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88
운락 대사의 표정도 급변한 상태였다. 그녀는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한제를 싸늘하게 노려보며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녀의 손짓에 잔뜩 위축되어 있던 계외 수련자들은 살기 어린 표정으로 달려들었다. 마치 그래야만 마음속에 피어오른 두려움을 숨길 수 있다는 듯이.
한제는 한 줄기 광기를 발산해 몸에 두른 채 돌진했다. 이에 그를 막아서려던 적들의 대열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적들은 억지로 눌러두었던 두려움에 압도당했다.
홍삼자와 남운자는 적들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한제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다. 허나 홍삼자는 선비의 기습으로 부상을 당한 데다가 지금 맞서고 있는 얼음 동자도 결코 만만치 않았기에 모든 힘을 낼 수가 없었다.
가장 먼저 틈을 봐서 홍삼자를 피해 튀어나간 것은 화작족 선조였다. 그는 강한 살기를 품은 채 검은 화염으로 온몸을 두르고는 한제에게 곧장 돌진했다. 미간에서는 화작족의 낙인은 번득이면서 거대한 검은색 불새로 변해 화작족 선조를 감쌌다.
이 불새는 향불의 힘을 발산하며 수많은 수련자 대군을 관통해 곧장 한제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개천부따위 두렵지 않다! 네놈을 내 손으로 죽여주마!”
화작족 선조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한제로부터 1만 척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르렀다. 검은 불새가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며 돌진해왔다.
짙은 살기로 두 눈이 붉게 충혈된 한제의 미간에서 반점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고신의 힘을 그의 전신으로 퍼뜨렸다. 한제는 그 상태로 말없이 개천부를 휘둘렀다.
“날 막는 자에게는 죽음뿐이다!”
한제의 기합과 함께 개천부 위로 거대한 도끼의 허상이 나타났다. 봉계의 진에 있던 진령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도끼의 허상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곧장 검은 불새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전장의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로 쏠렸다. 심지어 홍삼자나 남운자 또는 그들과 맞붙은 계외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운해성역 수련자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던 계외의 수련자들도 화작족 선조가 한제를 죽여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으로 모든 이목을 집중했다. 그래야만 한제로 인해 생겨난 두려움이 사라질 터였다.
반대로 만약 화작족 선조가 한제를 막는 데 성공한다면 운해성역 수련자들이 기껏 끌어올린 강력한 전의와 기세는 한풀 꺾일 수밖에 없었다.
즉, 전장의 판세가 한제와 화작족 선조의 격돌에 달려 있는 셈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도끼의 허상과 검은색 불새가 충돌했다.
콰르릉!
온몸으로 화염을 이글거리던 불새는 도끼의 허상에 대항하려는 듯 맹렬하게 불어났다.
하지만 녀석이 맞서려고 하는 도끼는 보통 도끼가 아니라 개천부였다.
우렁찬 소리와 함께 확산되었던 화염은 맥없이 무너져 내렸고 거대한 도끼는 그 화염을 가르며 불새를 강타했다.
콰쾅!
온 우주가 뒤흔들리는 가운데 전장의 모든 사람은 이어진 상황을 똑똑히 목격했다.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그 광경은 운해성역 수련자들에게는 자랑이, 계외의 침략자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악몽이 되었다.
“키야아악!”
거대한 도끼가 떨어진 순간, 검은 불새는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도끼는 불새의 몸을 관통했고 불새는 순식간에 둘로 갈라져 버렸다.
갈라진 불새 안에서 화작족 선조가 경악한 얼굴로 튀어나왔다. 이미 모든 힘을 잃은 그의 미간에 도끼가 떨어졌다.
쾅!
짧은 소리에 이어 파멸적인 힘이 화작족 선조의 미간에 밀려들었다. 그러자 미간에서는 피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고 이어서 화작족의 낙인이 갈라졌다. 그 너머로 화작족 선조의 하얀 두개골이 드러났다.
“크으으…”
화작족 선조는 안간힘을 다해 버텨냈지만 결국 두개골에도 균열이 생겨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내 개천부가 빛을 번득이며 갈라진 두개골을 파고들어 화작족 선조의 머리를 두부처럼 으깨버렸다.
