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85
“크아아!”
“으악!”
폭발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붉은 옷을 입은 것처럼 변해버렸던 수많은 수련자들의 몸에서 대량의 피가 피부를 뚫고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의 땀방울 하나하나에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끔찍한 비명과 함께 수천 명의 수련자들은 진짜 붉은 옷을 입게 됐다. 동시에 그들은 비쩍 마른 시체가 되어 순식간에 죽음을 맞았다. 원신 또한 체내에 갇혀버려 육신에 드리운 죽음의 기운에 뒤덮임으로써 살아 있는 죽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홍삼자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비쩍 말라 죽어버린 수련자들의 두 눈이 붉게 번득이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들은 홍삼자에게 통제되어 계외의 수련자들을 살육하기 시작했다.
“피를 내놔!”
“피를 줘! 내 몸에 피가 말랐어. 피가 필요해!”
이들의 입에서는 고통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피를 잃은 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그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남조상인 역시 옷이 붉게 물든 채 창백한 얼굴로 영신의 기운을 한 움큼을 뱉어냈다. 이어서 그의 육신은 바르르 떨리다가 무너져 내렸고 원신은 두려움에 떨며 튀어나왔다.
이때 그는 문득 어떤 전설 하나를 떠올렸다.
계외에서 수만 년간 전해져 내려온, 두 번째 봉계 전쟁의 전설이었다. 그리고 그 전설에서 언급된 것은 오직 한 사람이었다.
“혈삼동자! 네가 혈삼동자로구나!”
홍삼자는 싸늘하게 미소를 짓더니 남조상인의 원신에게 달려들었다.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때, 계외의 후발대에서 두 명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홍삼자를 막아섰다.
한편 홍삼자의 정체를 알아차린 동적자는 두 명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와 함께 몸을 날렸다. 영동상인이나 주진, 거대한 도끼에 신경 쓸 여력 따위는 없어 보였다.
남조상인은 손을 휘둘러 새로운 육신을 취해 그 안에 자신의 원신을 녹여 넣더니 세 방울의 주먹만 한 독액을 소환해 홍삼자에게 날려 보냈다.
한제를 쫓던 화작족 선조 역시 다급히 방향을 틀어 홍삼자에게로 향했다.
총 네 명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홍삼자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남운자는 한창 진행 중인 전투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곧장 봉계의 진으로 돌진했다. 그의 임무는 이 봉계의 진을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계내는 아직 준비가 다 되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다급하게 봉계의 진으로 향하던 남운자의 눈에 마침 영동상인과 주진이 보였다.
“이한제 도우! 저 두 사람의 도움을 좀 받고 싶은데 괜찮겠나?”
남운자의 거친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한제는 뒤로 물러나며 상처를 치료하던 중 남운자의 목소리를 듣고는 신식을 전달했다. 그러자 영동상인과 주진이 곧장 남운자에게 다가갔다.
“너희 둘은 나를 엄호해라!”
남운자는 짧게 분부를 내린 뒤 봉계의 진 안으로 들어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대량의 금제로 균열을 뒤덮었다.
계외에서 온 수많은 수련자들 중 대부분은 운락을 빽빽하게 에워싼 채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바짝 졸아들어 있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엄청난 상황을 마주하게 될 줄은 예상치 못한 탓이다.
특히 누구도 저지할 수 없는 저 거대한 도끼는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5천여 명의 수련자를 고혼(孤魂)으로 만들었고 이에 곳곳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2만 명이 넘게 희생됐다!’
운락 대사는 거대한 도끼를 가리키며 외쳤다.
“천벌전, 시검일족, 파혼일검으로 저 도끼를 막아라!”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봉계의 진 밖에서 천벌전을 에워싸고 있던 흑의의 수련자 수천 명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곧장 빛줄기가 되어 거대한 도끼를 향해 달려들었다.
도끼가 다시 한 번 휘둘러지려던 찰나 달려든 수천 명의 수련자는 동시에 오른손을 들어 올려 흑색 검을 소환해 휘둘렀다.
