유성처럼 하늘을 가로지른 한제는 새카만 손바닥과 충돌했다.
콰르릉!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한제가 손바닥을 뚫고 반대편으로 튀어나왔다. 새카만 손바닥은 바르르 진동하다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텅 비어 있던 한제의 눈에 의식이 돌아왔다. 사실 그가 넋을 놓았던 것은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으나, 정신을 차리자마자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해내며 튕겨나가듯 뒤로 물러났다.
거의 동시에 그에게 달려들던 검은 불새 속 남조상인의 주먹은 우뚝 멈추더니 바르르 진동하다가 피를 뿜어냈다.
“윽!”
남조상인은 엄청난 힘에 떠밀려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참이나 뒤로 밀려나 검은 불새의 체내에서 튕겨 나왔다.
‘강력한 육신의 힘이다!’
남조상인의 얼굴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는 그제야 어째서 운락 대사가 한제를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한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기도 전에 이런 반격을 가하다니! 저런 자가 세 번째 단계에 이른다면 엄청난 위협이 될 터! 절대 살려둬서는 안 된다!’
‘공령! 공령!’
한제는 창백한 얼굴로 한참을 밀려났다.
방금 전의 상황은 겉으로 보기와 달리 그에게는 매우 위험한 순간이었다. 동시에 그는 공령기 수련자의 두려움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실감했다. 공령기 수련자가 공열기 수련자보다 훨씬 더 적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쿨럭! 쿨럭!”
뒤로 튕겨나가며 몇 차례나 더 피를 토해낸 한제는 계외의 어느 노인과 부딪쳤다. 노인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그 피와 살이 흩어지기도 전에 생기와 원신이 뽑혀 나와 한제에게 흡수되었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한제는 멈추려 애쓰는 대신 튕겨나가는 힘을 이용해 계외 수련자들 틈으로 뛰어들었고 자신과 충돌하는 수련자들의 생기와 원신을 흡수했다.
“살려둘 수 없다!”
남조상인은 싸늘한 눈으로 한제를 쫓으려 했다. 한데 붉은 기운이 눈앞에 어리는 듯하더니 홍삼자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뜻밖의 강자를 마주친 남조상인은 다급히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 홍삼자의 도호를 들어는 보았느냐!”
홍삼자가 손을 휘두르자 순간 우주에는 끝없는 붉은 빛이 나타났다.
이 빛은 놀랍게도 이곳에 모여든 계외 수련자들의 체내에서 발산되는 듯했다. 마치 그들의 몸에서 흐르는 피가 빛을 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멀리서 보면 수천 명의 수련자들이 마치 핏빛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는 남조상인의 몸에도 붉은 옷이 입혀져 있었다.
그러나 이 옷은… 옷이 아니었다.
콰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