허나 끝이 아니었다. 화작족 선조는 머리부터 시작해 목과 가슴, 배꼽을 지나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심지어 원신조차 반으로 갈라져 그대로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설명으로는 장황했지만 실제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즉, 한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를 죽인 셈이었다.
“…”
“…”
전장은 적막에 휩싸였다. 계외의 침입자들은 불새가 무너져 내리는 것과 두 쪽으로 갈라진 화작족 선조의 시체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 상황을 그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한제는 이게 시작이라는 듯 화작족 선조의 시체를 지나쳐 저 멀리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운락 대사를 향해 돌진했다.
계외 수련자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으나 한제를 피해 물러나기에 바빴다. 심지어 운락 대사를 보호하던 수련자들 역시 새하얗게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제는 마치 황천에서 걸어 나온 선마(仙魔)처럼 세상 모든 생령을 소멸시켜버릴 듯한 존재였다.
운락 대사 역시 물러나고 있었다.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은 다른 누구보다도 컸다. 그녀는 일찍이 앞날을 예측했을 당시의 화면 속 뒷모습의 주인이자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존재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봉계의 지존에 영광을!”
“봉계의 지존에 영광을!”
하나하나의 격앙된 목소리가 운해성역 수련자 수천 명의 입에서 터져 나오며 점점 더 커지다가 결국 하나로 합쳐져 널리 퍼져 나갔다.
“봉계의 지존에 영광을!”
그것은 영광을 추구하는 진정한 고함이었다. 또한 이들의 비장함이 담긴 기개였다.
계외의 침입자들이 주춤주춤 물러나는 가운데 한제가 우주를 가르며 지나갔고 이에 온 우주가 바르르 진동하며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내리쳤다.
꽈르릉!
개천부는 한제의 손에서 내뿜는 살기와 광기가 담긴 쉭쉭거리는 소리에 계외 수련자들은 전의가 무너져 내린 채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것은 첫 번째 전투이자 전쟁의 시작에 불과했다. 한데 계외에서는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인 화작족 선조가 죽었다. 더구나 그의 죽음은 비열한 수단에 당해서도 아니었고 홍삼자와 같은 계내 최강자에게 당한 것도 아니었다. 봉계의 지존이라는 자의 떳떳하고 정정당당한 일격에 의한,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배로 인한 죽음이었다.
수도자의 죽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수도자는 그저 노예 하나에 불과했다. 반면 화작족 선조의 죽음은 계외 수련자들의 자신감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계내 입장에서는 이번 전투에서 달성해낸 가장 빛나는 성과였다.
계외의 수련자 10만여 명은 두려움과 경외심이 동시에 어린 눈으로 한제를 살피며 묵묵히 물러났다.
이때 홍삼자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크하하! 봉계의 지존이 계외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를 죽였다. 이 전투에서 우리는 지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그는 소매를 홱 휘둘러 체내로부터 붉은 빛을 뿜으며 달려들어 얼음 동자와 네 명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를 막아섰다.
남운자 역시 적의의 선비와 맞섰다.
모든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묶여 있는 상황. 계외에서는 한제를 막을 자가 없었다.
독의 바다
한제는 개천부를 든 채 허공을 가로질렀다. 계외의 수련자들은 끊임없이 뒤로 물러났지만 한제는 가볍게 이들을 따라잡았다. 멀리서 보면 마치 한 자루의 예리한 검이 계외 수련자 대군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듯했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창백한 얼굴의 운락 대사는 주춤주춤 물러나며 오른손으로 잔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결인을 그렸다.
“저자를 막아!”
운락 대사가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 얼음 동자가 강력하고도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 남조상인을 홍삼자가 발휘한 신통술 너머로 밀어냈다.
“가서 봉계의 지존을 죽여!”
동자의 낮은 고함이 우렁찬 포효가 되어 울려 퍼졌다. 그는 지금 한제로 인해 계외 수련자들이 전의를 잃고 두려움에 떨고 있음을 이는 전쟁에서 치명적인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만약 한제가 계외 수련자 대군 한가운데로 더 파고들어 운락 대사를 죽이기라도 한다면 자신들은 이 전투에서 패배할 터였다.