수천 갈래의 검기가 하나로 응집해 강력한 기세로 도끼에 맞섰다.
카캉!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도끼가 우뚝 멈춰 섰다. 하지만 검기들 역시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수천 명의 수련자는 모두 피를 토해냈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고 이번에는 왼손을 들어 올리더니 자신들이 뿜어낸 피를 붉은 빛으로 바꾸어 검에 녹여내 크게 휘둘렀다.
한편, 운락 대사는 말없이 결인을 그리더니 멀리 떨어진 한제를 가리켰다.
“봉멸족의 세 장로여, 저자를 맡기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자를 봉인하거나 죽여라!”
운락 대사가 말을 마친 순간 그녀의 뒤에서 세 갈래의 어스름한 빛이 나타나더니 보라색 도포를 입은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장존처럼 온몸을 보라색 도포로 감싸고 있어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는 세 사람은 말없이 어스름한 빛이 되어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멀리서 달려오던 운해성역의 수련자들이 ‘운해에 영광을’이라는 구호를 연호하며 이곳에 이르렀다. 수만 명에 달하는 이들은 계외에서 끝도 없이 밀려드는 침입자들과 뒤얽혀 잔혹한 전투를 치르기 시작했다.
광기 어린 고함과 비명이 곳곳에서 울렸고 짙은 살기와 피비린내가 사방으로 퍼졌다. 한 운해성역의 수련자가 결인을 그려 계외 수련자를 죽였지만 그 역시 고개를 들기도 전에 어디선가 날아든 비검에 몸이 꿰뚫렸다. 그의 뒤로 나타난 계외의 수련자는 험악한 얼굴로 자신의 비검을 움켜쥔 뒤 곧장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들었다.
“운해에 영광을⋯⋯.”
비검에 몸이 관통당한 운해성역 수련자는 죽음을 맞기 직전에 고향을 한 번이라도 더 눈에 담으려는 듯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결국 눈앞이 흐릿해지자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자폭을 선택했다. 최후까지 적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피해를 입히기 위해서였다.
콰쾅!
한 수련자의 자폭이 형성한 파멸적인 충격이 퍼져 나갔다.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운해성역의 중년 수련자가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무려 네 자루의 비검이 박힌 그의 육신은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고통 따위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크게 웃으며 돌진하더니 한 계외 수련자를 붙잡고 자폭을 해 함께 죽음을 맞았다.
또 한쪽에서는 세 번째 천쇠에 이른 계외 출신 어느 수련자가 번개처럼 곳곳을 쏘아 다니며 운해성역 수련자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그를 저지할 사람이 없는 듯, 그 수련자는 어느 운해성역 수련자의 가슴팍에 손을 박아 넣더니 상대의 심장을 그대로 뽑아내 터뜨려 버렸다.
한데 이어서 자리를 뜨려던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방금 심장이 뽑혀나가고 원신이 파괴된 운해성역 수련자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자신의 몸을 꼭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하찮은 미물 주제에!”
계외의 수련자가 냉소하며 몸을 비틀자 운해성역 수련자의 육신은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저 멀리까지 튕겨나갔다.
그때였다. 짧은 순간이나마 발목이 묶여 있던 틈에 수많은 운해성역 수련자들이 달려들더니 “운해에 영광을!”이라는 구호와 함께 자폭을 했다. 열 명의 자폭으로도 죽일 수 없다면 백 명으로 백 명으로도 안 된다면 3백 명으로! 그런 각오가 엿보였다.
퍼펑!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파멸적인 힘이 그 계외 수련자에게 덮쳐들었다. 죽음을 맞기 직전, 그의 귓가에 어떤 소리가 와 닿았다.
“운해에 영광을!”
이내 그는 머리만 분리된 채 멀찍이 나가떨어지며 천천히 눈을 감았고 그 머리 역시 전투의 여파에 파괴되어 버렸다.