그는 남조상인만이 아니라 봉계의 또 하나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까지 밀어냈다. 남색 도포를 입은 이 백륵족(白勒族) 출신의 노인은 홍삼자의 신통술에서 벗어나자마자 남조상인의 뒤를 따라 한제에게 돌진했다.
이때 한제는 계외 수련자 대군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감히 누구도 그를 막아서지 못했고 오히려 체내에서 피어오른 허상의 화염에 비명을 내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한제는 그대로 운락 대사와의 거리를 좁혀 갔다.
4천 척, 3천 척, 2천 척!
그 순간, 남조상인이 달려들었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한제를 죽일 듯 노려보며 오른손을 들어 다섯 색깔의 독 안개를 소환했다.
이 다섯 색깔의 독무(毒霧)는 남조상인의 영혼과 연결된 공격으로 지난 1만 년간 모으고 제련해낸 것이었다. 그 위력은 대황상인의 독공에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한제! 이 전투는 끝났다!”
남조상인은 서늘한 눈빛으로 오른손을 힘껏 뻗어 움켜쥐었다. 그와 한제 사이의 거리가 1천 척 정도로 좁혀졌을 때 쏘아져 나간 독무는 마치 다섯 마리의 용처럼 허공을 갈랐다.
독무가 바로 등 뒤까지 왔을 때, 돌진하던 한제가 살기 어린 붉은 눈을 번득였다. 자신을 막아서려 한다면 누구라도 기꺼이 죽일 생각이었던 그는 몸을 돌리며 미간의 반점을 회전시켜 천황로를 소환했다. 거의 순식간에 천황로에서는 아홉 방울의 독이 나타났다.
“네놈을 상대하는 데에는 세 방울의 독이면 충분할 터!”
한제가 싸늘하게 내뱉으며 왼손을 휘둘러 일으킨 광풍이 세 방울의 독을 싣고 다섯 마리의 용 같은 독무를 향해 휘몰아쳤다.
한편, 천황로에서 독이 튀어나온 순간 남조상인의 두 눈동자는 바짝 졸아든 상태였다.
“대황의 독! 네가 어떻게 그것을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황상인이 직접 발휘한 공격이 아니라면 내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
남조상인은 냉소하며 다섯 마리 용에 바짝 따라붙어 돌진했다.
그때, 세 방울의 독과 다섯 마리의 용이 충돌했다.
콰쾅!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세 방울의 독이 짙은 독의 바다를 형성했다. 허상인지 실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독의 바다가 거대한 손바닥처럼 다섯 마리의 용을 후려쳤다. 그러자 독무는 한 갈래 한 갈래 흩어지더니 독의 바다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 이건… 대황상인의 독이 아니잖아!”
남조상인은 크게 놀랐다. 평생 독공을 익혀온 그는 세상의 온갖 독을 상세히 알고 있었지만 지금 눈앞의 저 독은 분명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근본적으로는 대황상인의 것과 비슷했지만 어딘가 달랐다. 허나 그 미묘한 차이마저 독의 바다가 위력을 폭발하기 전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눈 깜짝할 사이 다섯 갈래의 독무가 모두 붕괴해 독의 바다에 흡수되었다. 이어서 독의 바다에서 일어난 거대한 파도는 곧장 남조상인에게 달려들었다.
“헛!”
거리가 너무 가까웠던 탓에 독을 품은 파도의 충격을 완전히 피해내지 못한 남조상인은 금방이라도 흩어져 사라질 듯 흐릿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대한 파도에 완전히 휩쓸렸다.
“크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고 남조상인은 흐릿해진 채 가까스로 독의 파도에서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의 피부는 썩어 문드러진 상태였고 몸 곳곳에서는 독무가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크으으…”
그는 두려움에 흔들리는 눈으로 뒤로 물러났다.
“대황상인도 이런 독을 제련하지는 못했을 터! 이건 대체 무슨 독이냐!”