세 개의 봉인
첫 번째 전투 이후로 몇 년이 흘렀다. 당시의 전투에 참가한 한 수련자는 규열기 수준에서 첫 번째 천쇠에 이르러 운해성역 어느 종파의 대장로가 되었다.
도에 대해 논할 자격을 얻게 된 그에게 한 제자가 물었다.
“대장로님, 영광이란 무엇입니까?”
이에 대장로가 된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영광이란 하나의 의지다. 이 의지는 절대로 적 앞에서 물러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죽더라도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고야 말게 하지. 허나 모든 수련자가 그런 상태에 이르기는 어렵다. 두려움을 무시하기는 힘들지. 특히 가까운 벗이 죽음을 맞았을 때, 수만 명의 적 앞에서 아군은 수천에 불과할 때,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런 상황에서, 죽음 앞에서 영광에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아련한 눈빛으로 생각에 잠겼다.
“허나 그때는 단 한 사람 때문에 그리고 그의 한 마디 때문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는 당시 우리들에게 진정한 영광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지. 그 말을 나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게야. 지금도 그 말을 떠올리면 그때가 온몸의 피가 뜨겁게 달아올랐던 그 상황이 떠오르니까.”
★ ★ ★
뒤로 끊임없이 물러나던 한제는 운해성역 수련자들의 광기 어린 움직임을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또한 그들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그러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운을 느꼈다.
‘죽여라!’
‘죽여! 죽여!’
돌연 몸을 돌린 한제는 곧장 계외의 대군을 향해 달려들면서 왼손을 들어 화염을 피워올렸다. 이에 그를 막기 위해 달려들던 계외의 수련자들은 단숨에 죽음을 맞았다.
뒤이어 한제가 오른손을 휘둘러 소환한 천둥번개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방을 뒤덮으며 계외의 수련자들을 집어삼켰다.
한제는 운해성역 수련자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곧장 적진에 진입하더니 두 팔을 매섭게 휘둘렀다. 두 눈은 붉은 살기로 번득였고 자신이 얼마나 많은 적을 죽였는지도 알지 못했다.
핏빛 검이 주위를 맴돌며 계외 수련자들의 목숨을 끊임없이 앗아갔다.
그때, 돌연 세 갈래의 어스름한 빛이 계외 수련자 대군 사이에서 달려들더니 한제 근처에 이르러 보라색 도포를 입은 세 사람으로 변했다.
이들은 삼각형 대형으로 허공에 뜬 채 각자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봉멸족의 후손으로서 생기를 바치노니 우리 봉멸족의 신통술로 저자의 모든 원력을 봉하라!”
“봉멸족의 후손으로서 생기를 바치노니 우리 봉멸족의 신통술로 저자의 모든 생기를 봉하라!”
“봉멸족의 후손으로서 생기를 바치노니 우리 봉멸족의 신통술로 저자의 육신의 힘을 봉하라!”
세 갈래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고 세 개의 봉멸족 봉인이 그들의 미간에서 번득이며 튀어나와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발산하며 달려들었다.
한제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붉은 두 눈에는 광기가 가득했다. 혼자서 수많은 적을 상대하느라 짧은 시간에 많은 원력을 소모한 상태였다.
그의 공격에 기교나 기술 따위는 없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적을 죽일 수 있을지, 그것만이 그의 의식을 지배했다. 이에 모든 신통술은 한없이 단순해졌다. 오직 상대를 죽이는 것뿐.
세 개의 봉멸족 봉인이 날아들어 순식간에 한제의 몸에 떨어졌다.
도저히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막아내기가 쉬웠더라면 봉멸족이 태고 성신의 가장 뛰어난 부족 중 하나로 꼽히지도 않았을 터였다.
“하아아!”
낮게 기합을 내지르며 한제는 세 개의 봉인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 주먹질에 광풍이 일더니 거대한 주먹의 허상을 형성해 세 개의 봉인과 충돌했지만 주먹과 봉인은 서로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않고 관통해 지나갔다. 이에 세 개의 봉인이 한제의 몸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주먹은 보라색 도포를 입은 세 사람에게 떨어졌다.
콰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